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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7.25 18:26 수정 : 2014.07.26 15:02

비무장지대 일대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미확인지뢰지대 팻말. 한반도 남쪽 지역에만 200만개의 지뢰가 묻혀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토요판] 정문태의 제3의 눈
(27) 오타와협약

미국, 중국, 러시아,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대한민국, 이스라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이 여덟 나라가 2013년 한 해 동안 쓴 군사비가 지구 전체 1조7500억달러의 3분의 2에 이르는 1조1000억달러쯤 된다. 우리 돈으로 1100조원이다. 상상 하나, 이 여덟 나라 군사비를 인류 구제용으로 돌린다면 지구 총인구 71억 가운데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극빈층 24억명에게 매일 12.3달러씩 1년 동안 투입할 수 있다. 지구 빈곤 문제가 단숨에 풀렸다. 상상 둘, 이 여덟 나라가 없다면 지구엔 싸울 일도 없다. 제2차 세계대전 뒤 지구에서 벌어진 전쟁과 분쟁에 이 여덟 나라가 직간접으로 걸치지 않은 경우가 없었으니 진짜 악의 축(axis of evil)이 사라졌다. 지구엔 곧장 평화가 왔다. 어쨌든 이 여덟 나라는 아주 모순적으로 두루 통한다. 공세적 군사전략과 지구를 끝장낼 만한 대량살상용 무기 체계를 지녔지만 기껏 ‘대인지뢰 사용, 비축, 생산, 이전 금지와 폐기를 규정’한 오타와협약마저 어깃장을 놓고 있으니 말이다.

대인지뢰 하나 제조 3~75달러
제거하는 데는 300~1천달러
이미 깔린 지뢰 1억2천만개
걷어내는 데 1100년 걸린다
지뢰는 작은 핵발전소다

대인지뢰 금지 오타와협약
드디어 참여의사 밝힌 미국
2006년 가입하기로 한 한국
8년 지났는데도 감감무소식
지뢰정책이 있기는 한 건가

로켓유탄발사기와 지뢰가 다른 점

오늘은 지뢰 이야기를 해보자. 지뢰란 놈은 지상군 공격을 지연시키는 근접방어용인데 중국이 1억1000만개, 러시아가 7000만개, 미국이 1700만개, 인도가 500만개, 남한이 200만개를 지녔다.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북한은 알 길도 없다. 근데 누가 감히 지상군을 파견해서 지구 최강 군사력을 자랑해온 이 나라들을 공격할 수 있을까? 굳이 따지자면 이 나라들 사이에 벌어질 수 있는 충돌인데, 저마다 장거리 미사일과 공습을 뼈대로 삼은 원정군사개념을 지녀 지상군을 투입할 정도면 이미 반대쪽은 끝장난 경우다. 지뢰 따위로 방어할 수 없고 따라서 이 나라들한테는 지뢰가 쓸모없다. 지뢰가 무서워 이 나라들을 공격하지 못하는 게 아니니 지뢰가 전쟁억지용은 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이자들이 지뢰를 신줏단지처럼 모셔온 건 바로 침략정책 탓이다. 다른 나라를 침략한 자국군 보호나 점령지 방어용으로 지뢰를 사용해온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이스라엘이 골란고원에 심은 지뢰나 인도가 카슈미르에 묻은 지뢰가 그렇고 미국이 1991년 제1차 이라크침략 때 뿌렸던 지뢰가 그 본보기들이다.

지뢰 신봉자들 사이에는 최소비용·최대효과라는 병아리 오줌 같은 신화가 깔려 있다. 대인지뢰 하나를 만드는 데 3~75달러밖에 들지 않으니 얼핏 그럴듯하다. 그러나 지뢰 하나를 제거하는 데 300~1000달러가 든다. 지뢰는 폐기비용을 포함하는 무기다. 야만스런 군사적 계산이지만 1인 기동력 무력화나 살상에 1000달러가 든다는 건 경제성이 없다. 비교하자면 웬만한 장갑차나 헬리콥터까지 박살낼 수 있는 로켓유탄발사기(RPG)가 900달러고 그 로켓 한 발이 100달러쯤 한다. 로켓유탄발사기는 전선에서 공포의 대상이지만 전쟁이 끝나면 지뢰처럼 땅바닥에 숨어 자손 대대 희생자를 내진 않는다. 최대효과란 건 시민 살상에서 그랬다는 말이다. 지금껏 82% 넘는 지뢰희생자가 어린이와 여성을 비롯해 전투와 전혀 상관없는 민간인이었다. 게다가 이미 깔린 지뢰 1억2000만개를 현재 속도로 걷어낸다면 지구를 지뢰안전지대로 만드는 데 1100년이 걸린다는 유엔 보고서가 있다. 한마디로 지뢰는 작은 핵발전소다. 건설 비용보다 폐기물 처리 비용, 시설 폐기 비용, 관리 비용이 더 엄청나게 들고 후손들한테 책임을 떠넘기는 야비한 성격까지 핵발전소를 그대로 빼닮았다. 이런 것들이 지뢰의 정치경제학이다.

