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정문태의 제3의 눈
(61) 미국의 라오스 접근
옛날 옛적 메콩강가에 토끼란 놈이 살았다.
“코끼리 아저씨, 서로 뒷다리에 줄을 매서 저하고 당기기 한판 할까요? 제가 메콩강에 끌어넣을 수 있어요. 한번만요….”
“왜?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메기 아저씨, 서로 꼬리에 줄을 매서 저하고 당기기 한판 합시다? 제가 뭍으로 끌어올릴 자신 있어요. 딱 한번만….”
“왜? 그런 웃기는 짓을….”
토끼란 놈이 보채자 밀림 대군 코끼리와 메콩강 거물 메기는 못 이긴 척 줄다리기를 받아들였다. 신난 토끼는 제 몸 대신 코끼리 다리와 메기 꼬리에 줄을 묶은 뒤 힘차게 외쳤다.
“당겨!”
줄이 팽팽해지자 코끼리와 메기는 깜짝 놀랐다.
“아니, 토끼란 놈이 이렇게 힘이!”
뒤를 돌아본 둘은 그제서야 토끼한테 속은 걸 깨달았다. 화난 코끼리가 토끼를 잡으러 나서자 토끼는 죽은 말의 해골 속에 숨어 목소리를 깔고 말 흉내를 냈다.
“어이 코끼리, 내 말 들려? 나 말이야. 내가 죽은 게 아니야. 나도 한땐 너처럼 힘셌지만 토끼를 얕잡아 보다 당했어. 그놈이 앞발을 내게 내밀자마자 나는 이렇게 되고 만 거야….”
겁에 질린 코끼리는 뒷걸음질 쳤고 그로부터 토끼를 건드리지 않았다고 한다.
미국이 라오스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존 케리(왼쪽)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25일 라오스 비엔티안을 방문해 통싱 탐마웡(오른쪽) 총리와 회담을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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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부터 눈독 들인 미국의
존 케리 장관이 올해 방문했다
중국포위전략의 일환이다 미국-라오스 밀월엔 폭탄 장애물
1964~1973년 비밀리 불법폭격
전쟁 끝난 뒤에도 희생자 5만명
사과도 않고, 보상도 시원찮아 버마와 라오스라는 두 구멍 요즘 라오스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보다 문득 떠오른 토끼에 얽힌 라오스 민담 한 토막이다. 사람 사는 세상 어딘들 속살이야 크게 다를 바 없겠지만 밖에서 보자면 인구 700만 남짓한 라오스는 참 조용하다. 외신판을 때릴 만한 큰 사건도 사고도 별로 없다. 정치란 것도 그렇다. 1991년 개헌으로 비밀선거를 통한 의회제를 꾸려왔지만 라오인민혁명당(LPRP) 일당체제인데다 실질적인 정책 결정은 정치국원 11인과 중앙위원회가 도맡아왔으니 시끄러울 일이 없다. 외교를 봐도 엎어질 만한 친구도 없지만 또렷한 적도 없다. 남을 해코지할 일도 없고 누구한테 휘둘릴 일도 없으니 국제사회에서는 그저 라오스란 나라가 있나 싶을 정도다. 1980년대까지야 공산 종주국 소비에트 러시아와 인도차이나공산당 맹주를 자임해온 베트남에 눌려 살았다고 볼 수 있지만 이젠 다 철 지난 이야기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1991년부터 외국인 투자를 받아들이고 시장경제로 들어선 뒤 해마다 남부럽지 않은 6~7% 성장률을 보여왔지만 2014년 국내총생산 350억달러로 세계 112위쯤에 걸쳐 있다. 이건 국제 자본들이 제대로 분탕질 칠 만한 조건이 아니라 난리 피울 일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가난한 이들 소리는 멀리 가지 않는다”는 라오스 속담마따나 외신판에서도 라오스발 뉴스는 그야말로 가뭄에 콩 나듯 올라왔을 뿐이다. 으레 라오스에 언론 자유란 게 없으니 더 그럴 수밖에 없지만. 근데 아세안(ASEAN) 의장국을 맡은 라오스가 올해는 들머리부터 예사롭지 않게 돌아가고 있다. 지난 22일 5년마다 열리는 인민혁명당 전국대표대회를 통해 현 서기장이자 대통령인 춤말리 사야손이 물러나고 그 자리를 부통령인 분냥 워라치트가 이을 것이라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그동안 중국으로 기울었던 춤말리 대신 희미한 노선을 지닌 분냥이 등장한 라오스가 어디로 튈지 따져볼 틈도 없이 사흘 뒤인 25일에는 미국 국무장관 존 케리가 라오스를 공식 방문했다. 케리의 라오스 방문은 다음달 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아세안 10개국 정상 초청에 앞선 길닦기였다고는 하지만 시점이 시점인 만큼 온갖 추측을 낳고 있다. 케리는 “크기나 힘이나 정치적 영향력에 상관없이 모두가 목소리를 낼 수 있기를 원한다”며 라오스에 힘을 실어주었다. 라오스 총리 통싱 탐마웡은 “아세안이 하나로 뭉쳐 해상권을 보호하고 군사화와 분쟁을 피하겠다”고 화답했다. 미국의 지원을 받은 아세안 회원국인 베트남과 필리핀이 남중국해 영유권을 놓고 중국과 실랑이 벌여온 국제분쟁을 바다도 없는 작은 나라가 풀어보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그것도 미국이 바라는 대로. 그동안 베트남과 중국 사이에서 속내를 드러낸 적 없었던 라오스이고 보면 엄청난 변화를 느끼게 할 만한 외교적 발언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오바마가 올 9월 라오스에서 열릴 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석하겠다고 밝혀 일찌감치 라오스의 기를 한껏 키워놓았다. 미국 대통령 가운데 처음으로 라오스를 디디게 될 오바마는 2011년 말 아시아로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 정책, 달리 말하자면 눈가림식 중국포위전략(encircle China)을 밝히기에 앞서 이미 2009년부터 중국 국경 쪽 두 구멍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게 버마였고 라오스였다. 그해 1월 오바마는 버마 군사정부와 건설적인 관계 설정 가능성을 입에 올리며 밀담을 벌여나가더니 6월 들어서는 라오스를 마르크스-레닌주의 국가 명단에서 지워 정상적인 외교·경제관계를 맺었다. 라오스는 1975년 공산주의 혁명에 성공한 뒤 그동안 ‘정치는 베트남’ ‘경제는 타이’라는 인접국 관계 틀에 머물러왔다. 그런 라오스가 몇 해 전부터는 미국에 맞서 아세안 끌어안기에 온 힘을 쏟아온 중국 쪽으로 크게 쏠리기 시작했다. 중국은 2014년부터 라오스의 최대 투자국이 되면서 정치·경제적으로 베트남과 타이의 영향력을 제친 상태다.
길이 2m, 폭 50㎝가 넘는 대형 불발탄 위에 쪼그려 앉은 라오스 아이. 1995년 5월. 정문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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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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