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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8.08 18:29 수정 : 2014.08.09 14:34

지난 5월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거머쥔 육군참모총장 겸 국가평화질서평의회(NCPO) 의장인 쁘라윳 짠오차 장군이 지난 7일 방콕의 옛 의회건물 개막식에 들어서고 있다. 현재 쁘라윳의 권력 창출을 의심할 만한 모든 걸림돌은 제거된 상태다. AP 연합뉴스

[토요판] 정문태의 제3의 눈
(28) 타이 쿠데타

정문태 1990년부터 타이를 베이스 삼아 일해온 국제분쟁 전문기자. 23년간 아프가니스탄·이라크·코소보를 비롯한 40여개 전선을 뛰며 압둘라흐만 와히드 인도네시아 대통령, 훈센 캄보디아 총리 등 최고위급 정치인 50여명을 인터뷰했다. 저서로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2004년),<현장은 역사다>(2010년)가 있다. 격주로 국제뉴스의 이면을 한겨레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타이 사람들이 즐겨 쓰는 속담에 ‘끄라따이마이짠’이란 게 있다. ‘토끼가 달을 겨눈다’는 말인데, 이룰 수 없는 꿈이나 욕망을 뜻한다. 요즘 타이 정치판 돌아가는 꼴을 보노라면 자꾸 떠오르는 말이다.

지난 5월22일 육군참모총장 쁘라윳 짠오차가 개혁을 외치며 쿠데타로 정치판을 뒤엎은 뒤 타이 사회 분위기는 딱 두 갈래다. 개혁에 거품을 물거나 굳게 입을 닫거나. 군인들 바람대로 됐다. 그 많던 민주투사도 개혁투사도 어디론가 다 사라져버렸다. 배신당한 레드셔츠(친탁신)도 이용당한 옐로셔츠(반탁신)도 소리 없이 사라졌다. 지식을 뽐내던 전문가도 진보 냄새를 풍기던 언론인도 말이 없다. 그러고 보니 늘 그랬다. 타이 사회는 너그러웠다. 지금껏 튀어나왔던 모든 권력을 까탈 없이 받아들였다. 가진 놈 앞에 조아리는 봉건적 습성의 대물림이라며 남들이 나무라든 말든. 그게 탱크만 잘 몰고 나오면 누구나 권력을 낚아챌 수 있었던 무적불패 쿠데타의 전통, 타이 현대사의 조건이었다. 1932년 유럽 유학파 관료와 청년 장교들이 개혁을 외치며 무혈 쿠데타로 쁘라차티뽁 절대왕정을 무너뜨리고 입헌군주제로 바꾼 뒤 19번 쿠데타에 17번 헌법을 뜯어고쳤지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그사이 탱크를 몰고 나왔던 군인들마다 개혁을 외쳤고 그 군인들이 정치판을 주무른 기간만 56년 하고도 8개월째며 현대사를 스쳐간 총리 28명 가운데 15명이 장군이었다. 이건 지금껏 군인정부고 민간정부고 아무도 자신들 기득권을 갉아먹을 개혁을 원치 않았다는 뜻이다. 개혁의 줏대가 시민사회의 리더십을 통한 시민 권력의 창출이고 보면 그 개혁으로 하늘을 난다 한들 시민 권력이 빠진 건 다 말질일 뿐이다.

육군참모총장 쁘라윳 짠오차가
지난 5월22일 쿠데타로 나온 뒤
타이 사회 분위기는 딱 두 갈래
개혁에 거품 물거나, 입을 닫거나
레드셔츠도, 옐로셔츠도 없다

