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 등을 받는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 18일 오전 영장 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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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사설] ‘세금 없는 승계’ 유혹이 부른 이재용의 특검 출석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2일 피의자 신분으로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재벌 총수들 가운데 처음이다.
이 부회장은 2008년에는 아버지 이건희 회장과 함께 경영권 불법 승계 혐의 등으로 조준웅 특검팀의 수사를 받았다. 당시 이 회장은 배임과 탈세 등의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지만, 이 부회장은 부친이 대부분의 혐의를 떠안아 처벌을 피할 수 있었다.
이 부회장의 이번 혐의는 뇌물 공여다. 자신의 그룹 지배력 강화를 위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서 박 대통령의 도움을 받는 대가로 최씨 모녀에게 수백억원을 건넨 혐의다. 국민연금공단에 합병 찬성 압력을 넣은 혐의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이미 지난달 31일 구속됐다.
삼성은 뇌물이 아니라 권력의 힘에 눌려 돈을 뜯겼다며 억울해한다. 또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은 이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 강화와 관계가 없는 별개 사안이라고 주장한다. 삼성의 해명은 그동안 새로운 증거가 나올 때마다 수시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최씨 모녀에 대한 지원 사실 자체를 부인하다가 승마협회 회장사의 역할을 강조하더니 지금은 피해자 논리를 내세우고 있어 솔직히 믿음이 가지 않는다. 이 부회장도 지난해 12월6일 국회 청문회에 나와 “최순실의 존재를 올해 2월쯤 알았다”는 등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답변을 했다. 국회 국정조사 특위는 12일 이 부회장을 위증 혐의로 고발했다.
9년 전이나 지금이나 ‘삼성 사태’는 ‘세금 없는 경영권 승계’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자산이 수백조원에 이르는 거대 그룹의 경영권을 헐값에 물려받으려다 보니 자꾸 편법과 변칙을 찾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이번에는 국민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을 동원한 것이 공분을 더 키웠다.
삼성은 모든 문제의 근원인 ‘불법 상속’에 대한 유혹을 이제 버려야 한다. 이 부회장이 삼성의 경영권을 승계하고 싶다면 무엇보다 세금부터 제대로 내는 게 정도다. 또 이번 기회에 박정희 정권 시절 이병철 회장 때부터 이어져온 정경유착의 고리도 끊어내야 한다. 지배구조를 개선해 의사결정 구조를 투명하게 만들고 윤리경영에 힘을 쏟아야 한다. 이 부회장도 청문회에서 미래전략실 해체와 전경련 탈퇴를 밝힌 만큼 시간을 끌 이유가 전혀 없다. 이 부회장의 형사처벌 여부와 관계없이 환골탈태의 각오로 추진해야 한다.
아니나 다를까 일부 언론들은 이 부회장이 형사처벌을 받으면 그룹 이미지가 실추돼 해외 사업이 어렵게 되고 경제 전체가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겁을 준다. 그동안의 경험에 비춰볼 때 과장됐을 뿐 아니라 본질을 호도하는 주장이다. 오히려 봐주기 수사나 솜방망이 처벌 탓에 재벌 총수들의 부정과 비리가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에서 언론도 이젠 자성을 할 필요가 있다.
[중앙일보 사설] 재계 총수 수사는 오로지 증거로 말해야 한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어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뇌물 공여 혐의의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장시간 조사했다. 이번 조사는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 실세인 최순실 등의 국정 농단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불가피한 수순으로 보인다. 삼성이라는 글로벌 기업의 총수가 대형 게이트에 연루돼 특검의 조사를 받는 것 자체가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검은 이 부회장에게 뇌물 공여 등의 혐의가 있다고 보고 있다. 박 대통령이 재작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때 대주주였던 국민연금 측에 합병에 찬성토록 하고 그 대가로 삼성은 최씨가 독일에 세운 코어스포츠 등을 통해 말 구입비와 승마 컨설팅비 명목으로 80억원가량을 지원했다고 의심하는 것이다.
그러나 삼성 측은 ‘승마협회 지원은 청와대와 최순실의 협박과 강요에 의한 것일 뿐 어떤 대가를 받거나 바라지도 않았다’는 입장이다. 이 부회장은 검찰 특별수사본부와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주장했던 대로 특검에서도 “반대급부를 바라고 기금 출연을 한 게 아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최지성 삼성전자 미래전략실장의 특검 진술과 유사한 취지다.
