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뉴스분석 왜
삼바사태의 재구성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자회사가치 평가한다며 TF 구성
숨겨져있던 콜옵션 존재 드러나
졸지에 자본잠식 위기에 빠져
결국 종속→관계회사 변경 무리수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듯 했지만
참여연대 고발로 만천하에 드러나
행정소송·검찰수사 장기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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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혐의에 대한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 심의 결과가 발표된 지난 14일 인천시 연수구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옥 앞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져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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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는 14일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의 2015년 회계처리를 ‘고의 분식회계’로 결론내렸다. 이날부터 삼성바이오 주식 거래는 즉각 중지되고, 거래소는 상장폐지 여부를 심사하고 있다.
이른바 ‘삼바사태’다. 사안이 심각한 만큼 무수히 많은 기사가 쏟아졌다. 하지만 삼바 사태 기사는 어렵다. 콜옵션, 관계기업, 종속기업, 연결재무제표 등 어려운 단어들이 쏟아져 나온다. 기사를 본 이들은 “그래서 누가 뭘 잘못했는지 다시 말해보라”고 질문한다. 이번 사건이 어려운 것은 어쩌면 의도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해할 수 없다면 들여다보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재벌·회계사·변호사 등 엘리트 카르텔의 범법은 그렇게 ‘전문성’이란 벽 뒤에 숨어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좀 수고가 필요하다. 눈을 떼지 않고 끝까지 따라가다 보면 전문성 뒤에 숨겨진 진실을 찾아낼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마침 이번 사건은 ‘삼성바이오 내부문건’이라는 ‘가이드북’이 있다. ‘삼성 컨피덴셜(대외비)’이라고 찍혀있는 이 문건은 증선위의 판단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여기에는 삼성 바이오가 회계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한 스토리가 그대로 담겨있다.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사건이란 무엇일까? 내부문건을 토대로 사건을 시간순으로 재구성해보았다.
사태의 발단, 삼성물산 합병
2010년 경영에 복귀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태양전지, 자동차배터리, 엘이디(LED), 바이오, 의료기기 등 5대 신수종 사업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해인 2011년 삼성바이오를 설립했다. 삼성바이오는 바이오의약품을 생산하는 회사였고, 바이오의약품을 연구 개발하기 위해 미국의 생명공학기업인 바이오젠과 손을 잡고 2012년 삼성바이오에피스(삼성에피스)를 설립했다. 이후 삼성바이오는 삼성 그룹의 새로운 먹거리로 주목받았다.
순조롭게 성장해나가던 삼성바이오에게 2015년 8월5일은 ‘회사 부도 위험이 닥친 날’로 기록될지 모른다. 이날 오후 3시 삼성물산 재무팀 과장과 안진회계법인 회계사들은 인천 송도에 있는 삼성바이오 본사를 찾았다. 2015년 7월 주주총회에서 통과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결정으로 인해, 제일모직 자회사였던 삼성바이오는 통합 삼성물산의 자회사가 됐다. 합병 뒤 삼성물산·제일모직 두 회사의 재무제표를 합치기 위해서는 삼성바이오를 비롯한 자회사들의 가치평가가 필요했다. 안진회계법인 회계사들이 그 일을 맡았다. 삼성바이오 재무팀 직원은 이들이 돌아간 뒤 ‘물산 티에프(TF·태스크포스) 방문의 건’이라 쓰고 이렇게 기록했다.
“합병시 바이오로직스의 적정한 기업가치 평가를 위한 안진회계법인과의 인터뷰 진행.” “자체평가액(3조원)과 시장평가액(평균 8조원 이상)의 괴리에 따른 시장영향(합병비율의 적정성, 주가하락 등)의 발생 예방을 위한 세부 인터뷰 진행.” 주요 논의 내역 말미에 가면 ‘바이오젠사와의 삼성에피스 옵션(콜옵션) 계약 내용’도 등장한다.
