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09.07 10:06 수정 : 2019.09.07 10:41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오브더티브이
장동민 언행 논란

XtvN ‘플레이어’ 출연한 장동민
18살 래퍼에게 전화번호 요청
거절당하자 ‘탈락’으로 보복

여성 실력·성취로 평가받을 순간
권력 지닌 남성 사적 관계 요구
제작진, ‘장난’ ‘철컹철컹’ 멘트로
패거리주의·비대칭 농담 묵인·긍정

지난 1일 방송된 <엑스티브이엔>(XtvN)의 버라이어티 <플레이어> 화면 갈무리
2018년 여름, 러시아월드컵에서 한국이 독일을 2-0으로 이긴 덕에 16강 진출이 가능해진 멕시코는 온통 ‘고마워요 한국’ 열풍으로 들끓어 올랐다. 일군의 멕시코 청년들이 애국가에 맞춰 태극기를 향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영상, 멕시코 한국대사관 앞에 모여 즐거워하는 멕시코인들의 영상, 한국인 배낭여행객을 목말 태우고 개선장군처럼 모신 멕시코인들의 영상 등이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되었다. 웃으면서도 기분이 묘하긴 했다. 독일을 이긴 건 기분 좋은 일이지만, 우리 좋자고 한 일의 결실을 남의 입에 넣어주게 되니 그게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던 게다.

‘웃자고 한 말’에 왜 ‘죽자고 덤비냐’면?

안 그래도 묘했던 기분이 확 구겨진 건 일부 멕시코인이 우리 입장에선 도저히 웃으며 볼 수 없는 사진을 올리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분명 ‘#고마워요 한국’이라는 해시태그를 단 그 사진 속에서 멕시코인들은 양쪽 집게손가락으로 눈 끝을 당겨 올려 가느다란 눈을 만들며 웃고 있었다. 동양인이 다른 인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눈이 작고 위로 치켜 올라갔다는 인종적 특징을 과장되게 재현함으로써 조롱하는 동작인데, 주로 서구권 백인들이 동양인을 조롱할 때 사용하는 동작이다. 이 동작을 ‘고맙다’는 메시지와 함께 보내니 한국인 입장에선 이걸 뭐라고 받아들여야 하는지 헷갈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이게 대체 뭔가. 소셜미디어의 한국인 이용자들은 정색을 하며 “눈꼬리를 잡아 올리는 동작은 인종차별적 혐오 동작”이라고 지적해주기 시작했다.

더 충격적이었던 건 그다음의 일이다. 지적을 들은 멕시코인들이 깜짝 놀라며 자신들은 그걸 그저 아시아인에 대한 친근함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했지, 인종차별적인 함의가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고 말한 것이다. 해명하는 광경을 보니 답답함이 배가됐다. 상대방에게 모욕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이 그걸 우정의 제스처랍시고 써먹는 상황이었던 게다. 그나마 해명하고 사진을 지운 사람들은 낫지, 어떤 사람들은 적반하장으로 따지기 시작했다. 동양인들이 눈이 작고 째진 건 사실 아니냐며, 그래서 그걸 표현한 것뿐인데 그게 왜 모욕이 되냐고 되묻는 사람도 등장했다. 그건 너희가 너희의 작고 째진 눈에 대해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어서 예민하게 구는 것이고, 동양인들은 지나치게 서구적인 외모를 동경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러지 말고 ‘스스로를 사랑’하라고. 동양인을 향한 서구의 인종적 편견과 차별의 역사에 대한 이해 없이 다짜고짜 ‘콤플렉스’ 때문에 ‘예민하게 구는 것’이라고 일축하는 광경 앞에서 난 할 말을 잃었다.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덤빈다”는 표현이 있다. 농담 삼아 한 말을 상대가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인 탓에 농담을 할 수가 없는 상황에서 자주 쓰는 표현이다. 그러나 이 표현은 ‘웃자고’ 말을 한 사람의 입장만 담고 있지, 상대가 왜 ‘죽자고’ 덤비는지에 대한 성찰은 생략되어 있다. 눈을 좌우로 치켜 찢던 멕시코인들이야 웃자고 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우리가 죽자고 달려든 건, 우리는 도저히 웃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오로지 눈을 손가락으로 찢고 있는 그들만 웃을 수 있고, 당하는 우리는 웃을 수 없는 비대칭적인 ‘농담’. 그런 동작을 ‘웃자고’ 한 것으로 이해해줄 수 없었기에, 우리는 그때 그렇게 ‘죽자고’ 달려들었던 게 아닌가?

2018년 6월27일 러시아월드컵 F조 조별리그에서 한국이 독일을 2-0으로 이긴 덕에 멕시코가 16강에 진출했다. 이날 멕시코 팬들이 멕시코시티 한국대사관에 찾아와 독일을 이겨준 한국에 고마움을 표현하고 있다. 멕시코시티/로이터 연합뉴스
풍자는 부조리 조롱…장동민은 추태 재현뿐

한해가 지난 2019년 8월 장동민은 <엑스티브이엔>(XtvN)의 버라이어티 <플레이어>에 출연했다. 이 프로그램은 참여한 고정 출연자들이 웃음을 참아야 하는 프로그램으로, 많이 웃는 만큼 출연료가 차감된다는 조건을 걸고 각종 우스꽝스러운 상황극을 연출하는 리얼 버라이어티다. 장동민이 출연한 코너는 엠넷(Mnet) <쇼 미 더 머니> 시리즈를 패러디한 ‘쇼 미 더 플레이’였다. <쇼 미 더 머니>를 패러디하되, 실력 있는 참가자들을 온갖 트집을 잡아 떨어뜨리는 장면을 연출해 보는 이들을 웃게 만드는 것이 코너의 핵심이었다. 장동민은 심사위원 격인 프로듀서 역할로 출연해 예선 참가자들에게 합격 목걸이를 전달하는 구실을 했다.

