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의 독립영웅 수까르노의 둘째 딸이자 메가와띠 전 대통령의 바로 밑 동생인 수까르노교육재단 대표 라흐마와띠가 2014년 모임에 참석한 모습. 김정은에게 상을 주겠다는 그의 발표는 시끄러운 논란을 일으키며 내외신의 오보 경쟁으로 이어졌다. 뜨리율리 한도꼬(<뗌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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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정문태의 제3의 눈
(49) 인도네시아발 오보사건
“수까르노센터가 김정은을 세계적 정치인으로 불렀다.”(<자카르타 글로브> 7월30일치), “인도네시아 수까르노 어워드 수상자로 북 김정은 선정.”(<연합뉴스> 7월31일치), “뭐, 북 김정은에 상을?”(<조선일보> 8월3일치), “인도네시아가 김정은에게 세계적 정치력 상 수여.”(<인디펜던트> 8월2일치), “김정은 국제평화상 받을 것으로.”(<워싱턴 포스트> 8월3일치), “김정은, 간디가 받았던 평화상 받게 될 것.”(<허핑턴 포스트> 8월3일치)
일주일쯤 전부터 난데없이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김정은이 떴다. 근데 그 기사들은 제목도 내용도 엉망진창이었다. 세계적 오보였다. 일주일이 지났지만 그 뻔한 오보를 바로잡은 언론사도 없었다. 뉴스 출발지였던 인도네시아 쪽 언론에서부터 오보들이 튀어나오더니 그 기사들을 베낀 대한민국 언론은 말할 것도 없고 자카르타에 특파원을 둔 외신들마저 줄줄이 오보를 날렸다. 정작 그 뉴스란 건 누가 누구한테 어떤 상을 주려고 한다는 게 다였다. 골치 아픈 판단도 번거로운 계산도 필요 없는 이른바 행사용 기사에 지나지 않았다. 이건 한마디로 어떻게 해서든 뉴스의 주인공을 까겠다는 신념으로 짜 맞춘 ‘냄새나는’ 오보였다. 실수로 볼 수 없는 오보였다는 뜻이다.
먼저 위에 등장한 기사들의 제목부터가 모조리 오보였다. 바로잡아 보면 이렇다. “수까르노센터는 김정은을 세계적 정치인으로 부른 적이 없다.”(<자카르타 글로브>), “인도네시아 수까르노 어워드란 건 없다.”(<연합뉴스>), 그다음 <조선일보>의 경우는 뉴스 제목으로 볼 가치가 없어서 건너뛰고, “인도네시아가 김정은한테 상을 주지 않았다.”(<인디펜던트>), “국제평화상 같은 건 없다.”(<워싱턴 포스트>), “간디가 받았던 상이 아니다.”(<허핑턴 포스트>)
라흐마와띠의 독특한 이력
이번에는 위 제목들을 달고 나왔던 기사 몸통을 따져보자.
“김정은은 아웅산수찌와 마하트마 간디처럼 세계적 정치인과 함께 하게 되었다. 적어도 인도네시아 수까르노센터가 주는 희한한 논리의 상으로….” “발리의 수까르노센터는 해마다 세계적 정치력에 주는 상을 올해 북한 김정은한테 줄 것이다.” “라흐마와띠 수까르노뿌뜨리는 수까르노센터가 과거 김일성한테도 이 상을 주었다고 했다.”
이게 <연합뉴스>와 <조선일보>가 베낀 자카르타 영자신문 <자카르타 글로브> 7월30일치 기사다. 사실은 이렇다. “수까르노센터는 김정은을 아웅산수찌와 마하트마 간디와 같은 반열에 올린 적이 없다.” “수까르노센터는 해마다 그런 상을 준 적이 없다.” “라흐마와띠 수까르노뿌뜨리는 수까르노센터가 김일성한테 그 상을 주었다고 한 적이 없다.”
“인도네시아 수까르노센터가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수까르노 어워드 수상자로 선정했다.” “라흐마와띠 수까르노뿌뜨리(65) 수까르노 센터장은….” “수까르노센터는 2001년 김일성을 수상자로 선정한 바 있다.” 이건 <연합뉴스> 자카르타 통신원이 보낸 7월31일치 기사고 <서울신문>을 비롯한 대한민국 언론사들이 받아쓴 내용이다. 사실은 이렇다. “수까르노센터는 김정은을 수상자로 선정하지 않았다.” “‘라흐마와띠 수까르노뿌뜨리는 수까르노센터장이 아니다.” “수까르노센터는 2001년 김일성을 수상자로 선정한 바 없다.”
“수까르노센터는 올해의 수까르노상 수장자로 김정은을 발표했다.” “앞서 2001년에는 김정은의 할아버지 김일성이 이 상을 사후 수상했다.” 이건 <조선일보> 자카르타 특파원이 날린 기사로 앞서 모두 엉터리임이 드러났다.
“김정은은 인도네시아 단체가 주는 정치력 상에 따라 아웅산수찌와 마하트마 간디와 함께 하게 되었다.” “발리의 수까르노교육재단이 주는….” <워싱턴 포스트> 8월3일치도 똑같은 오보를 냈다. 게다가 “수까르노교육재단은 자카르타에 있다”고.
