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확인 거쳐 인터넷서 삭제키로
시민편집인실은 독자의 목소리에 늘 귀기울이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시민편집인실(publiceditor@hani.co.kr, 02-710-0698)의 문을 두드리십시오. 여러분의 입과 손발이 되겠습니다. ‘인터넷 시대’가 이전에는 예상치 못했던 여러 숙제들을 신문에 던져주고 있다. 대구에 사는 ㅅ아무개씨가 3월30일 <한겨레> 편집국에 전화로 다음과 같은 하소연을 해 왔다. “내가 10년 전쯤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적이 있다. 당시 실명으로 신문에 기사가 실렸는데, 그 뒤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아직도 포털에서 내 이름을 입력하면 이 기사가 뜬다. 우리 집 아이들이 볼까 걱정된다. 이 기사를 지워 주었으면 한다.” ‘종이 신문’만 있던 시절에는 문제될 게 없는 일이었다. 10년 전 기사를 보려면 작심을 하고 도서관이나 신문사 자료실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요즘은 상황이 달라졌다. 포털사이트에서 간단하게 찾을 말만 입력하면, 1990년대 중반 이후 작성된 관련 기사들이 줄줄이 뜬다. 인터넷시대의 신문의 숙제 한겨레신문사 독자권익위원회는 3월31일 열린 3월 정례회의에서 이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했다. “사정이 딱한 것 같은데, 그냥 기사를 삭제해 주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 수 있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신문은 하루 보면 그치는 보도지만, 연속성 관점에서 보면 역사의 기록이다.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이 기록물을 고치거나 삭제하는 것이 허용되기 시작한다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또 여기에 정치적 목적이나 경제적 이해관계 같은 불순한 의도까지 개입된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혼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 또 허용을 하더라도 기술적 문제가 남는다. 요청이 있는 경우는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놔둔다면 형평성에 어긋날 수 있다. 그렇다고 신문사가 과거 기사들을 일일이 확인해 수정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독자권익위원회는 당사자의 권익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역사의 기록물로서 신문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합리적 방안을 찾아 실행할 것을 편집국에 권고했다. 이에 편집국은 기준과 절차를 만들기로 했다. 요즘은 이런 기사들을 작성할 때 익명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없지만, 언론 보도로 인한 선의의 피해를 적극적으로 구제한다는 취지에서 과거 기사들도 고쳐 주기로 했다. 다만 대상을 구속·기소되거나 하급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을 당시 실명으로 보도됐는데, 나중에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뒤 기사화하지 않은 경우로 정했다. 당사자가 대법원 판결 자료 같은 증빙자료를 보내오면, 사실 확인을 거쳐 <인터넷 한겨레>에 저장돼 있는 기사부터 삭제하고 포털사이트 등에도 삭제를 요구하기로 했다. 독자권익위원회는 3월 지면과 관련해서는 ‘교도관 여성 재소자 상습 성추행’과 ‘2006년 체육대학은 아직도 병영’ 기사 등을 높이 평가했다. 전자는 끈질긴 추적 취재를 통해 숨겨진 진실을 파헤쳐 사회적 약자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공권력의 횡포를 드러낸 점이, 후자는 흔히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지나칠 수 있는 사안을 문제 의식을 갖고 접근해 이슈화한 점이 돋보였다는 것이다. 물론 문제 제기도 있었다. 여성 재소자가 자신이 성추행당한 사실을 여동생에게 전하는 편지를 3월4일치 신문에 실었는데, 당사자의 명예를 훼손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이에 대해 편집국은 “당시 여성 재소자는 뇌사 상태여서 진술이 불가능했고 교도관은 범죄 사실을 부인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결정적 증거인 편지의 공개가 불가피했으며, 여성 재소자의 명예를 고려해 공개 범위도 최소화했다”고 설명했다. 끈질긴 추적보도 호평 받아 이날 독자권익위원회에는 위원장인 홍세화 시민편집인과 사외위원인 김두식 경북대 법대 교수(변호사), 김종옥 전 서문여고 교사, 사내위원으로는 김종구 편집국 수석 부국장, 김태읍 판매국장, 송우달 광고국장 등이 참석했다. 안재승 편집기획팀장 js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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