모두들 월드컵으로 난리를 피우던 지난 6월27일 미국 정부가 중대한 발표를 했다. 케이틀린 헤이든 국가안보회의 대변인이 “대인지뢰 생산과 구입, 유효기간 만료 지뢰 대체를 하지 않겠다. 궁극적으로 오타와협약(1997년 12월 캐나다 오타와에서 121개국의 서명으로 채택된 대인지뢰금지협약) 참여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밝혔다. 참여 시기와 지뢰 폐기 계획이 빠진 어정쩡한 발표였지만 앞선 19일 <월스트리트 저널>이 ‘다음주에 오바마가 오타와협약에 서명할 것’이라는 기사를 흘린 뒤끝이라 국제 언론들이 달려들었다. 근데 한국 언론은 저마다 마리 하프 국무부 부대변인이 “(대인지뢰 금지) 발표는 어떤 형태로든 한반도 방어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밝힌 대목에 눈길을 주고는 서둘러 접었다. 언론사들마다 뉴스를 가려 뽑는 원칙들이 다를 테고 편집 방향이나 이념도 차이가 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이 뉴스는 한반도 생존이 걸린 문제일 뿐 아니라 세계사적 흐름이 담긴 아주 중요한 사안이었다. 근데 미국 정부의 지뢰정책 변화에 치명적 영향을 받게 될 한국 정부 입장을 캐물은 언론사가 단 하나도 없었다. 언론 참사였다.

북한과 손잡고 군축협상 카드를 든다면…

워싱턴부터 보자. 1994년 대통령 빌 클린턴은 처음으로 대인지뢰 금지안을 내놓은 당사자이지만 군부 저항에 밀려 대체무기 개발을 전제로 2006년 가입 약속만 한 채 오타와협약에 서명하지 않았다. 그걸 2004년 대통령 조지 부시가 자폭식 지뢰(self-destructing mines) 포기 불가로 정책을 수정하면서 오타와협약은 물 건너갔다. 2009년 대통령 바락 오바마가 그 정책을 승계했다. 그 과정에서 2004년부터 미국 정부의 지뢰정책은 ‘한반도를 제외하고 비자폭식 대전차지뢰(persistent anti-vehicle mines)가 필요하다면 2010년까지 대통령 재가를 받아 사용할 것’ ‘비자폭식 지뢰(대인/대전차 포함)가 한국 방어에 필요 없을 때는 2년 안에 폐기할 것’이라는 두 대목을 뼈대로 삼았다. 이건 미국 정부가 한반도 예외 정책을 앞세워 자폭식 지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한반도에서는 자폭식이든 비자폭식이든 계속 지뢰를 사용하겠다는 정책이다. 오타와협약도 ‘지뢰 없이는 북한으로부터 남한을 보호하기 힘들다’고 둘러대며 거부해 왔다. 미국의 세계지뢰정책에 한반도가 볼모로 잡힌 꼴이다. 참고로 지뢰를 비축한 미군기지가 주둔해 온 독일, 영국, 스페인, 그리스, 이탈리아, 노르웨이, 일본은 모두 오타와협약을 비준했다.

서울을 보자. 한국 정부는 1997년 오타와협정 체결 직전 ‘비무장지대 예외 인정’ ‘가입 후 9년간 실행 유예’를 조건으로 내걸었다가 퇴짜 맞고는 미국을 쫓아 대체무기 개발을 전제로 2006년 가입 약속을 했다. 올해가 2014년이다. 지금까지 한국 정부는 대체무기를 개발했는지, 오타와협정 준비를 해왔는지, 독자적인 지뢰정책이 무엇인지 따위를 밝힌 적이 없다. 무엇보다 한국 정부 요청으로 2015년 12월로 잡힌 전시작전통제권의 한국군 이양이 다시 연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군은 이미 지뢰를 한국군한테 넘겼다. 그러면 미국이 오타와협약에 참여하고 한반도에서 남북이 충돌한 경우 미군은 한국군의 지뢰를 통제할 수 없는 희한한 일이 벌어진다. 전시작전통제권이란 건 작전뿐 아니라 군대의 편제와 무기체계 운용까지 포함한다. 전시작전통제권을 죽어라고 미군에 떠넘기는 한국 정부는 지뢰를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한국 정부가 지뢰정책도 없이 미국 눈치만 보며 끌려다녔다는 뜻이다. 그러니 지난 6월 말 백악관의 ‘변심’ 앞에서 한국 정부는 입도 뻥긋 못했다. 국제사회에서 독립국가 정부라면 자신들 문제가 걸린 사안이 나왔을 땐 좋든 싫든 논평 한줄 성명 한마디라도 날리는 게 기본이다. 그게 외교다. 그걸 따지는 게 바로 언론이다.