“마하트마 간디와 아웅산수찌한테 주었던 평화와 인도주의 상이 곧 북한 독재자 김정은한테 갈 것이다.” “수까르노센터라고도 알려진 수까르노교육재단….” <허핑턴 포스트> 8월3일치 기사도 마찬가지 오보였다. 그 기사가 말한 수까르노교육재단과 수까르노센터는 전혀 다른 단체다.
인도네시아 시민들조차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던 상
내외신들의 헛다리 짚기 경쟁
한국 언론도 예외 아니었다 김정은에게 상 주겠단 이는
수까르노교육재단 운영하는
메가와띠 바로 밑 여동생
그 밑 동생의 ‘센터’와 혼동 “북한 독재자는 발리의 수까르노센터로부터 상을 받게 될 것이고.” “과거 수상자로 아웅산수찌와 마하트마 간디….” <인디펜던트> 8월2일치도 다를 바 없는 오보였다. 이번 오보사건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김정은한테 상을 주겠다고 밝힌 단체는 인도네시아 독립영웅이자 초대 대통령이었던 수까르노의 둘째 딸이며 메가와띠 수까르노뿌뜨리 전 대통령 동생 라흐마와띠가 대표인 자카르타의 수까르노교육재단(YPS)이다. 이 단체는 2001년 수까르노 탄생 100주년을 맞아 13명한테 수까르노의 별 상(Anugerah Bintang Sukarno)을 주었다. 호찌민(베트남), 자와할랄 네루(인도), 순얏센(중국), 노로돔 시아누크(캄보디아), 조지 워싱턴(미국), 요시프 브로즈 티토(유고), 샤를 드골(프랑스), 넬슨 만델라(남아프리카공화국), 아흐마드 빈 벨라(알제리), 야세르 아라파트(팔레스타인), 키 하자르 데완따라(인도네시아), 사담 후세인(이라크), 김일성(북한)이 그 수상자였다. 이어 10년 뒤인 2011년 바하루딘 유숩 하비비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같은 상을 받았다. 라흐마와띠는 8월4일 필자가 연결한 전화 인터뷰를 통해 “올해는 북한 김정은과 베네수엘라 전 대통령 우고 차베스를 비롯해 대여섯 명쯤을 뽑아 상을 주겠다”고 밝혔다. 라흐마와띠는 “이 상의 정신이 네꼴림(Nekolim), 곧 신식민주의와 제국주의 반대”라며 “김정은한테 상을 주겠다는 건 할아버지 김일성을 따라 한반도에서 미국의 패권주의에 맞서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듣는 이에 따라 매우 논쟁적인 이 말을 한 라흐마와띠는 자신의 아버지 수까르노를 쫓아낸 독재자 수하르또의 사위이자 악명 높은 특전사 꼬빠수스 사령관이었던 쁘라보워 수비안또가 이끄는 거린드라(Gerindra)당의 부의장이다. 라흐마와띠의 정치적 이력만큼이나 이번 김정은 수상 발표도 시끄러운 논란을 일으킨 셈이다. 그리고 내외신들이 김정은한테 상을 준 단체로 오보를 낸 수까르노센터는 수까르노의 셋째 딸인 수끄마와띠 수까르노뿌뜨리가 지도위원회 장을 맡아왔고 그 몸통이 발리에 있다. 이 단체는 2008년 마하트마 간디와 노로돔 시아누크 캄보디아 국왕, 2009년 넬슨 만델라와 아웅산수찌, 2010년 달라이라마와 마이클 잭슨한테 수까르노상(Sukarno Prize)이란 걸 준 적이 있다. 으레 이 상은 수까르노교육재단의 상과 전혀 다르다. 국제뉴스를 어떻게 믿겠는가 인도네시아 안팎 언론들이 그 두 단체를 마구 뒤섞어 이번 오보를 냈다. 어디 언론 할 것 없이 ‘취재 않는 기자’ ‘취재 없는 기사’라는 고질적인 문제를 드러낸 꼴이다. 예컨대 <연합뉴스>나 <조선일보> 특파원이 인도네시아어 최대 일간지인 <꼼빠스>와 <뗌뽀>를 확인했다거나 전통 영자신문 <자카르타 포스트>라도 읽었더라면 그런 기사를 날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건 대한민국 언론 입장에서 보자면 김정은이라는 예민한 사안을 놓고 특파원이 현지 신문조차 제대로 안 읽을 뿐 아니라 전화 한통 넣어보는 기본적인 취재마저 안 한다는 사실을 자백한 셈이다. 오다 가다 주운 현지 언론 기사를 짜깁기해서 날리는 외신판 사정은 이번에 드러난 것처럼 미국이나 영국 언론들도 별로 다를 바가 없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오보들이 날아다녔을까? 국제뉴스 어떻게 믿겠는가? 뉴스 가치로 따진다면 인도네시아 정부도 아닌 한 재단이 김정은한테 무슨 상을 주든 말든 외신판이 호들갑 떨 만한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인도네시아 시민들조차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던 상이다. 히틀러나 무솔리니가 수도 없이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고 결국 현대사에서 최대 전범인 헨리 키신저가 그 상을 받았던 마당에 이제 무슨 무슨 상 하나쯤에 들썩거리던 시대는 지났다. 국제사회에 돌아다는 상이란 것들은 본디 다 정치적 이문을 노린 연장일 뿐이다. 지금은 그런 것보다 ‘오보’로 정보를 조작하고 여론을 왜곡하는 언론을 더 눈여겨봐야 할 세상이다.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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