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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8.24 22:26 수정 : 2015.08.31 23:32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일본의 2차대전 패전 70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 14일 오후 도쿄의 총리관저에서 ‘아베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도쿄/AP 연합뉴스

김보일 배문고 국어교사
<한겨레>와 <중앙일보>가 함께 구성한 지면으로 두 언론사의 사설을 통해 중3~고2 학생 독자들의 사고력 확장에 도움이 되도록 비교분석하였습니다.

[한겨레 사설] 패전 70년 ‘아베 담화’, 최악은 피했으나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4일 오후 각의 결정을 통해 패전 70년을 결산하는 이른바 ‘아베 담화’를 발표했다. 아베 총리는 담화에서 “우리나라는 앞선 대전 때 한 것에 대해 반복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과의 기분을 표명해왔다”며 “그런 역대 내각의 입장은 앞으로도 흔들림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일본 정부가 과거 침략과 식민 지배에 대해 반성, 사죄한다고 밝힌 1995년 무라야마 담화 및 2005년 고이즈미 담화와 같이 가해 주체와 피해 객체를 명확하게 표시하지는 않았으나 장황한 담화 곳곳에 이런 표현을 마치 보물찾기 놀이에서 보물을 숨기듯 분산 배치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형식상으로는 역대 내각이 표명한 ‘침략, 식민 지배, 사죄, 반성’이란 핵심 단어를 빼놓지 않고 집어넣은 모양새를 취했다.

또 담화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담화의 앞뒤에 “명예와 존엄에 상처를 입었던 여성들이 있었던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들은 20세기 전시하에 많은 여성들이 존엄이나 명예가 깊이 상처받은 과거를 이 가슴에 새겨나가겠다”고 되풀이한 대목이다. 이는 직접적인 명시를 하지 않으면서 한-일 간 최대 갈등 사안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의식한 표현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보아 아베 담화는 4월 반둥회의 60주년 기념행사 및 미국 의회 연설에서 표명한 과거사 인식보다는 진전한 내용이지만, 한국 정부가 기대하는 수준에는 한참 못 미치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강한 역사수정주의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아베 총리가 이 정도나마 타협적인 내용의 담화를 내게 된 것은 아베 총리의 처지가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압력과, 연립 상대인 공명당을 비롯한 일본 안의 요구를 무시하기 어려운 사정에 처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담화문에 침략, 식민 지배, 사죄, 반성이라는 단어를 다 집어넣기는 했지만, 간접화법을 사용하거나 일반적인 역사 서술 가운데 추상적으로 포함시키는 등의 교묘한 언술을 사용한 것은 역대 내각의 패전 담화에서 후퇴한 것일 뿐 아니라 품격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위안부 문제를 지칭하는 듯한 표현을 반복하면서도 누가 어떻게 한 것인지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유체이탈’ 화법으로 얼버무린 것도 일본 정부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에서 한참 뒤로 물러선 것이다.

아베 총리가 이렇게 애매모호한 수준의 담화를 내놓음으로써 우리 정부도 고민을 안게 되었다.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한다는 걸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는 우리 정부의 요구를 완전히 수용한 것도 내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형식적으로는 우리의 요구를 수용한 면도 있는 만큼, 앞으로 그것을 어떻게 실질적인 내용으로 이끌어내느냐는 우리 정부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아베 총리가 담화를 준비하기 위해 만든 ‘21세기를 구상하는 간담회’가 6일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대일정책은 이성과 심정의 사이에서 왔다갔다한다” “한국 정부가 역사 인식 문제에 있어 ‘골포스트’를 움직여온 경위가 있다”고 적고 있다. 앞으로 한-일 간에 인식 차이를 좁히는 게 만만치 않다는 걸 잘 보여준다. 이런 일본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외교 당국은 더욱 철저한 논리와 끈질긴 자세로 임해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 광복·분단 70년…과거를 딛고 미래로 가자

일제의 36년 식민통치에서 해방된 지 오늘로 꼭 70년이다. 광복 70년을 맞는 우리의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일제의 압제와 수탈, 전쟁의 참화를 딛고 우리는 세계가 기적이라고 부르는 정치·경제적 발전을 이룩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식민통치를 경험했던 인구 5000만 이상 규모의 나라 중 산업화와 민주화에 동시에 성공한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그러나 위대한 성취에 대한 자부와 긍지만으로 오늘을 맞기 어려운 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일제의 강점에서 벗어난 지 70년,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한 지 50년이 지났지만 오늘날 한·일 관계는 역대 최악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로 악화돼 있다. 광복 70년은 곧 분단 70년이다. 마지막 남은 냉전의 한복판에 있는 남북관계 또한 극도의 경색 국면에 있다. 광복 70년 공동행사 하나 성사시키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 사진을 표적에 붙여놓고 북한 군인들이 사격 훈련을 하는 장면이 지금의 남북관계를 상징하고 있다. 한·일 관계와 남북관계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한다면 광복과 분단 70주년은 그저 왔다가 지나가는 수많은 기념일 중 하나로 묻히고 말 것이다.

