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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1.14 19:20 수정 : 2014.11.16 12:25

전시작전통제권을 갖지 못한 나라가 독립국가인가. 지난 10월30일 강원도 원주비행장에서 열린 ‘국산 전투기 FA-50 전력화 기념식’에서 전투기에 올라 엄지손가락을 세운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토요판] 정문태의 제3의 눈
(34) 전시작전권 식민지

▶ 정문태 1990년부터 타이를 베이스 삼아 일해온 국제분쟁 전문기자. 23년간 아프가니스탄·이라크·코소보를 비롯한 40여개 전선을 뛰며 압둘라흐만 와히드 인도네시아 대통령, 훈센 캄보디아 총리 등 최고위급 정치인 50여명을 인터뷰했다. 저서로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2004년), <현장은 역사다>(2010년)가 있다. 격주로 국제뉴스의 이면을 한겨레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해마다 타이 음력으로 12월 보름이면 로이끄라통이라는 잔치가 벌어진다. 올해는 그게 양력 11월6일이었다. 그 잔칫날이 돌아오면 북부 치앙마이는 난리가 난다. 올해는 타이 안팎으로 정치도, 경제도 신통찮아 예년 같진 않았지만 그래도 폭죽이 천지를 뒤흔들었고 콤로이(호롱불로 공기를 달궈 날리는 종이등)가 온 하늘을 뒤덮었다. 도심을 가르는 삥강에는 끄라통(촛불과 꽃을 장식한 바나나 잎으로 만든 바구니)이 떼 지어 흘렀다. 물의 신한테 고마움을 전하고 지은 죄를 비는 정화의식을 바탕에 깐 이 잔치는 농경문화에서 비롯되었다고들 한다.

잔치를 즐기지 않는 나한테는 이 로이끄라통이 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겨울이 시작된다는 이 로이끄라통은 이듬해 2월 말까지 손님치레로 정신없을 계절이 돌아왔다는 신호다. 이곳 치앙마이의 겨울이란 게 낮엔 32~33도를 오르내리고 밤에 그저 에어컨 없이 잘 수 있는 정도지만 방콕이나 자카르타 같은 동남아시아 열대 친구들한테는 피서지로 알려져 온 탓이다. 올해도 로이끄라통 전날 방콕 외신판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어김없이 몰려왔다. 직업이 직업들인 만큼 앉았다 하면 국제 정치고, 주인장 국적이 한국이다 보니 세월호 사건과 <산케이신문> 고발건에 이어 전시작전통제권에 이르기까지 온갖 질문들이 날아들었다. 삐딱한 질문들을 국가대표마냥 받아낸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이 친구들은 곧잘 기사에다 아무개 가라사대를 걸고 써먹는 버릇을 지닌 자들 아니던가. 어쨌든 오랜만에 친구들과 밤새워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내게 남은 건, 또 그 사무치는 말이었다. ‘한국이 너무 호전적이다’. 친구들 이야기를 복기해 봤지만 은유든 직유든 결론은 같았다. 아주 많이 인정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억울했다. 친구들한테 내 몸에 돌아다니는 피, 이 추상적인 정서까지 뽑아 보이며 한국을 이해시킬 솜씨가 없었던 탓이다.

무상보육 예산과 K-2 흑표 480대

그렇게 밤을 새우고 한나절이 지난 뒤 인터넷에서 뉴스를 둘러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친구들 말이 다 옳았다. 사무칠 일도 억울할 일도 없었다.

‘무상교육 예산이면 육군 탱크 신형으로 교체.’ <티브이(TV)조선>이 11월7일 뽑아든 제목이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다닐 만 3~5살 아이들한테 쓸 내년 무상보육 예산 3조9284억원과 17개 시·도 무상급식 예산 2조6239억원이 아주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근데 그 내용이란 게 “1년치 무상보육 예산이면 최신형 전차 K-2 흑표 480대를 구입해 30년 묵은 탱크를 다 바꿀 수 있다”는 식이었다. 그러고도 성이 안 찼던지 “그 돈이면 만원짜리로 지구를 한 바퀴 돌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런가 하면 같은 날 같은 방송에서 극우 주전론자 조갑제는 재벌 아이들의 급식 선택권을 들이대며 “강제 급식 지원은 인권유린”이라는 희한한 말을 쏟아냈다. 오래전부터 주석궁으로 탱크몰이를 주장하며 “전쟁이 나쁘다고만 보는 우리 사회가 문제다”고 떠들어댔던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건 아니다. 아무리 정치적 입장이 다르고 속이 뒤틀렸다손 치더라도 아이들을 가르치고 먹이는 돈을 놓고 살상용 무기인 탱크를 빗대거나 당치도 않은 인권 문제를 걸고 나선다는 건 너무 지나쳤다. 이런 건 이념도 태도도 아니다. 제아무리 호전적인 군국주의 정부에서도 악질 전체주의 정부에서도 아이들 교육과 급식을 볼모삼아 군비 확장을 외치거나 인권유린 따위를 걸고 나왔던 적은 없다. 전쟁 중인 사회에서도 대놓고 아이들 교육과 급식만은 입에 올리지는 않는다. 불문율이다. 지금껏 나는 수많은 전쟁터를 취재하면서도 이런 간 큰 언론을 결코 본 적이 없다. 이게 군사주의 무장철학에 찌든 우리 사회의 아주 일그러진 모습이다.

