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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0.20 13:44 수정 : 2018.10.20 14:47

[토요판] 뉴스분석 왜
브라질 대선 ‘극우 돌풍’

결선투표 앞둔 대선 여론조사
극우 보우소나루 큰 차이 우세
룰라와 노동자당 예전만 못해
“룰라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

대선 이기려 당 정책 바꾸고
정치권 부패 척결의지도 없어
당 지휘부는 룰라 감싸기 급급
수백만명 항의시위 역풍 불러

부패, 범죄 만연, 경제난 틈타
군사독재정권으로 회귀 꿈꾸는
극우 포퓰리스트 승리 가능성
브라질 민주주의 운명 기로에

▶ 브라질은 오는 28일 대선 결선투표를 치른다. 남미 좌파의 영웅, 룰라 전 대통령도 옥중 출마를 하려했으나 법원 판결로 좌절됐다. 그가 대리인으로 세운 노동자당(PT) 후보는 2위로 결선투표에 올랐다. 그러나 여론조사에서는 군사독재로의 회귀를 꿈꾸는 극우 후보가 크게 앞선다. 룰라와 노동자당은 왜 힘을 잃었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브라질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지난 4월 상파울루의 금속노조 건물 앞에서 룰라를 태우고 행진하고 있다. 뇌물 혐의로 12년1개월 형을 선고받은 룰라는 옥중에서 대선에 출마하려 했으나 좌절됐다. 상파울루/AFP 연합뉴스
남아메리카 좌파의 상징,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이라고 했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72)는 지금 브라질 쿠리치바 교도소에 갇혀 있다. 브라질 대통령으로 재직하던 2009년 건설업체 오데브레시가 국영 석유회사 페트로브라스와의 수주 계약을 따낼 수 있게 도와주는 대가로 건설회사로부터 370만헤알(11억여원) 상당의 해변가 3층짜리 아파트를 받은 혐의로 2심에서 징역 12년1개월을 선고받았다. 룰라는 아파트를 소유한 적도 그곳에서 살아본 적도 없다며 혐의를 부인한다.

대선에 대리인 내세운 룰라

그는 지난 8월14일 미국 <뉴욕타임스>에 보낸 기고문에서 “나를 감금한 것은 브라질에서 진보세력을 영원히 주변화하려는 ‘슬로우 모션’(slow-motion) 쿠데타의 일환”이라며 “우익 쿠데타가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언론과 사법부, 신자유주의 엘리트 그룹을 쿠데타 세력이라고 규정했다. 이튿날인 8월15일 노동자당(PT)은 룰라를 대통령 후보로 연방선거법원에 등록했다.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룰라는 두 배 차이로 2위 후보를 따돌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통령은 따놓은 당상처럼 보였다.

그러나, 법원은 같은달 31일 뇌물 혐의로 복역 중인 룰라한테 출마 자격이 없다고 밝혔다. 룰라는 이번에도 대리인을 선택했다. 애초 부통령 후보였던 페르난두 아다드(55)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웠다. 아다드는 룰라 정부에서 교육장관을 지내고, 상파울루 시장을 지낸 바 있다. 룰라는 옥중서한을 통해 “지금부터 아다드가 수백만 국민의 룰라”라고 말했다. 오는 28일 2차 결선투표를 앞두고 있는 브라질 대선은 결국 룰라의 대선이다. 상대는 군사독재로의 회귀를 꿈꾸는 극우 포퓰리스트다.

지난 7일 치러진 대선 1차 투표에서 극우 사회자유당(PSL)의 자이르 보우소나루(63) 후보가 46.03%, 좌파 노동자당의 아다드 후보가 29.28%를 얻어, 결선투표에 진출했다. 득표수는 보우소나루가 4920만표, 아다드가 3130만표였다. 룰라의 대리인으로 나선 아다드가 결선에 진출하기는 했지만 보우소나루와 차이가 1790만표나 됐다. 정당이 난립하는 브라질에서 결선투표를 앞두고 정당간 연합이 이뤄지기도 해 결선투표에서 뒤집어질 가능성도 있지만, 여러 정당들은 이미 중립을 선언한 상태다.

1차 투표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도 보우소나루가 큰 차이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론조사업체 이보피가 지난 15일 유권자 2506명한테 물은 결과, 예상 유효득표율(기권·지지 후보 미정 등 제외)은 보우소나루 59%, 아다드 41%로, 18%포인트의 격차를 보였다. 앞서 여론조사업체 다타폴랴가 지난 10일 유권자 3235명한테 물었을 때도 예상 유효득표율이 보우소나루 58%, 아다드 42%로 조사됐다. 지금 추세라면 보우소나루가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이 크다.