싫든 좋든 한국과 일본은 이웃하고 살 수밖에 없다. 양국이 소모적 갈등과 반목을 지속하는 것은 서로에게 손해다. 한국이 식민지배의 구원(舊怨)과 콤플렉스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정도의 국가 발전을 이룩했음에도 한·일 관계가 역주행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현직 일본 총리인 아베 신조(安倍晋三)의 퇴행적 역사 인식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침략의 정의는 정해져 있지 않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하고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들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함으로써 ‘역사 수정주의’ 논란에 불을 붙였다. 일본군 종군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뒤집는 시도로 한국인의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 어제 발표한 전후 70주년 담화(아베 담화)도 우리의 기대에는 못 미친다.

그는 종전 50주년에 발표된 ‘무라야마 담화’의 4개 키워드인 침략, 식민지배, 반성, 사죄 등을 언급했지만 누가 누구에게 무엇 때문에 하는 사죄인지 잘 알 수 없게 두루뭉수리로 넘어갔다. “우리나라는 지난 전쟁에서의 행동에 대해 반복적으로 통절한 반성과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해 왔다”며 과거형으로 사죄를 언급했다. 마음을 담은 진정한 사죄와 반성으로 보기엔 뭔가 부족하다. 국제사회의 눈총을 의식해 마지못해 내놓은 담화라는 인상이 짙다.

그러나 한·일 관계가 이토록 악화된 데는 한국 정부의 책임도 없지 않다. 박근혜 정부는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일본과 정상회담을 하지 않겠다고 미리 선을 그음으로써 스스로 발목을 묶는 우를 범했다. 국익을 위해 외교적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를 스스로 없애버림으로써 일본 총리의 입만 바라보는 옹색한 처지를 자초한 셈이다. ‘아베 담화’의 내용을 보고 박 대통령이 광복 70년 경축사 수위를 조절할 수밖에 없다면 남들이 한국을 어떻게 보겠는가. 아베 총리가 뭐라고 하든 우리는 우리대로 우리의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 일본의 잘못을 다 잊고 용서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가슴에 묻어두고 실리에 입각한 냉철한 외교를 하자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세습 독재체제인 북한의 특수성을 도외시한 채 우리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자세를 보이면 북한도 성의를 보일 것이라는 순진한 발상으로 접근했다. 우리의 선의를 믿고 북한이 따라오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북한의 도발에는 국가안보 차원에서 단호히 대응하되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대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 북한의 지뢰 도발에 대한 대처에서 보듯이 박근혜 정부는 국가안보와 남북대화 양쪽 모두에서 기대에 못 미쳤다. 남북관계는 갈수록 꼬여가고 있다. 진정으로 평화와 통일을 생각한다면 보다 유연하고 창의적인 접근으로 분단 70년의 장벽을 넘어야 한다.

지금 동북아 정세는 전례 없는 불안정성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중국 견제를 위한 군사적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은 ‘적극적 평화주의’란 미명 아래 미국과의 군사적 밀착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입법 조치를 통해 평화헌법 9조를 무력화하는 수순을 착착 진행하고 있다. 일본이 전쟁을 할 수 있는 정상국가로 탈바꿈하면 동북아에서 중·일 갈등은 더욱 심화될 게 뻔하다.

한·중·일 관계는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의 핵심이다. 그 안에서 한·일, 중·일 갈등도 해소되고 북핵 문제 해결의 실마리도 풀릴 수 있다. 박근혜 정부가 한·중·일 정상회담 재개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한·중·일 3국 관계의 복원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한·일 관계가 풀려야 한다.

광복 70년을 계기로 한국 외교는 달라져야 한다. 과거를 딛고 미래로 가야 한다. 아베 총리의 말과 행동에 일희일비하고 과거사 문제로 티격태격하는 옹졸한 싸움은 이제 접어야 한다. 북한에 대해서도 과거보다 미래로 무게중심을 옮겨야 한다. 한국은 당당하고 의연한 문화 국가, 매력 국가로 거듭나는 제3의 개국을 통해 동북아의 큰 그림을 그리는 주역이 돼야 한다. 우리는 그럴 자격이 있다.

[논리 대 논리]

한겨레 “원칙·실리 사이 주체성 필요”…중앙 “과거사로 티격태격 말아야”

단계 1 공통 주제의 의미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14일 2차 대전 종전 70년을 결산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아베 총리는 담화에서 식민 지배, 침략, 사죄, 반성 등 4 개의 핵심 ‘키워드’를 언급했다. 그러나 담회의 내용을 꼼꼼하게 읽어보면 식민지 지배와 침략의 주체를 명시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전쟁이 벌어진 나라에서도 젊은이들의 목숨이 수없이 사라졌습니다. 중국, 동남아, 태평양 섬 등 전장이 된 지역에서는 전투뿐 아니라 식량난 등으로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고난에 빠지고 희생됐습니다”라는 문구가 보여주듯, 아베 담화는 ‘누구’에 의해 무고한 사람들이 고난에 빠지고 희생되었는지를 적시하지 않았다.

