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10.16 19:30
수정 : 2015.10.23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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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라운하 개발은 17세기 시암 왕국 시절부터 강대국들이 달라붙었던 주제다. 믈라카 해협을 지나는 길보다 1200㎞를 단축시키는 이 운하의 개발에 대해 최근 중국 정부가 눈독을 들이고 있다. 사진은 대양을 항해하며 대륙을 연결하는 컨테이너 선박.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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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정문태의 제3의 눈
(54) 끄라운하 설
‘타이, 중국과 협력. 해묵은 제의 끄라운하’(<차이나 타임스> 5월18일치), ‘이집트 수에즈운하 확장 개통’(<비비시> 8월6일치), ‘중국의 니카라과 거대 운하 건설, 근데 찾을 수 없다’(<블룸버그> 8월20일치), ‘니카라과운하 배후 중국 재벌 주가 85% 잃다’(<가디언> 10월2일치), ‘소문 단속: 끄라운하 잊어라’(<방콕 포스트> 10월7일치), ‘파나마운하 관리자 새 수문 일정에 맞춰 개방 기대’(<월스트리트 저널> 10월12일치)….
올해 외신판에서는 운하 뉴스가 부쩍 늘었다. 8월엔 이집트 정부가 제2 수에즈운하란 걸 개통하면서 난리를 피웠다. 193킬로미터짜리 본디 운하에다 84억달러를 퍼부어 새 물길 35킬로미터를 낸 걸 ‘제2 수에즈운하’라 부를 수 있는가를 놓고 말들이 많았지만 대통령 압둘팟타흐 시시는 “이집트가 세계에 주는 선물”이라고 떠들어댔다. 파나마운하 쪽도 올해 완공 목표로 2007년부터 52억5천만달러짜리 수문 확장 공사를 벌여왔지만 그동안 노사분쟁에다 새로 만든 수문에 물이 새면서 공기가 내년 4월까지 늦춰져 한 해 내내 시끄러웠다. 이집트와 파나마 정부는 운하에 손을 대면서 장밋빛 청사진을 내놨다. 파나마 정부는 현재 연간 26억달러 통과 수익을 2025년엔 40억달러로 잡았고, 이집트 정부는 현재 53억달러가 2023년엔 13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밝혔다. 두 운하의 꿈이 이뤄질지는 알 수 없다. 그 수치들이 연간 세계 물동량 9% 증가를 밑감 삼았지만 현실은 2.5% 증가에 그친 까닭이다.
17세기부터 강대국들 위주로 논의돼
전통적으로 대서양-태평양 연결 노선을 나눠먹었던 두 운하에다 얼마 전부터는 니카라과운하까지 덧붙었다. 2013년 니카라과 정부가 중국 재벌 왕징의 홍콩니카라과운하개발투자회사(HKND)한테 500억달러짜리 운하 건설 계획과 50년 사업권을 승인했다. 근데 2019년 완공을 목표 삼은 이 259킬로미터짜리 운하는 아직까지 공사도 없고 돈줄도 풀려나오지 않은데다 환경단체들 반발까지 겹쳐 앞날이 흐릿한 상태다. 다만 미국 턱밑에서 벌어질 그 운하 건설 계획이 중국 정부의 대미 전략과 맞물려 있다는 온갖 소문들만 나돌 뿐이다. 파나마운하보다 경제성이 큰 것으로 알려진 니카라과운하는 이미 19세기부터 영국 식민주의자들이 건설을 꿈꿔왔다. 그러나 미국이 1904년 프랑스한테 파마나운하 건설권을 넘겨받고부터는 미국 정부가 아무도 니카라과운하를 입에 올리지 못하도록 막아왔다.
제2 수에즈, 파나마, 니카라과까지
운하 개통과 건설로 시끄러운 외신
인도양-남중국해 잇는 끄라운하 ‘설’
중국-타이, 양해각서 교환 보도 부인
중국, 동남아-중동-북아프리카 잇는
에너지안보 일환으로 끄라운하 관심
미국의 동남아 전략과 ‘긴장’ 불가피
중국과 타이가 섣불리 못 나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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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양-남중국해 잇는 끄라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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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 동남아시아 쪽에서도 운하를 놓고 말들이 많았다. 안다만해(인도양)와 타이만(남중국해)을 잇는 이른바 끄라운하(Kra canal) 건설 소문이 또 도졌다. 타이 남부 쪽 끄라지협을 뚫어 싱가포르를 돌아가는 믈라카(말라카)해협 노선보다 1200킬로미터를 줄이겠다는 이 꿈은 타이에서 정부가 바뀔 때마다 어김없이 입길에 오르는 단골 메뉴였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해 5월 쿠데타를 일으켰던 전 육군총장 쁘라윳 짠오차가 총리로 권력을 쥐자 끄라운하가 다시 기어 나왔다. 올해 초부터 타이 언론이 전직 공무원, 학자, 사업가들을 내세워 끄라운하를 심심찮게 외치던 가운데 5월 중순 홍콩 <오리엔탈 데일리>가 ‘타이와 중국 정부, 광저우에서 끄라운하 건설계획 양해각서 교환’이라는 빅뉴스를 터뜨렸다. ‘10년 동안 280억달러를 들여 길이 102킬로미터, 폭 400미터, 수심 25미터 운하를 판다’는 아주 구체적인 양해각서 내용까지 담았다. 그러나 곧장 타이 외교부와 방콕 주재 중국 대사관이 “그런 일이 없었다”고 발뺌하면서 한동안 끄라운하가 숙지는가 싶었더니 10월 들어 다시 튀어나왔다. 지난주 수요일인 6일 타이 총리 쁘라윳이 나서 “중국 정부가 끄라운하 계획을 제안한 적 없고, 만약 했더라면 타이 정부는 그 계획과 이익, 특히 국가 안보를 놓고 가치를 검토했을 것”이라고 되박았다. 중국 관영 중앙방송(CCTV)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타이 정부의 끄라운하 개발 제안을 중국이 고려했다고 밝혀 말썽이 인 뒤였다. 중국중앙방송은 2013년 시진핑 주석이 주창한 실크로드 경제 벨트와 21세기 해상 실크로드, 이른바 ‘일대일로’(One Belt, One Road)의 일환으로 끄라운하 개발 제안서를 검토해왔다는 사실도 덧붙였다. 이내 중국 외교부도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지난 5월에 이어 다시 타이와 중국 정부가 모두 발뺌하고 나섰지만 끄라운하를 낀 논란은 수그러들 낌새를 보이지 않는다. 5월의 양해각서 내용이 아주 구체적이었던데다 그동안 중국 정부 입 노릇을 해온 중앙방송이 정부 입장을 허투루 내보냈다고 보기 힘든 까닭이다. 게다가 “나라를 둘로 잘라버리게 될 그 계획이 좋은 아이디어인지 아니면 통치에 문제를 일으킬지 정부가 실행을 놓고 따져봐야 한다”고 내뱉은 쁘라윳 말투가 모질게 가부를 가리던 여느 때와 달랐던 것도 강한 부정으로 보기 힘든 대목이었다.
