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사설] 정치개혁 위해서라도 국회의원 늘릴 필요 있다
국회의원 정수를 현행 300명에서 369명으로 늘리자는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 제안을 계기로 의원 정수 논쟁이 불붙고 있다. 새누리당은 공식적으로 반대지만 의원들의 속내는 복잡한 듯하다. 새정치연합 안에서도 이종걸 원내대표는 적극 찬성인데 문재인 대표는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국회의원 정수 문제가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라는 사실이 다시 확인된 셈이다.
야당 내부에선 ‘혁신위가 왜 이런 민감한 문제를 꺼내 쟁점을 만드느냐’는 볼멘소리도 있다. 그러나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선거구 재획정을 진행중인 지금 시점에 이 문제를 다루지 않으면, 비례대표 확대와 의원 정수 조정은 또다시 몇 년 뒤로 미뤄질 것이다. 지역 갈등을 줄이고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의회로 수렴하기 위해선 비례대표를 대폭 확대하는 게 맞다. 정치개혁을 위해서라도 의원 정수를 늘리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은 이미 학계와 시민단체 사이에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이런 차원에서 야당 혁신위의 제안을 의원 정수와 선거제도 개편을 국회에서 적극 논의하는 계기로 삼기 바란다.
그러나 일부 정치권과 언론에선 국민 여론을 빌미 삼아 혁신위 제안을 깔아뭉개고 ‘차라리 의원 수를 줄이자’는 식의 포퓰리즘적 주장을 펼치고 있다.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 불신이 매우 높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국회 무용론 또는 축소론을 주장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국민 불신이 높을수록 국회가 민의를 정확히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옳다. 비례대표 확대와 의원 정수 증원은 그런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
일부에선 미국(하원 435명)과 비교해 우리나라 의원 수가 인구 규모에 비해 너무 많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 인구는 3억명이 넘기에 단순 비교하는 데 무리가 따른다. 인구·경제 규모가 비슷한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 다른 선진국과 비교하면 의원 한 사람이 대표하는 인구수는 오히려 우리가 훨씬 많다. 우리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지표는 의원 1인당 보수와 국민 1인당 부담액이다. 따라서 의원들에게 제공하는 세비와 각종 특권을 줄이고 그 대신에 의원 수를 늘리는 게 국민 대표성을 높이고 민의를 수렴하는 데 훨씬 효과적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의원 정수 확대에서 가장 중요한 건 국민적 공감대를 얻는 일이다. 눈앞의 여론에 기대 무조건 의원 수를 줄이라고만 할 게 아니라 의석 확대를 위해 국회가 할 일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따져보길 여야 모두에 권한다.
[중앙일보 사설] 정치 철밥통 위한 의원 정수 확대는 무리다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가 26일 국회의원 정수를 현행 300명에서 369명으로 늘리자고 제안했다. 지역구 의원 246명을 유지하고 비례대표를 현행 54명에서 123명으로 늘리자는 것이다. 소선거구제에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연동시켜 지역주의를 해소하고 군소정당의 진입장벽을 낮추자는 게 혁신위의 설명이다.
취지는 근사하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지난 2월 중앙선관위가 국회에 제출한 정치관계법 개정안도 같은 취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국회의원 정수를 300명으로 유지하면서 지역구를 200명으로 줄이고, 비례대표를 100명으로 늘리는 게 핵심이었다. 야당의 문재인 대표도 2012년 대선 때 선관위와 똑같은 공약을 내놓은 바 있다. 안철수 의원은 한술 더 떠 의원 정수를 200명으로 줄이자고 주장했다. 그런 야당에서 갑자기 혁신위의 이름으로 의원 정수를 대폭 늘리자고 나서니 이런 모순이 없다.