더구나 이 오타와협약은 비록 대인지뢰 금지만 규정했고 아직까지 35개국이 뻗대는 통에 미완성이긴 하지만 인류사에 최초로 시민단체들이 정부들을 압박해서 군축협정을 끌어내며 세계 시민사회의 진로를 시험대에 올려놓은 중대한 사안이다. 이 오타와협약 완성의 장애물이자 돌파구가 될 수도 있는 게 바로 한반도다. 여기 한국 언론이 있는 까닭이다. 근데 지난 6월 말 미국 정부가 지뢰정책 변화를 예고하며 판을 펼쳤는데도 한국 언론은 그냥 흘려버리고 말았다.

어쨌든 백악관에서 나온 오타와협정 서명 가능성은 오바마가 2005년 상원의원 시절 약속했던 지뢰 금지와 그동안 내세웠던 다국간 상호주의(multilateralism) 외교정책의 명분 챙기기에다 국제사회 흐름을 무제한 거부하기 힘들다는 현실적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볼 만하다. 그렇다면 공은 한국 정부로 넘어왔다. 오바마가 서명하는 순간 한국 정부도 피해가기 힘들다. 오바마가 임기 안에 의회 비준을 받기 힘들 것이라는 분석 따위는 한국 정부가 기댈 만한 버팀목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한국 정부가 한반도만 예외로 해달라고 보채봤자 국제사회의 비웃음거리만 되고 만다. 이럴 때 쓰는 말이 선제공격이다. 끌려가느니 차라리 먼저 나서면 명분도 실리도 모두 얻을 수 있다. 바로 지금이다. 남한만 지뢰를 포기해서도 안 된다. 남북 군축협상 카드를 들고 북한과 함께 가야 한다. 새로운 일도 아니다. 이미 1992년 군축 합의를 담은 남북기본합의서도 있고, 1999년 조성태 국방부 장관이 “지뢰를 주요 군축 의제로 다룰 수 있다”고 국회에서 밝힌 적도 있다. 통일하겠다면 휴전선에 깔아놓은 100만개 지뢰는 어차피 걷어내야 하고 더 늦출 까닭도 없다. 그렇게 둘이 함께 오타와협약에 참여하는 순간 한반도를 뛰어넘어 인류 문제 해결을 앞당기는 길로 들어서게 된다.

지뢰가 전쟁억지용이라는 억지

군사적으로도 지뢰 탓에 서로 밑질 게 없다. 그동안 지뢰를 반대해온 데이비드 존스 전 합참의장이나 미군의 제1차 이라크 침공을 이끌었던 노먼 슈워츠코프 장군 같은 이들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미군과 한국군의 현대전 무기들이 지뢰를 대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만한 이들은 다 안다. 북한도 굳이 지상군이 휴전선을 돌파하지 않고도 장사정포나 중장거리 미사일로 서울을 비롯한 남한 전역을 타격할 만한 무장을 갖췄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지뢰에 매달릴 만큼 호락호락한 군사력이 아니라는 뜻이다. 주한 미군 사령관을 지낸 제임스 홀링스워스는 “한반도 대인지뢰가 시민뿐 아니라 오히려 기동전을 앞세우는 미군에게도 장애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국군과 미군 수뇌부에서는 지뢰를 전쟁억지용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이들이 적잖다. 현대사에서 근접방어용 지뢰가 전쟁을 막았다는 기록은 눈 닦고 찾아봐도 없다. 이건 전쟁과 전투를 구분하지 못한 채 모든 무기가 전쟁억지력을 지녔다고 우겨온 일부 군인들의 정신세계일 뿐이다. 군대가 어떤 무기든 스스로 폐기하겠다고 나서지 않는 건 군사문화고 세계사적 전통이었다. 지뢰 문제를 군인들한테 맡겨둘 수 없는 까닭이다.

“펜타곤은 제도적으로 책임 문제가 따르기 때문에 스스로 무기를 포기할 능력이 없다.”

미국 헌법이 군 통수권을 부여한 시민사령관인 대통령 클린턴에게 오타와협정 서명을 요구했던 퇴역장군 15명 가운데 한명인 로버트 가드의 말을 귀담아들어볼 만하다. 대한민국 헌법이 군 통수권을 부여한 시민 사령관 박근혜가 나서야 하는 까닭이다. 지뢰를 군사가 아닌 정치로 풀어야 한다는 뜻이다. 지뢰문제 해결은 비무장지대 평화공원 건설이란 꿈을 지닌 대통령 박근혜에게 가장 구체적인 실행안이기도 하다. 남과 북이 더 늦기 전에 함께 삽을 들어야 할 때가 왔다. 한반도를 살리고 인류를 살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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