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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1.27 19:55 수정 : 2017.11.27 19:55

지난 22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기자실에서 유엔사 공보관이 공동경비구역(JSA) 귀순 사건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을 공개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22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기자실에서 유엔사 공보관이 공동경비구역(JSA) 귀순 사건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을 공개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안광복(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한겨레>와 <중앙일보>가 함께 구성한 지면으로 두 언론사의 사설을 통해 중3~고2 학생 독자들의 사고력 확장에 도움이 되도록 비교분석하였습니다.

[한겨레 사설] ‘JSA에서 왜 대응사격 안 했느냐’는 비난, 무책임하다

13일 북한군 병사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귀순할 당시 우리 쪽 대응 방식을 놓고 야당과 보수 언론의 비난이 거세다. 자유한국당에선 북한군이 남쪽으로 넘어오는 북한군 귀순 병사를 향해 에이케이(AK)소총 40발을 쏠 때 우리 군은 왜 대응사격을 하지 않았느냐며 초기 대응에 문제가 많다고 비판했다.

물론, 공동경비구역에서 소총을 휴대한 건 정전협정 위반이다. 그러나 당시 상황을 보면, 한국군이 대응사격을 하지 않은 게 비난받을 만큼 잘못한 대응은 아니라고 본다. 동서 800m, 남북 400m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은 다른 군사분계선 지역과 달리 유엔군사령부가 관할한다. 합참이 아닌 유엔사가 작전지휘권을 행사하며 한국군의 교전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대응사격을 하려면 유엔사 승인을 받아야 한다. 유엔사 교전 규칙은 아군에게 위해를 가하는 상황인지, 위기 고조 우려가 없는지 등을 종합해 판단한다. 공동경비구역 특수성을 고려해 대응사격 기준이 훨씬 엄격한 것이다.

우리 군의 직접 피해가 없는 상태에서 북쪽을 향해 응사하는 게 꼭 최선은 아니다. 그랬다면 어떤 사태로 번졌을지 짐작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을 무시한 채 ‘북한이 총 쏘는데 우리는 가만히 있느냐’고 목소리 높이는 건 무책임하다. 다만, 북한 병사가 군사분계선을 넘은 뒤에도 북한군이 사격을 했는지 등은 철저히 조사해, 북한의 정전협정 위반 여부를 엄중히 따져야 할 것이다.

[중앙일보 사설] 석연찮은 판문점 북한군 총격 사건, 낱낱이 밝혀라

그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북한군 1명의 귀순 과정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에 대한 우리 군의 조치가 영 석연치 않다. JSA는 남북한 군이 수m 이내에서 얼굴을 맞대고 있어 언제나 긴장감이 팽팽한 곳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냉전의 유산이 남아 있는 지역이다. 더구나 지금은 북한 핵개발로 남북 사이에 모든 대화채널이 닫혀 있는 상태다. 따라서 언제든지 우발적인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이런 민감한 구역에서 북한군이 우리 쪽으로 귀순했고 북한 경계병들은 이를 차단하기 위해 총을 쏘았다.

합참에 따르면 귀순한 북한군은 자동차를 몰고 JSA 북한군 구역으로 진입했으며 남과 북을 가르는 군사분계선(MDL) 10m 앞까지 왔다고 한다. 그가 자동차에서 내린 뒤 10m만 뛰어오면 자유 대한민국으로 귀순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에 북한군 경계병 4명이 40발의 소총과 권총탄을 쏘았다. 북한 경계병들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사격했다. 그렇다면 북한군 소총과 권총의 사거리로 볼 때 그 총탄들은 당연히 JSA 우리 구역으로도 날아왔을 것이다. 귀순자가 군사분계선을 넘었을 때도 총을 쐈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군 장병이 인근에 있었다면 자칫 그 총탄에 맞을 수도 있었다. 북한이 이처럼 정전협정을 위반하고 도발했는데도 우리 군은 남의 일처럼 보고만 있었는가.

또 귀순자는 복부와 가슴, 어깨 등에 7발의 총탄을 맞고 현재 위중한 상태다. JSA에서는 귀순 과정을 감시카메라를 통해 모두 관찰하고 있었다고 한다. JSA 근무자들은 귀순자가 이토록 많은 총탄에 맞도록 뭘 하고 있었는지 의문이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도 사건 발생 1시간 만에 보고받았다고 한다. 이래서야 화급을 다투는 전방 상황이 발생할 때 어찌 대처할지 걱정이다. 군당국은 JSA에서 북한군의 도발과 조치 과정을 낱낱이 밝히고 대책을 마련하길 바란다.