마찬가지로 지난 10월30일 우리 언론을 보자. <와이티엔>(YTN)과 <한국일보> 같은 매체들은 국산 전투기 전력화 기념식에 참석해 FA-50 조종석에 앉은 대통령 박근혜 사진과 미그29 전투기 조종석에 앉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김정은 사진을 맞붙여 걸었다. ‘우리 공군이 우세하다’거나 ‘박 대통령은 군 미필이고 김정은 위원장은 대장 이상 계급’ 같은 뜻 모를 기사와 함께 남북 최고위급 정치인이 전투기에 올라탄 사진을 건 언론사들 심보는 뭘까? <노동신문>이야 그런 김정은 사진이 필요했던지 몰라도 우리 언론이 뽑아들 만큼 뉴스 가치가 있었을까? 이게 바로 우리 언론사들의 해묵은 남북대결 편집증이다. 이게 평화통일을 외치면서도 교묘하게 무력대결을 부추겨온 우리 언론사들 정체다.

정부는 또 어떤가. 지난 11월2일 제2차 남북 고위급 접촉이 어떻게 깨졌는가. 하루 전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우리 최고 존엄을 악랄하게 훼손하는 삐라 살포 망동을 중단하지 않은 한 남북대화도, 남북관계 개선도 없고…, 남조선 삐라 살포놀음의 주범은 괴뢰당국이며 그 배후 주모자는 박근혜…”라고 트집 잡자 통일부 대변인이 나서 “북한이 우리 대통령을 실명 비난하고… 북한이 그들의 최고 존엄만을 생각한다면 우리 대통령의 지위도 상호 존중해야 된다”고 닦아세웠다. 끝. 그걸로 끝장났다. 통일부 대변인 말마따나 상호 존중이 필요한 고위급 접촉을 앞두고 김정은을 비난하는 대북 전단이 날아가도록 멀뚱멀뚱 쳐다만 본 정부는 대체 무슨 심사였던가?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본디 그런 데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때도 수틀리면 실명으로 막말을 퍼부어댔던 전통적인 대남 저격기구다. 몰랐던가? 그 시절 욕먹으면서도 길을 간 건 대북정책과 평화통일 의지가 있었던 까닭이다. 그사이 욕 안 먹은 남한 대통령이 단 한명도 없었다. 박정희 정부 때부터 지금껏 남북관계란 게 늘 그랬다. 앞에선 욕도 하고 삿대질도 하면서 뒤로는 서로 길을 찾아보겠다고 애썼다. 적어도 그 모든 대통령들은 박근혜 정부처럼 회담을 앞두고 북한 지도부를 비난하는 전단이 날아가도록 내버려두었거나 모진 말 한마디 들었다고 판을 깨버리지는 않았다. 이건 박근혜 정부가 대북 정책도 의지도 없다는 사실을 자백한 꼴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유난히 그 대통령의 명예를 따지는데, 먹고살기 바쁜 시민들은 그런 데 별 관심도 없다. 시민은 대통령의 명예보다 평화를 더 바라고 통일을 더 바랄 뿐이다.

통일부 대변인이 국제규범을 들이대며 “그들의 최고 존엄만을 생각하는 비이성적 행태가 국제사회에 어떻게 비춰질 것인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했던 말은 거의 자폭적 발언이다. 그동안 적개심에 불타 서로를 죽어라고 욕해댔던 남과 북 두 정부 행태를 놓고 본다면 그야말로 낯 뜨거운 말이다. 국제사회에 어떻게 비칠까? 이건 아주 좋은 질문이다. 통일부 대변인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대목이다. 불행하게도 국제사회 여론을 쥐락펴락하는 외신판에서는 남한과 북한을 그리 달리 보지 않는다. 두 코리아를 모두 아주 호전적인 국가(warlike nation)로 두 코리안을 싸움꾼(aggressive person)쯤으로 여긴다. 남한과 북한을 모두 취재한 경험이 있는 타이 기자 수팔락 깐짜나쿤디는 “외국인은 남한을 통해서 한국(남북) 전체를 본다. 북한을 잘 모를뿐더러 만날 수 있는 한국인은 거의 남한 사람뿐”이라며 “국제사회에 한국이 호전적 인상을 심어줬다면 그건 남한 정부와 남한 사람들 탓”이라고 했다. 국제사회에서는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남한이 한국 대표선수라는 뜻이다.

상당수 외국인들 인상에 박힌
‘공격적 성향 지닌 거친 한국인’
케이팝과 한국 드라마 좋아해도
“다 좋은데 왜 싸우기만 해요?
남한과 북한, 누가 더 나빠요?”

