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수도권에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13일 밤 국회 의원회관 투개표상황실에서 경기 광명을 이언주 당선자 이름에 당선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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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광복(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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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사설] 힘을 잃기 시작한 ‘우리가 남이가’라는 구호
30년 넘도록 강고하게 한국 정치를 지배해온 지역주의의 벽에 균열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번 총선의 가장 중요한 신호 중 하나다.
수십년 동안 새누리당의 아성이었던 부산에선 18곳 가운데 5곳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승리했고, 경남 16곳 가운데 4곳에서도 야당 후보가 당선됐다. 울산 6곳 가운데 2곳의 당선자는 진보진영 출신이다. 대구에선 중선거구제였던 1985년 이후 처음으로 정통 야당 소속 후보가 당선됐고, 야당 출신 무소속 후보도 승리했다. 야당의 텃밭이라는 전남과 전북에선 새누리당 후보가 한 명씩 당선됐다. 30~40%대의 높은 득표율로 선전한 영남권 야당 후보도 여럿이다. 지역주의는 이제 더는 넘지 못할 철옹성이 아니다.
이런 변화는 일차적으로 후보들이 일군 것이다. 어려운 정치환경에서도 지역을 지키며 성실하게 유권자와 소통해온 후보들의 노력이 결국 지역주의에 큰 구멍을 낸 것이겠다. 유권자들은 그런 노력에 응답함으로써 지역주의 극복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공천이 곧 당선’인 지역주의 정치에선 정치인들이 유권자들 대신 공천권자만 쳐다보고 지역 내 보스정치에 열중하게 된다.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이 공천파동 등 막가파식 행태를 서슴지 않았던 것도 무슨 짓을 하든 지역 유권자들이 표를 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유권자들은 이번 선거에서 더는 ‘주머니 속 공깃돌’이 아님을 보여줬다. 대신 정권에 대한 불만, 특정 정당에 대한 경고를 투표로써 표출했다. 지역 연고에 따른 ‘묻지마식 몰아주기 투표’ 대신, 책임을 묻는 ‘징벌적 투표’가 이렇게 본격화하면 지역주의 정치는 발붙이기 힘들어진다.
영남, 특히 부산·울산·경남에서 야당이 약진한 데는 이들 지역에서 확연해진 경제위기에 대한 불안감과 정부의 정책 실패에 대한 불만도 큰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유권자들이 ‘우리가 남이가’ 따위 구호에 현혹되지 않고 자신의 삶에 무엇이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를 먼저 생각한 것이겠다. 정책투표의 가능성을 드러낸 것으로 볼 만하다. 한국 정치의 고질병인 지역주의 타파의 희망은 이로써 분명해졌다.
[중앙일보 사설] ‘지역주의 해체’는 이미 시작됐다
4·13 총선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악화된 지역주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지역주의 선거는 산업화·민주화에 성공한 대한민국이 여전히 극복하지 못한 공공의 적이었다. 새누리당의 친박 패권세력이 이른바 ‘진박 사람들’을 마구잡이 공천했던 것도, 더불어민주당에서 친노 패권주의가 막무가내 활보할 수 있었던 것도 양당에 절대적·무조건으로 기본 의석을 공급했던 영·호남의 묻지마 투표 때문이었다. 이번 20대 총선에서 우리는 지역주의 균열이라는 희망의 빛을 봤다. 19대 총선 때 호남 의석 30석 가운데 25석을 싹쓸이했던 더민주는 이번에 28개 중 3석만 얻었다. 더민주의 지역적 기반이 완전히 해체된 것이다. 새누리당도 4년 전 영남의 67곳에서 63석을 석권했지만 이번엔 65석 중 48석만 얻었다. 특히 대구·부산은 영남 지역주의를 깨는 교두보로 부상했다.
