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오전 강원도 고성군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제20차 남북이산가족상봉 2회차 작별상봉에서 남쪽 최고령인 구상연(98) 할아버지 볼에 북쪽 딸 구송옥씨가 입맞춤을 하며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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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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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사설] 이산가족 상봉, 남북 교류·협력 확대로 이어져야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금강산에서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다. 대북 강경 기조를 확인한 한-미 정상회담 등 여러 변수가 있었으나 북쪽도 성공적인 행사를 위해 애쓰는 모습이다. 8·25 합의가 첫 단추를 잘 끼운 셈이다. 곧 교류·협력 확대 등 남북관계 진전이 뒤따라야 한다. 이는 북한 핵 문제 해결을 뒷받침할 동력을 확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새삼 실감하는 것은 이산가족의 고령화다. 80대 이상이 절반을 넘으면서 직계가족 사이의 상봉이 갈수록 줄고 있다. 2박3일씩 두 차례 진행되는 이번 행사에서도 상봉자들의 건강 문제가 신경이 쓰일 정도다. 60년 이상 떨어져 있던 상봉자들이 바로 알아보고 부둥켜안을 정도로 피는 물보다 진하다. 하지만 시간은 이산가족들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1988년 이후 대한적십자사에 등록된 상봉 신청자 13만여명 가운데 절반 정도가 이미 숨졌다. 지금과 같은 방식은 뚜렷한 한계가 있다.
이산가족 문제의 진전과 남북 교류·협력 확대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남쪽이 아무리 이산가족 문제의 시급성을 강조하더라도 북쪽이 호응하지 않으면 제동이 걸린다. 이산가족의 생사 확인, 서신 교환, 상봉 정례화, 고향방문, 자유왕래 등은 각각 남북관계의 수준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이산가족 문제를 풀기 위해서도 남북관계 개선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 교류·협력 확대의 핵심은 경협 활성화다. 그중에서도 금강산 관광 재개가 출발점이다. 금강산 관광은 이산가족 상봉과 경협을 더 원활하게 해줄 받침판이 된다. 이산가족면회소가 금강산에 마련된 것도 금강산 관광 사업의 성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북쪽이 이번 행사에 동행한 남쪽 기자단의 노트북 컴퓨터를 무리하게 검열한 것은 옥에 티다. 이런 방식은 상호 존중이 요구되는 남북관계를 손상시킬 수 있다. 북쪽도 곁가지 문제로 남쪽 여론이 나빠지는 것은 바라지 않을 것이다.
이산가족의 아픔은 한민족 전체의 아픔이다. 과거처럼 상봉이 중단되는 일이 더는 없어야 한다. 남북관계는 이제 지난 7년여 동안의 암흑기에서 벗어나 기지개를 켜고 있다. 남북 모두 난관이 있더라도 헤쳐나가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이른 시일 안에 당국회담이 열리기를 기대한다.
[중앙일보 사설] 이산의 슬픔이 언제까지 계속돼야 하나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20일 오후 북한의 금강산호텔 이산가족단체면회소에서 남측에서 간 96가족 389명은 북측의 141명과 상봉하며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1년8개월 만에 이뤄진 이번 상봉은 극적인 8·25 남북합의에 따라 가까스로 성사됐다는 점에서 더욱 감회가 새롭다.
