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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4.25 18:16 수정 : 2006.06.09 15:02

홍세화 시민 편집인

홍세화의 시민편집인 칼럼

〈한겨레〉 사설의 방향은 항상 옳다. 지극히 상식적인 주장을 펴기 때문이다. 워낙 몰상식한 일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데다 그런 사회를 반영하듯 몰상식한 신문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니 한겨레로선 이래저래 해야 할 말이 많다. 그 때문일까, 아니면 한국 신문들의 일반 관행을 따르기 때문일까, 한겨레는 하루 세 개의 사설을 싣는 비율이 85%를 넘는다(2006년). 이 비율도 최근 두 개의 사설을 싣는 비율이 늘어나 낮아진 것이다.

왜 하나의 사설이 아니고 둘도 아닌 셋일까? 나에겐 그 근거가 분명하지 않다. 아무튼 보통 하루 세 개의 사설을 싣자니 각 사설의 길이가 짧을 수밖에 없고, 상식적인 내용을 짧게 쓴 사설은 제목만 읽어도 무엇을 말하려는지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한겨레 사설에서 ‘2% 부족’을 느끼는 것은 정론지의 위상에 걸맞은 깊이와 격조를 찾기 어려운 대신 타성에 젖은 듯한 안이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다른 신문들이 몰상식하다는 점이 한겨레에 상식적인 주장을 펴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요컨대 ‘하루 세 개 사설’이란 형식률이 심층성과 과감성을 잃게 하지는 않는지 따져보자는 것이다. 세 개의 사설이 중요성에 따라 순서가 정해지긴 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사안의 중요성에 따른 강온의 묘가 담보된다고 할 수 없다. 이 한계는, 사건이 발생해야만 그에 조응한 사설이 실린다는 점과 함께 한겨레 사설이 ‘텍스트’에는 강하지만 ‘콘텍스트’에는 약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한다.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에 대한 사설을 쓴다는 점은 일면 당연한 듯하지만, 이는 한겨레 사설이 상식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을 반영한다. 중대한 사안일수록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고 오랫동안 잠복한 채로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법안이 그런 예 중의 하나인데, 이 법안과 관련된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 법안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그 역사적·사회경제적 의미와 함께 분석하고 조명한 사설을 독자는 바란다. 올해 들어 비정규직 법안 관련 사설은 엄밀히 보아 3월1일치 ‘비정규직 법안 강행 파국으로 가자는 건가’와 4월19일치 ‘실태도 모르며 비정규직 확대하려는 정부’뿐이다. 이명박 서울시장의 ‘황제 테니스’ 사건과 관련된 사설이 세 개 실렸던 점과 비교해 보자. 사건이 발생해야만 조건반사적으로 사설을 싣는 것이 사안이 갖는 의미를 총체적으로 분석하고 전망할 수 있는 내공이 부족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면 지나친 말이 될까?

이런 한계 때문일까, 한겨레 사설에서 저력이나 강한 맥을 느끼기 어렵다. 4월24일치 사설 ‘의혹 깊어가는 한-미 FTA 추진 과정’도 마찬가지다. 1면 머리기사 ‘한국 통상본부장 방미 때 FTA 선결조건 해결 보장’에 조응한 사설인데, 미국 의원 27명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 의해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거짓말한 사실이 드러났다는 내용의 기사에 비해, 사설은 ‘의혹 깊어가는…’이란 제목과(의혹은 오래 전부터 이미 깊었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납득할 수 있는 답변을 내놔야 한다”라는 결론으로 무척 어정쩡하다. 김현종 본부장이 과연 어느 나라 통상교섭본부장인지 물으며 노무현 정부에 파면을 요구하는 과감성도 필요하며 나라의 장래와 관련된 중요 정보를 상대방을 통해 얻어 들어야 하는 시스템상의 문제를 강력하게 제기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홍세화 publicedi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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