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6.02.12 20:19 수정 : 2016.02.15 10:33

미국의 공중 전략 무기인 B-52 장거리 폭격기가 10일 오후 한반도 상공에서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북핵의 본질은 미국을 향해 있다. 공군 제공

[토요판] 정문태의 제3의 눈

2016년은 들머리부터 참 뒤숭숭하다. 평양이 양력 새해 뒤끝인 1월6일에는 핵실험으로 그러더니 음력 새해를 하루 앞둔 2월7일에는 장거리 로켓 발사로 또 세상을 흔들어놓았다. 2006년 첫 핵실험 뒤 이번이 4번째였고, 1998년 첫 인공위성인 광명성1호를 궤도에 진입시킨 뒤 6번째 로켓이었다. 서울은 곧장 휴전선 스피커로 앙갚음하면서 국제사회를 향해 대북 제재를 외치고 나섰다. 정작 대북 제재 열쇠를 쥔 베이징은 북쪽 핵보다 남쪽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 논의를 나무랐고 모스크바도 다를 바 없이 시무룩했지만. 그렇다고 북핵을 현실로 인정하는 듯한 워싱턴이 또렷한 대꾸를 할 것 같지도 않다. 급해진 대통령 박근혜는 2003년부터 꾸려온 북핵 관련 6자회담에서 북한을 뺀 5자회담을 입에 올렸다가 씨도 먹히지 않자 슬그머니 거두기도 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여태껏 늘 그랬듯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사실이 드러난 대북 제재 결의안을 놓고 또 목소리만 높이는 모양이다.

그사이 북한은 이미 2005년 핵보유국임을 선언했다. 핵 없는 세상(global zero)을 걸고 나선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실패를 자인하는 꼴이 되다 보니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은 없지만 국방정보국(DIA)과 중앙정보국(CIA)은 북한이 핵무기를 지녔다고 공공연히 밝혀왔다.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니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 같은 미국 안팎 안보 연구소들도 저마다 북한을 8~27개에 이르는 핵탄두를 지닌 실질적인 핵보유국으로 여겨왔다. 게다가 군사전문가들은 북한이 알래스카를 사정권에 둔 사거리 4300~6700킬로미터 대포동2호 미사일을 지닌데다 2012년 은하3호에 이어 이번 광명성 로켓이 미국 본토를 때릴 수 있는 사거리 1만2천킬로미터로 드러나면서 머잖아 실질적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보유국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4월 미군 북부사령관 윌리엄 고트니가 “북한은 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 KN-08(화성13호)을 배치했고 핵무기를 탄두에 장착할 만큼 소형화해서 미국 본토로 발사할 능력을 갖췄다”고 밝혔듯이.

미국은 1950년대 대북 핵공격 기획
1990년대까지 모의 핵공격 훈련
처음부터 북핵 본질은 미국 향해
해결책도 미국과의 협상일 수밖에

상대는 파멸적 핵무기 들이대는데
스피커와 개성공단 문닫기로 대응
정부 외교·안보정책 모조리 실패
시민들에게 사과하고 용서 구해야

조선일보, 배부른 주전론자들

이건 한마디로 대한민국 정부의 외교정책도 안보정책도 모조리 실패했다는 증거들이다. 그 나머지는 다 변명이고 핑계일 뿐이다. 2월10일 개성공단 전면중단이 좋은 본보기다. 하나 남은 민간교류선을 끊는 게 북핵 보복이라는데 그 상징적인 남북통로를 없앤다고 북한이 핵을 포기할까? 상대는 파멸적인 핵무기를 들이대는데 우리는 스피커와 공단 문 닫기로 맞받아친 꼴이다. 누가 봐도 멋쩍고 쑥스럽다. 핵무기란 건 본디 그런 놈이다. 대응할 연장도 달리 손쓸 길도 없다. 그래서 북한이 죽어라고 가지고자 했던 물건이다. “북한 핵실험이 안보에 중대한 도발이자 민족의 생존과 미래에 대한 심각한 위협….” 이게 대통령 박근혜 말이었다. 민족의 미래와 생존이 걸릴 만큼 중대한 사안을 미리 잡아채지 못했다면 그 실패에 따른 책임을 마땅히 정부가 져야 한다. 정부는 북핵에 핏대를 올리기 전에 시민들한테 사과하고 용서부터 구하는 게 순서다.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면 남한에 치명적인 안보 장애가 온다는 것쯤이야 동네 아이들도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대한민국 정부는 죽어라고 미리 막았어야 옳았다. 그래서 진작 북핵을 염두에 둔 현실적인 대북정책과 국제관계가 필요했다는 말이다. 대북 강경책도, 대미 의존도, 대중 정상 밀월도 한낱 철없는 외교놀음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상대만 탓하는 일도 사후약방문도 모두 외교안보의 기본이 아니다. ‘굿 뒤에 날장구 친다’는 말이 있다. 대한민국 정부가 딱 그 짝이다.

그러니 온갖 주전론에다 호전주의자들이 세상 만난 듯 날뛸 수밖에는. 요즈음 서울 쪽 뉴스를 보노라면 소름이 끼친다.

‘미국의 총기 허용, 한국의 핵 보유’(1월19일치), ‘북한은 하는데 우리는 왜 核결단을 못하는가’(2월2일치), ‘사드 배치는 생존권 확보 수단, 내부 갈등 소재로 삼지 말라’(2월10일치), ‘무너진 동북아 核 균형, 美의 핵우산만 믿고 있을 때 아니다’(2월10일치)….

