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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9.18 19:54 수정 : 2015.09.19 17:05

버마(미얀마)의 로힝자족 난민들이 지난 5월20일 인도네시아 동부 아체 인근 바다에서 아체족 어부에 의해 구조되길 기다리고 있다. 불교도들이 다수인 버마 사회는 이슬람교를 믿는 로힝자족이 영국 식민 당국에 의해 방글라데시에서 버마로 불법 이주됐다며 국적을 부여하지 않고 탄압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토요판] 정문태의 제3의 눈
(52) 난민

“비어 샤펜 다스!”(Wir schaffen das!)

9월1일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은 난민 지원 문제를 놓고 “우리는 할 수 있다!”며 강한 독일을 외쳤다. 독일 정부는 지난 8월 16만명에 이어 9월에도 6만여 난민을 받아들였다. 올해 초부터 독일로 몰려든 난민이 25만명을 웃도는 가운데 연말쯤이면 80만~100만명에 이를 것이라는 소리도 나돈다. 독일에서 네번째 큰 쾰른 인구와 맞먹는 숫자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9월까지 시리아, 이라크, 리비아를 비롯한 중동과 북아프리카 난민 38만1400명이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넘어갔다. 그 항해에서 2800여명이 목숨을 잃는 동안 유럽은 뒷짐만 진 채 국경을 닫았다. 세계시민사회가 유럽의 양심에 심각한 의문을 던진 가운데 메르켈이 국경 개방으로 ‘본때’를 보이며 유럽연합(EU)을 향한 난민 의무 할당제에 총대를 메고 나섰다. 그러나 회원국들이 몸을 사리는데다 헝가리를 비롯한 옛 동구권이 거세게 대드는 통에 메르켈의 앞길이 만만찮아 보인다. 더구나 메르켈은 독일 안에도 호락호락하지 않은 장애물을 안고 있는 형편이다. 상대적 낙후로 불만이 컸던 옛 동독 지역에서는 ‘독일 우선’을 내건 민족주의가 판치고 도시 극우세력들은 난민이 묵는 집을 불 지르며 해묵은 인종 문제를 들고 날뛰기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우익민족주의 냄새를 강하게 풍겨온 독일 주류 언론은 난민 수용을 부정적으로 다루며 메르켈의 목을 조르고 있다. <슈피겔>을 비롯한 언론사들의 논조는 아예 메르켈의 정치적 최후를 예고하고 나섰다.

시리아, 아프가니스탄을 넘어서다

그러나 쾰른 유니세프에서 일해온 독일 친구는 요즘 타이의 치앙마이에서 휴가를 보내면서도 “보통 시민들 정서와 달리 가는 독일 안쪽 흐름이 예사롭지 않다”며 걱정이 많다. 그이는 “독일 언론이 다 미쳤다”고 말했다. 독일의 난민 수용이 일방적인 도움을 주는 것처럼 사회비용을 따져온 독일 언론을 향해 “독일은 노령사회고 난민 수용은 노동력 확보로도 중요하다”고 되박았다. 난민 지원이 독일 입장에서는 주고받기라는 뜻이었다. 그이는 “보통 독일 시민들은 ‘교육받은’ 죄책감(전쟁범죄)을 지닌데다 전후 국제사회한테 받았던 도움을 생각한다”고 했다. 메르켈이 난민 수용에 적극 나설 수 있는 바탕이었던 셈이다.

올 한해는 난민 문제로 온 세상이 부쩍 들끓었다. 지난 5월엔 방글라데시와 국경을 맞댄 버마(미얀마) 아라칸주에서 종교·인종분쟁에 시달려온 소수민족 무슬림 로힝자(Rohingya) 난민이 빠져나오면서 동남아시아가 난리를 쳤다. 난민들이 안다만해를 거쳐 타이·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로 건너오는 과정에서 버마 정부의 무책임에다 주변국들의 해상 난민 밀어내기로 수많은 이들이 바다에서 숨졌다. 타이와 말레이시아에서는 로힝자 난민 집단살해 현장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렇게 올 한해 방글라데시와 버마에서 피난지를 찾아 떠난 로힝자 난민만도 12만명을 웃돈다.

이미 난민 문제는 세계시민사회에 피할 수 없는 과제로 떠올랐다. 지난 6월 유엔난민기구는 2014년 말 현재 삶터에서 쫓겨난 난민이 5950만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그 가운데 1950만명이 외국에서 난민(refugee) 신분을 얻었고, 180만명이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돌고 있다. 3820만명은 국경을 벗어나지 못한 이른바 국내난민(IDPs) 신세다.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 122명 가운데 1명이 난민이라는 뜻이다. 유엔난민기구 보고서를 찬찬히 뜯어보면 심사는 더 복잡해진다. 2014년 한 해 동안에만도 1390만명에 이르는 새로운 난민이 생겨났고 그 가운데 51%가 아이들이다. 10년 만에 2200만명이 늘어났다. 어림잡아 하루 4만2500명이 분쟁과 박해를 피해 난민이 되고 있다고도 한다.

