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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6.17 21:45 수정 : 2016.06.17 22:07

[토요판] 정문태의 제3의 눈
(71) 연재를 마치며

오타와협약에 불참한 미국 정부 핑계가 ‘지뢰 없이는 북한으로부터 남한을 보호하기 힘들다’는 이른바 한반도 예외정책이었다. 한반도 생존이 달린 사안을 놓고 정작 국내 언론은 추적 보도에 소홀했다. 홍수에 떠내려온 지뢰를 찾고 있는 군인들. <한겨레> 자료사진

꼭 이맘때였다. 2013년 6월15일치에 ‘제3의 눈’을 걸고 첫 칼럼을 올렸으니 햇수로 3년이 지났다. “일방적으로 주입당해온 정보를 토해내고 가려내고 들춰내는 눈을 이제부터 제3의 눈이라 부르자”며 “그 제3의 눈으로 사람을 보고 사건을 보고 역사를 보자”고 딴엔 소리를 높였다. 외신의 속살을 파보자는 이 기획은 한마디로 뉴스에 호락호락 속아 넘어가지 말자는 뜻이었다.

제3의 눈은 첫 회부터 심상찮은 출발을 알렸다. 버마 민주화 상징인 아웅산 수찌의 독선적 태도를 나무랐더니 온갖 비난이 날아들었다. 셋째 회에서 일찌감치 사달이 났다. 달라이 라마를 비판적으로 다룬 칼럼을 내놓자마자 <한겨레> 편집국 전화통이 불나더니 기어이 시위대까지 몰려들었다. 인터넷에도 난리가 났다. 어떤 이들은 밤길을 조심하라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고백하건대 그동안 늘 우호적인 독자들 ‘추임새’에 길들여져 왔던 나는 처음으로 거칠게 을러대는 소리와 부딪치면서 제3의 눈을 굴렸다. 1990년대 초부터 외신을 뛰면서 한국, 미국, 이스라엘,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타이를 비롯한 정부들한테야 심심찮게 항의도 받고 협박도 당해왔지만 국내 독자들한테 조직적인 타박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외신에서 “웬만하면 달라이 라마는 건드리지 말라”는 말이 왜 나돌았는지 제대로 느낀 한판이었다.

민족주의와 국가이기주의에 바탕

그 뒤로도 칼럼이 나갈 때마다 제법 ‘반격’당한 걸 보면 삐딱하게 뉴스를 다룬 제3의 눈길을 불쾌하게 여긴 이들이 적잖았던 듯싶다. 오랫동안 정부니 권력이니 이익집단이 일방적으로 꽂아준 뉴스에 이골 난 우리니까 그리 놀랄 일은 아니지만, 아무튼. 뉴스가 한쪽 방향으로만 흐른다거나 뉴스에 끌려다니는 건 다양성을 좇는 시민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인 것만큼은 틀림없다.

아웅산 수찌와 달라이 라마 비판
거센 욕설과 협박으로 되돌아와
현장과 편집이라는 원칙 깨지면
남의 소리만 옮기는 흉기로 둔갑

외신이 해킹 프로그램 추적할 때
국내 주류 언론은 모르쇠로 일관
우리 사회 건강성 되찾으려면
세상 돌아가는 ‘제3의 눈’ 갖춰야

나는 지난 3년 동안 제3의 눈을 굴리면서 주로 한국 사회와 선이 닿는 국제 뉴스를 다뤘고 그 틈에 한국 언론 국제면과 외신을 견줘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었다. 본디 외신이라 부르는 국제 언론은 저마다 적당히 민족주의와 인종주의에다 국가이기주의를 바탕에 깔고 자본을 키우는 상업 매체다. 그러니 미국 언론사가 느닷없이 손해를 무릅쓰고 한국을 위해 봉사하는 일은 죽었다 깨나도 없다. 한국 언론사가 일본을 위해 발 벗고 나서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 바닥엔 오로지 목숨 건 경쟁뿐이다. 그런 외신 보도를 받아 옥석을 가리고 우리 입맛에 맞게끔 국제면을 만든다는 건 쉬운 일도 아닐뿐더러 치명적인 위험성까지 안고 있다. 국제면 만지는 일이 결코 만만찮은 만큼 원칙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현장과 편집이라는 아주 기본적인 원칙이 깨지면 결국 국제 뉴스는 남의 소리를 일방적으로 꽂아 누르는 흉기로 둔갑할 수밖에 없다. 이 대목에서 우리 언론을 보는 까닭이다.

