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사람들’ 삭제 상영
|
되돌아 본 2005 문화마을 ④ ‘그때 그사람들’ 삭제 상영
한국영화계는 10·26 사건을 영화적으로 해석한 <그때 그사람들>(임상수 감독· 엠케이픽처스 제작)의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과 일부 장면 삭제 판결로 인해 해묵은 ‘사전검열논쟁’이 다시금 불 붙으면서 2005년 한해를 시작했다. 10·26 사건 영화화 2월3일 개봉을 앞두고 1월 말 열렸던 <그때 그사람들>의 시사회를 본 박지만씨는 제작사인 엠케이픽쳐스를 상대로 낸 영화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법원은 이를 일부 받아들여 “부마항쟁 시위, 박 전 대통령의 장례식 등 영화 시작과 끝 부분의 흑백 다큐멘터리 장면을 삭제하고 영화를 상영하라”고 부분 상영 금지 결정을 내렸다. 삭제를 명령한 장면은 전체 상영시간 102분 가운데 영화 시작과 끝부분의 3분50초 가량으로 마지막 장례식 장면에는 박근혜씨, 김수환 추기경 등이 등장하며 오열하는 국민들의 모습이 들어가 있다. 이 뒷부분은 시사회 때 영화를 본 사람들로부터 “박근혜씨에 대한 위로다”, “조롱이다”로 반응이 엇갈렸던 부분으로 임상수 감독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이렇게 죽은 사람을 두고 이렇게 슬퍼했다”는 걸 보여주려고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영화인회의, 젊은 감독 모임인 디렉터스컷 등에서 법원의 삭제 결정에 항의하는 성명서 등을 발표하는 등 영화계 전체가 이 결정에 대해 ‘표현의 자유에 대한 명백한 침해’라고 반대했고 제작사는 가처분 이의 신청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영화는 삭제 명령이 내려진 부분을 검은 무지화면을 처리해 개봉을 강행했으며 칸 영화제, 토론토 영화제 등 이 영화를 초청했던 해외의 여러 영화제에서도 무지화면 그대로 상영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그사람들>은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된 1979년 10월26일 하루동안 벌어진 일을 궁정동 안가를 중심으로 그린 영화로 백윤식, 한석규 등이 주연을 맡았으며 시사 직후 일부 언론에서 이 영화가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버릇없다” “모멸감을 느낀다”는 원색적인 표현을 써가며 맹공격을 했다. 이 와중에 이 영화를 배급하기로 했던 씨제이엔터테인먼트가 배급을 포기하고 엠케이픽처스가 직접 배급에 나섰으며 총 112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지금은 손배소 진행중 영화는 끝났지만 아직도 재판은 이어지고 있다. 가처분 결정 뒤 박지만씨는 본안소송에 해당하는, 5억원의 손해배상금을 요구하는 명예훼손소송을 냈다.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되기 전 재판부의 중재로 합의가 이뤄지는 듯했으나 지난 9월 원고인 박지만씨 측에서 사실상 합의를 거부하면서 지난달 첫 공판이 열렸다. 이때 엠케이픽처스가 요청한 증인으로 현대사학자인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와 영화평론가 김영진씨가 진술을 했으며 다음 달 19일에는 조갑제 월간조선 사장과 영화평론가 조희문 상명대 교수가 박지만씨 쪽 증인으로 나서 2차 공판이 열리게 된다. 엠케이픽퍼스의 이동직 변호사는 “내년 2월 중 판결이 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재판부가 <그때 그사람들>에 손을 들어준다면 삭제된 부분의 복원이 가능해지지만 사실상 ‘사전검열’의 낙인은 한국영화사에서 지워지지 않는 흉터로 남게 됐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