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동참모본부가 지난 12월27일 남수단에 파병된 한빛부대 사진을 일반에 공개했다. 한빛부대 병사들이 보르 지역에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 모습. 합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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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정문태의 ‘제3의 눈’
⑭ 자위대의 한빛부대 실탄 지원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안팎이 따로 없다. 요즘 외신에서 일하는 친구들과 마주 앉기가 무섭다. 쏟아내는 한국 정부 타박에 일일이 대꾸하기도 지쳤다. 연말 모임에서 한 타이 기자는 “그럴 거면 타이처럼 정부 해산하고 새 선거 하면 되지 않나?” 하고 비아냥대기까지 했다. 듣고 보니 그럴듯했다. 대통령제라고 해서 굳이 임기를 다 채우란 법도 없다. 대한민국 헌법에도 그런 강제 조항이 없다. 양보란 게 민주주의의 뼈대이기도 하니. 선거공약도 지킬 수 없고 정치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괜히 시민과 우격다짐하느니 훌훌 털고 떠나는 것, 대통령만 부릴 수 있는 멋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책임질 줄 안 민주적인 대통령으로 역사에 길이 남고, 아무튼.
박근혜 정부는 세상 돌아가는 꼴을 잘 봐야 한다. 불통을 미학이라 떠들어대는 박근혜식 정치가 이미 외신판 입길에 올랐다. 불통, 다른 말로 무지와 무정견으로 악명 떨치며 ‘침묵공주’ ‘벙어리 대통령’ ‘스텔스 대통령’이라 불렸던 인도네시아 전 대통령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가 이제 박근혜 이야기만 나오면 쌍둥이처럼 따라붙는다. 외신판에선 한복 패션이니, 죽어라 연습한 몇 마디 외국어 연설 따위를 외교적 성취라 부르지 않는다. 외신에선 그런 걸 가십(gossip), 즉 잡담이라 한다. 메가와티 정부 내내 따라다닌 게 그런 가십이었고 결국 ‘허탕 대통령’으로 끝났다.
외신기자 친구들한테 받았던 2013년 최악의 질문이 연말에 터졌다. “한국군이 왜 일본군한테 총알을 빌렸나?” 얼굴이 화끈거리고 심장이 벌렁거렸다. 이건 박근혜 정부 첫해 안팎을 한꺼번에 깨트린 상징적인 쪽박이었을 뿐 아니라 최고 흉작으로 기록할 만한 사건이었다.
야스쿠니 참배에 묻힌 실탄 지원 요청
12월23일 밤, 남수단 파견 일본군이 한국군에게 총알 1만발을 제공했다는 뉴스가 떴다. 이어 일본 정부가 “한국군이 직접 실탄 지원을 요청했다”고 밝히자 한국 정부는 “유엔을 통해 실탄을 요청했다”고 맞받아치면서 눈꼴사나운 폭로전으로 치달았다. 그 싸움은 근본 원인을 제공한 한국 정부가 밀릴 수밖에 없었다. 일본 정부는 외국군한테 무기를 지원하기 위해서는 법에 따라 총리가 나서 내각 승인을 받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사실을 밝힐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를 들이댔다. 게다가 총리 아베 신조 말마따나 “위급함과 인도적” 차원에서 실탄을 지원했고 만약 거부했을 경우엔 “국제사회 비난을 받았을 것”이라는 확고한 명분도 있었다. 한국 정부는 불쾌감만 드러냈을 뿐 달리 대들 논리가 없었다. 기껏 “보급대가 현지에 도착하면 실탄을 되돌려주겠다”며 빌린 걸 강조하는 게 다였다. 한국 사회 정서는 얻었거나 빌렸거나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 상대가 일본군이라는 데 있었으니까. 그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의 외교나 정무 기능이 초동단계부터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는 사실만 도드라졌다. 그런 박근혜 정부를 살려준 건 아베였다. 외신에서조차 초강경 매파로 미운털이 박힌 아베가 26일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면서 한국 정부는 때 만난 듯 야스쿠니 정국으로 몰아쳤고 총알사태가 밀려나 버렸다.
