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가운데)의 2014년 7월 후보 시절 모습. 외국인을 포함한 마약 사범 6명에 대한 사형 집행은 조코의 국내 정치용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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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정문태의 제3의 눈
(38) 동남아시아의 아편
▶ 정문태 1990년부터 타이를 베이스 삼아 일해온 국제분쟁 전문기자. 23년간 아프가니스탄·이라크·코소보를 비롯한 40여개 전선을 뛰며 압둘라흐만 와히드 인도네시아 대통령, 훈센 캄보디아 총리 등 최고위급 정치인 50여명을 인터뷰했다. 저서로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2004년), <현장은 역사다>(2010년)가 있다. 격주로 국제뉴스의 이면을 한겨레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지난 일요일 새벽 인도네시아 정부가 마약범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자국인 1명과 브라질, 말라위, 나이지리아, 네덜란드, 베트남을 비롯한 외국인 5명을 총살하면서 안팎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인도네시아 대통령 조코 위도도는 “우리와 똑같이 다른 나라들도 자국민을 구하려는 노력을 이해한다. (그러나) 주권과 국내법에서는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며 지난해 12월 말부터 사형 집행 직전까지 전화통을 붙들고 관용을 호소했던 브라질 대통령과 네덜란드 총리를 뿌리쳤다. 브라질 대통령 지우마 호세프는 “화나고 당황스럽다. 두 나라 관계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다”며 치밀어 오른 부아를 그대로 쏟아냈다.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는 “잔인하고 비인도적인 처벌이다. 인간 존엄성의 부정을 용납할 수 없다”고 노여움을 터뜨렸다. 곧장 두 나라는 인도네시아 주재 자국 대사를 소환하며 강력히 항의했다. 그러자 인도네시아는 검찰총장 무하맛 프라세툐가 나서 “(사형 집행은) 마약 위험에서 우리나라를 지키는 일일 뿐이다. 연말에 마약범들을 또 사형시킬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인도네시아는 동남아시아 마약 45%가 흘러드는 최대 거래국이고 하루 40~50명이 마약으로 숨진다”고 덧붙였다.
타이 2500명 현장사살에도 마약 더 기승
그러자 인도네시아 인권단체 실종폭력희생자위원회(Kontras)는 “6명 살해가 세계적 마약 생산과 공급을 중단시키는 데 아무 도움이 안 된다”고 되받았고, 국제앰네스티는 “인권에 역행하는 짓”이라고 비난했다. 유엔도 위도도를 향해 인도네시아 정부가 비준한 시민과 정치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ICCPR)을 존중하라며 다그쳤다. 그러나 귀를 막은 위도도는 “마약범 사형은 국적에 상관없다”며 이틀 뒤 다시 한 번 쐐기를 박았다. 현재 인도네시아에는 138명 웃도는 이들이 사형선고를 받고 복역 중이며 그 가운데 64명이 마약 관련자들이고 또 그 가운데 20여명이 외국인이다.
“이번 사형 집행은 위도도의 국내 정치용이다.” 언론인이자 변호사이기도 한 아맛 타우픽 말마따나 독자적인 정치 세력 없이 메가와띠 수카르노푸트리 전 대통령이 이끄는 민주투쟁당에 올라타서 지난해 대통령이 된 위도도는 당 안팎에 지지 세력이 필요했다. 위도도는 그 지지층 확보를 위해 집권 3개월 만에 두 번씩이나 정치쇼를 벌였다. 앞서 불법 고기잡이 박멸을 선포한 위도도는 지난해 12월 인도네시아 수역에서 나포한 베트남 어선 폭파 장면을 방송으로 보여준 데 이어 한 달 만에 다시 외국인 사형 집행을 들고 나섰다. 위도도는 이런 정치쇼를 통해 자카르타 시장 시절 흘렸던 민주시민 인상 대신 고약한 민족주의를 풍기며 전통적인 두 권력 축인 군부(경찰)와 이슬람 세력한테 손길을 내밀었다고 볼 만하다. 이 두 권력 축은 1965~1966년 사이 빨갱이 소탕을 내걸고 50만~300만명에 이르는 시민을 학살한 주인공들이며 기득권을 지녀온 극우 세력들이다. 민족주의와 사형은 이 극우들의 상징이자 무기였다. 전임 대통령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도 지난해 3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 극우 세력들의 표를 꼽으며 사형 집행 5년 중단을 깨고 마약범 2명을 총살했다. 그로부터 열 달 뒤, 위도도는 집권 3개월 만에 총을 뽑아 들었다. 타우픽 같은 이들은 “위도도가 학살과 폭력의 기억을 되살려냈다”며 사회 모든 부문에 끼칠 영향을 걱정스레 짚으면서 “위도도가 폭발적인 지지층이었던 서민을 뿌리치고 극우 기득권 세력한테 손을 내민 건 배신”이라고도 했다.
