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3.13 18:14
수정 : 2006.06.09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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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시민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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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시민편집인 칼럼
현상은 본질을 숨기곤 한다. 그래서 신문은 드러나는 현상만을 보도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지 늘 긴장해야 한다. 오늘도 신문과 방송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다투는 모습을 전하고 있다. 하지만 그 한나라당은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의 대상이었다. 최근 최연희 의원의 성추행 사건과 이해찬 총리의 골프 파문이 크게 보도되면서 그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정당들의 정치공학적인 싸움으로 비치는 만큼, <한겨레>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들이 싸울 필요를 느끼지 않는 사안이 오히려 민중의 생존권에 막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인식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한겨레 지면에서 중심 주제로 부각되지 못한 것은 이런 인식의 부족에서 비롯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추진과 의료, 교육 등 서비스 개방 의지를 밝혔다. 또 남은 임기 동안 자유무역협정 체결에 전념하겠다고 말했다. 사회 양극화 극복 과제는 구호로 그치고 말았을 뿐, 그 실현을 위한 아무 정책이 없는 점도 한겨레가 비판해야겠지만, 그 자리에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자리잡게 된 배경에 대한 분석과 비판 기사를 한겨레는 보여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자동차, 반도체 등 일부 수출품을 생산하는 재벌기업엔 당연히 이롭다. 또 한-미 동맹이 강화될 수 있다. 재벌에겐 이익이 되고 친미에 바탕을 둔 기득권 세력의 입지를 강화시켜주지만 사회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공공성은 파괴될 것이다. 한겨레는 농업 개방, 의료와 교육 등 서비스 개방, 문화주권 포기가 가져올 파장, 그리고 한-미 동맹 강화의 반작용으로 제기되는 남북관계의 변화, ‘동북아 균형자론’에 대한 물음을 던져야 한다. 또 노 대통령에게 대연정의 꿈을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실현하려는 것인지, 이 협정을 체결하면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다는 경제관료의 주술에 걸린 것은 아닌지 물어야 한다. 갑자기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구걸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참여정부는 미국이 자유무역협정의 선행 조건으로 내세웠던 스크린쿼터, 쇠고기 수입, 자동차 배출가스, 의약품 값 등의 요구를 협상이 시작되기 전에 모두 받아들였다. 3월4일치 한겨레가 지적한 대로다. 그날치 1면 머리 “미국 압력에 ‘약값 인하’ 중단” 기사와 5면 “FTA ‘링’ 오르기 전에 의약품 주권 백기” 기사, 그리고 2월27일치 “노대통령 측근도 ‘한-미 FTA 졸속 추진마시오‘” 등의 기사는 시의적절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모자란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단순한 통상협정이 아니다. 농민 생존권은 물론, 의료·교육·문화 등 우리 삶의 토대와 정체성까지 위협할 수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한겨레는 정면으로 맞서고 있는가? 독자는 3월2일치 ‘세계의 창’에 딘 베이커 미국경제정책연구센터 공동소장의 “‘비자유무역협정’ 팔기”나 3월13일치 전창환 한신대 국제경제학부 교수의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뜻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연속 기고로 만족할 수 없다. 개항 이래 가장 중요한 사안이라고도 하고 최악의 재앙을 예고한다고 말하기도 하는 이 협정이 안고 있는 문제가 워낙 방대하기 때문이다. 지난 2월 초 자유무역협정 협상 방침이 발표된 이후 사설에서 몇 차례 다루기는 했지만, 더욱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이 협정에 반대하는 시민사회의 주장과 움직임에 대해서도 독자들에게 충분히 전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
홍세화 시민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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