그사이 일본 언론이 아베 정부를 비판적으로 다루는 분위기에 한국 언론도 맞장구치며 달려들었다. 근데 사실은 일본 언론도 한국 언론도 박근혜 정부의 패착이라는 본질을 피해갔다. 두 쪽 언론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정부 때 만든 이른바 무기수출 3원칙(공산주의 국가, 국제 분쟁 국가, 유엔 결의로 제한한 국가에는 무기를 수출하지 않는다)과 그 불문법을 보강한 1976년 미키 다케오 정부의 무기수출 전면금지를 바탕 삼아 한국군에 지원한 실탄 문제를 따지면서 저마다 전후 ‘최초’니, 전후 지켜온 ‘원칙’이란 말을 내세웠다. 과장한 표현부터가 문제다. 일본이 남수단 한국군한테 총알을 지원한 게 제2차 세계대전 뒤 외국에 무기를 지원한 ‘최초’ 사례가 아니다. 일본 정부는 한국전쟁 때 미군 요청 아래 원산과 인천에 소해함 44척, 경비정 7척, 항적선 2척을 파견해 기뢰제거 작전을 도왔을 뿐 아니라 함흥, 원산, 포항에는 군사보급선을 투입해 미군과 한국군을 지원했다. 지켜온 ‘원칙’이란 것도 깨진 지 오래다. 무기수출 전면금지 원칙이란 건 1983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정부가 대미 무기수출을 허가하면서 이미 깨졌고, 최근엔 무기수출 3원칙도 껍데기만 남았을 뿐이다. 일본 정부는 2011년부터 국제 무기공동개발사업을 벌여 미국, 영국, 프랑스, 터키 정부와 탱크, 전투기, 헬리콥터, 곡사포를 비롯한 공격용 중화기 개발에 뛰어든 상태다. 그 실상은 일본이 지닌 기술을 공동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팔아먹는 무기 수출이다. 더구나 한국군이 총알을 빌리기 보름 전인 12월5일에는 아베 정부가 아예 무기수출 금지 폐기안을 내놓으면서 12월 말까지 결정하겠다고 밝히기까지 한 상태였다. 박근혜 정부가 적기에 총알을 안고 불구덩이에 뛰어든 걸 놓고 두 쪽 언론은 모두 허울뿐인 무기수출 금지를 들이대며 호들갑을 뜬 셈이다. 총알 1만발을 놓고 두 쪽 정부와 언론은 집단적 자위권과 군비 확장까지 들먹이며 껑충 뛰어나갔다. 그러니 한 외신기자 친구는 한국과 일본 정부가 짜고 친 음모 냄새가 난다고 닦달할 수밖에.
소총탄 1만발 그래봐야 3000달러
박근혜 정부는 외교에서뿐만 아니라 정보와 군비에서도 파탄상을 드러냈다. 외신들은 이미 12월14일 저녁부터 남수단 수도 주바에 쿠데타설이 나돌고 분쟁 가능성을 예고했다. 한국군이 21일 오후 유엔 남수단임무단(UNMISS)과 일본군한테 실탄 지원을 요청했다고 하니 정국 혼란에서부터 7일 뒤였던 셈이다. 일본한테 실탄을 받고 실랑이를 벌이기 시작한 게 23일이었고 서울에서 보급기를 띄운 게 25일이었다. 27일 보급기가 주바에 도착했고 유엔 검열을 거쳐 31일 한국군에게 물자가 전달될 예정이라고 한다. 정부가 정보 취합과 상황 판단 능력이 있었다면 분쟁이 터진 15일 서울에선 보급기에 시동을 걸어놓았어야 옳았고 21일쯤 한국군에게 실탄을 전달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시차를 따져 보면 한국 정부가 굳이 ‘예비용’이라고 강조하는 그 실탄을 일본군한테 빌릴 필요가 없었다.
12월14일부터 외신들은 남수단 분쟁을 예고했다
정부가 상황판단력 있었다면
일본에 실탄지원 요청 전에
보급기 시동을 걸어야 했다 일본군한테 빌린 1만발 줘도
한국군 1인당 35발 추가될 뿐
분쟁지역 군인 투입하면서
그들 목숨 나몰라라한 정부
누가 책임져야 옳은가? 더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애초 한국군 280명이 보유한 실탄 숫자다. 일본 정부 관리를 인용한 <산케이신문>은 일인당 15발로, 한국 합참 장교를 인용한 <한겨레>는 1인당 140발로 보도했다. 4200발과 4만발로 서로 큰 차이가 나지만 어느 수치가 옳든 충분한 보유량이 아닌 건 분명했다. 일본군한테 빌린 1만발을 보태도 일인당 35발씩이 더 돌아갈 뿐이다. 전선 강도와 상관없이 분쟁지역 주둔 부대가 보유한 탄약으로는 누가 봐도 어울리지 않는 숫자다. 비록 평화유지군 뒷돈을 대는 유엔이 각국 파견군한테 무기와 장비 경량화를 요구하는 현실이긴 하더라도 정부가 분쟁지역에 군인을 투입하면서 자위 수준에도 못 미치는 실탄을 지급했다는 건 어떤 변명으로도 통하지 않는다. 