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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0.02 19:35 수정 : 2015.10.06 16:17

지난 9월28일 타이 북부 치앙마이의 파크호텔에서 열린 버마 소수민족무장기구 정상회담 회의 장면. 정문태

[토요판] 정문태의 제3의 눈
(53) 버마 무장기구 정상회담

“응아아에인멧멧타로.”

시무룩하게 회의장을 빠져나오는 버마학생민주전선(ABSDF) 의장 탄케 말이었다.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이들의 꿈과 같다’는 버마 속담인데 꿈은 있되 말은 할 수 없는 형편을 일컫는다. 한마디로 답답해 속이 뒤집힌다는 뜻이다.

9월28일부터 30일까지 타이 북부 치앙마이에서는 버마 소수민족무장기구(EAO) 정상회담이 열렸다. 까렌민족연합(KNU), 까친독립기구(KIO)를 비롯한 19개 무장조직 대표단 100여명이 버마 정부와 벌여온 전국휴전협정(NCA) 서명 건을 놓고 둘러앉았다. 유일한 민주혁명 조직인 버마학생민주전선도 한자리를 차지했다.

치앙마이가 장마 끝물 더위로 아우성치는 판에 회담장인 파크호텔은 28일 첫날 아침 마이크를 켜고부터 싸늘해졌다. 첫날 회의를 이끌 의장단 3명 가운데 한 명으로 뽑힌 까렌민족연합 의장 무뚜새이포가 “지금껏 소수민족무장기구 의장 노릇을 해왔지만 이제부터는 저 자리에 앉지 않겠다”며 단상으로 올라가지 않았다. 적잖은 조직들이 까렌민족연합 결정을 따르지 않는다는 불만을 드러낸 셈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까친독립기구 부의장이자 소수민족 무장동맹체인 연합민족연방회의(UNFC) 의장이기도 한 반라가 정해진 연설을 마다하고 다른 이에게 떠넘겼다. 불쾌감을 에둘러 드러낸 셈이다. 그동안 소수민족 해방 세력을 이끌어온 까렌과 까친의 힘겨루기에 눌린 회담장은 출발부터 뻐근한 기운이 흘렀다.

‘휴전협정 원칙’ 앞세운 까렌쪽

그렇게 시작한 3일짜리 회의는 버마 현대사의 걸림돌이었던 전통적인 분열상만 두드러졌을 뿐 결국 한목소리를 못 뽑아냈다. 2011년 등장한 테인세인 대통령 정부는 이번 회담에 참가한 이들 가운데 15개 무장조직과 이미 개별 휴전협정을 맺었고 그 완성판 격인 전국휴전협정에 목매달아 왔다. 그게 몇 년 동안 밀리고 밀린 끝에 올 10월 초로 날짜가 잡혔다. 전국휴전협정은 테인세인 정부가 내건 이른바 평화와 재건을 위한 3단계 로드맵 가운데 첫 번째 통과의례다. 그다음 전국휴전협정에 서명한 소수민족들과 정치회담을 열고 마지막으로 연방회담을 통해 마무리 짓겠다는 게 그 로드맵이다. 그러나 이번 치앙마이 회담에서 소수민족무장기구가 두 그룹으로 갈리면서 첫 단계부터 틀어져버렸다.

까렌민족연합, 까렌민족연합평화회의(KNU-PC), 민주까렌자비군(DKBA), 친민족전선(CNF), 아라깐해방당(ALP), 빠오민족해방기구(PNLO) 그리고 버마학생민주전선을 포함한 7개 조직들은 전국휴전협정 서명 결정을 내렸다. 빠오민족연합 의장 쿤민뚠은 “비록 일부 조직들이 서명할 준비가 안 된 상태지만 우리는 평화와 연방이라는 원칙을 향해간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번 회의에 대표를 보내진 않았지만 서명 참여를 밝힌 샨주회복회의(RCSS-전 샨주남부군)를 포함하면 모두 8개 조직이 전국휴전협정 서명식을 위해 네이삐도에 갈 것으로 보인다. 전국휴전협정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던 까렌이 전통적으로 자신들 영향권에 두고 있던 친, 아라깐, 빠오와 함께 간다는 대목을 눈여겨볼 만하다. 다만 독자적인 해방구 없이 까렌과 까친에 병력을 분산 배치해 온 버마학생민주전선은 전국휴전협정에서 달리 선택할 길이 없었던 경우다.

정부와의 전국휴전협정 서명 위해
9월말 치앙마이서 열린 정상회담
까렌-까친 사이의 입장차이로
한 소리 내지 못한 채 쪼개져버려

버마학생전선 등 8개 조직만
정부와 10월초 네이삐도서 서명식
11월 총선 앞둔 테인세인 정부는
전국휴전에 목줄을 매단 상태

1990년대 소수민족 해방세력의 군사동맹체인 버마민주동맹군(DAB) 깃발 아래 버마-타이 국경인 살윈강 전선을 가는 까렌민족해방군과 버마학생민주전선 전사들. 정문태

한편 까친독립기구, 신몬주당(NMSP), 샨주진보당(SSPP), 까레니민족진보당(KNPP)은 10월 전국휴전협정 서명 계획을 거부했다. 까레니민족진보당 대표로 참석한 까레니군(KA) 사령관 비투는 “전국휴전협정 원칙은 인정하지만 정부가 모든 무장조직들을 함께 초청하지 않는다면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정부는 교전 중인 따앙민족해방군(TNLA)과 소규모 군사를 지닌 아라깐군(AA) 그리고 미얀마민족민주동맹군(MNDAA)을 전국휴전협정에 초대하지 않았다. 까친독립기구가 비밀리에 군사와 재정까지 지원해 왔던 무장조직이 바로 그 셋이다.

