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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2.26 18:44 수정 : 2014.12.28 09:39

[토요판] 정문태의 제3의 눈
(37) 리더십의 붕괴

▶ 정문태 1990년부터 타이를 베이스 삼아 일해온 국제분쟁 전문기자. 23년간 아프가니스탄·이라크·코소보를 비롯한 40여개 전선을 뛰며 압둘라흐만 와히드 인도네시아 대통령, 훈센 캄보디아 총리 등 최고위급 정치인 50여명을 인터뷰했다. 저서로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2004년), <현장은 역사다>(2010년)가 있다. 격주로 국제뉴스의 이면을 한겨레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12월12일 오후 ‘땅콩 회항’과 관련해 조사를 받기 위해 국토해양부에 출석하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침몰한 세월호와 회항한 대한항공 KE086편은 무너진 리더십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섬뜩했다. 12월5일 뉴욕에서 서울로 가던 대한항공 KE086편이 램프리턴을 했다는 아주 황당한 뉴스가 <아에프페>(AFP)를 비롯한 외신에 떴다. 세월호가 떠올랐다. 선장이 가라앉는 배에서 승객을 버리고 탈출한 짓이나 기장이 부사장 명령이랍시고 비행기를 돌린 짓이나 다 같은 범죄행위다. 2014년 우리는 리더십이 처절하게 무너진 대한민국을 보았다. 선장과 기장은 바다와 하늘로 다니는 길만 다를 뿐 조건 없이 승객들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최종 결정권자다. 바로 리더들이다. 그리하여 그이들이 조종석에 앉는 순간 우리는 모든 권한과 책임을 맡겨왔다. 직업 수행 중 그들이 좇아야 할 대상은 부사장도 대통령도 교황도 하느님도 아닌 오직 규칙과 법뿐이다. 그 리더들의 판단과 행위를 법으로 보호해준다는 건 그만한 의무도 따른다는 뜻이다.

세월호와 대한항공 KE086의 차이

시민사회로부터 그런 리더의 권능을 받은 기장이란 자가 기껏 마카다미아 따위로 흥분한 부사장이 사무장을 팽개치란다고, 기체나 승객 안전 문제가 생겼을 때만 램프로 되돌아갈 수 있는 법을 어겼다는 건 승객을 사지로 몰아넣은 행위와 다를 바가 없다. 여객기에서 사무장이란 건 서비스만 책임지는 이가 아니다. 사고가 나면 기장과 함께 객실승무원을 이끌고 승객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아주 중요한 자리다. 기장이 그런 사무장을 버리고 비행했다는 건 리더로서 동료를 지켜주지 못한 도덕적 책임뿐 아니라 비상사태 대비라는 법적 의무까지 저버렸다는 뜻이다. 미국을 오가는 국제선 비행기를 몰고 다닐 기장쯤 되는 이가 그런 걸 몰랐을 리 없다. 만약 대한항공 KE086편이 비상사태를 만났다면 어땠을까? 부사장과 기장은 일찌감치 탈출하고, 사무장마저 없는 객실에서 승무원들이 갈팡질팡하고, 그사이 승객들은 앉은자리에서 다 죽었을까. 그게 바로 세월호였다. 세월호와 대한항공 KE086편의 차이는 딱 하나다. 하나는 사고가 났고 다른 하나는 사고가 나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사고가 나고 안 날 확률은 언제나 반반이다. 그래서 여객선이나 여객기처럼 사람 목숨을 다루는 업종에서는 오직 0.1% 사고 가능성을 놓고도 100% 사고 확률로 따져 대비하고 훈련하는 게 국제관례다. 대한항공 086은 사건 뒤 돌아가는 꼴을 봐도 세월호다. 대한항공이라는 회사의 사건 대처 과정, 대한항공과 국토교통부 공무원의 유착 관계, 증거 인멸 시도 같은 꼴들을 보면 어디 하나 다를 바가 없다. 사고가 나지 않았던 게 행운일 뿐이다. 그래서 끔찍했다. 이건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이 솥뚜껑 보고 놀랐다는 게 아니다.

달리 기장이 부사장의 희한한 명령을 어긴 채 램프리턴 없이 동료 사무장과 함께 서울로 왔다면 어땠을까? 대한항공이라는 족벌 풍습으로 볼 때 기장은 쫓겨났을 가능성이 높다. 부사장의 부당한 명령을 어긴 기장, 원칙을 좇아 동료를 지켜내고 승객 안전을 앞세웠던 기장, 그래서 쫓겨난 기장, 이런 게 바로 세월호에 멍든 우리가 진정 보고 싶었던 뉴스다. 기장한테는 좀 가혹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게 숱한 목숨을 달고 다니는 직업인들이 지켜야 할 명예고 자존심 아니겠는가. 리더십이 침몰한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애타게 기다려온 영웅의 출현은 아쉽게도 상상 속에서 어른거리다 사라지고 말았다. 말해 놓고 보니 참 허무하다. 오죽했으면 마땅히 지켜야 할 원칙을 놓고 영웅까지 들먹일 수밖에 없는 이 현실이.