끄라운하는 이미 17세기 시암(타이왕국)의 나라이 왕이 프랑스 기술자한테 자문을 구하면서부터 파네 마네를 놓고 강대국들이 달라붙었던 주제다. 19세기 초에는 영국이 관심을 보였고 1882년에는 수에즈운하 건설자까지 끄라운하에 달려들었다. 그러다 1897년 싱가포르를 동남아시아 전략지로 삼은 영국 압력에 눌려 타이는 끄라운하 건설 포기에 합의했다. 이어 제2차 세계대전 뒤 1946년 앵글로-타이 협정에 따라 패전국 타이는 영국 정부의 사전 동의 없이 끄라운하를 팔 수 없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세월이 흘러 1990년대를 거치면서 타이 정부는 슬그머니 끄라운하를 끄집어냈으나 무슬림 독립분쟁을 겪어온 남부 4개 주의 지리적 행정적 분리 가능성에다 재원, 환경, 경제성 문제들에 걸려 뜻을 펴지 못했다.
현대사에서 운하는 전쟁 불렀다
‘운하를 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2000년대로 접어들어 중국은 역사를 보았다. 중국이 끄라운하에 눈독을 들인다는 사실은 2005년 미국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 입에서 먼저 터져 나왔다. 그자는 중국 정부가 동남아시아-중동-북아프리카를 잇는 에너지안보의 일환인 이른바 진주목걸이(string of pearls) 전략에 따라 끄라운하를 꿈꾼다는 정보를 흘렸다. 그리고 미국은 남중국해를 끼고 중국과 영토분쟁을 벌여온 베트남, 필리핀, 타이완(대만), 일본을 비롯한 인접국들과 해상군사훈련을 벌이며 중국을 자극했다. 중국은 원유 수입 80% 수송로가 걸린 남중국해와 믈라카해협의 안전을 확신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미군기지가 버틴 싱가포르를 끼고 도는 믈라카해협은 세계 물동량의 40%와 하루 1500만배럴의 원유가 지나는 곳이다. 중국이 믈라카해협 노선의 대안으로 끄라운하에 눈길을 꽂은 것만큼은 틀림없다.
중국이 끄라운하에 관심을 보인다는 소문이 나면서부터 베트남 본토 최남단 혼코아이항이 덩달아 뜨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끄라운하 건설 가능 지역과 직선거리 480킬로미터에 자리 잡은 최단 항구인 혼코아이 개발을 놓고 타이와 베트남의 경제적 전략적 협력을 입에 올린다. 근데 속살을 파보면 만만치가 않다. 베트남 정부는 인도네시아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수입하는 석탄 선적항으로 혼코아이를 개발한다고 밝혔지만 25억달러를 투입할 그 프로젝트가 반만 석탄 선적용이고 나머지는 일반 물자 선적용으로 알려져 당장 경제성에 의문을 던져놓았다. 더구나 그 프로젝트를 미국 수출입은행 자금 85%와 미국 최대 건설업체 벡텔이 만지고 있다는 대목을 보면 상황은 크게 달라진다. 동남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는 유일한 항구가 바로 혼코아이다. 남중국해와 끄라운하를 사이에 둔 혼코아이는 지역 분쟁 발생 시 미군의 전략지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현대사에서 운하는 전쟁을 불렀다. 1956년 가말 나세르 대통령이 수에즈운하 국유화를 선언하자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침공했다. 1989년 미국은 마누엘 노리에가 대통령의 마약 밀매와 니카라과 반군 지원을 빌미 삼아 파나마를 침공했다. 냉전 시절 그 두 침공은 모두 운하를 장악해서 러시아를 차단하겠다는 본질을 숨겼다. 가까운 날 끄라운하를 팔 낌새는 아직 안 보이지만 그 운하의 앞날을 가름해볼 만한 좋은 밑감들이다. 타이도 중국도 아직은 섣불리 끄라운하를 건드릴 수 없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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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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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 정문태 1990년부터 타이를 베이스 삼아 일해온 국제분쟁 전문기자. 23년간 아프가니스탄·이라크·코소보를 비롯한 40여개 전선을 뛰며 압둘라흐만 와히드 인도네시아 대통령, 훈센 캄보디아 총리 등 최고위급 정치인 50여명을 인터뷰했다. 저서로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2004년), <현장은 역사다>(2010년)가 있다. 격주로 국제뉴스의 이면을 한겨레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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