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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5.10 18:40 수정 : 2006.05.11 10:17

[우리의 아이들 사회가 키우자] “학대 징후 보이면 ‘접촉한 모든 사람’ 조사”
교사·의사·변호사·목사 등 ‘의무신고자’ 법으로 규정
학대 혐의땐 아이 무조건 격리보호
전담 피해조사기관 400곳 운영 유치원처럼 꾸며 충격 최소화


미국 매사추세츠주 서포크카운티의 아동범죄 전담기관인 어린이보호센터 조사실(맨위쪽)과 대기실 모습(위쪽). 조사실에서 어린이가 조사관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검사, 경찰, 심리분석가, 사회복지사 등은 옆방에서 지켜보면서 조사관에게 무선으로 지시를 내린다. 대기실에는 각종 인형과 장난감이 가득하다.

지난달 13일 오전 미국 매사추세츠주 사회복지국 케임브리지 지역사무소의 어린이 학대 신고전화가 울렸다. 5살과 4살배기, 입양한 아들들이 성적인 장난을 하는 모습을 목격한 어머니한테서 걸려온 전화였다. 어린이 학대 조사관 다이앤 스펜스가 신고자의 집으로 찾아갔다. 비록 어머니가 신고자였지만, 스펜스는 양부모가 혹시 마약이나 알코올중독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꼼꼼히 따졌다. 이웃과 학교까지 확인한 스펜스는 아이들이 입양되기 전에 거쳤던 다른 여러 가정들까지 뒤지기 시작했다. 일주일 넘게 조사를 벌인 끝에, 최근 아이들을 임시로 맡았던 친척집의 14살짜리 사촌형을 용의자로 지목해 경찰에 사건을 넘겼다.

스펜스는 “학대 징후가 확실하면 아이들이 지금까지 접촉한 모든 사람을 뒤져서라도 학대자를 찾아야 한다”며 “이번 사건의 용의자는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형사처벌을 받지 않겠지만, 용의자 역시 또다른 학대의 피해자일 수 있기 때문에 용의자의 가정까지 더 조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어린이에 대한 성적 학대 문제를 다루는 미국 사회의 철저함을 엿볼 수 있는 사례다. 성적 학대는 물론, 우리에게는 익숙한 단순한 체벌까지도 미국인들에게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아이를 때렸다가 멍이나 상처라도 남으면 어린이 학대범으로 조사를 받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학교·보육시설 교사나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변호사, 경찰, 소방관, 목사 등 수많은 직업이 ‘어린이 학대 의무신고자’로 법에 규정돼 있다. 이들은 자신이 만난 어린이에게서 학대 징후를 발견하면 곧바로 사회복지국에 신고해야 한다. 의무신고자가 신고를 하지 않으면 1천달러 이하의 벌금을 물고 자격·면허를 잃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그만큼 신고가 활발하다. 640만 인구의 매사추세츠주에서 2004년 한 해 동안 신고된 어린이 학대 사건만 모두 7만417건에 이른다.

신고 내용을 조사한 결과 학대가 명백하고 그 가정에 피해 어린이를 내버려두는 것이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조사관은 우선 어린이를 데려올 수 있다. 아이가 아무리 괜찮다고 말하고, 부모가 혐의를 부인해도 소용없다. 부모가 이를 방해하면 조사관은 곧바로 경찰을 불러 강제로 아이를 데려간다.

매사추세츠주 사회복지국에서 20년째 아동학대 조사관으로 일한 브렌다 데이비스는 “조사관이 들이닥치면 처음에는 집에 들여보내지 않으려고 하는 부모들도 가끔 있지만 법을 잘 설명해주고 설득하면 대부분 조사에 순순히 응한다”며 “지난 20년 동안 조사를 방해하는 부모 때문에 경찰을 앞세워 집에 들어간 적은 두세 차례뿐이었다”고 말했다.


어린이 학대를 막기 위한 제도에 익숙하지 못한 이민자 부모들이 곤욕을 치르는 경우도 있다. 보스턴에서 한글학교를 운영하는 윤미아(43)씨는 “한국인 이민자들이 특히 사춘기를 겪는 아이가 반항할 때 별생각 없이 때렸다가 법정에 서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아동학대가 심각한 범죄의 수준이면 어린이 대상 범죄 전담기관으로 사건이 넘어간다. 미국은 1995년부터 어린이 범죄피해자를 한 곳에서 한 번에 조사하기 위한 기관을 만들기 시작해 현재 전국에 400곳의 전담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 기관의 조사실에는 한 명의 조사관과 피해 어린이만 들어간다. 바로 옆방에서는 검사와 경찰, 심리분석가, 사회복지사 등이 조사실에서는 보이지 않는 유리창을 통해 어린이를 지켜보면서 조사관에게 무선 수신기로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 지시한다. 이런 기관은 정신적 충격을 받은 피해 어린이는 물론 그 가족들에게까지 심리치료를 제공한다.