야당 혁신위의 비례대표 확대 주장은 논리적으로 타당성이 없지 않다. 국내 정치학자들 상당수도 같은 주장을 한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그런 생각이 쑥 들어간다. 비례대표 공천을 둘러싸고 거액의 검은돈이 오가고, 개혁·전문성 대신 당 대표 구미에 맞는 인사들이 배지를 다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렇게 입성한 비례대표 상당수는 지역구 공천을 노려 ‘3류 정치꾼’이자 거수기로 전락하기 일쑤였다. 진정 비례대표를 늘리고 싶다면 계파공천·돈공천부터 없애고 자질과 인품을 갖춘 인재를 영입하는 게 먼저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비례대표는 늘리면서 지역구 의석은 그대로 두겠다는 발상이다. 혁신위는 지역구 의원들이 반발하니 의석수를 건드리기 힘들다고 설명했지만 뒤집어 말하면 ‘제 살 깎기’는 안 하겠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정치의 ‘철밥통’은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유례없는 저성장·청년실업에 신음하는 우리 사회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또한 우리 헌법이 의원 정수를 ‘200인 이상’으로 정한 것도 300명은 넘지 말아야 한다는 깊은 뜻이 깔려 있음을 읽어야 한다.
혁신위도 비판여론을 의식했는지 “의원 정수가 늘어도 국회 총예산은 현행 300명이 받아 온 규모를 유지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뜬구름 잡는 얘기다. 200개가 넘는 특권 가운데 자발적으로 내려놓은 건 하나도 없는 의원들이 스스로 세비를 낮춰 받을 가능성을 어떻게 믿으라는 것인가.
국민 10명 중 8명이 국회를 믿지 않는다고 할 만큼 정치 불신이 심각하다. 당리당략과 기득권 수호에 혈안이 돼 식물국회와 장외투쟁으로 일관해 온 의원들의 자업자득이다. 이런 마당에 혁신위가 의원 특권 폐지와 생산성 향상같이 진짜 필요한 혁신은 제쳐 둔 채 의원 숫자부터 늘리자고 주장하는 건 받아들이기 어렵다. 제대로 혁신하려면 고통 분담과 제 살 깎기가 우선이다. 우리보다 인구가 6배 많은 미국도 의원 수는 상·하원 합쳐 535명 선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교실에서는 사회적 논쟁을 주제로, 찬반 관점을 분명히 이끌어내는 수업이 일반화되지 않았습니다. 독일 교실은 다릅니다. 정치교육 지침인 ‘보이텔스바흐 협약’에 따라 사회적 찬반 논쟁이 뚜렷한 사안에 대한 정보를 제시하고, 학생들이 자신만의 관점을 갖게 하는 수업이 민주시민 교육 목적으로 활발하게 이뤄집니다.
2013년 한겨레와 중앙일보가 공동기획해 시작한 ‘사설 속으로’는 언론이 ‘보이텔스바흐 협약’과 비슷한 뜻을 실천하는 좋은 사례입니다. ‘사설 속으로 활용 현장’은 서울시 교사들이 ‘사설 속으로’를 활용해 수업하는 현장을 취재해 소개하는 기획입니다. 두 언론사와 ㈔징검다리교육공동체, 서울시교육청이 함께합니다.
14일 서울 대진고 1학년 6반 아이들이 ‘국회의원 정수 확대 찬반‘을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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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의식 갖고 정치 관심 가져야 ‘국회의원 정수 확대’ 찬반 토론한 대진고
양쪽 입장 듣고 합의점 찾는 과정 경험
자기 논리 만들려 주도적으로 공부도 2시간 동안 진행한 수업에서 1학년 6반 학생들은 미리 조사한 자료를 근거로 내세우며 토론을 벌였다. 1차 토론 때는 모둠별로 ‘국회의 역할’, ‘선거구 제도’, ‘국회 불신 원인’이라는 세부 주제를 나눠 진행했다. 이후엔 찬반으로 나눠 대립토론을 펼쳤다. 국회의원 수를 줄여야 한다는 쪽에선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공천하고 국회의원이 돼서도 정쟁을 벌이느라 사회적 갈등이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무작정 숫자를 늘리기보다 신뢰를 확보하고 국회 본래의 기능을 하게 만드는 게 우선”이라는 주장을 폈다. 한 학생은 국회의원이 누리고 있는 특권이 지나치다며 표로 정리해 조목조목 지적하기도 했다. “보좌진이나 비서관 수가 너무 많고 사무실 운영이나 판공비 등 특권이라고 생각하는 비용을 줄이고 그만큼 의원 수를 늘리면 세비 부담도 줄일 수 있다.” 