군복 입은 상태서 권력 다져나갈
쁘라윳은 총리를 맡을 것인가
무엇이 되든 간에 군인들의
장기집권 가능성이 높아졌다
구체제 세력의 승전보가 울린다

군부 권력창출의 분수령이 될 9월30일

내친김에 권력창출을 말해보자. 개혁 앞잡이로 등장한 구체제의 상징인 군인과 입 닫은 시민사회를 번갈아 돌아볼 만하다. 쿠데타 79일째, 바야흐로 군인들 세상이 왔다. 쁘라윳 장군이 이끄는 국가평화질서평의회(NCPO)는 지난 7월22일 공표한 임시헌법을 앞세워 제왕적 절대 권력을 잡았다. 임시헌법 제44장은 국가평화질서평의회 의장에게 ‘개혁, 통합, 화해, 평화, 질서, 안보, 경제, 정부에 필요한 명령과 집행 권한’을 무제한 허용하면서 ‘모든 명령과 집행이 합법, 합헌, 최고’ 권위를 지닌다고 규정했다. 입법, 행정, 사법 위에 군림하는 아주 특별한 독재헌법이다. 제48장은 쿠데타 군인들에게 ‘2014년 5월22일(쿠데타) 이전과 과정 그리고 이후에 저지른 불법 행위가 무엇이든 처벌하지 않는다’며 일찌감치 사면까지 못박아두었다.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책임도 지지 않는 그야말로 신정헌법이다. 국가평화질서평의회는 그 임시헌법에 따른 첫 행사로 입법의회 의원을 뽑았다. 200명 가운데 현역 66명을 포함한 군인 105명, 경찰 10명에다 나머지 85명을 친군부 학자, 전 상원의원, 사업가들로 채웠다. 이자들이 9월에 총리를 뽑아 임시정부를 세우고 새 헌법을 만드는 대리인들이다. 이번 주말쯤엔 국가평화질서평의회가 개혁안을 다루고 새 헌법을 검증할 국가개혁위원회 250명을 뽑아 10월부터 돌릴 모양이다. 그리고 내년 10월쯤 총선을 거쳐 새 정부를 구성하겠다는 게 정치일정표이긴 한데 가봐야 아는 어림재기다. 국가평화질서평의회가 신헌법 거부권을 지녀 재판 삼판으로 갈 경우 일정이 늘어질 수 있는 탓이다. 맘먹기에 따라 쭈욱 늘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현재 쁘라윳의 권력창출을 의심할 만한 모든 요소는 제거된 상태다. 다만 쁘라윳한테는 9월30일로 다가온 육군참모총장 퇴역일이 골칫거리로 남아 있을 뿐이다. 물론 초법적인 권력자에게 임기 따위를 늘리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다. 국가평화질서평의회 사령장 하나면 그만이다. 쁘라윳 입맛에 맞춰 판을 짤 임시정부의 국방장관이 서명하는 방법도 있다. 그럼에도 퇴역건은 쁘라윳이 군 안팎과 국제사회까지 두루 살펴야 할 만만찮은 장애물이다. 권력창출과 직결하는 까닭이다. 쁘라윳이 택할 만한 길은 두 갈래다. 하나는 총장 임기를 연장하고 임시정부 총리까지 겸하는 길이다. 이건 절대 권력을 창출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만 그만큼 저항도 클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군 내부가 흔들릴 수 있다. 임기 연장이 내년 퇴역을 앞둔 차기 총장 후보 4명을 희생양으로 삼아야 하는 탓이다. 여기다 쁘라윳과 퇴역일이 겹치는 국가평화질서평의회 부의장들인 합참의장, 공군총장, 해군총장까지 연장하면 군 전체가 휘말려들 판이다. 게다가 비정상적인 임기 연장을 놓고 타이 안팎에서 터져 나올 비난도 문젯거리다. 이미 유럽연합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임시정부를 민간에 넘기라고 아우성인 걸 보면. 이건 달리 퇴역하라는 뜻이다. 쁘라윳이 군 권력을 쥐고 있는 한 민간정부는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정작 쁘라윳은 아직까지 가타부타 말이 없다. 다만 8월1일 쁘라윳이 방송을 통해 “임시정부는 일시적인 ‘타이식민주주의’가 될 것”이라고 했던 말을 잘 짚어볼 만하다. 퇴역건도 총리건도 눈치 보지 않겠다는 신호가 나온 셈이다. 이 경우 쁘라윳이 총리를 하지 않더라도 권력은 지킬 수 있다. 임시헌법 제42장이 국가평화질서평의회한테 내각 관리권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 규정은 쁘라윳의 리더십에 다양한 선택권을 열어 놓고 동시에 자신들의 뿌리이기도 한 2006년 쿠데타가 임시정부와 선을 그으면서 권력창출에 실패했던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볼 만하다.

다른 하나는 쁘라윳이 측근에게 총장직을 넘기고 퇴역하는 길이다. 이건 군부 안팎이 기꺼워하겠지만 권력 유지에 한계가 있다. 군인들 세계에서 군복을 벗는다는 건 즉각 권력과의 작별이고 결국 국가평화질서평의회도 동력을 잃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 쁘라윳이 총리직을 차지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쁘라윳은 총으로 권력을 잡았기 때문에 총을 내리는 순간 어떤 직책을 지니든 권력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잉락 친나왓 전 총리도 투항 선언

결국 쁘라윳은 뭐가 됐던 군복을 걸친 상태에서 권력을 다져나갈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쁘라윳이 총리를 하느냐 마느냐보다는 이제 군인들의 장기집권 가능성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아직 새 헌법이 어디로 튈지 가늠하긴 이르지만 이미 국가평화질서평의회가 새 헌법을 국민투표에 부치지 않고 발효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상태고 보면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 같다. 수하르토 독재 시절 인도네시아 헌법이 군인에게 국방과 정치의 이중역할을 규정했던 이른바 드위풍시(Dwifungsi)가 자꾸 어른거리는 까닭이다. 어쨌든 쁘라윳이 이끄는 군인들은 지난 82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권력을 창출하고 다시 한번 자신들을 포함한 구체제 정치세력들한테 승전보를 안겨줄 것이다. 9월30일을 노려볼 만하다.