남수단 한국군이 필요했다는 5.56밀리미터 소총탄 1만발이라고 해봐야 사과 궤짝 5개쯤이고 국제시세로 따져 2500~3000달러에 지나지 않는데 그걸 현장 군인들이 빌리도록 만들어 놓고는 뒤늦게 국방부 장관이란 자가 “(평화유지군) 파병 시 탄약 보유 기준을 재검토 하겠다”고 밝힌 건 애초 아무 생각도 없었다는 뜻이다. 상황 발생 뒤에도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나 군 지휘부는 “일본군으로부터 탄약을 빌린 건 현지 책임자의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한빛부대장이 최초 실탄 지원을 요청할 때 국방부나 외교부에 보고하지 않았다” 같은 말로 모든 책임을 현장 하급 지휘관에게 뒤집어씌웠다. 이건 일만 터지면 현장 지휘관을 탓하고 발뺌해온 대한민국 국군 최고 지휘부의 해묵은 습성이었다. 이번 총알 꾸기 같은 희한한 사건은 근본적으로 현장 하급 지휘관 탓이 아니다. 군인들에게 총알은 목숨이다. 그게 1발이든 1만발이든 의미는 같다. 그 목숨을 외국군한테 빌리도록 했다. 그게 일본이든 미국이든 의미는 같다. 군인의 목숨을 지켜주지 못한 정부, 주권을 포기했다는 의미다. 누가 책임져야 옳은가? 헌법상 대한민국 국군 통수권자는 대통령이다. 이번 총알사건에서 모두가 흘려 넘겼지만 눈여겨볼 대목이 또 있다. 유엔평화유지군(UN Peacekeeper)이라는 조직이다.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56개국 병력 6717명을 거느린 남수단임무단 소속 평화유지군 지휘부는 조정과 통합 능력 부재를 드러냈다. 지휘부는 정치적 입장이 상이한 수많은 나라들이 뒤섞인 군대를 이끌면서 실탄 지원 같은 중대한 사안을 당사국들한테 맡겨버림으로써 불협화음을 내게 만든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한국과 일본 정부가 실탄 요청 대상을 놓고 마찰을 빚기 시작한 초기에 즉각 입장을 밝히지 않아 사태를 키운 것도, 가상 적군 앞에서 아군이 지닌 총기와 실탄 종류와 숫자 같은 기본적인 군사비밀을 당사국 정부들이 마구 털어놓도록 방치한 책임도 모두 지휘부 몫이다. 그동안 관료적이고 비효율적이라는 비난을 받아온 유엔평화유지군 실체가 남수단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강대국 용병으로 전락한 평화유지군 부국들이 돈을 대고 빈국들이 주력병을 파견해온 유엔평화유지군은 강대국에 휘둘리는 용병으로 전락했다며 오래전부터 무용론과 폐기론에 시달려왔다. 이름이 보여주듯 평화유지군 기능은 평화가 있는 곳에 병력을 투입해 복구, 치안, 선거 감시 같은 제한적인 임무에 그쳤다. 이건 전쟁과 분쟁을 예방하고 그 발생 지역에는 적극 개입해 전쟁을 차단하는 ‘전쟁종식군’의 필요성을 강조해온 국제사회 요청과 동떨어진 현실이었다. 예컨대 석달 만에 100만명이 희생당한 2004년 르완다 학살 때는 평화유지군 2500명이 그 땅에 있었다. 그 무렵 유엔 사무총장은 병력 지원을 긴급 요청했지만 오히려 평화유지군 수는 250명으로 줄어들었다. 유엔이 학살을 방조했다며 엄청난 비난이 일었던 까닭이다. 이번 남수단도 좋은 본보기다. 일주일 만에 1000여 희생자를 내고 12만 난민을 쏟아낸 현장에서 평화유지군은 총알타령이나 하면서 정부군과 반군이 자신들을 공격하지 않겠다고 밝힌 데 안도하고 있을 뿐이다. 이게 현재 남수단을 비롯한 16개 지역에 병력 9만7970명을 투입하고 예산 7조9000억원(2013.7.1.~2014.6.30.)을 주무르는 평화유지군 실상이다. 그뿐만 아니라 코소보와 수단을 비롯한 11개 작전지역에서 평화유지군이 저지른 성범죄가 2260건, 살인이 213건에 이르면서 도덕성도 큰 문제로 떠올라 있다. 해서 전문가들 사이에는 지금처럼 각국이 병력을 파견하고 유엔이 돈을 대는 평화유지군 대신 유엔 산하에 전문성과 도덕성을 갖춘 특수부대를 설치해 전쟁과 분쟁지역에 조기 적극 투입하자는 개혁안이 나돌고 있다. 물론 강대국들 정치적 이해 탓에 그 실현 가능성은 아주 낮지만, 아무튼 세계시민사회에 유엔평화유지군 개혁이 절실하고 시급한 과제로 넘어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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