결국 세월호도 대한항공 램프리턴 문제도 리더십이다. 시민사회가 오랜 경험을 통해 만들어 놓은 원칙을 지켜내는 자가 리더다. 그 원칙을 끌고 가는 게 리더십이다. 대한민국 2014년은 총체적으로 리더십 부재를 드러낸 한 해였다. 선장도 기장도 부사장도 대통령도 모조리 리더십 부재로 침몰했다. 제대로 된 리더가 없는 대한민국은 어디 하나 제대로 굴러가는 구석이 없었다. 이게 언젠가부터 국격이란 정체불명 단어를 입에 달고 살아온 대한민국의 실체였다.

부사장의 부당한 명령 어긴 기장
사무장 지키고 안전 앞세운 기장
그래서 기어이 쫓겨난 기장
이런 게 바로 세월호에 멍든
우리가 진정 보고 싶었던 뉴스다

외국 친구들의 수없는 질문 세례
‘왜 선장이 도망쳤는가’
‘왜 구조를 제때 못했는가’
‘왜 맘대로 비행기를 돌렸는가’
대답 못해 답답했던 한해가 간다

이렇게 초기에 리더십 실종된 사고는 없어

고백하건대 나는 20년 넘도록 외신기자로 일하면서 올해처럼 대한민국이 부끄러웠던 적이 없다. 올해처럼 대답할 수 없는 숱한 질문 세례를 받았던 적도 없다. 올 한 해 동안 만났던 수많은 외국 친구들 가운데 누구 하나 세월호를 입에 올리지 않은 이가 없었다. 방콕이나 자카르타 같은 도시 친구들뿐 아니라 쓰나미 피해를 입었던 아체 골짜기 친구들 입에서도 세월호는 어김없이 등장했다. “왜 선장이 도망쳤는가?” “왜 구조를 제때 못했는가?” “왜 대통령이 7시간이나 사라졌는가?” “왜 정부가 희생자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가?”…, 말끝마다 “왜?”를 걸고 나오는 그 모두들 속뜻은 비아냥거림이었고 나무람이었고 타박이었다. 속 시원히 대꾸할 수 없었던 나는 그저 답답하기만 했다. 내가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던 탓이다. 침몰에서부터 구조도 대책도 수사도 재판도 그랬고 더구나 리더 노릇을 해야 할 대통령이란 자의 태도도 수상하기만 했으니.

게다가 정치판도 언론도 마구 헷갈려 돌아가긴 마찬가지였다. 그사이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을 보도한 <산케이신문> 고발 건까지 겹치면서 나는 외신판 친구들한테 한국 대표선수로 거의 취조를 당하다시피도 했다. 그렇게 한 해를 보내면서 친구들 입에서 세월호가 조금 숙지는가 싶었더니 12월 들어 다시 대한항공 램프리턴 사건이 터져 국제적 규모의 창피를 당했다. “환생을 믿는 아시아(한국)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며 세월호 같은 재난사고를 비꼬았던 한 기자가 “비행기쯤이야 마구 돌릴 수도 있지 않겠나?”며 속을 뒤집어 놓았다. 결국 얼굴을 붉히며 연말을 맞았다. 그렇게 올해 내내 나는 상상도 못했던 초현실적 체험을 한 기분이 든다.

지난 4월16일 대기 중인 승객을 뒤로하고 사고 해역에 출동한 해경구조선으로 탈출하는 세월호 승무원들. 침몰한 세월호와 회항한 대한항공 KE086편은 무너진 리더십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서해지방해양경찰청 제공
2014년을 며칠 남겨둔 날 다시 세월호를 꺼내들었다. 역사에 등장하는 대형 해난사고 기록들을 훑어보았다. 없었다. 세월호처럼 선장에서부터 구조대는 말할 나위도 없고 대통령과 정치판에 이르기까지 그토록 총체적인 리더십 부재가 희생자를 키운 경우는 눈 닦고 찾아봐도 없다. 사고 배경만 해도 세월호처럼 기업과 관료들의 온갖 부정부패에다 불법 운항과 미숙 운항까지 겹겹이 둘러친 경우는 없다. 대형 해난사고에 따른 인명 피해는 1987년 4386명 희생자를 내면서 최대 기록을 세운 필리핀 도냐파스호가 유조선과 충돌로, 2002년 1864명 희생자를 낸 세네갈의 르줄라호가 태풍으로, 그리고 1912년 1517명 희생자를 낸 영국의 타이태닉(타이타닉)호가 유빙과 충돌로 침몰했듯이 거의 모두 화재, 과적, 빙산, 태풍, 운항 미숙, 구조 실패 같은 원인 가운데 한둘쯤이 겹친 것으로 나와 있다. 어디에도 세월호 같은 종합판은 없다.