이들도 당시엔 삼성에피스 콜옵션이 3년 뒤 삼성그룹과 한국 사회를 뒤흔든 ‘삼바사태’의 시발점이 될지 예상 못했던 것 같다. 물산 티에프는 물산-모직 합병 건이 잘 마무리되는데만 신경을 썼다. 합병비율은 두 회사의 주가로 결정되는데 당시 제일모직 0.35주와 삼성물산 1주를 바꾸는 합병 비율은 큰 논란을 낳았다. 제일모직 가치를 높게 평가한 이 비율대로 합병해야 제일모직 대주주였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통합 삼성물산 지분을 많이 확보할 수 있었다. 국외펀드 엘리엇 등이 여기에 반발해 합병을 결정하는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까지 가는 홍역을 앓았다. 이재용 부회장은 합병이 성사되자 삼성물산을 통해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양쪽에 대한 지배력을 단단히 할 수 있었다.
물산 티에프는 이렇게 어렵게 성사된 합병이 회계장부를 합쳐 공시하는 과정에서 다시 시끄러워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방법은 있었다. 회계장부 측면에서도 제일모직의 가치가 크다는 것을 보여주면 됐다. 안진회계법인이 선택한 것은 삼성바이오였다. 이미 ‘미래 신성장 동력’으로 꼽히던 회사였다. 2015년 10월 나온 안진회계법인의 ‘기업가치평가보고서’는 먼저 자회사 삼성에피스의 가치를 5조2726억원으로 산정했다. 여기에 삼성바이오가 가진 지분 91.2%를 곱한 4조8086억원에서 합작사 바이오젠이 가진 콜옵션(에피스 가치×41.19%?행사대금·1조8384억원)만큼 빼니 2조9702억원이 나왔다. 이 금액에 삼성바이오의 단독 가치 3조8800억원을 더하니 자회사를 포함한 삼성바이오의 가치는 무려 6조8502억원에 이르렀다. 이제 모든 걱정은 끝난 것처럼 보였다.
사태가 꼬이기 시작했다
상황은 쉽게 흘러가지 않았다. 바이오젠 콜옵션이 숨겨진 복병이었다. 콜옵션은 정해진 가격으로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바이오산업에 처음 뛰어든 삼성은 바이오젠과 합작하기 위해 바이오젠에 유리하게 합작계약을 했고, 삼성에피스 지분 ‘50%-1’ 주까지 살 수 있는 콜옵션을 줬다. 이 콜옵션은 여차하면 다른 회사에 지분을 넘겨야 하기 때문에 재무제표에 부채로 반영된다.
삼성바이오는 이 콜옵션을 그동안 부채로 반영하지 않았다. 2014년 감사보고서에 간단히 콜옵션이 있다고 언급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안진회계법인의 기업가치평가보고서에 콜옵션이 계산되자, 삼성물산과 삼성바이오의 외부감사인인 삼일·삼정 회계법인이 콜옵션에 대한 부채 및 손실을 2015년 재무제표에 반영하라고 삼성바이오에 요구했다. 모회사가 합병하는 과정에서 콜옵션의 존재가 드러나면서 느닷없이 1조8000억원의 부채를 반영해야 할 상황에 처한 것이다. 당시 삼성바이오의 자산은 1조8000억원, 부채는 9000억원이었다. 이 콜옵션 부채를 재무제표에 반영하면 삼성바이오는 자본 잠식 상태에 빠질 상황이었다. 당시 준비하고 있던 상장도 물건너갈 판이었다.
난데없는 ‘콜옵션 폭탄’에 삼성바이오 재무팀은 다른 회계법인(한영회계법인)을 찾아가 하소연도 해본다. 삼성물산에서 평가한 것과 다른 논리를 통해 평가손실액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콜옵션 가액을 산정할 수 없는지 물어본 것이다.
김경율 회계사(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는 “2014년까지 콜옵션을 공시도 하지 않았던 삼성바이오 입장에서는 굉장히 당황스런 일이었을 것이다. 모회사 합병 뒷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콜옵션 부채 1조8000억원을 반영해야 하는 폭탄이 떨어진 셈이다”고 설명했다.
잘못된 선택
결국 삼성바이오는 2015년 11월10일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에 이메일을 보낸다. 콜옵션 평가 관련 회의가 열리고 삼성바이오는 3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바이오젠과 맺은 계약서상 콜옵션 관련 조항을 수정 △삼성에피스를 연결 자회사(종속회사)에서 지분법평가 자회사(관계회사)로 변경 △에피스를 연결 자회사로 유지하되 콜옵션 평가손실 최소화 등 3가지였다.
