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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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사설] 무디스 국가신용등급 상향의 명암
국제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가 18일(현지시각)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등급을 Aa3에서 Aa2로 한 단계 끌어올렸다. 무디스가 매기는 전체 21개 등급 가운데 세 번째 높은 등급으로, 지금껏 우리나라가 받은 최고 성적이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무디스에 앞서 등급을 끌어올린 피치와 스탠더드앤푸어스 등 3대 국제신용평가기관 모두한테서 역사상 최고 등급 판정을 받게 됐다.
무디스의 등급 상향은 한국 경제를 향한 국제사회의 시선이 예전보다 한층 부드러워졌음을 보여준다. 무디스로부터 Aa2 이상 등급을 받은 나라라고 해봤자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영국·독일·프랑스 등 9개국뿐이다. 더군다나 지난주 미국의 금리 인상 이후 신흥국 금융시장으로부터 자본 이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 터라 국내 금융시장엔 반가운 뉴스임이 틀림없다. 피치가 16일(현지시각) 3200억달러(380조원) 규모의 빚을 지고 있는 브라질의 국가신용등급을 투기 등급인 BB+로 강등시킨 것과도 크게 대비된다.
하지만 무작정 반길 일만은 결코 아니다. 무디스의 등급 상향이 가계와 기업은 비틀거리는데 정부 곳간만 튼튼한 한국 경제의 ‘기형적 구조’를 다시 한번 드러내 줘서다. 무디스가 등급 상향의 근거로 재정 건전성과 대외 안정성을 제시했다는 점도 곰곰이 되새겨봐야 한다. 2010~2014년 5년간 우리나라의 연평균 총지출 증가율은 4.05%로 같은 기간 명목 국내총생산(GDP) 증가율보다도 낮았다. 정부가 세입은 묶어둔 채 손쉬운 복지지출부터 삭감하는 등 소극적인 재정운영 기조를 고집해온 탓이다. 그러는 사이 가계부채는 1200조원에 육박하고 이자를 갚지 못하는 좀비기업이 넘쳐나는 등 가계와 기업의 기초체력은 바닥까지 떨어진 상태다.
냉정하게 말해 국제신용평가기관의 눈에 비친 우등생이란 ‘돈 될 만한 나라’이지 ‘건강한 나라’라는 뜻은 아니다. 11월말 기준으로 사상 최대 외환보유액(3684억6천만달러)에 44개월 연속 경상수지 흑자 기록은 투자대상으로서의 높은 매력 요인은 될지언정, 그 이면에 드리운 그림자까지 말끔히 지워주지는 못한다. 역사상 최고 등급 평가를 받은 나라의 정부와 여당 입에서 ‘국가경제비상사태’ 운운하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난센스이거니와, 외부의 일면적 시선에 취해 가계 및 기업발 위기의 뇌관을 제거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도 안 된다.
[중앙일보 사설] 사상 최고의 국가신용등급에 자만할 때는 아니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무디스가 지난 주말 한국의 신용등급을 Aa2로 상향했다. 지금까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피치를 포함한 3대 국제신용평가사에서 한국이 받은 등급 중 가장 높다. 신용등급으로는 중국·일본 등 주변의 경제 대국을 추월했다. Aa2 이상을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주요 20개국(G20) 가운데서도 7개국에 불과하다.
반가운 소식이다. 세계 경제는 미국의 금리 인상과 중국 경기둔화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브라질 등 신흥국들은 저유가와 잇따른 신용등급 추락으로 위기에 처해 있다. 무디스의 신용등급 상향으로 한국 경제가 신흥국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인정받게 됐다. 당장 해외로부터의 자금 조달 금리를 낮추고 국내 증시나 외환 시장의 맷집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기업 투자와 가계 소비 위축으로 자신감을 잃고 있는 경제주체들의 사기를 북돋우고 비관론을 잠재울 계기도 될 수 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국가신용등급은 과거와 현재를 반영한 지표일 뿐이다. 미래를 보장하진 않는다. 1997년 외환위기 직전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잇따라 등급을 올리며 한국 경제를 낙관론으로 물들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도 속으로 곪고 있던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파산 직전까지 최고 등급을 유지했다. 국가신용등급이 한 나라의 경제 전체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정부 재정과 무역수지, 외환보유액 같은 거시지표를 통해 부채 상환 능력을 살펴보는 것일 뿐이다. 일본도 ‘잃어버린 20년’ 동안 줄곧 세계 최고 신용등급을 유지했던 점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 한국 경제도 일본처럼 장기 저성장에 빠질 것이란 우려에 휩싸여 있다. 저출산·고령화와 혁신 부족으로 성장잠재력이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노동·교육개혁과 산업 재편도 지지부진하다. 이러다간 사상 최고 국가신용등급이 ‘한여름 밤의 꿈’이 될 수 있다. 신용등급 상향을 발판 삼아 구조개혁과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내는 지혜가 절실하다. 높은 국가신용등급은 굴러 들어온 복이지만, 여기에 안주하면 자칫 화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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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보는 사설] “ 국가신용등급” 국가신용등급(sovereign credit ratings)이란 한 나라가 국제금융시장에서 돈을 빌릴 때 적용되는 신용도를 말한다. 무디스, 스탠더드앤푸어스, 피치 등 국제신용평가기관이 매기는 장기신용등급은 해당 나라의 금융기관이나 기업이 해외에서 채권을 발행할 수 있는지의 여부와 채권의 금리를 정하는 데 기준이 된다. 높은 등급의 신용도를 받는 나라는 싼 값에 돈을 빌릴 수 있으므로, 국가신용등급은 국가경제를 운용하는 데 있어 중요한 지표가 된다. 국가신용등급은 국가 부채의 규모, 정치체제의 안정성, 국제금융시장과의 통합도, 국가 안보상의 위험 요소, 경제 성장률, 인플레이션, 외채 및 외환 보유고 등을 감안하여 매겨진다. 한 나라의 부채 상환능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점수를 부여하는 셈이다. 신용평가기관은 국가의 신용등급을 정한 뒤, 해당 국가나 기업을 관찰하며 등급조정을 한다. 조정에 앞서, 등급마다 ‘전망’을 붙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상향조정될 가능성이 크면 ‘긍정적’(positive)으로, 지금 상태가 당분간 유지될 가능성이 농후하면 ‘안정적’(stable)으로, 등급이 내려갈 가능성이 크면 ‘부정적’(negative)으로 전망하는 식이다. 하지만 주요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의 신용등급 평가가 제대로 된 것인지를 놓고는 줄곧 논란이 벌어지곤 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는 이미 오래전부터 문제가 되고 있었다. 하지만 국제신용평가사들은 금융위기가 불거지기 직전까지 관련 기업들에게 높은 등급을 부여해 위기를 키운 측면이 있다. 1997년 우리나라의 외환위기 때에도 국제신용평가사들은 혼란스런 모습을 보였다. 위기 직전까지 우리나라는 높은 신용등급을 유지했으나, 구제금융을 신청하자마자 한국의 신용도는 불과 10여일 만에 ‘A3’에서 ‘Ba1’으로 4단계나 떨어졌다. 국제신용평가사들이 위기의 징후를 전혀 알아채지 못하다가, 문제가 불거진 다음에야 뒤늦게 등급을 낮추어 더 큰 경제 혼란을 초래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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