먼저 국제면의 현장부재부터 따져보자. 흔히들 기자 고향을 현장이라 하듯 전통적으로 언론의 생명은 현장성이었다. 물론 국내 뉴스와 달리 모든 취재 현장을 확보하기 힘든 국제 뉴스의 현실적 한계 탓으로 이 지점이 해묵은 논란거리인 건 틀림없다. 현장 확보 크기만 다를 뿐 본질적으로 국제 공룡자본 언론사들도 다 똑같은 한계를 지녔다. 그래서 우리 언론이 외신 베끼기와 짜깁기 챔피언이란 욕을 먹을 때도 사정을 아는 이들은 연민을 품어왔다. 근데 그게 다가 아니다. 우리 언론은 취재를 할 수 있고 취재를 해야 마땅한 현장까지 차버리는 고질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예컨대 아세안 정상회의(제3의 눈 2014년 5월24일치)가 좋은 본보기였다. 그 무렵 버마에서 열렸던 아세안 정상회의를 놓고 국제 언론이 취재 경쟁을 벌이는 동안 우리 언론은 코빼기도 내밀지 않았다. 한국 입장에서 볼 때 경제, 정치, 군사, 외교, 문화적으로 사활이 걸린 아세안 10개국 정상이 모이는 자리였다. 해마다 온갖 사연을 붙여 숱한 기자들이 해외 취재를 다니는 판에 그 정상회의를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더구나 버마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방콕에 지국과 특파원까지 둔 <연합뉴스> <한국방송>(KBS) <문화방송>(MBC)마저도 꼼짝 안했다. 이 셋은 시민 세금을 투입하는 공영성을 지닌 언론사들이다. 대체 뭘 취재하겠다고 그 큰돈을 들여가며 방콕에 특파원을 보내놨을까? 전통적으로 방콕 주재 외신기자들한테 가장 큰 뉴스거리는 아세안 정상회의다. 이게 국제면 현장부재를 놓고 변명만 늘어놓을 수 없는 까닭이다.

국제면 편집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뉴스 가치 판단과 독창성이 한계를 보였다. 아세안 정상회의를 다시 보자. 외신에서 뉴스 가치를 따질 때 긴급성을 띤 사건과 사고 다음으로 해당국의 정치·경제적 연관성과 최고위급 정치인들 움직임을 가장 먼저 꼽는 게 일반적이다. 국제 뉴스를 아는 이들이라면 누가 봐도 아세안 정상회의는 한국 언론의 1면 헤드라인감이거나 적어도 국제면 톱뉴스거리다. 근데 우리 신문과 방송은 입이라도 맞춘 듯 하나같이 그 뉴스를 지나쳤다. 대체 국제면 뉴스 가치 판단 기준이 무엇이며 어떤 원칙으로 편집을 하길래 모든 국제 언론이 다룬 뉴스를 그렇게 일제히 무시해버릴 수 있을까? 수십개에 이르는 전국 일간지와 방송이 흥정하지 않는다면 도무지 벌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편집 독창성이 아예 실종되고 말았다는 뜻이다. 게다가 그즈음 국제면은 저마다 미국, 유럽발 가십거리로 넘쳤다. 여전히 국제면 편집이 미국과 유럽만 지독히 좇는 기형적인 틀에서 못 벗어난 셈이다. 우리 언론이 미국과 유럽 공룡자본 언론의 소비시장 노릇을 하며 하부구조로 전락했다는 증거다.

국제 뉴스가 곧 국내 뉴스

뒤틀린 국제면은 결국 국내 뉴스마저 쪼들리게 만들었다. 해킹팀 사건(2015년 7월25일치)을 보라. “다른 나라는 관련한 보도가 전혀 없고 조용한 편인데 우리나라만 이렇게 관심을…”이라는 국회 정보위원회 새누리당 간사 이철우 말이나, “35개국 97개 기관이 이 프로그램을 구입했는데 우리나라처럼 시끄러운 나라가 없다”는 국가정보원 말은 모두 새빨간 거짓말이었지만, 진자리에서 되박은 언론이 아무도 없었다. 그 무렵 해킹팀 도청 프로그램을 구입한 나라들 언론이 모두 난리를 치고 있었다. 마땅히 국제면이 앞서서 국내 뉴스를 받쳐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국제 주류 언론이 쥐여주는 뉴스만 뉴스로 여길 뿐 스스로 외신을 읽거나 다루는 방법을 모른다는 뜻이다.

미국 정부가 ‘대인지뢰 사용, 비축, 생산, 이전 금지와 폐기를 규정한’ 오타와협약 참여 가능성(2014년 7월19일치)을 입에 올렸을 때도 그랬다. 오타와협약에 불참한 미국 정부 핑계가 ‘지뢰 없이는 북한으로부터 남한을 보호하기 힘들다’는 이른바 한반도 예외 정책이었다. 한반도 생존이 달린 사안을 놓고 정작 우리 언론은 국무부 부대변인이 “(대인지뢰 금지) 발표는 어떤 형태로든 한반도 방어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밝힌 대목에 눈길을 주고는 서둘러 접었다. 근데 미국 정부의 지뢰정책 변화에 치명적 영향을 받게 될 한국 정부 입장을 캐물은 우리 언론사가 단 하나도 없었다. 이건 국제 뉴스이면서 동시에 국내 뉴스다. 우리 언론은 국제 뉴스가 왜 필요한지조차 대답하지 못한 꼴이다.

결국 국제면이 제대로 모습을 갖춰야 우리 사회가 세상 돌아가는 판을 다양한 눈길로 바라볼 수 있다는 아주 기본적인 고민을 함께 나눴으면 좋겠다. 그게 제3의 눈 출발지였다. 독자들의 건투를 빌며 제3의 눈을 마친다.

※ 정문태의 ‘제3의 눈’은 이번 호로 연재를 마칩니다. 좋은 글 보내주신 필자와 ‘제3의 눈’을 사랑해주신 독자들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 정문태 1990년부터 타이를 베이스 삼아 일해온 국제분쟁 전문기자. 26년간 아프가니스탄·이라크·코소보를 비롯한 40여개 전선을 뛰며 압둘라흐만 와히드 인도네시아 대통령, 훈센 캄보디아 총리 등 최고위급 정치인 50여명을 인터뷰했다. 저서로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2004년), <현장은 역사다>(2010년)가 있다. 격주로 국제뉴스의 이면을 한겨레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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