삼성바이오는 두번째 방안을 추진한다. 이 방식은 회계적으로 매우 복잡하다. 간단히 설명하면 삼성바이오는 삼성에피스 가치가 높아져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할 가능성이 커졌다며 삼성에피스를 관계회사(공동지배기업)로 변경했다. 삼성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바꾸면, 삼성바이오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삼성에피스 지분을 바이오젠에 파는 것으로 계산할 수 있다. 삼성바이오는 이를 통해 4조5000억원의 평가이익(종속기업 주식처분 이익)을 재무제표에 반영했다. 2011년 설립 이후 줄곧 적자 기업이었던 삼성바이오는 이를 통해 2015년 결산에서 1조8000억원의 당기순이익이 있는 회사로 탈바꿈했다. 두번째안은 ‘꿩먹고(자본잠식 위험도 없애고) 알먹는(적자기업에서 흑자기업으로 바뀌는)’ 방법이었다.
삼성바이오 회계 문제에 대해 잘 아는 회계업계 관계자는 “미래전략실에 3가지 안 중에서 어떻게 가는 것이 좋을지 물어봤다는 것은 지금 삼성바이오가 설명하듯이 정말 삼성에피스 기업 가치가 커져서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바꿔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회계를 꿰어 맞춰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즉 고의로 회계나 계약서에 손을 대는 방식으로 회사의 이익을 취하려 했다는 설명이다.
발목 잡힌 삼성바이오
삼성바이오는 이후 미국 나스닥 상장을 포기하고 2016년 11월 유가증권시장 상장에 성공한다. 투자금이 몰려들어 시가총액이 한때 30조원이 넘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스토리는 그렇게 삼성의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았다.
2017년 2월 참여연대는 삼성바이오 회계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금감원에 특별감리를 신청했다. 올해 하반기 금감원에 누군가가 삼성바이오 내부문건을 전달했다. 문건은 회사의 현황을 보여주는 중요한 숫자를 왜곡한 삼성바이오의 내부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2018년 11월 증선위는 삼성바이오 내부문건을 토대로 “삼성바이오가 회사의 재무제표상 자본잠식이 될 것을 우려하여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배력 변경을 포함한 다소 비정상적인 대안들을 적극적으로 모색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분식회계로 판정한다. 증선위는 지난 14일 삼성바이오에 대해 대표이사 해임 권고, 과징금 80억원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 조처했다. 감사를 맡은 삼정 회계법인은 중과실 위반으로 과징금 1억7000만원을 부과하고, 업무를 맡았던 회계사 4명에 대한 직무정지도 건의했다. 삼성바이오 주식은 이날부터 거래가 중지됐다.
내부문건을 통해 재구성한 삼성바이오의 스토리는 2015년 대주주에게 큰 이익을 안긴 모회사 합병이 자회사에는 ‘날벼락’을 가져왔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2015년 이후 삼성바이오는 제일모직 삼성물산 합병에 대한 사후합리화와 분식회계 이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바이오가 증선위의 고의 분식회계 판정에 맞서 낸 행정소송도 앞으로 몇년이 걸릴지 모르다. 새 성장 먹거리를 찾아야할 시점에 단단히 발목이 잡힌 셈이다.
오랫동안 삼성바이오 분식회계를 추적한 홍순탁 회계사(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는 “삼성바이오 분식회계의 출발점은 삼성물산 합병이었다”며 “금융당국이 이제 삼성물산으로 눈을 돌려야할 때”라고 주장한다. 삼성바이오에서 분식회계가 발생한 이유가 모회사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과정과 관련이 있다는 증거가 내부문건을 통해 드러나 있다는 것이다. 반면 금융당국은 검찰에서 수사를 통해 밝혀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홍순탁 회계사는 “이번 분식회계를 계기로 주식시장을 통한 편법상속이 종지부를 찍었으면 좋겠다. 그동안 재벌 계열사끼리 합병은 전체 주주를 위한 것이 아닌 총수일가만을 위한 합병이었다. 그 과정에서 주식 시장의 수많은 개인 투자자들이 손해를 봤다. 펀드를 통한 간접피해까지 고려하면 그 피해자는 국민 대다수일 것”이라고 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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