제목만 봐도 섬뜩한 <조선일보> 사설들이다. 대한민국도 핵무장 하자는 말이고, 고고도미사일 깔자는데 찍소리 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 신문 1월9일치 김대중칼럼은 ‘미국이 통제권을 갖는 대한민국의 핵보유’란 희한한 논리 아래 ‘우리한테 핵무기를 줄 수 없다면 북한의 핵무기를 폭격으로 제어’하고 ‘확전의 위험과 다소의 희생’까지 들먹였다. 2월2일치에서는 핵무장 논의를 하자며 ‘일을 저지르고 보자는 것이다. 불가피하면 비핵화선언 폐기와 핵확산금지조약 탈퇴도 각오하자. 스스로를 도우면 국제사회도 우리를 이해하고 도울 수 있다’로 이어졌다. <동아일보> 2월10일치 ‘北 장거리 미사일 도발, 사드 이상의 강력 대응 필요하다’는 사설은 ‘미국 일본과 공조해 최악의 경우 전면전까지 각오하고 김정은 정권 교체에 단호히 나설 것인가, 아니면 어쩔 수 없이 북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불안하고 비굴한 평화를 모색할 것인가’라고 몰아붙였다. 이 호전주의 사설들은 하나같이 미국을 적당히 원망하면서 그 미국에 읍소하는 공통점을 지녔다. 잠깐 내 경험을 말하자면 지금껏 40여개 전선을 취재하는 동안 전쟁나팔수 노릇을 했던 언론인이 제 목숨을 내놓는 경우를 결코 본 적이 없다. ‘확전의 위험과 다소의 희생’ ‘전면전 각오’가 누구의 죽음을 뜻할까? 그러고 보니 대한민국의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국한테 떠넘겨온 이들도 바로 그 주전론자들이었다. 전시작전통제권도 없는 마당에 전쟁은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심장은커녕 머리도 없는 무장철학 유령들을 보는 느낌이다. 게다가 핵무장을 입에 올리는 대한민국을 ‘국제사회가 도울 수 있다’는 건 또 무슨 궤변인가. 어떤 국제사회가? 조약 파기로 무역에 목매단 대한민국 경제를 온갖 제재 속에 빠뜨릴 그 책임을 누가 지겠다는 건지. 시민들은 그렇잖아도 먹고살기 힘들다. 배부른 주전론자들과 달리.

박근혜는 평화회담 중재자 노릇 해야

“북핵 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결국 통일이다.” 이것도 대통령 박근혜 말이다. 옳은 말이다. 그러면 나서야 한다. 실효성도 없는 대북 제재에 진 뺄 게 아니라 더 큰 그림을 들고 나설 때다. 북핵은 미국 핵전략의 유산이다. 미국은 한국전쟁 앞뒤로 대북 핵공격을 기획했고 1958년 어네스트존 미사일과 M-65 자주포를 대한민국에 실전배치했다. 그로부터 1991년 철수할 때까지 온갖 전술핵무기 1천여기를 깔아 대한민국을 세계 최대 핵밀집지역으로 만들었다. 미국은 1968년 푸에블로호사건 때나 1969년 EC-121 격추사건 때 실제로 대북 핵공격을 검토했다. 1976년부터 한미 합동 군사훈련인 팀스피릿에 핵무장 B-1 폭격기를 비롯해 핵잠수함을 동원했고 1990년대 클린턴 정부 때까지 대북 모의 핵공격 훈련을 벌여왔다. 북한이 1963년부터 핵무기 개발에 열 올렸던 건 그렇게 미국의 대북 핵공격 정책에서부터 비롯되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북핵의 본질은 미국을 향했고 그 해결책도 결국 미국과의 협상일 수밖에 없다. 국제법상 북한과 미국은 휴전 상태일 뿐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 종전에 이어 평화회담을 통해 전쟁을 마무리해야만 정상적인 관계가 될 수 있다. 세상이 바뀐 마당에 63년 전 그 휴전을 종전과 평화로 못 바꿀 까닭이 없다. 북핵이 바라는 건 오직 미국과의 평화회담이다. 현실적으로 북핵과 평화회담을 맞바꾸는 빅딜 말고는 달리 길도 없다. 대통령 박근혜가 말하는 통일은 그 평화 다음이다. “민족의 미래와 생존”이 달렸다면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평화회담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중재자 노릇을 왜 마다할 것인가. 북한과 미국이 평화에 이른다고 대한민국이 망하거나 체제 경쟁에서 밀릴 일도 없다. 그런 쓸데없는 걱정 따위는 전쟁광들 몫으로 남겨주면 된다.

이 세상에 ‘순결한 전쟁’이 없듯이 동아일보가 말하는 ‘비굴한 평화’란 것도 없다. 전쟁은 전쟁이고 평화는 평화일 뿐이다. 조선일보 김대중칼럼이 ‘전쟁을 각오해야 평화를 얻을 수 있다’고 우기지만 건강한 시민은 ‘평화를 각오해야 전쟁을 막을 수 있다’고 믿어왔다.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 정문태 1990년부터 타이를 베이스 삼아 일해온 국제분쟁 전문기자. 26년간 아프가니스탄·이라크·코소보를 비롯한 40여개 전선을 뛰며 압둘라흐만 와히드 인도네시아 대통령, 훈센 캄보디아 총리 등 최고위급 정치인 50여명을 인터뷰했다. 저서로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2004년), <현장은 역사다>(2010년)가 있다. 격주로 국제뉴스의 이면을 한겨레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토요판] 정문태의 제3의 눈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