이번 만남은 2000년 8·15를 시작으로 20회를 맞았다는 점에서 뜻깊다. 그동안 연평균 1.3회꼴로 열려 지금까지 4500여 가족, 2만2700여 명이 상봉의 기쁨을 누렸다. 화상상봉까지 포함하고 남북한을 합친 숫자다. 문제는 통일부의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등록된 남측 상봉 신청자(9월 말 기준) 13만409명 중 49%인 6만3921명이 이미 세상을 떠나 6만6488명만 생존해 있다는 사실이다. 생존자 중 70세 이상이 81.4%에 이른다. 사망자 숫자가 생존자 숫자를 넘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런 식의 찔끔찔끔 만남으로는 상당수 신청자가 헤어진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한을 가슴에 품고 세상을 등질 수밖에 없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그리고 항상 미흡한 이산가족 상봉 숫자가 온 국민의 가슴을 타들어 가게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8월 15일 광복 70주년 경축사에서 북한에 전체 이산가족 명단 교환과 금강산 면회소를 이용한 수시 만남을 제안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상봉 희망자 명단을 일괄 교환한 뒤 남북이 대대적으로 상봉 가능자를 찾아 금강산에서 수시로 서로 만날 수 있도록 길을 터주자는 것이다. 이산이라는 비인도적인 상황을 해결하는 실질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이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안타깝기 짝이 없다. 이산가족 명단 교환과 수시 만남은 아직 남북 간 의제에 오르지도 못하고 있다. 가족의 끈을 이어줄 최소한의 인도주의 조치인 서신교환과 생사확인도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은 8월 경축사에서 “이산가족 문제만큼은 아무리 정세가 어렵고 이념이 대립한다고 해도 인도적 견지에서 남북이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도 “8·25 합의를 소중히 가꾸고 풍성한 결실로 가꾸자”고 한 바 있다. 이런 남북 최고지도자들의 발언이 결코 공수표가 되어선 안 된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을 계기로 남북 당국은 더 자주 만나야 한다. 서로 만나야 믿음이 쌓이고, 신뢰가 쌓여야 금강산 관광 재개나 5·24조치 해제 등 다양한 사안을 놓고 건설적인 대화를 할 수 있다. 우리가 거듭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산가족 문제는 남북 현안 가운데 가장 인도적이며 최고로 엄중한 과제라는 점이다. 북한은 더 이상 이산가족 상봉을 대남 협상카드로 여겨선 안 된다. 남한 당국 역시 상봉 규모와 빈도를 확 늘리기 위해 북한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적어도 이산가족 상봉만큼은 남북이 정치·군사적 긴장과 별도로 접근해야 할 사안이다. 이제 이산가족들에겐 시간도, 흘릴 눈물도 얼마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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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보는 사설] “남북분단과 이산가족문제” 남북 분단으로 생긴 이산가족의 수는 1000만명에 달한다. 그럼에도 6·25전쟁과 이어진 동서 냉전의 분위기 속에서 이산가족상봉은 한동안 남북사회에서 금기시되어 왔다. 1985년, 남북은 “남북이산가족 고향방문단 및 예술 공연단”으로 이산가족상봉의 물꼬를 텄다. 이후,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을 통해 이산가족 등 인도적 문제의 조속한 해결에 합의함에 따라 2000년 8월, 제 1차 이산가족방문단 교환이 이루어졌다. 2005년 8월 15일에는 서울과 평양, 인천, 수원, 대전, 대구, 광주, 부산 등을 연결한 화상 상봉이 실시되었다. 그 후 현재까지 20차례 상봉이 이루어졌으나, 남북의 정치·군사적 상황에 따라 이산가족 만남은 자주 중단되곤 했다. 2008년 이후에는 불과 3차례의 만남만 이루어졌으며, 2010년 말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한동안 상봉이 끊기기도 했다. 나아가 2013년에는 남측 언론의 비판을 구실로 삼아 북측이 상봉 나흘을 앞두고 행사를 전격 취소하기도 했다. 이산가족 상봉 대기자는 남측에서만 6만명이 넘는다. 당초 신청자는 12만명이 넘었지만 절반 넘게 가족을 보지 못한 채 숨을 거두었다. 현재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모든 이산가족이 죽기 전에 서로 만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북도민회 중앙연합회 등 실향민 단체들은 지난 8월, 유엔의 ‘실향민 처리지침’을 근거로 청원을 냈다. 이산가족 문제를 국제사회에 보편적 인권문제로 공론화시키기 위해서였다. ‘실향민 처리지침’은 유엔이 무력충돌, 재난, 인권 유린 등으로 조국을 떠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지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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