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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채널 카날플뤼스 방송의 ‘레 기뇰 드 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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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태의 제3의 눈/47. 정치 풍자
<카날플뤼스> 방송 정치 풍자 ‘레 기뇰 드 랭포’ 종영 밝히자
“기뇰을 건드리지 마라” 청원 쏟아지고 정가도 “계속돼야”
깡패로 묘사됐던 자크 시라크 전대통령 “사납지만 맘에 들어”
영국 풍자쇼 ‘스피팅 이미지’는 대처를 ‘성도착자’ 몰아도 ‘무사’
“기뇰은 아주 똑똑하고, 아주 정치적이고, 아주 사납다. (그 프로그램이) 내겐 늘 상냥하지 않았지만 나를 묘사한 꼭두각시만큼은 마음에 들었다.”
프랑스 전 대통령 자크 시라크는 2009년 <아에프페> 인터뷰에서 맥주를 게걸스럽게 마셔대는 부패한 깡패이자 특급 거짓말쟁이 영웅 꼭두각시로 자신을 묘사해온 정치 풍자 뉴스 ‘레 기뇰 드 랭포’(Les Guignols de I’info, 뉴스 꼭두각시)에 애정을 보였다.
지난 7월2일 프랑스에서는 1988년부터 날카로운 정치 풍자로 사랑받아왔던 <카날플뤼스> 방송의 ‘레 기뇰 드 랭포’가 오는 9월 막을 내리겠다고 밝히자 난리가 났다.
‘풍자 꼭두각시 은퇴 직면, 강력 항의’ 뉴스 에이전시 <아에프페>가 곧장 주요 뉴스로 날리자 일간 <리베라시옹>도 ‘레 기뇰 드 랭포 (폐지) 위협, 청원 시작했다’란 머리말로 받아쳤다. 트위터를 비롯한 에스엔에스(SNS, 사회관계망서비스)상에서는 ‘기뇰을 건드리지 마라’는 청원이 쏟아지고도 있다. 프랑스 하원의장 클로드 바르톨론도 “비록 (비판) 과녁이 된 정치인들은 기분이 나빴지만 기뇰은 뉴스와 정치 논평을 빛냈다”며 그 꼭두각시 구조를 외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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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아이티브이의 ‘스피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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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스피팅 이미지’가 원조격
그즈음 서울에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개그콘서트’와 ‘무한도전’ 같은 오락 프로그램을 손봤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6월24일 그 위원회가 정부의 메르스 사태 대응을 풍자한 개그콘서트의 ‘민상토론’이 방송심의규정 제27조(품위유지)를 어겼다며 행정지도라는 징계를 내린 데 이어 7월1일 무한도전 출연자가 “메르스 예방으로는 낙타, 염소, 박쥐와 같은 동물 접촉을 피하고 낙타고기나 생낙타유를 먹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라고 한 말 가운데 중동이라는 지역을 특정하지 않아 제14조(객관성)를 어겼다며 같은 징계를 내렸다고 한다.
날카로운 정치풍자 사랑받아온
프랑스의 ‘레 기뇰 드 랭포’가
9월 막을 내린다고 밝히자 난리
“폐지 말라” 정치인들도 나서
타이 아이티브이에서 방송한
‘웃기는 의회’란 뜻의 ‘사파 조크’
2006년 쿠데타 이후 군인들이 없애
‘민상토론’ 징계 보며 어떤 기시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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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메트로티브이의 ‘레뿌블릭 밈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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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와 서울은 참 달랐다. 파리에서는 정치 풍자를 살리자고 난린데 서울에서는 징벌하겠다고 날뛰는 꼴이 그렇다는 말이다. 13년 전 기억이 되살아났다. 2002년 타이에서는 <아이티브이>가 ‘사파 조크’(Sapha Joke)란 걸 방송했다. 우리말로 ‘웃기는 의회’쯤 되는 그 프로그램은 총리를 비롯한 정치인들과 닮은 출연자들이 나와 온갖 풍자를 해대면서 시민들 사이에 큰 인기를 누렸다. 그걸 2006년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군인정부가 없애버린 뒤 타이 방송에서 정치 풍자는 사라졌다. 2015년 국경 없는 기자회(RSF)가 매긴 언론자유 지표에서 타이가 전쟁 중인 아프가니스탄(122위)보다 한참 뒤지는 134위에 오른 건 우연이 아니었다.
요즘도 외신기자 친구들이 둘러앉으면 정치 풍자도 할 수 없는 방송을 빗대 타이 언론 현실을 나무라곤 한다. 그동안 별생각 없이 거들곤 했던 나는 오늘에야 얼굴을 붉힌다. 부끄럽기 짝이 없다. 정치를 풍자했다고 오락 프로그램을 징계하는 짓도 그렇지만 되돌아보니 대한민국에서는 제대로 된 정치 풍자 뉴스 같은 게 아예 없었다. 그동안 친구들이 대한민국은 어떠냐고 묻지 않았던 게 고마울 따름이다.
