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조끼를 입은 기자가 울고, 방탄조끼를 입은 기자가 이를 찍는다. 방탄조끼를 입었던 또 다른 기자가 총에 맞아 죽었기 때문이다. 2011년 11월6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서부 지역에서 전개된 경찰의 마약조직 소탕작전 과정의 총격사건이 낳은 민영방송 반데이란치스 티브이 기자들의 풍경이다. 브라질/AP 연합뉴스
|
[토요판] 정문태의 제3의 눈
(51) 기자와 방탄조끼
때는 바야흐로 기자의 수난시대다. 요즘 언론판 친구들 사이엔 팔자타령이 부쩍 늘었다. 타이 친구 아삐찻 수띠웡은 “누굴 만나면 아직도 기자 하냐며 비꼰다”고 했다. 독일 친구 게오르크 뮐러는 “웬만하면 명함 안 내민다”고도 했다. 다들 자존심 하나로 버티던 시대가 저물었다고 아우성이다. 비판자니 감시자 노릇을 한다는 전통적인 이 바닥 자존심이 한물갔다는 뜻이다. 자연스럽기도 하고 떨떠름하기도 하다.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그동안 정보 배달자로 독점적 지위를 누려왔던 기자들 영역이 점점 쪼그라드는데다 정치에 빌붙어 몸집을 불려온 공룡자본언론사들을 향한 불신감까지 기자들이 모조리 덮어써야 하는 세상이고 보면.
기자 과녁삼아 총질하던 이스라엘군
으레 따지고 들면 시민사회가 바라는 역할과 책임을 다하지 못한 첫 번째 잘못이 기자들 몫이다 보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은 없다. 그렇더라도 요즘처럼 기자들이 공격 목표물로 잡혀버린 현실은 좀 달리 볼 만한 문제가 아닌가 싶다.
8월26일 미국 버지니아주 지역 방송사(WDBJ) 기자와 카메라맨이 인터뷰 중 총 맞아 숨지는 장면이 생중계를 타고 흘렀다. 2억8천만 자루 웃도는 온갖 총들이 돌아다니고 2000~2010년 사이 총기 사망자만 33만6천여명에 이르는 사회에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올 1월 초에는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를 풍자한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에 불만을 품은 자들이 사무실에 뛰어들어 편집장을 비롯한 언론인 10명을 쏘아 죽이면서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 사건들 배경이야 어쨌든 이제 시내 한복판에서도 기자들이 총 맞아 죽는 시대가 왔다는 신호다. 그러니 죽어나가는 기자들 수도 크게 늘어날 수밖에. 올 한해가 반쯤 지났는데 벌써 기자 40명이 살해당했다. 2010년부터 따져 5년 반 동안 살해당한 기자가 꼭 400명이다. 1992년부터 2009년까지 18년 동안 취재 중 목숨을 잃은 기자가 743명이었던 사실에 견줘 보면 그 심각성이 잘 드러난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주로 제3세계 쪽에서 벌어졌던 정치적 보복사건을 빼고 나면 기자들이 죽는다는 건 전쟁이나 분쟁 취재 현장에서 일어났던 사고가 거의 다였다. 근데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부터는 기자들이 타격 목표가 되기 시작했다. 좋은 본보기가 2000~2005년 사이 팔레스타인의 제2차 인티파다(봉기)였다. 그 현장에서 나는 이스라엘군이 쏘아대는 총알이 내 발치로 날아드는 걸 보았고 총 맞아 쓰러지는 동료 기자들을 보았다. 2002년 4월까지만 따져도 이스라엘군이 180여명에 이르는 기자들을 공격했다. 그 가운데 총 맞아 죽은 기자가 6명이었고 총상을 입은 기자만도 59명이었다. 그동안 숱한 전쟁과 분쟁을 취재해 왔지만 그토록 기자들을 과녁 삼아 총질을 해댔던 이스라엘군 같은 무장조직은 결코 본 적이 없었다.
그로부터 정부군 반군 가릴 것 없이 기자를 타격점으로 삼는 짓들이 온 세상으로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2003년 미국이 침공한 이라크에서는 2013년까지 미군이나 반군들한테 살해당한 기자와 언론 노동자가 404명에 이르렀다. 이슬람국가(IS)가 날뛰는 시리아 쪽 전쟁에서도 2011년부터 오늘까지 기자 46명이 살해당했다.