시민사회는 어디쯤 있을까. 쿠데타를 지지해온 옐로셔츠는 굳이 입에 올릴 일도 아니니 여기서는 레드셔츠를 보자.

“군을 이해한다” “이제 정치에서 손 떼겠다” “사회통합에 앞장서겠다”….

지난 5월 쿠데타 첫날부터 줄줄이 소환당했던 잉락 친나왓 전 총리의 프아타이당 정치인들과 레드셔츠를 이끌어온 반독재민주연합전선(UDD) 지도자들이 일주일짜리 병영에서 풀려나며 쏟아낸 말들이다. 투항선언이었다. 쿠데타를 반대한 시민사회, 누구보다 레드셔츠운동이 참담한 배신감을 느꼈다. 이걸 일시적 항복이고 앞날을 내다본 전략이라고 떠들어대는 이들도 없지 않다. 믿고 싶지만 그 항복과 전략이란 건 너무 자주 써먹었던 단골메뉴다. 2010년 방콕 시위 때도 그랬다. 100여명 희생자와 최후결전을 외치는 레드셔츠를 버려둔 채 경찰한테 보호를 요청하며 무대에서 도망쳤던 그 지도자들의 소리였고, 머잖아 장관, 차관, 하원의원으로 한 자리씩 꿰찼던 그 지도부의 정체였다.

타이 정치판 위기는 해묵은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 정의의 왜곡에서 비롯되었다. 타이 최대 자본가인 탁신 친나왓은 2001년 선거에서 바로 그 대목을 건드려 농민과 소외층의 지지를 끌어내며 선거 때마다 압승을 거뒀다. 그로부터 탁신에게 달라붙은 정치인들과 2006년 쿠데타 뒤 레드셔츠를 이끌었던 반독재민주연합전선 지도자들은 정치적 영향력을 폭발적으로 키워나갔다. 그러나 그 기성 정치세력들은 정치적 영향력 확대와 자본 증식에만 매달렸을 뿐 본질적인 개혁이나 민주화에는 관심이 없었다. 선거 때마다 표를 부르는 포퓰리즘 정책들만 날뛰었던 까닭이다. 그사이 ‘친탁신-레드셔츠-프아타이당-진보-공화파-민주주의-반엘리트주의-반관료주의-반부패세력’ 대 ‘반탁신-옐로셔츠-민주당-보수-왕당파-비민주주의-엘리트주의-부패세력’ 같은 희한한 진영논리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타이 현대사에서 1932년 무혈혁명 주역인 쁘리디 파놈용의 인민당을 빼곤 지금껏 이념 정당이 없었다. 프아타이당이든 민주당이든 모두 왕실에 충성 경쟁을 해온 보수 왕당파였고, 관료주의와 엘리트주의는 타이 정치판을 끌어온 썩은 두 수레바퀴였고, 부패하지 않은 정당은 단 하나도 없었다.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는 이런 유령논리는 지식인과 언론을 통해 재빨리 퍼져 나갔다. 예컨대 진보학계를 대표해온 통차이 위니짜꾼(위스콘신대학 역사학) 같은 이들마저 “탁신이 부패한 건 사실이지만 다른 재벌도 마찬가지”라며 자본과 계급 모순이 빠진 비과학적 진영론을 퍼나르곤 했다.

묻혀진 가치, 시민사회의 권력창출

그 결과 시민사회의 권력창출이라는 절대적 가치가 파묻혀버리고 말았다. 사회정의와 민주화를 외치며 일어난 자생적 레드셔츠운동은 구체제를 떠받쳐온 기성 정치세력과 본질적으로 갈 길이 다르다. 그럼에도 수백만 지지자를 거느린 레드셔츠운동은 독자적인 리더십을 갖지 못해 결국 탁신, 프아타이당, 반독재민주연합전선을 통해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바로 기성정치 세력들이 레드셔츠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권력을 쥘 수 있었던 배경이다. 이건 리더십의 모순이자 권력창출의 왜곡이었다. 그게 이번 쿠데타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쿠데타 직전까지 ‘마지막 한 방울 피’를 외치며 최후 투쟁을 선언했던 정치인도, 무장투쟁을 내걸었던 반독재민주연합전선 지도자도, 내전론을 들먹였던 지식인과 언론인들도 모조리 사라졌다. 그자들은 자신들이 통제할 수 없고 자신들에게 이문이 없는 레드셔츠의 반쿠데타 시위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 기성정치 세력들은 본디부터 자신들이 몸담은 구체제를 깨뜨릴 마음이 없었다. 쿠데타 세력들에 순순히 항복했던 까닭이다.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이제 레드셔츠운동은 독자적인 리더십 확보를 통해 진정한 시민권력 창출을 준비할 때가 왔다. 구체제에서 빌린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리더십과 선을 그을 때 비로소 동력을 얻게 될 것이다. 타이 속담에 ‘남큰하이립딱’이란 게 있다. 물이 차오를 때 빨리 길으라는 뜻인데, 때를 놓치지 말라는 경고다. 너무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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