우리나라에서는 2001년부터 아동학대예방센터를 운영하기 시작했지만, 아직까지 이곳 상담원들의 권한 등에 대한 법적 근거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현행 아동복지법에서 아이를 부모한테서 떼어낼 수 있는 친권제한은 시장·도지사·자치단체장에게 권한이 있기 때문에 매우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취하기 어려운 조처다. 또 우리 법에도 어린이 학대 의무신고자가 규정돼 있지만 신고의무를 강제할 수 있는 처벌규정은 없는 상태다.

서태원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교육홍보팀장은 “부모가 조사를 거부해 경찰을 불러도 ‘현행범이 아니라 어쩔 수 없다’는 대답을 듣기 일쑤”라며 “많은 경우 상담원들의 개인적인 능력에 의존해 부모를 설득하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보스턴/글·사진 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어린이보호법 국회만 가면 ‘낮잠’
성범죄등 터질 때만 ‘반짝’ 관심

지난 2월 서울 용산에서 11살의 어린 소녀가 동네 신발가게 아저씨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사건은 온 국민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관련 부처와 정치권에서는 갖가지 떠들썩한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두달이 넘도록 실효성 있는 제도화는 지지부진한 채, 국회는 정치싸움과 선거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

지난해에만 하루평균 126건의 어린이 학대 사건이 발생해 21명이 숨진 것으로 집계(도표 참조)되고 연평균 신고건수 증가율이 22%에 이르는 등 우리사회에서 어린이들은 여전히 위험에 처해 있는데도, 사회적 관심은 여전히 일회성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는 현재 모두 14개의 성범죄 관련 법률안과 법률개정안이 올라와 처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 가운데는 두달 전 용산 어린이 살해사건에 대한 대책 차원에서 발의된 법안도 있고, 심지어 지난 2004년 일어난 밀양 여중생 집단성폭행사건에 대한 대책으로 발의돼 1년 넘게 잠자고 있는 것도 있다.

박세환 한나라당 의원이 대표로 발의한 이른바 ‘전자팔찌법’은 지난해 7월 국회 법사위에 회부된 뒤 지난 2월에도 요란한 조명을 받았지만 실효성과 인권침해 논란만 일으켰을 뿐이다. 열린우리당이 용산 사건 뒤 내놓은 성범죄자의 주거지 제한 방안과 성범죄자 집에 푯말을 세우는 방안 등도 아무런 진척이 없다.

이런 가운데 국가청소년위원회는 ‘아동 청소년 성보호를 위한 법률 개정안’에 대한 부처 협의를 마치고 다음주 안에 입법예고할 계획이다. 개정안은 누구나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있는 성범죄자 가운데 13살 미만 어린이 대상 성범죄자와 모든 강간·강제추행 범죄자(초범 포함), 청소년성매수 재범자 등의 얼굴 사진과 상세한 주소까지 관할 경찰서에서 열람할 수 있다. 또 어린이에 대한 강간과 유사성교 행위는 모두 징역 7년 이상의 형을 받도록 해, 피해자와 합의해 형을 감경받더라도 집행유예 대상에서는 제외되도록 했다. 현행 법률에서는 13살 미만 어린이에 대한 성범죄만 친고죄에서 제외되는데, 개정안은 18살 이하 청소년에 대한 성범죄까지 확대한다. 공소시효도 피해자가 25살이 될 때까지 정지시킨다.

아울러 범죄 피해 어린이에 대한 치료와 법률지원을 제공하는 아동성폭력전담센터도 더 늘어날 전망이다. 성범죄 피해 어린이가 한 곳에서 의료지원과 심리치료, 법률지원 등을 한꺼번에 받을 수 있는 아동성폭력전담센터는 지난 2004년 8월 서울에 처음 문을 열어 현재 서울과 대구, 광주 3곳에서 운영되고 있는데, 여성가족부는 이 시설을 2007년부터 해마다 2곳씩 늘려 2009년까지 모두 9곳을 만들려 하고 있다.

유신재 기자

어린이학대 신고·상담전화 : 전국에서 국번없이 1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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