전쟁을 통해 자본을 굴려가고
그 자본으로 새 전쟁 만들어내는
전쟁자본주의 깨뜨리지 않는 한
난민은 지구에서 사라질 수 없다

2015년 한해 70억달러쯤 되는
유엔난민기구의 쪼들리는 예산
미국 한해 군사비는 6330억달러
나토 군사비 총액은 무려 1조달러

난민 발생은 지구적 규모로 벌어지고 있다. 1948년 이스라엘 독립과 함께 쫓겨난 510만명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아직도 유엔팔레스타인난민구호사업기구(UNRWA)의 특별 지원을 받는 가운데 2014년 시리아는 난민 388만명과 국내난민 760만명을 포함해 모두 1148만명을 쏟아내며 지난 30년 동안 최대 난민을 기록해왔던 아프가니스탄(259만명)을 넘어섰다. 2014년에도 소말리아와 남수단을 비롯한 아프리카 쪽이 1480만명, 그리고 버마를 비롯한 아시아 쪽이 900만명의 난민을 기록하며 전통적인 최대 난민 배출지역 자리를 지켰다. 콜롬비아는 600만명의 국내난민을 지닌 남아메리카 최대 난민국 기록을 이었고 유럽의 우크라이나는 21만9000명의 난민을 쏟아내며 난민 배출국에 이름을 올렸다. 난민이 특정 지역에서만 생겨나는 특수한 현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 난민의 뿌리는 말할 나위도 없이 전쟁과 분쟁이고 그 뿌리를 키워온 건 침략주의 자본이었다. 예컨대 로힝자 난민을 만들어낸 건 버마를 침략한 영국 식민주의자들의 인종분리정책이었다. 영국은 소수민족 무슬림 로힝자를 무장시켜 불교도 버마족을 공격했고 그 과정에서 1942년 상호 2만5000명을 살해하는 이른바 아라칸학살사건이 터졌다. 그게 오늘날까지 이어져온 인종·종교분쟁의 뿌리였다. 그렇게 다수민족 버마의 정치·경제적 박해를 피해 떠난 이들이 바로 로힝자 난민이다.

마찬가지로 영국과 프랑스 식민주의자들이 중동을 지배하면서 자본 이문에 따라 내키는 대로 국경선을 긋지 않았다면, 그리하여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하고 이슬람국가(IS) 같은 시리아 반군들을 지원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시리아와 이라크 난민은 결코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략, 미국의 베트남 침략, 러시아의 아프가니스탄 침략 그리고 미국과 그 유럽 동맹국의 이라크 침략, 유고 침략, 아프가니스탄 침략, 리비아 침략은 어김없이 대량 난민사태를 일으켰다. 으레 아프리카 난민의 뿌리도 미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자본국들의 이권 다툼에 따른 분쟁 개입이었다는 점에서 다를 바가 없다.

그 침략자들은 늘 이웃나라를 난민저장고 삼아 떠넘겼을 뿐이다. 30년 전부터 아프가니스탄 난민이 쏟아져 들어온 파키스탄과 지난해 40만명을 웃도는 시리아 난민이 넘어온 레바논은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은 나라였다. 경상남도만한 땅덩어리에다 인구 400만명인 레바논은 115만명의 난민이 넘어들면서 세상에서 세번째로 큰 난민수용국이 되었다. 레바논은 총인구의 25%에 이르는 난민을 받아들인 셈이다. 요즘 유럽이 난리치는 그 난민들을 유럽연합이 다 받아들여도 전체 인구의 0.11%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현재 난민들의 86%를 개발도상국들이 수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가운데 42%는 일인당 국내총생산 5000달러 미만인 나라이고 나머지 25%는 방글라데시 같은 최빈국들이다.

1999년 알바니아 모리너 국경에서

2015년 예산을 70억달러쯤 잡고 있는 유엔난민기구는 쪼들린다며 난리다. 그럴 법도 한 게 그 예산을 모조리 투입해도 5950만명의 난민 일인당 117달러밖에 돌아가지 않는 꼴이니. 여기서 거의 모든 전쟁을 창조했고 그 전쟁을 통해 난민을 생산한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군사비를 들여다볼 만하다. 2013년 미국의 군사비는 6330억달러였고 그해 아프가니스탄 침략전쟁 하나에만도 885억달러를 썼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침공 12년 동안 6500억달러를, 그리고 이라크 침공 10년 동안 8000억달러를 썼다. 또 2013년 부자들의 동맹인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군사비 총액은 1조달러에 이르렀다.

이게 난민 문제를 개인의 온정이나 지원에 맡겨놓을 수 없는 까닭이다. 이게 난민들 앞에서 미안해하고 눈물만 흘릴 수 없는 까닭이다. 나는 미군의 유고 침공(코소보전쟁)을 취재하던 1999년 3월29일 새벽 1시, 알바니아 쪽 모리너 국경을 넘어오는 첫번째 코소보 난민 가족을 내 손으로 받았던 적이 있다. 유엔난민기구도 지원단체도 하나 없는 날카로운 국경의 겨울바람 앞에서 함께 울었고 그이들을 안전한 곳까지 내 차로 실어다주었고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세상은 변하지 않았고 난민들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전쟁을 통해 자본을 굴려가고 그 자본으로 새로운 전쟁을 끝없이 만들어내는 악랄한 전쟁자본주의를 깨뜨리지 않는 한 지구에서 난민은 영원히 사라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난민은 나일 수도 있고 바로 당신들일 수도 있다. 아직은 그 불행이 우리 앞에 닥쳐오지 않았을 뿐.

난민 문제 해결의 처음도 끝도 모두 반전이어야 하는 까닭이다.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 정문태 1990년부터 타이를 베이스 삼아 일해온 국제분쟁 전문기자. 23년간 아프가니스탄·이라크·코소보를 비롯한 40여개 전선을 뛰며 압둘라흐만 와히드 인도네시아 대통령, 훈센 캄보디아 총리 등 최고위급 정치인 50여명을 인터뷰했다. 저서로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2004년), <현장은 역사다>(2010년)가 있다. 격주로 국제뉴스의 이면을 한겨레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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