엠넷 <고등래퍼3>에 출연한 적 있는 실력파 여성 래퍼 하선호의 무반주 랩을 들은 장동민은 하선호에게 합격 목걸이를 보여주며 묻는다. “원해요?” 하선호는 답한다. “주세요.” 다시 장동민이 말한다. “저도 전화번호 원해요.” 하선호가 “저 열여덟살인데”라며 뜸을 들이자, 당황한 듯한 장동민 얼굴 밑에 제작진은 컴퓨터그래픽으로 경찰차 경광등을 그려 넣고는 ‘장난 장난’이라는 자막을 써넣는다. 다른 출연자들이 장동민에게 “쓰레기!”라고 외치자, 장동민은 하선호를 바라보며 말한다. “탈락 드리겠습니다.” 제작진은 이 장면만 따로 잘라 홍보용 클립으로 만들고는 이런 제목을 달아 홍보했다. ‘하선호에게 번호 요청? 장동민 철컹철컹 엠시(MC) 등극’. 그리고 아주 당연한 수순으로, 이 영상을 접한 이들 상당수가 분노했다.

어떤 사람들은 장동민이 하선호에게 전화번호를 요구한 건 하선호가 청소년이라는 사실을 몰랐을 때의 상황이므로, 전화번호를 요구했다는 이유로 비판할 수는 없노라고 말한다. 만약 하선호가 스무살이 넘은 상황이었다면 전체적인 상황에서 문제될 일이 없다는 이야기인데, 번지수가 잘못된 지적이다. 여성들이 자신의 실력과 성취로 평가받아 마땅한 순간들, 이를테면 채용이나 승진, 합격, 업무상의 협조가 필요한 순간에, 평가를 할 권력을 지닌 남성으로부터 대가성으로 사적인 관계를 요구당하는 일 자체가 잘못된 것 아닌가? 우리는 현실세계에서 이와 같은 사례들을 질리도록 많이 봐왔다. 그리고 현실세계에서 그렇듯, 상황극 안에서의 장동민은 번호를 더 이상 얻을 수 없겠다는 판단이 서자 상대를 탈락시켜 유리천장을 확인시켜주는 것으로 보복한다.

또 어떤 이들은 이렇게도 주장한다. 저건 실제 경연이 아니라 상황극일 뿐이라고, 상황극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해서 화를 내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이건 일부러 어이없는 상황을 연출해서 웃음을 유발하는 상황극인데 괜한 트집을 잡는다고 말한다. 역시 번지수가 잘못된 지적이다. 상황극은 종종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부조리하고 부적절한 행태를 과장해서 재현하는 ‘풍자’를 수행하는데, 그 목적은 그 부조리함을 놀리고 조롱함으로써 종국적으로 풍자의 대상이 된 사람이나 행태의 부도덕함을 폭로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문제가 된 클립 속 장동민의 행태는 ‘장난 장난’이라는 자막을 통해 무마가 되고, 제작진은 그걸 또 ‘철컹철컹’이라는 카피로 홍보한다. 덕분에 상황극 속 캐릭터로서의 장동민은 풍자의 대상으로 탄핵되는 일 없이 끝까지 상황극의 주체로 남는다.

현실세계에서 지치도록 자주 보아왔던 추태가 상황극 안에서 재현되는데, 심지어 상대는 장동민과는 스물세살 차이가 나는 청소년이고, 상황극 안에서 연출된 장동민의 행태는 제작진에 의해 열심히 ‘장난 장난’ 내지는 ‘철컹철컹’ 따위의 멘트들로 ‘장난’이라고 옹호된다. 제작진의 의도를 최대한 선해한다 하더라도, 이와 같은 시선 처리는 결과물을 풍자나 농담이 아니라 “어리고 예쁜 여자를 미끼로 꾀어 사심을 채우려는 시도, 다들 해본 적 있지 않아?”라는 패거리주의를 다시 확인하는 순간으로 남긴다. 그 패거리주의를 묵인하거나 긍정하는 사람만이 웃을 수 있고, 그것을 참을 수 없는 이들은 웃을 수 없는 비대칭의 ‘농담’. 나는 침묵 중인 <엑스티브이엔>이나 장동민, 그리고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에게서, 적반하장으로 우리가 ‘콤플렉스’ 때문에 ‘예민하게 군다’며 ‘스스로를 사랑’하라던 이름 모를 멕시코인을 본다.

예능은 사라지고 다큐만 남았다

논란이 된 클립 밑에 달린 댓글 중 이런 글이 있었다. “여기 불편러들 개 많네. 예능 보고 눈살 찌푸리지 말고 다큐나 처보시길.”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덤비지 말라는 이야기인데, 참 아이러니하단 생각을 했다. 지금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사람들은, 예능을 보려고 티브이를 켰는데 티브이가 불필요하게 생생한 다큐를 면전에 던지며 농담이니 웃으라고 강요하고 있기 때문에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것 아닌가? 썩은 추파를 던지다가 거절당하면 유리천장을 확인시켜주는 것으로 보복해도 ‘장난 장난’이라 이해받는 남자들의 리얼리티를 다룬 다큐를. 티브이 칼럼니스트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