이에 1995년 식민지 지배를 인정하고 공식 사죄한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는 후지 TV와의 인터뷰에서 아베 총리의 담화가 “미사여구를 늘어놨지만, 무엇을 사죄하고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설명하고 있지 않다“라고 비판했다. 아베 총리가 식민지 지배와 침략이라는 말을 쓰긴 했지만, 최대한 보편화해 ‘어느 나라든 하고 있다’는 식으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광복 70주년 경축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아베 총리의 전후 70주년 담화는 아쉬운 부분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아쉬움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가 아시아 여러 나라 국민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준 점과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한 사죄와 반성을 근간으로 한 역대 내각의 입장이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국제사회에 분명하게 밝힌 점을 주목한다”라며 일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단계 2 문제 접근의 시각차

한겨레와 중앙 모두 아베 담화에 드러나는 애매한 어법을 비판한다. 중앙은 “누가 누구에게 무엇 때문에 하는 사죄인지 잘 알 수 없게 두루뭉수리로 넘어갔다”고 평가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두루뭉수리’는 ‘말이나 행동이 분명하지 아니한 상태’를 이른다. 사죄를 한 것인지 하지 않은 것인지 애매한 아베 총리의 태도에 대한 표현이다. “간접화법을 사용하거나 일반적인 역사 서술 가운데 추상적으로 포함시키는 등의 교묘한 언술을 사용”했다는 한겨레의 비판도 중앙의 지적과 맥을 같이 한다.

“전쟁터의 그늘에서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은 여성들이 있었던 것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라는 아베 담화의 구절을 보자. 한겨레는 이 구절을 ‘유체이탈’ 화법으로 규정한다.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은 여성들’이 누구인지, 그들에게 ‘상처를 입힌 자’들이 누구인지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빠져있다는 것이다.

단계 3 시각차가 나온 배경

한겨레는 이러한 아베 총리의 유체이탈 화법이 ‘아베 총리가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압력과, 연립 상대인 공명당을 비롯한 일본 안의 요구를 무시하기 어려운 사정에 처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중앙은 한·일 관계 악화의 책임이 한국 정부에도 있다고 말한다. 박근혜 정부가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일본과 정상회담을 하지 않겠다”고 미리 선을 그음으로써 국익을 위해 외교적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를 스스로 없애버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일본이 어떤 입장을 표명하느냐에 따라 우리 정부의 입장이 결정되는, 수동적 처지가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중앙의 이런 지적은 일본이 어떤 입장을 보이더라도 한국은 국익을 위해 주체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실리주의적 견해를 담고 있다. ‘과거를 딛고 미래로 가자’는 중앙의 사설 제목은 실리주의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아베 총리의 말과 행동에 일희일비하고 과거사 문제로 티격태격하는 옹졸한 싸움은 이제 접어야 한다”는 대목은 국익을 위해 주체적으로 외교정책을 펴나가야 한다는 입장을 잘 요약해주고 있다.

한겨레는 지난 16일치의 또 다른 사설에서 박근혜 정부가 아베 담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 ‘원칙에서 실리로’ 대일 외교의 무게중심을 옮긴 것이라는 정부의 평가를 비판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대일 외교정책에 원칙도 없고 실리도 없다는 주장이다. 한겨레는 ‘21세기를 구상하는 간담회’ 보고서 중 “한국의 대일정책은 이성과 심정의 사이에서 왔다갔다한다”는 대목을 인용하며 일본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외교 당국이 더욱 철저한 논리와 끈질긴 자세로 임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김보일 배문고 국어교사


[추천 도서]

한국과 일본, 그 사이의 역사

한일공통역사교재 제작팀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2012년

한국의 역사 교사와 일본의 역사 교사가 함께 만든 ‘한·일 공통 역사책’이다. 두 나라가 평화와 우호의 선한 이웃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양국의 청소년이 공동의 역사인식을 지녀야 한다는 점이 이 책을 집필한 두 교사의 입장이다. 이 책은 과거 역사를 회피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제대로 직시해야만 반성과 성찰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 각국의 역사인식의 차이가 어떠한지 그 현주소도 가감 없이 드러낸다.


[키워드로 보는 사설]

역사수정주의

역사학에서 주로 사용하는 ‘역사수정주의’란 새로 발견한 사료나 기존 자료들의 상호관계 등을 재분석해 역사를 새롭게 구성하고 서술하는 것을 말한다. 이미 정설로 굳어진 ‘역사적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여 그런 사실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부정하거나, 기존 통설에 수정을 가하려는 것을 일컫는다.

아베 담화에서 “러일전쟁은 식민 지배하에 있던 많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러일으켰다”는 대목은 아베 담화의 ‘역사수정주의’ 입장을 잘 보여준다. 러일전쟁에서의 일본의 승리는 일본의 군국주의화를 촉진했을 뿐 주변국을 도탄에 빠뜨렸다는 사실을 아베는 외면하고 있다. 이는 러일전쟁에 대한 아베의 독단적인 해석일 뿐이다. 거기에는 어떤 보편성도 없다. 오직 ‘편협한’ 민족주의적 해석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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