이번 치앙마이 회담에서 ‘휴전협정 원칙’을 앞세운 까렌 쪽이나 ‘모든 소수민족 포함’을 내건 까친 쪽이나 겉보기엔 모두 옳았다. 그러나 두 그룹이 협상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큰 아쉬움만 남겼다. 치앙마이 회담 전부터 이미 두 그룹으로 갈렸던 사실이 알려진데다 정부가 개별 휴전협정을 맺은 15개 소수민족 무장세력만 전국휴전협정에 초대한다는 사실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소수민족 해방세력들은 시간과 조건을 내걸고 지난 4년 동안 정부와 지난한 협상을 벌여왔다. 이제 와서 급할 게 없다는 뜻이다. 이건 1948년 버마 독립 뒤부터 겪어온 분쟁이었다. 급한 건 테인세인 정부다. 11월8일 총선이 코앞에 다가왔다. 내세울 게 없는 테인세인 정부는 전국휴전이라는 극적인 선전에 목줄을 매단 상태다.

“우리한테 휴전협정은 실행 아니면 죽음 같은 사안이다.”

정부 대표로 휴전협상을 이끌어온 대통령실 장관 아웅민이 입에 달고 다닌 이 말은 괜한 소리가 아니었다. 현재 테인세인 정부는 그만큼 절박한 상태다. 이건 달리 소수민족 해방세력들이 정부를 압박할 수 있는 멋들어진 카드를 쥐고 있다는 뜻이다. 까렌 쪽 의지대로 정부한테 ‘시간’을 맞춰주는 대신 까친 쪽 의지대로 정부한테 ‘조건’을 얻어낼 수 있는 기회였던 셈이다. 그래서 실질적인 ‘주고받기’ 마지막 기회를 날려버린 휴전의 앞날이 캄캄하고, 그래서 한 소리를 내지 못한 채 둘로 쪼개져버린 이번 치앙마이 회담이 못내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까렌민족연합 민족부 책임자로 처음부터 휴전협정에 비판적이었던 데이비드 타까보는 “버마 정부의 각개격파 전략을 몰랐나?”며 되묻고는 “이게 전통적인 버마 정부의 소수민족 분리-정복 정책이었다. 말려든 소수민족들이 문제였다”고 이번 회담에 참여한 모두를 싸잡아 나무랐다. 실제로 버마 정부는 그동안 소수민족 무장세력 가운데 최대 화력을 지닌 까렌과 까친이라는 두 진영을 상대로 동시전쟁을 피해왔다. 버마 정부군은 까렌을 집중 공격할 무렵인 1994년 까친과 휴전협정을 맺었고 2011년 까친을 공격할 때는 까렌과 휴전협정을 맺어 전력 분산을 최소화하면서 한편으로는 두 소수민족 사이를 갈라놓았다. 그러다 보니 소수민족동맹군인 까렌과 까친은 늘 경쟁적 애증관계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 둘을 끼고 다른 소수민족들이 지정학적 관계에 따라 이합집산 해왔던 게 버마 분쟁사의 비극이었다. 이번 치앙마이 회담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듯이.

아웅산수찌는 “서명 서두르지 말라”

총선으로 접어든 버마 안쪽에서도 전국휴전협정은 날카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군인들이 뒤를 받쳐 온 테인세인의 준군사정부야 말할 나위도 없고 아웅산수찌가 이끄는 야당 민족민주동맹(NLD)도 전국휴전협정이 표잡이에 끼칠 영향을 꼼꼼히 따지는 가운데 벌써 말썽을 일으켰다. 지난 8월 말 버마 언론들은 “소수민족무장기구는 총선이 끝날 때까지 전국휴전협정 서명을 서두르지 말라”는 아웅산수찌 말을 따올렸다. 까렌민족연합 대표단을 만난 자리에서 아웅산수찌가 했다는 그 말은 테인세인 정부를 발끈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소수민족들 사이에도 큰 논란거리가 되었다. 까렌민족연합 대표단으로 그 자리에 있었다는 뚜뚜레이는 “해석 차이다. 아웅산수찌는 전국휴전협정은 서둘러 서명하되 정치회담은 차기 정부로 늦춰달라고 부탁했을 뿐”이라고 아주 다른 말을 전했다. 뭐가 진짜인지 알 수 없지만 랭군에서도 국경에서도 전국휴전협정을 놓고 각 정파들이 자신들 입맛에 맞는 말을 늘어놓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레이데따익사욱 예이뽀오아욕예이”

버마학생민주전선 의장 탄케는 ‘허공에 집을 짓고 물 위에 그림을 그린다’는 속담으로 치앙마이 회담을 빗댔다. 이룰 수 없는 거대한 꿈이라는 속뜻을 지닌 그 말은 한날한시에 모든 소수민족 무장세력들이 전국휴전협정에 서명한다는 게 불가능한 현실임을 꼬집었다.

버마 사회의 두 기본모순인 소수민족 문제와 민주화 문제는 한배를 타고 있다. 그러나 등대 없는 바다는 여전히 어둡기만 하다.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 정문태 1990년부터 타이를 베이스 삼아 일해온 국제분쟁 전문기자. 23년간 아프가니스탄·이라크·코소보를 비롯한 40여개 전선을 뛰며 압둘라흐만 와히드 인도네시아 대통령, 훈센 캄보디아 총리 등 최고위급 정치인 50여명을 인터뷰했다. 저서로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2004년), <현장은 역사다>(2010년)가 있다. 격주로 국제뉴스의 이면을 한겨레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필자의 요청에 따라 외래어표기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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