룰라와 노동자당은 왜 힘 빠졌나

극우 사회자유당(PSL)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후보. 연합뉴스
룰라의 영향력은 예전만 못하다. 결선투표를 앞둔 아다드의 홍보물에서는 룰라의 얼굴이 사라졌다. 아다드와 부통령 후보인 브라질 공산당의 마누엘라 다빌라(37) 사진만 등장한다. 1차 투표를 앞둔 선거운동 때 홍보물에는 룰라와 함께 3명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아다드가 대통령에 당선되려면 룰라의 지원과 룰라 지지층의 표를 확보해야 하지만, 부패 혐의로 감옥에 갇힌 사실이 장애가 되고 있다. 지지층을 넓히려면 ‘룰라의 꼭두각시’라는 이미지를 벗어야 하기 때문이다. 룰라도 1차 투표가 끝나고 찾아온 아다드에게 ‘선거가 끝날 때까지는 찾아오지 말라’고 했다고 브라질 언론들은 전했다.

룰라는 2010년 대선 때 자신의 후계자로 지우마 호세프(70)를 내세워 승리한 바 있다. 당시 호세프는 9명의 후보가 출마한 1차 투표에서 46.91%를 얻었고, 2차 투표에서 당선됐다. 반정부 게릴라 출신인 호세프는 브라질의 첫 여성 대통령이 됐다. 이번 대선에서는 룰라와 노동자당은 이전같은 힘을 보여주지 못했다. 대선과 함께 치러진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한 호세프는 투표 전에는 가장 당선이 유력한 후보였으나 4등으로 낙선했다. 하원에서 노동자당 의원은 61명에서 56명으로 줄어든 반면, 사회자유당은 8석에서 52석으로 크게 늘었다. 하원의원(전체 513명)을 배출한 정당이 무려 30곳이다. 보우소나루의 극우 포퓰리즘 바람에 노동자당은 맥을 못췄다.

노동자당은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크고, 가장 성공한 좌파 정당이다. 집권 기간 동안 2천만명을 빈곤에서 구제하고 중산층을 크게 늘렸다. 브라질의 면적과 인구(세계 5위)에 걸맞은 국제적인 위상을 브라질에 가져다 줬던 룰라와 노동자당은 왜 이렇게 추락했을까. 미국의 진보 잡지 <더 네이션>은 “룰라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며 “노동자당은 룰라에게 매우 유익했으나, 룰라는 노동자당한테 동일하게 유익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룰라의 노동자당에 대한 지배력이 너무 큰 게 노동자당의 발목을 잡는다는 얘기다.

룰라는 말 그대로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는 1945년 브라질 북동부의 빈민 가정에서 태어났고, 7살 때 가족이 상파울루로 일자리를 찾아 떠났다. 10살이 돼서야 학교에 가 글자 읽는 법을 배웠으며 14살 때 철강공장에서 처음 일자리를 얻었다. 18살 때는 야간작업을 하다가 왼손 새끼 손가락을 잃었다. 23살 때 같은 공장에서 일하던 여성과 결혼했으나 부인은 이듬해 간염에 걸려 뱃속의 아기와 함께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숨졌다. 룰라는 산업재해에 눈을 떴고, 노동운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했다. 1975년 금속노조 위원장이 된 뒤 파업을 조직하며 군사독재정권(1964~1985년)에 맞섰다. 1980년 4월 노동자들에게 “노동계급은 전투와 인내, 끝까지 싸우려는 의지가 없이는 이 세계에서 아무것도 쟁취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때 그는 파업 주동 혐의로 체포돼 한 달 동안 갇혔다가 풀려났고 이후 노동자당 창당을 주도했다. 노동자당 대통령 후보로 1989년부터 출마해 4번째인 2002년 당선됐다. 룰라는 3연임이 금지된 헌법에 따라 8년 동안 재임한 뒤 물러났다. 그가 퇴임할 당시 지지율은 80%를 넘었다.

부정부패와 타협

룰라가 곧 노동자당이었고 노동자당이 곧 룰라였다. <더 네이션>은 룰라가 노동자당을 대통령 당선을 위한 수단으로 삼으면서 노동자당이 룰라의 정치 경력과 무관하게 자체 발전해 갈 수 있는 길에 장애가 됐다고 지적한다. 이 잡지는 “룰라는 당을 ‘포괄정당’(catch-all party·특정 계급이나 이념을 대변하지 않는 국민정당)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당의 정책은 룰라의 대선 전략에 따라 바뀌었다. 1994년 대선 때는 낙태와 동성 결혼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고, 2002년에는 보수적인 사업가로 자유당 소속 조세 알렝카르(1931~2011)를 러닝메이트로 선택해 노동운동 진영을 실망시키기도 했다.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중도와 우파 진영에 손을 내민 룰라의 ‘주류화’ 전략은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녹색당 등 좌파 진영을 노동자당의 우산 아래로 결집시키는 것을 어렵게 했다.