희생자 수로 따져보면 일찍부터 대양을 주름잡아온 영국이 100대 해난사고에 37건을 기록하며 압도적 1위를 달렸고 미국이 8건으로 뒤를 이었다. 아시아 쪽 인도네시아가 5건으로 3위를, 그리고 일본, 필리핀, 중국, 인디아(인도), 방글라데시가 유럽 쪽 독일, 스페인, 캐나다, 러시아와 함께 각각 3건을 기록하며 4위권을 이뤘다. 대한민국은 1993년 292명 희생자를 낸 서해훼리를 100위에 올린 데 이어 올해 304명 희생자를 낸 세월호를 92위에 올리면서 네덜란드와 함께 2건으로 5위권에 자리잡았다. 그 100대 해난사고 기록에서 세월호처럼 초동 단계에 리더십이 사라져버려 희생자를 키운 경우는 결코 흔치 않다. 2012년 32명 희생자를 낸 이탈리아 코스타콩코르디아호 같은 걸 빼고 나면 선장이 먼저 도망쳐버린 경우는 동네 통통배 사고에서도 보기 힘들다. 100대 해난사고를 보면 나중에 선장이 죽었든 살았든 거의 모든 선장들이 제1차 구조작업에 뛰어든 기록이 나온다. 비록 과장이 있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승객을 대피시키고 배와 함께 사라지는 선장은 타이태닉에서나 볼 수 있는 영화적 상상력만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런 게 바다 사나이들이 전통처럼 여겨온 명예였다. 선장의 리더십은 바로 그 명예에서부터 비롯된 셈이다. 근데 세월호는 그 명예를 너무 헐값에 넘겨버린 꼴이다.

부사장의 부당한 명령 어긴 기장
사무장 지키고 안전 앞세운 기장
그래서 기어이 쫓겨난 기장
이런 게 바로 세월호에 멍든
우리가 진정 보고 싶었던 뉴스다

외국 친구들의 수없는 질문 세례
‘왜 선장이 도망쳤는가’
‘왜 구조를 제때 못했는가’
‘왜 맘대로 비행기를 돌렸는가’
대답 못해 참담했던 한해가 간다

리더십은 때로 살상무기 될 수도 있다

300명 웃도는 소중한 목숨들을 바다에 묻어버린 세월호에서 우리는 뼈저리게 배운 게 있다. 리더십은 부리기에 따라 구호장비가 될 수도 있고 달리 살상무기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리더십이 속속들이 무너져버린 사회가 이번에는 그 희생자 가족들을 길바닥으로 내몰았다. 그래 놓고는 최고위급 리더인 대통령이란 자나 그 둘레를 맴도는 자들은 “희생자 가족들이 너무 정치적이다”라고 몰아붙였다. 더욱이 야당 한다는 자들이나 언론까지 덩달아 날뛰었다. 정치적이라니? 시민의 모든 행위는 정치다. 몰랐던가? 시답잖은 정치인이나 정치학자가 말하는 정당정치만 정치가 아니다. 오죽했으면 희생자 가족들이 몸소 정치를 했을까. 리더십이 깨진 사회에서 시민은 마땅히 정치를 할 권리가 있다. 시민을 보호해주지 못하는 불량한 리더십이 날뛰는 사회에서 정치를 하지 말라는 소리는 가만히 앉아서 죽으라는 뜻이다. 그게 세월호였고 우리는 그렇게 꽃다운 아이들을 죽였다.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2014년 세월호는 그렇게 리더십을 화두로 던져놓고 대한민국과 함께 가라앉았다. 누가 앞장서서 대한민국을 건져내야 옳은가? 그 답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다. 있다면 오직 한 사람. 누가 이제라도 세월호를 고이 가슴에 묻을 수 있도록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 답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다. 있다면 오직 한 사람. 그 의심 가는 한 사람을 노려보면서 불편했던 2014년을 닫는다. 2015년 리더십이 온전히 작동하는 사회를 꿈꾸며.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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