[논리 대 논리]

한겨레 “위기 고조 우려 등 종합 판단하게 돼 있어”…중앙 “정전협정 위반, 남 일로 봐선 안 돼”

단계 1 공통 주제의 의미

지난 13일 북한 병사 1명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으로 귀순했다. 이 과정에서 북한군은 남측을 향해 40여발의 총격을 가했을 뿐 아니라, 추격조 1명이 군사분계선을 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우리 사회에서는 군의 대처 방식을 놓고 큰 논란이 벌어졌다. 한겨레 사설에 소개되어 있듯, “야당과 보수언론”은 “북한군이 남쪽으로 넘어오는 북한군 귀순 병사를 향해 에이케이(AK)소총 40발을 쏠 때 우리 군은 왜 대응 사격을 하지 않았느냐며 초기 대응에 문제가 많다고 비판”한다. 반면, ‘진보 언론’ 쪽은 대체로 “모호한 상황에 잘 대처해 갈등을 고조시키지 않고 마무리한 공동경비구역 소속 한국군 대대장의 전략적 판단을 지지한다”는 유엔사 쪽 논평에 가까운 입장이다. 중앙과 한겨레의 사설에는 양쪽 입장이 잘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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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계 2 문제 접근의 시각차

한겨레는 “한국군이 대응사격을 하지 않은 게 비난받을 만큼 잘못된 대응은 아니”라고 평가한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은 유엔사 교전 규칙에 적용을 받는다. 이에 따르면 사격 여부는 “아군에게 위해를 가하는 상황인지, 위기 고조 우려가 없는지 등을 종합해 판단”한다.

여기서 “위기 고조 우려가 없는지”라는 표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반도 정세의 흐름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총격 사건이 벌어진 무렵은 아시아 정상 외교의 슈퍼 위크라 할 만한 시기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문재인 대통령, 시진핑 중국 주석을 차례로 만났고, 한-중 정상회담까지 있었다. 10월31일에는 우리 쪽이 중국에 사드 추가 배치, 미사일방어체제 참여, 한·미·일 군사동맹 세 가지에 대해 불가 입장을 밝히며 사드에서 비롯된 갈등을 봉합하려 하고 있었다.

이렇듯 대화 분위기가 무르익은 시점에 판문점에서 무력 충돌이 크게 벌어졌다면 또다시 한반도는 긴장 국면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이 점에서 “‘북한이 총 쏘는데 우리는 가만히 있느냐’고 목소리 높이는 건 무책임하다”는 한겨레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반면, 중앙은 북한이 “정전협정을 위반하고 도발했는데도 우리 군은 남의 일처럼 보고만 있었는가”라며 우리 군의 소극적인 대응을 강하게 질타한다. 중앙은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사건 발생 1시간 만에 보고를 받은 점에 대해서도 크게 우려한다. 심지어 송 장관은 14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대응사격을 하지 않은 건 잘했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이는 유엔사 교전 규칙에 따라 상황 악화를 방지했다는 측면을 평가한 말이다.

하지만 중앙에 따르면 북한의 도발에 대한 이런 식의 대응은 크게 우려할 만한 것이다. 중앙의 사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한반도의 정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공동경비구역 귀순 사건이 벌어질 당시 동해에는 미 해군 항공모함 3척이 참가하는 한·미 해군 연합훈련이 진행되고 있었다. 심지어 로널드레이건호는 북방한계선(NLL) 인근까지 북상하기도 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이후 북한의 대중 석탄 수출액이 30%가 급감하는 등 경제 제재도 효과가 나타나는 중이었다.

