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02.24 18:25 수정 : 2006.06.09 15:04

홍세화 시민 편집인

홍세화의 시민편집인 칼럼

흔히 “신문은 그 사회를 그대로 반영한다”고 말한다. 옳은 말이다. 나는 여기에 덧붙여 “한겨레신문의 건강성은 한국사회의 건강성의 정확한 지표가 된다”고 말한다. 이 말을 새삼 한겨레 구성원들과 나누고 싶다.

어느 독자가 날카롭게 지적했듯이, 우리 사회엔 진보 신문, 보수 신문이 있는 게 아니라, 상식적인 신문과 몰상식한 신문이 있다. 보수의 탈을 쓴 몰상식한 신문과 시청자들을 드라마 중독증에 걸리게 한 원죄에서 자유롭지 못한 공영방송이 대중매체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사회에서 상식과 정의를 지향하는 신문은 이중의 어려움 아래 놓일 수밖에 없다. 사회구성원들은 주로 소유와 대리만족에 관심을 가질 뿐 사회와 자신과의 관계에서 긴장하려 하지 않는다. 신문사 경영비용의 80% 이상을 광고료로 충당해야 하는 신문시장의 구조 아래 전단지도 유익한 생활 정보가 되는 사회에서, 사회구성원들에게 사회와 긴장할 것을 요구하는 신문은 어려운 환경에 처할 수밖에 없고, 내부 구성원들에게 기름진 생존을 허용할 수 있는 처지에 있지 못하다.

이런 말 꺼내기 어렵고 개인적으로 말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5년차 한겨레 구성원이 월 150만원의 봉급으로 만족해야 하는 내부 사정을 알고 있는 사람의 선입견이 작용했을 수 있다. 한겨레 지면에서 자신감 있게 의제를 설정하고 이를 밀어붙이는 저력과 내공을 찾기 어렵고 밀착 취재의 집요함과 심층보도의 뚝심이 잘 보이지 않는다. 방향은 옳은데 도도한 맥이나 치열함을 느끼기 어렵다.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으로 바라건대, 그것이 오래된 가난에 주눅 든 탓이 아니기를!

실상 혼자 벌이론 서울에서 가정을 꾸려나갈 수 없는 봉급 수준이다. 이를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배우자가 일터를 떠나는 등 가정의 경제상황에 변화가 생긴 구성원이 한겨레를 떠나는 것에 대해 새삼스레 한겨레에 위기가 온 양 의기소침해 할 일이 아니다. 이를 담담히 받아들이는 늠름함이 있어야 한다. 한겨레를 징검다리 삼았다가 떠난 사람이라면 애당초 한겨레 사람이 아니었다.

워낙 가진 것으로 비교하는 사회이긴 하다. 천박한 사회, 오직 물질의 크기로 사람의 가치와 능력을 평가하는 사회다. 그리고 사람은 본디 합리적인 동물이기보다 합리화하는 동물이다. 물질 중심의 가치관으로 존재의 성숙을 위한 긴장을 이완시킨 사람일수록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하면서 한겨레를 멀리 한다. 심지어 어려운 조건에서 ‘잘 하고 있다’고 북돋아주기보다 ‘그래, 너 잘 낫다’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한다. 그렇게 저 쪽에서 치이고 이 쪽에서 치인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한겨레 종사자들에게 언론노동자로서 생활과 신문을 통해 늠름한 민중의 표상이 되기를 요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 사회가 개혁이 실종된 채 표류하고 있는 데에는 성장 중심의 물질주의 가치관에서 벗어난 늠름한 민중의 상을 정착시키지 못한 탓이 크다. 한겨레는 그 표상이 되어야 한다. 구성원이 늠름한 민중의 상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신문이 그러한 표상이 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최근에 한겨레는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한겨레가 더욱 늠름해지는 전기가 되길 바란다. 과감히 버릴 것은 버리는 파격을 행하더라도 방향성에 힘을 실어야 할 것이다.

다시 강조하고자 한다. 우리가 가는 길이 어려운 게 아니라, 어렵기 때문에 우리가 가는 길인 것이다. 한겨레 구성원은 스스로 늠름해야 한다. 헛헛할지언정 자유인 아닌가?

홍세화 시민편집인 publiceditor@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시민편집인의 눈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