가장 큰 문제는 룰라가 노동자당 내부는 물론 정치권의 부정부패를 척결하려는 의지가 부족했거나 없었다는 점이다. 2005년 6월 노동자당 대표인 호베르투 제페르송 전 의원의 폭로로 ‘멘살랑’(고액월급) 스캔들이 터졌는데, 노동자당이 법안 통과를 위해 야당 의원들에게 매달 1만3000달러를 지급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으로 노동자당 전 대표, 룰라의 비서실장 등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룰라도 의원 매수 계획을 알고 있었다는 진술이 나왔으나 룰라는 전혀 모른다고 주장했다. 이런 사건이 있었는데도 룰라는 뒷돈으로 상대를 매수하는 것을 뜻하는 ‘브라질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14년 돈세탁 사건 수사에서 시작돼 국영기업 페트로브라스를 매개로 한 정치권의 대규모 뇌물 사건으로 번진 ‘세차 작전’ 수사에서 룰라의 비리 혐의가 불거졌다. 2016년 3월 룰라가 돈세탁, 뇌물 등 혐의로 기소될 위기에 놓이자 당시 호세프 대통령은 룰라를 내각 서열 2위인 수석장관에 임명했다. 브라질에서는 연방대법원만 내각의 장관을 기소할 수 있어, 기소를 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이 많았다. 호세프와 노동자당 지휘부는 룰라를 보호하기 위해 똘똘 뭉쳤고, 내부 비판을 단속했다. 역풍은 컸다. 수백만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정치권의 부패를 규탄했다. 4월에는 호세프 대통령 탄핵안이 하원에서 가결됐고, 8월에는 상원에서도 가결돼 호세프는 탄핵됐다.

하원에서 탄핵안이 가결됐을 때 보우소나루는 “카를루스 우스트라 대령을 기억하며” 그의 찬성 투표를 우스트라 대령에게 헌정한다고 했다. 우스트라는 군사독재정권에서 ‘도이코지’(DOI-CODI)라는 정보·방첩기구를 이끌면서 반정부 인사들을 잔혹하게 고문한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보우소나루가 대통령이 됐을때 브라질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호세프도 반정부 게릴라 활동을 하다가 붙잡혀 이곳에서 고문을 당한 바 있었다.

극우 포퓰리즘의 발호

‘브라질의 트럼프’로 불리는 보우소나루는 “나는 (도널드) 트럼프를 숭배하는 사람이다. 나도 위대한 브라질을 원한다”고 말한다. 극우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그의 막말은 트럼프를 능가할 정도다. 2014년에는 한 여성 의원에게 “나는 당신을 강간하지 않아. 왜냐면 당신은 그럴 가치가 없어. 너무 못생겼어”라고 말해 벌금형을 받았다. 그는 여성이 임신을 하기 때문에 남성보다 임금을 적게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2011년 <플레이보이>와의 인터뷰에서는 “나는 동성애자 아들을 사랑할 수 없을 것이다. 사고를 당해 죽는 게 더 낫다”고 했다. 그는 2016년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는 “독재정권의 실수는 사람을 고문하고 죽이지 않은 것이다”고 말했다. 보우소나루는 총기 소유 규제를 완화하고, 경찰이 범죄 현장에서 흉악범을 사살할 수 있도록 하며, 사형제를 부활시키겠다고 말한다.

브라질에서는 지난해 6만3880명이 살해돼 전년보다 피살자가 3% 늘었고, 강간범죄도 6만18건 발생해 전년보다 8% 증가했다. 브라질의 만연한 범죄는 보우소나루 같은 극우 선동가의 강경한 발언에 귀를 솔깃하게 했다. 더욱이 지난달 6일 보우소나루가 선거 유세를 벌이다가 ”신의 뜻이었다”며 횡설수설한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입원한 것도 그의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요인이 됐다.

브라질 경제는 2000년대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높은 성장률을 보이다가 2012년께부터 원자재 가격이 떨어지면서 성장세가 꺾였다. 브라질중앙은행에 따르면, 2014년 성장률은 0.5%, 2015년 -3.5%, 2016년 -3.5%, 2017년 1.0%를 기록했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브라질 성장률을 1.4%로 예측한 바 있다. 실업률은 서서히 낮아지고는 있지만 올해 6∼8월 평균실업률이 12.1%로 높다.

신흥시장 관련 기사를 <포브스> 등에 기고하는 케네스 러포자는 “2002년 룰라가 압도적으로 승리해 전세계를 놀라게 했던 대선을 취재한 사람으로서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이번에는 보우소나루와 같은 활력과 모멘텀을 갖고 있는 후보가 없다”며 “마치 2002년을 보는 것 같다”고 말한다. 브라질 역사를 거꾸로 되돌릴 수 있는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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