단계 3 시각차가 나온 배경

북한은 지난 9월15일, 중장거리미사일(IRBM) ‘화성-12’형 발사 이후 두 달째 핵과 미사일 관련 도발을 멈춘 상태다. 조셉 윤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미국 언론에 “북한이 약 60일간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하면 미국이 북한과 직접 대화를 재개할 필요가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런 사실들에 비추어 볼 때,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는 것은 결국 강력한 응징과 제재라고 할 수 있다. 만약 판문점에서 벌어진 사태를 지금의 군과 정부처럼 별다른 항의조차 없이 유야무야 넘기려 한다면, 북한은 상황을 오판하여 한반도 핵 위기를 또다시 고조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이런 논리에서 보자면 “한국군 장병이 인근에 있었다면 자칫 그 총탄에 맞을 수도 있었”던 긴박한 상황에서, “귀순 과정을 감시카메라를 통해 모두 관찰”했음에도 “남의 일처럼 보고만 있었”던 우리 군의 태도를 나무라는 중앙의 논리에도 틀린 것이 없다.

남북 갈등과 북핵 문제에 있어 대화와 압박 중 어느 것이 우선되어야 하는지는 무척 오래된 논란이다. 이 점은 공동경비구역 귀순 총격 사건에서도 다르지 않다. 두 사설은 대화와 응징이라는 북한 도발에 대한 두 가지 해법을 놓고 벌어지는 우리 사회의 논란을 여실히 보여준다.

안광복(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추천 도서]

전쟁론

클라우제비츠 지음, 류제승 옮김, 책세상 펴냄, 1998년


[추천 도서]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라인홀드 니버 지음, 이한우 옮김, 문예출판사 펴냄, 2017년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이라는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의 유명한 표현은 나라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본질을 정확하게 짚어준다. 물론 ‘프로 싸움꾼’인 군인들은 대부분 적을 완전히 쓸어 없애는 데 주목한다. 그래서 더 화끈한 무기와 공격을 바란다. 하지만 정치가들은 다르다. 군대는 무역이나 경제원조같이 사용 가능한 ‘카드’의 하나일 뿐이다. “정치적 의도는 목적이고 전쟁은 수단이다.” 윤리학자 라인홀드 니버(니부어)는 조지 워싱턴의 말을 들려준다. “지금까지 그 어떤 나라도 자국의 이익과 상관없이 전쟁을 벌이지 않았다. (고지식한 도덕심 때문에) 전쟁을 벌인 지도자가 있다면, 그는 목매달아 죽여야 마땅한 매국노이다.” 전쟁을 부르는 명분 뒤에는 복잡한 이해관계가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공동경비구역(JSA) 귀순 총격 사건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키워드로 보는 사설]

판문점과 JSA 귀순의 역사

판문점의 원래 땅 이름은 ‘널문리’다. 6·25 전쟁 당시 휴전회담 장소를 찾던 유엔 쪽은 작은 주막집이던 ‘널문리 가게’ 앞 콩밭에 천막을 치고 정전회담을 진행하였다. 그때부터 ‘널문리 가게’를 한자로 표기한 ‘판문점’이 이곳의 공식 지명으로 쓰였다.

1953년 7월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되면서, 판문점은 유엔과 북측의 ‘공동경비구역’(JSA: Joint Security Area)이 되었다. 1976년 8월 이전까지는 공동경비구역 안에서 남북의 구획이 없어 남북의 인원이 자연스레 뒤섞였다. 하지만 ‘도끼 만행 사건’ 이후에는 높이 15㎝, 폭 50㎝의 콘크리트 군사분계선(MDL)이 생겼다.

공동경비구역에서는 그동안 여러 번의 귀순이 이루어졌다. 1959년 소련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의 평양지국 기자 이동준이 판문점을 통해 탈출했으며, 1980년대에는 공산권 국가의 중립국 감독위원회 소속 인원들이 잇달아 망명하기도 했다. 특히 1984년에는 소련 관광객이 돌연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측 자유의집으로 달려와 총격전이 벌어졌다. 이때 북한군 3명이 사망하고 5명이 부상했으며, 남측에서도 유엔군 소속 장명기 상병이 전사했다. 1998년에는 변용관 상위(우리 군의 중위와 대위 사이에 있는 북측 계급)가 남측으로 넘어왔으며, 이번 공동경비구역 총격 사건 보도 과정에서 2007년 9월에도 북한군 병사의 귀순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지난 13일 40여발의 총탄 세례를 받으며 남측으로 넘어온 병사는 공동경비구역 역사상 8번째 귀순자다. 그가 지프를 몰고 ‘72시간 다리’를 건너는 데 걸린 시간은 7초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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