이처럼 특검은 뇌물 공여 카드로 압박하고, 삼성은 강요와 협박의 피해자라며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이렇게 치열한 법리 다툼이 있는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건 증거다. 특검이 얼마나 증거를 많이 확보하고 다양한 관련자의 진술을 받아냈느냐에 따라 전체 수사의 성패가 좌우된다. 특히 뇌물 수수로 처벌하려면 ‘박 대통령과 최순실이 한 몸(경제적 동일체)임을 알았다’는 증거가 필요하다. 특검은 만의 하나 선입견을 갖고 특정 프레임을 정한 뒤 여론 압박을 통해 꿰맞추기식 수사를 한다는 오해를 사지 않도록 각별히 경계할 필요가 있다.
특검은 최태원 SK 회장이 2015년 8·15 특사로 석방된 과정에서의 뇌물 혐의 수사에도 착수했다고 한다. 특별사면 공식 발표 사흘 전에 교도소에 수감 중인 최 회장을 면담한 SK 고위 임원이 “사면을 해줄 테니 출소하면 경제 살리기에 나서는 등의 숙제를 해야 한다”는 박 대통령 쪽 요구를 전했는데 당시 대화가 든 녹음파일을 특검이 확보했다는 것이다.
특검은 수사 대상인 재계 총수들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당연히 정경유착의 비리는 단죄돼야 한다. 다만 팩트에 근거해 증거를 찾고 외과 수술하듯이 상처 부위를 정확히 도려내는 수사를 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 일각에선 특검이 박 대통령을 겨냥해 미리 뇌물죄의 결론을 내려놓고 관련 기업들에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기식 수사를 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고개를 들고 있다.
특히 글로벌 기업 총수의 인신 구속은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도주 우려나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다면 불구속 수사가 원칙이다. 최순실·안종범·정호성 등 핵심 3인방이 온갖 핑계를 대며 법치를 조롱하고 있을 때 그나마 박 대통령을 독대한 재벌 총수들은 국회 청문회와 검찰 특별수사본부에 빠짐없이 출석했던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어느 때보다 법원의 판단이 중요하다. 특검과 재계 총수들의 법리다툼이 치열해질수록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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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보는 사설] 한국 재벌의 성장 과정과 사회적 책임 재벌은 여러 시장에 걸친 많은 계열기업을 소유하며 산하기업들 사이의 자본소유관계 또는 임원 겸임 등을 통해 일관된 체제하에 움직이는 기업군을 형성한다. 다각화를 추구하면서도 자금·인사·경영 면에서 일관된 체제하에 움직인다는 점에서 복합기업과 성격이 다르다. 특정 가족의 혈연적 지배하에 모기업을 중심으로 많은 기업을 지배함으로써 소유와 경영을 폐쇄적으로 운영하는 기업집단이다. 한국, 일본의 경우 국가가 재벌을 통해 공업화를 추진하여 놀랄 만한 성장을 이룩하였으나 소수 재벌에 경제력이 집중되어 효율적 자원배분을 왜곡시키는 과점적 시장구조와 불균형 산업구조를 파생시켰으며, 부와 권력의 불균등 분배구조를 심화시키는 사회적 결과를 낳기도 했다. 한국의 기업은 6·25전쟁 이후 원조물자와 수입물 배정원칙에 따라 제당·제분·방직 등 경공업 분야에 치중되어 있어 원료의 대외의존성이 심했다. 그러다가 1960년 5·16군사혁명 이후 정부 주도의 경제개발 정책에 편승하여 독과점, 내·외자본 배분상의 특혜, 정부의 수출지원정책, 월남의 특수, 국내 경기 호조, 높은 인플레이션 등에 힘입어 자본을 축적했고 이를 바탕으로 기업 규모를 확대하는 한편, 수직적 결합과 수평적 다각화로 기업경영의 내용과 수준에 있어서도 상당한 발전을 이룩하면서 재벌기업들이 등장했다. 1980년대 이후 재벌은 한국 경제의 지속적인 양적 성장에 부응하여 높은 매출액 및 자산, 수출신장률을 보이고 있다. 신규 확장보다는 매출 증대에 주력했으며, 중화학공업 및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한 제조업 분야의 자산성장이 두드러진 동시에 금융업 분야로의 진출 노력이 많이 나타났다. 오늘날 한국의 대표적인 재벌기업은 삼성·현대·엘지(LG)·롯데 등이며, 그 자산의 정도에 따라 30·60·100대 등의 기업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한국의 재벌기업 형성 과정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오늘날 대부분 대기업은 범국가·사회적 지원하에 성장했다는 점에서 사회적 책임감 또한 엄격하게 준수해야 할 명제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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