부탄은 왜 독립국가가 아닌가
외교·군사권이 인도에 있어서다
대한민국이 딱 그 꼴이다
대만·이스라엘·나토가 미국의
영향 받는다 해도 속살은 다르다

“역사에서 배운 독일과 너무 달라요”

세상을 돌아다녀본 이들이라면 잘 알겠지만 거의 모든 외국인들 인상 속에는 ‘공격적 성향을 지닌 거친 한국인’이란 게 박혀 있다. 억울해할 것도 없다. 군사대결주의로 60년을 지새운 땅에서 나고 자라며 익힌 태도들이 저절로 드러났을 테니까. 외국인들은 삼성 전화기나 케이팝(K-Pop)에 흥분하면서도 다른 눈으로는 한국인의 호전성을 들여다봐 왔다. 인도네시아 친구 딸로 대장금을 줄줄 외우며 한국 드라마를 끼고 사는 간호사인 인탄은 숨 막히는 질문을 던지곤 했다. “다 좋은데 왜 자꾸 싸우기만 하는지. 남한과 북한, 누가 더 나빠요?” 독일 친구 딸로 케이팝에 미쳐 한때 ‘비’라는 가수와 결혼을 인생 목표로 삼았던 마리아는 한술 더 떴다. “남한이 문화나 경제적으로 북한을 크게 앞서는데 왜 싸우는 모습은 똑같아요? 역사에서 배운 독일과 너무 달라요.” 바깥세상 사람들은 남북 대결을 놓고 둘을 싸잡아 나무라지 북한만 타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국제사회에서 감상적인 ‘우리 편’ 같은 건 없다. 이 점 통일부 대변인은 오판 마시기 바란다.

결국 군사주의 무장철학에 찌든 우리 사회 모습이 전시작전통제권 문제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대통령 이승만이 1950년 7월, 한국전쟁이 터지자마자 미군한테 넘긴 전시작전통제권이 1961년 박정희 쿠데타 때 딱 10일 동안 정지되었을 뿐 올해로 64년을 넘어섰다. 이 전시작전통제권은 군사적 사안만으로 볼 수 없다. 흔히 독립국가를 말할 때 외교주권과 군사주권은 고갱이로 꼽는다. 예컨대 국제사회에서 부탄을 온전한 독립국가로 인정 못하는 까닭도 외교권과 군사권을 인도가 쥐고 있는 탓이다. 마찬가지로 아시아 현대사에서 유일하게 식민 지배를 받지 않았다고 우기는 타이가 논란거리인 까닭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한테 군사주권을 넘겨줘버린 탓이다. 마땅히 미국과 영국 정부는 타이를 일본 점령지역으로 규정했다. 그럼 대한민국은 대체 뭔가? 현재 지구에서 군사주권을 못 가진 나라는 부탄과 한국뿐이다. 나토(NATO)와 비교들 하는 모양인데, 나토란 건 유엔헌장 제25조에 따라 유엔 회원국이 아닌 초국가적 지역협정체일 뿐이다. 게다가 전통적으로 전시작전통제권을 쥔 유럽동맹군 총사령관을 미국이 맡아왔지만 회원국이 승인(위임)한 부대만 통제할 뿐이다. 그런 지역협정체와 한국이라는 단일 국가를 견준다는 건 이치에 맞지도 않는다. 독일을 견주기도 하는데, 현재 독일 기본법은 평상시 군통수권을 국방장관이(제65조 a), 전시에는 총리가 지닌다(제115조 a)고 못박아 두었다. 어디에도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군(나토)에 넘긴다는 규정이 없다. 우리처럼 분단국가인 대만도, 날마다 전쟁인 이스라엘도, 정규군을 동원해 치고받아온 인도와 파키스탄도 군사주권만은 남에게 넘겨준 적이 없다. 모두들 미국의 거대한 영향 아래 있지만 속살은 한국과 다르다는 말이다. 전사를 훑어봐도 한국처럼 미국이 군사주권을 돌려주겠다는데도 안 받겠다고 우기고 버틴 경우는 없다.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이 전시작전통제권의 본질은 결투 없이 한순간도 견디지 못하는 우리 사회가 겪어온 심리적 강박감, 바로 호전성의 문제다. 머릿속엔 평화 대신 온통 전쟁만 가득 찬 전형적인 군사대결주의 습성 탓이다. 군대나 무기로 전쟁을 막을 수 없듯이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군한테 맡겨놓는다고 전쟁을 막을 수 없다. 전쟁을 막는 유일한 길은 평화를 향한 의지와 행동뿐이다. 전 대통령 노무현이 “좋은 전쟁은 없고, 나쁜 평화는 없다”고 했던 말을 되씹어볼 만하다. 전쟁은 국가로 위장한 정부가 저지르는 가장 극단적이고 야만적인 정치행위다. 주전론에 사로잡힌 정부가 독립국가 행세를 못한다면, 결국 시민이 나설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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