세상에 저절로 허물어지는 건 없다. 그걸 깨려는 희생적인 인물들의 도전이 있어야 한다. 대구의 김부겸(더민주)·홍의락(무소속), 부산의 김영춘(더민주), 전남의 이정현과 전북의 정운천(새누리) 등은 지역주의를 깬 영웅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이들에겐 몇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첫째, 그들의 당선 일성은 ‘위대한 유권자’에 대한 감사였다. 유권자는 하늘이었다. 적대와 불모의 시선을 신뢰와 지지의 눈빛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그들은 주민이 얼마나 무섭고 고마운 존재인지 뼈저리게 느꼈다고 한다. 둘째, 이들은 최소한 두 번의 실패를 경험했다. 첫 도전에 성공한 사람은 없었다. 오랜 세월 패배의 고통과 공포를 견뎌냈다. 유권자는 그런 시련을 내린 뒤에야 비로소 지역주의와 싸우는 사람들의 진정성을 승인했다.
셋째, 지역주의를 극복한 정치인들은 여야 간 공존, 경쟁 세력 간 상생을 정치원리로 수용한다. 그들은 모순을 받아들이는 개방성이 높다. 차이 속에서도 합의를 찾아내는 능력이 두드러진다. 문제 제기보다 문제 해결에 능하다. 공존과 상생은 적대와 극단이 일상화된 한국의 민주주의를 치유할 좋은 약이다. 지역주의를 허문 당선인들은 여야 관계없이 한국 정치의 혁신에 귀한 자원이 될 것이다.
이와 함께 20대 국회는 지역주의의 벽을 깨는 법적 정비와 제도 개혁을 해야 한다. 지역주의를 고착화하는 대표적 제도가 한 선거구에서 한 명의 의원을 뽑는 소선거구제다. 1987년 도입된 소선구제는 권위주의적인 집권당을 명쾌하게 혼내주는 순기능이 있어 민주화 시대에 부합하는 제도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나타났듯이 오만한 정권은 2야 분열 구도에서도 얼마든지 손을 볼 수 있다. 이제 정치권은 어느새 기득권이 돼버린 소선거구제 집착을 버려야 한다. 협치(協治)와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중·대선거구제 전환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지역 선거에서 아슬아슬하게 패한 후보에게 일정한 기준이 되면 비례대표 의원이 될 수 있게 하는 석패율(惜敗率) 제도도 도입하라. 일부 정치인들의 희생적인 도전, 위대한 유권자의 경이로운 선택으로 시작된 지역주의 해체에 20대 국회는 법·제도적 인프라로 뒷받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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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보는 사설] 저항투표와 선거구제 유형 저항투표(Protest Vote)란 유권자들이 출마자나 정치 체제에 대한 불만을 나타나기 위해 하는 투표를 말한다. 저항투표가 일어날 가능성은 ‘D〈A+E’라는 공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여기서 D는 ‘정치에 대한 불만족’(Dissatisfaction), A는 ‘대안의 수용 가능성’(Alternative), E는 ‘항의를 동반한 퇴장’(Exit-with-Voice)을 뜻한다. 현실을 바꿀 대안이 있고 이를 표출할 방법도 분명하다면 유권자들은 대부분 저항의 뜻으로 투표에 임한다. 하지만 대안이 마뜩지 않을뿐더러, 투표로 항의를 해봤자 바뀌는 것이 없을 듯싶다면 유권자들은 투표를 포기해버린다. 이번 선거에서는 기존의 양당 체제에 더하여 제3 정당이라는 ‘대안’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정당들의 잡음 많았던 공천 과정, 경제 정책 실패 등 유권자들이 불만 요인들이 뚜렷했다. 한마디로 저항투표가 일어나기 좋은 구도였다. 저항투표는 특정 정치체제, 정당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것이기에 일시적인 표심 이동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기 위해서는 선거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지금의 소선거구제에서는 지역구 하나에서 가장 표를 많이 받은 한명만 선출된다. 사표(死票)가 많이 발생할뿐더러 군소, 신생 정당이 의회에 들어가기 어려운 구도다. 반면, 중선거구제에서는 지역구마다 2인 이상, 대선거구제에서는 4인 이상의 의원을 선출한다. 사표가 적을뿐더러, 소수의 목소리가 국회에 반영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하지만 중·대선거구제에서는 군소정당이 난립할 수 있고, 선거가 지닌 ‘정치 평가 기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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