국회의원 수를 늘리자는 쪽은 상대 의견을 반박하며 “현재 우리나라는 국회의원 한명당 국민 16만7000명이다. 오이시디(OECD) 평균 의원 1인당 국민 수는 9만9000명이다. 국민의 의견을 최대한 많이 반영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 수가 지금보다 많아야 한다”는 이유를 댔다. 기존 토론 수업이 한 주제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는 방식이었다면 이날은 찬반이 뚜렷한 주제를 두고 양쪽 이견을 조율하고 통합하는 과정을 끌어내고자 했다. 학생들은 사전에 토론 주제가 정해진 뒤 2015년 8월11일치에 실린 <한겨레>와 <중앙일보> 공동제작 지면 ‘사설 속으로’ 내용을 참고해 자신들의 논리를 구체화했다. 이 교사는 평소에도 이 지면을 자주 활용한다. 교사가 현안에 대해 한쪽으로 치우진 태도를 강제할 수도 없고, 강제해서도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정치적 중립성만 내세우기보다 찬반대립이 분명한 사안에 대해 각각의 입장을 다룬 사설을 비교하며 사실관계를 알려주고 같이 고민하게 한다”며 “꼭 어느 한쪽으로 결론을 내기보다 아이들이 논의 과정에서 양쪽의 장단점을 분석하고 성찰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토론할 때 미리 자료를 준비하지만 상대의 의견을 듣고 바로 내 의견을 정리해 말해야 할 때가 있다. 짧은 시간에 상대 이야기를 요약해두었다가 반박해야 하므로 순발력이나 사고력을 요구한다. 단순 ‘말발’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의미다. 이날 패널로 나선 학생 외에 뒤에 앉은 청중 패널은 실시간으로 노트북을 이용해 자료를 찾아 메모지에 적어 쉴 새 없이 앞쪽으로 넘겼다. 즉석에서 반론에 필요한 내용을 보강해주는 역할을 한 셈이다. 토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자연스레 지식도 쌓게 된다. 자신의 논리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자료를 찾기 때문이다. 박규태군은 “진도를 맞추느라 설명 위주로 수업하다 보면 잘 모르는 부분도 그냥 넘어갈 때가 있다”고 했다. “궁금한 게 생기니까 인터넷으로 정보를 계속 검색해봤다. 내가 잘 알아야 상대를 설득할 수 있기 때문에 제대로 이해할 때까지 정리했다. 덕분에 주도적으로 공부하며 내용을 깊이 있게 파악할 수 있었다.” 김현서군은 “정치에 관심은 있었지만 지역구나 비례대표의 정확한 차이, 국회의원 역할 등 구체적인 건 몰랐다. 교과서 지식은 한정돼 있어서 사회 전반의 흐름을 알기가 어렵다”며 “내가 모르는 사실을 상대방을 통해 알게 되고 서로 배우는 게 많았다. 나와 다른 의견일지라도 상대가 설득력 있게 주장을 펼치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다”고 했다. 토론 전후 이 교사는 학생들에게 국회의원 정수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조사 결과 토론이 끝난 후 처음과 생각이 바뀐 친구들이 있었다. ‘대폭 축소’가 7명에서 2명으로 줄고, ‘소폭 축소’와 ‘확대’는 각각 9명에서 16명, 8명에서 12명으로 늘었다. 막연히 생각했던 것과 달리 자료를 찾으면서 내용을 자세히 알게 되거나 상대방의 논리에 이끌린 것이다. 박군은 “토론 전에는 소폭 축소하자는 쪽이었는데 토론 뒤 소폭 확대로 생각이 달라졌다. 국회의원이 하는 일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실제 하는 역할을 보니 의원 수가 늘면 더 많은 일을 처리하는 데 도움이 될 거 같아서”라고 말했다. 고정현군은 “토론을 하면서 단순히 상대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좋은 점을 합쳐 좀더 효율적이고 나은 결론을 끌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좋은 국회의원을 뽑으려면 미리부터 정치에 관심을 갖고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글·사진 최화진 <함께하는 교육> 기자 lotus57@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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