미국 국방부의 새 전시법 교범에‘비특권 전투원’으로 규정된 기자
현지 사령관 따라 비판적 기자를
적으로 몰아 사살할 수 있다는 뜻 1990년대까지만 해도 기자 살해는
주로 전쟁 현장에서만 벌어졌다
2000년대 들어선 무차별 타격목표
올해만 40명, 최근 5년간 400명 이런 마당에 지난 6월 미국 국방부는 새 전시법 교범(The Law of War manual)을 통해 “적한테 동정심을 보이거나 적을 이롭게 하는 기자들을 ‘비특권 전투원’으로 다루겠다”고 밝혔다. 이건 현지 사령관 판단에 따라 비판적인 기자를 스파이나 적으로 몰아 체포하거나 사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껏 전쟁을 취재하는 기자들은 제네바협약 추가의정서(제79조) ‘분쟁지역에서 위험한 직업적 임무를 지닌 기자들을 민간인으로 존중하고…’에 따라 마땅히 민간인 신분을 지녀왔다. 그동안 비록 현실에서는 전선기자들을 해코지하고 죽일지언정 미국 국내법도 국제법도 모두 그 법적 문구만은 깨뜨리지 않는 전통을 지켜왔다. 이 새 교범으로 언론 안팎에서 큰 말썽이 일자 국방부 대변인 조 사워스 중령은 비판적인 기자나 기사를 막겠다는 뜻이 아니라며 “국방부는 기자들이 수행하는 중요한 일을 지원하고 존중한다. 기자들의 취재와 뉴스 보도는 자유주의 사회와 법치의 필수다”라고 발뺌했다. 그럼에도 기자를 ‘비특권 전투원’으로 몰아세울 수 있는 추상적인 조건과 처벌을 놓고 여전히 뜨거운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그렇잖아도 전쟁이나 분쟁 현장에서 목숨이 오락가락해온 기자들은 이제 적이 아님을 증명하는 일에까지 시달리며 심리적으로 크게 움츠러들게 생겼다. 이 미국 국방부의 새 교범을 흘려 넘길 수 없는 또 다른 까닭은 그 파급력 탓이다. 예컨대 2003년 3월 미군이 제2차 이라크 침공 때 우호적인 언론사에서 뽑은 기자들을 훈련시킨 뒤 현장으로 데려가서 ‘아름다운 전쟁’만 보여주었던 이른바 임베디드 저널리즘의 불쾌한 기억을 떠올려 볼 만하다. 그걸 두어 달 만인 그해 5월 인도네시아 정부군이 고스란히 베껴 아체를 향한 계엄군사작전에 써먹으며 언론통제로 악명을 떨쳤던 적이 있다. 머잖아 모든 정부가 미국 국방부의 새 교범을 들이대며 전선기자들을 제압할 가능성이 아주 높아졌다는 뜻이다. 이처럼 기자들을 향한 신체적·심리적 공격은 세상 곳곳에서 점점 더 교활해지고 있다. 지난 8월17일 방콕 도심 에라완사당 폭탄사건으로 20명이 목숨을 잃고 125명이 부상당한 가운데 희한한 뉴스가 뒤따랐다. 홍콩과 중국인 희생자가 많았던 그 사건을 취재하러 왔던 홍콩 <이니티엄 미디어> 사진기자 앤서니 콴혹천이 23일 방콕 수완나품국제공항 출국장에서 방탄조끼와 헬멧 소지 혐의로 체포당했다는 내용이다. 콴은 이틀 뒤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지만 최고 5년 형을 때릴 수 있는 군사법정에서 재판이 끝날 때까지 출국금지를 당한 상태다. 방탄조끼 소지한 기자는 왜 체포됐나 1987년에 만든 타이 무기규제법에 따르면 방탄조끼와 헬멧은 허가 없이 지니거나 사용할 수 없는 군사용 무기라고 한다. 근데 25년째 타이에서 외신기자로 일해 온 나는 이번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그런 법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전쟁터든 시위 현장이든 방탄조끼를 한 번도 걸쳐 본 적이 없던 나야 무심해서 그렇다 치더라도 늘 방탄조끼를 끼고 다녔던 외신기자 친구들도 그런 법을 아는 이가 없었다. 경험 많은 타이 기자 예닐곱과 이야기를 나눠봤지만 다들 모르긴 마찬가지였다. 으레 타이 언론사들이나 외신 지국들은 그 방탄조끼 몇 벌씩을 다 지녀왔고 방콕에 시위가 벌어지면 기자들이 그걸 걸치고 다녔다. 비로소 방탄조끼와 헬멧이 군용 무기라는 사실과 모든 언론사와 기자들이 범죄자였던 사실을 깨달았다. 방콕이란 곳은 2010년 반정부 시위를 취재하던 외국 기자 2명이 총 맞아 죽고 심심찮게 폭탄이 터지면서부터 요즘은 제법 만만찮은 취재 현장으로 꼽힌다. 게다가 등록된 총기만도 600만 자루를 웃돌고 인구 10만명당 3.48명이 총 맞아 죽는 아시아 최대 총기 살해 지역인 타이에서는 시위가 터지면 군인이나 경찰뿐 아니라 시위대 쪽에서도 총이 돌아다니는 판이다. 그래서 기자들이 방탄조끼에다 헬멧을 걸쳐왔다는 말이다. 더구나 이번처럼 폭탄이 터져 많은 사람이 죽었다면 오히려 시민을 지켜주지 못한 정부가 문제지 그 현장을 취재했던 기자가 방탄조끼를 지녔다고 나무랄 일은 아니다. 기자를 과녁 삼아 쏘아대는 세상에 기껏 가슴과 배만 가리는 그 방탄조끼란 게 얼마나 유용한 장비인지 알 순 없다. 그렇더라도 이번 일은 기자들의 심리적 방어 장치마저 짓밟는 야비한 공격행위였던 것만큼은 틀림없다. 국경 없는 기자회(RSF)가 매긴 2015년 세계 언론자유 지표에서 이미 타이는 135위로 바닥을 쳤다. 그 밑에 악명을 떨쳐온 예멘(168위)이나 시리아(177위) 같은 곳에서도 방탄조끼 따위로 기자를 잡아 가두지는 않았다. 이제 기자들이 직업적 자존심만으로 버티기엔 한계를 넘은 현실을 시민사회가 눈여겨봐야 할 때가 되었다. 기자 몇몇이 죽고 말고 문제를 말하는 게 아니다. 기자를 적대적 공격목표로 삼아 이문을 챙기겠다는 자들이 날뛰는 한, 우리는 왜곡당한 정보의 홍수에 쓸려 갈 수밖에 없는 운명일 테니.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