어쨌든 위도도는 이번 일로 정치적 논란뿐 아니라 사형제도와 마약이라는 동남아시아 시민사회의 해묵은 문제 둘을 함께 데리고 나온 셈이다. 국제사회에서는 2012년 현재 198개국 가운데 사형제도를 폐지한 나라 97개국과 사형제도는 있지만 한국처럼 10년 이상 집행을 하지 않은 36개국에다 특수 상황에서만 사형을 적용하는 8개국을 보태 모두 141개국을 실질적인 사형폐지국으로 인정한다. 국제사회가 이미 사형이 범죄예방이나 단죄에 실효성 없는 야만적인 제도라는 데 동의했다는 뜻이다. 아직 사형제도를 고집하는 57개국은 미국과 아프리카 쪽 소말리아 같은 몇 나라를 빼고 나면 거의 모두 아시아에 몰려 있다. 아시아에서 사형제도를 폐지한 나라는 캄보디아, 동티모르, 네팔뿐이다. 게다가 마약범한테 사형을 적용하는 32개국 가운데는 미국, 쿠바, 이집트, 소말리아를 빼고 나면 또 나머지가 모두 아시아 차지다. 아세안(ASEAN) 10개국 가운데는 필리핀과 캄보디아를 뺀 8개국이 들어 있다.
그렇다면 동남아시아에서 사형이 과연 마약을 제압할 수 있는 장치였을까?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는 2000년대 들어 잠깐 주춤했던 동남아시아의 아편 생산이 지난 7년 동안 계속 증가하면서 2013년 현재 버마, 라오스, 타이에서 생산한 아편이 세계 전체 생산량의 18%에 이른다고 밝혔다. 액수로 따지면 버마가 4억3300만달러, 라오스가 4200만달러 그리고 타이가 1100만달러였다. 2015년 아세안 비마약지대 선언 계획은 오래전에 물 건너간 셈이다. 이처럼 아세안 국가들은 줄기차게 마약범들을 사형시켜 왔지만 마약이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2003년 타이에서는 탁신 친나왓 정부가 마약과 전쟁을 선포하고 3개월 동안 법적 절차 없이 현장 사살 2500여명(1400여명 마약과 무관한 시민)이라는 기록적인 학살까지 했지만 머잖아 마약은 더 기승을 부렸다. 인도네시아 인권단체 실종폭력희생자위원회가 밝힌 것처럼 사형 집행이 근본적인 마약 차단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다른 모든 범죄와 마찬가지로 마약 범죄도 사형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뜻이다. 자본과 결탁한 대량생산 구조를 남겨둔 채 ‘피라미’들만 잡아들여 사형시키는 마약범죄 대책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는 사실만 더 또렷해진 셈이다. 그사이 마약 생산·공급이 모조리 수십년 묵은 정부와 군과 경찰 커넥션을 통해 다 빠져 다녔다는 사실쯤이야 모르는 이가 없다. 그러니 지금껏 동남아시아의 어떤 정부도 ‘큰 고기’를 잡은 적이 없었다. 이건 정부라는 공적 기관이 마약 생산과 공급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해 온 아시아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인도네시아 마약범 총살자국인 1명에 외국인 5명까지
브라질·네덜란드 정부서 막으려
마지막 순간까지 물고늘어져
한국 정부와는 완전히 비교돼 자본과 결탁한 대량생산 놔둔 채
‘피라미’들만 잡아 사형시키는
마약범죄 대책으론 문제 못 풀어
동남아시아의 그 어떤 정부도
‘큰 고기’를 잡은 적은 없어 비밀 마약사업 승인했던 미국 대통령들 굳이 멀리 아편전쟁까지 갈 것도 없이 제2차 세계대전 뒤 프랑스 비밀정보국(SDECE)이 인도차이나반도 전쟁의 전비 마련을 위해 코르시카 마약 마피아와 손잡고 라오스와 베트남의 아편을 마르세유로 실어 날랐던 1950년대부터 보면 된다. 그렇게 해서 프랑스가 인도차이나반도를 마약 생산지로, 유럽을 마약 소비시장으로 만들어 국제 마약판을 키웠다. 이어 1954년 프랑스 대신 인도차이나전쟁에 뛰어든 미국은 중앙정보국(CIA)이 그 역할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1970년대 초까지 시아이에이는 라오스 반군으로 활용한 소수민족 몽(Hmong)이 생산한 아편을 자신들이 운영해 온 에어아메리카로 베트남의 사이공까지 실어다 날랐다. 또 시아이에이는 1960년대부터 중국 국민당 잔당들이 버마에서 생산한 아편을 자신들의 끄나풀이자 타이 정치판을 주물렀던 경찰 총수 파오 시야논 장군 비호 아래 홍콩·말레이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로 퍼뜨렸다. 그 결과 베트남전쟁은 마약 소굴로 변하면서 참전 미군의 10~15%가 마약에 중독되었고 동남아시아 전역이 마약시장이 되고 말았다. 그게 1970년대를 지나면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마약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직접적인 계기였다. 그런 비밀 마약사업을 승인했던 주인공들이 바로 트루먼, 아이젠하워, 케네디, 존슨, 닉슨으로 이어지는 미국 대통령들이었고 미국 정부였다. 그 미국 정부에 빌붙어 권력과 자본을 키운 동남아시아 정치판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게 오늘날 동남아시아 마약 문제의 뿌리들이다. 이게 잔챙이 몇 명 총살로 풀 수 없는 동남아시아 마약 문제의 본질이다.
인천공항 관세국경관리연수원 탐지견훈련센터에서 여행가방에 담긴 마약을 탐지하는 훈련을 하고 있는 모습. 인천공항/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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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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