등록 : 2006.05.23 20:04
수정 : 2006.06.09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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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시민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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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의 시민편집인칼럼
5월19일치 29면 ‘한겨레를 읽고’ 난에 박연익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의 글이 실렸다. “근거 없는 주장은 또다른 폭력”이란 제목의 글이다. 글은 11일치 ‘야! 한국사회’에 실린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의 “인권에 관심 없는 노무현 대통령”이 ‘근거 없는 주장’으로서 ‘또다른 폭력’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반론권은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논지에서 벗어난 반론, 말꼬리 잡기 식의 반론까지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오 사무국장은 5월4일 평택에서 일어난 ‘여명의 황새울’ 작전을 두고 인권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새벽부터 2만명의 군, 경찰, 용역을 동원해 벌인 노무현 정권의 작전”으로 글을 시작해, “624명이나 되는 시민을 현행범으로 체포하였다”라고 지적한 뒤, “평택 사태의 책임은 다른 누구도 아닌 대통령 노무현에게 있다. 유혈사태의 책임자는 바로 그다”라고 끝맺고 있다. 요컨대, 노 대통령 취임 초에 인권문제에 민감한 움직임을 보였던 관료들이 - 평택사태에서 확인됐듯이 - 인권 불감증에 걸린 원인과 배경에 대해, 인권에 관심 없이 ‘단호한 대처만 주문한’ 노 대통령에게 그 책임을 묻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박 행정관은 평택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있다. 그 흔한 유감 표시조차 하지 않은 채, 노 대통령의 말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 한마디로, 반론의 기본 요건조차 갖춰지지 않은 글이다. 편집자는 이 글을 싣기에 앞서 논지에서 벗어났음을 지적하고 평택사태에 대한 견해를 따져 물어야 마땅했다.
박 행정관은 특히 “엄정한 법집행은, 자기주장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적으로 간주해 타도하려는 태도는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판단은 누가 하는가? 권위주의적 발상이 따로 없다. 또 평택에서 ‘자기 주장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적으로 간주해 타도하려는 태도’를 보인 쪽은 누구인가. 땅과 평화를 지키려는 시민들인가, 아니면 군, 경찰에 용역까지 동원해 ‘작전’을 펼친 노무현 정권인가.
그는 또 “노 대통령은 2003년 3월, 국가인권위를 ‘고도의 독립적 인권옹호 활동기구’로 규정하며 ‘정부도 업무를 존중하고 성실히 답변하는 것이 바른 태도’라고 밝힌 바 있다”고 취임 초에 했던 ‘말’을 인용하며 노 대통령을 변호하고 있다. 그렇다면, 비정규직 차별 해소와 관련해 국가인권위가 낸 의견에 대해 “무식하면 용감하다”라고 한 노동부 장관의 반응은 인권위의 ‘업무를 존중하고 성실하게 답변한’ 것이었나.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실천이다.
〈한겨레〉는 인권문제를 게을리 할 수 없다. 국가보안법은 물론이고, 노동계의 ‘국가보안법’이라는 직권중재가 여전히 살아 있다. 손배 가압류가 노동인권 탄압의 도구가 된 지 오래다. 노무현 정권은 국제노동기구의 권고를 생떼쓰듯 외면하고 공무원 노조를 탄압하고 있다. 그뿐인가.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일상적인 인권 탄압, 민주노조 파괴 용역 깡패들의 출몰, 고속철도 여승무원들, 김영삼·김대중 정권 때보다 늘어난 구속 노동자들 …. 이들에게 노무현 정권은 무엇인가? 미국과 자본을 지주로 모신 마름정권인가?
사회적 약자들이 처한 인권상황을 제기해도 부족한 터에, 기본요건도 갖추지 못한 글, 인권을 독점한 듯한 오만함이 배어나는 글을 반론이라고 실은 것은 잘못이다. 〈한겨레〉조차 인권 불감증에 걸린 게 아니라면.
홍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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