정치 풍자란 건 표현 자유의 영역이다. 게다가 이 정치 풍자란 건 고대로부터 대물림해 온 창작의 한 장르이기도 하다. 기원전 5세기 말 혼탁했던 그리스 정치판을 날카롭게 풍자했던 극작가로 이름 날린 아리스토파네스를 보라. 자그마치 2500년 전 일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그 살벌했던 조선시대에도 탈바가지만 뒤집어쓰면 임금도 사또도 양반도 마음껏 까댈 수 있었다. 그게 탈춤이었다. 민중들 애환을 담았던 굿도 타령도 소리도 광대놀음도 넓게 보면 다 정치 풍자였다. 표현의 자유가 짓밟혔던 고대나 조선시대에도 사람들은 그런 풍자를 통해 정보를 주고받고 권력을 비판해왔다. 반대쪽 권력은 그런 정치 풍자들을 적당히 눈감아주고 숨통을 열어주면서 폭발을 막는 장치로 삼았다. 바로 풍자의 정치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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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코미디 센트럴 방송의 ‘데일리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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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오늘은 방송이라는 대중 공간으로 옮겨왔을 뿐이다. 요즘 파리에서 떠들어대는 그 ‘레 기뇰 드 랭포’ 같은 게 프랑스만 지닌 무슨 별난 톨레랑스가 아니다. 사실은 그 기뇰도 1984년부터 1996년까지 영국 <아이티브이>를 통해 장수했던 꼭두각시 정치 풍자쇼 ‘스피팅 이미지’(Spitting Image, 빼닮은 것)를 본떠 만들었다. 총리 마거릿 대처를 독하게 몰아붙이며 폭발적 인기를 끌었던 스피팅 이미지는 1986년 미국 <엔비시>의 ‘스피팅 이미지’로도 이어졌다. 타이 <아이티브이>의 ‘사파 조크’나 2007년 인도네시아 <메트로 티브이>의 ‘레뿌블릭 밈삐’(Republik Mimpi, 몽상공화국)도 모두 스피팅 이미지에서 태어난 2세라 부를 만했다.
비록 스피팅 이미지라는 방송은 죽었지만 시가를 꼬나문 입정 사나운 폭군이자 성도착자 마거릿 대처, 반바지에 모자를 눌러쓴 공립학교 아이 토니 블레어 총리, 쓰레기통에서 옷을 골라 입는 반쯤 정신 나간 엘리자베스 여왕을 상징했던 그 꼭두각시들은 아직도 살아서 돌아다닌다. 대한민국에서야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어쨌든. <아이티브이>는 스피팅 이미지에 향수를 지녀온 이들을 위해 지난 4월부터 ‘뉴조이즈’(Newzoids)란 새로운 정치 풍자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있다.
하도 미국, 미국들 하니 그쪽도 잠깐 보자. 1999년부터 <코미디 센트럴> 방송을 통해 16년째 이어오는 존 스튜어트의 ‘데일리 쇼’는 정치 풍자 뉴스로 이미 일가를 이뤘다. 이 프로그램은 국제판까지 만들어 온 세상으로 내보내고 있을 정도다. 그사이 코미디언인 존 스튜어트는 미국에서 가장 믿을 만한 언론인으로 꼽혔다. 미국 정치인들은 기꺼이 그 데일리 쇼의 풍자감이 되기를 기다려 왔다. 이런 걸 정치 풍자라고 한다.
이게 오늘날 세상 돌아가는 모습이다. 코미디나 오락까지 집적거리는 대한민국과 너무 다르지 않은가? 왜 대한민국 시민은 영국, 프랑스, 미국, 인도네시아 시민들처럼 웃고 즐기면서 내 손으로 만든 내 정부를 비판할 수 없는가? 문화적·정치적 감각이 모자란다면 공부라도 하든지 그 공부마저 싫다면 세상 돌아가는 눈치라도 볼 줄 알아야 옳지 않겠는가? 이도 저도 다 싫다면 ‘품위’와 ‘객관성’이 권력을 향한 충성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정직함이라도 지녀야 옳지 않겠는가? 이 모두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당신들만의 대한민국에 던지는 질문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존재해야 하나
대한민국 헌법 제21조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검열과 허가를 금지한다고 박아 놓았다. 근데 방송통신심의위원회란 게 방송사를 징계해온 건 한마디로 검열을 한다는 뜻이다. 이건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이라는 하위법이 헌법을 잡아먹은 꼴이다. 시민은 헌법을 뛰어넘는 권력을 누구한테도 쥐여준 적이 없다. 이 위헌적인 위원회를 언제까지 내버려둘 것인가.
게다가 영국, 독일, 미국을 비롯한 이른바 선진국들은 모두 심의를 방송사 자율규제에 맡겨왔고 프랑스를 빼면 대한민국처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라는 행정기관이 방송을 규제하는 나라가 없다. 이건 표현의 자유를 행정기관이 가타부타할 대상이 아니라고 믿어온 까닭이다. 달리 말하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같은 기관이 밥값을 안 할수록 민주적인 사회라는 뜻이다.
국경 없는 기자회가 밝힌 언론자유 지표를 보면 노무현 정부 때 30위권이었던 게 박근혜 정부 들어 2014년 57위에서 2015년 60위로 계속 곤두박질치고 있다. 진짜 손봐야 할 건 대한민국 코미디다.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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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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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문태 1990년부터 타이를 베이스 삼아 일해온 국제분쟁 전문기자. 23년간 아프가니스탄·이라크·코소보를 비롯한 40여개 전선을 뛰며 압둘라흐만 와히드 인도네시아 대통령, 훈센 캄보디아 총리 등 최고위급 정치인 50여명을 인터뷰했다. 저서로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2004년), <현장은 역사다>(2010년)가 있다. 격주로 국제뉴스의 이면을 한겨레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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