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캣맘 벽돌 사망 사건’이 벌어진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경찰이 14일 오후 현장 검증 활동을 벌이고 있다. 경찰은 16일 이 사건의 용의자로 한 초등학생(10)을 지목했다. 초등학생이 아파트 옥상에서 물건 낙하 놀이를 벌이다 벽돌을 던졌다는 진술을 경찰은 받아냈다. 현재로서는 캣맘과의 다툼에서 벌어진 사건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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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뉴스분석 왜?
캣맘과 길고양이
▶‘캣맘’이라고 들어보셨나요?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며 돌보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가정에서 보호받는 개와 달리 길에서 굶주리는 경우가 많은 고양이를 안타깝게 여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러 다닙니다. 그런데 이를 싫어하는 주민들도 꽤 많습니다. 자칫 사회문제가 될 수도 있어 보이는데요. 주민들의 불편이 뭔지, 캣맘들의 고충은 뭔지 살펴봤습니다. 지자체가 정책을 만들고 서로 오해를 풀게 하는 일이 급선무 같습니다.
14일 밤 9시30분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동의 한 아파트 단지 앞 경비 초소에서 소란이 일었다.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려 하는 ‘캣맘’ 조영례(53)씨와 이를 막으려 하는 경비원과 말싸움이 붙었다. 조씨는 5년 전부터 이곳의 길고양이 40~50마리에게 밥을 주어왔다. 최근 지역 주민들이 길고양이에 대한 민원을 제기해 조씨와 다툼 중이다. 이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지난 5월 길고양이로 인한 피해 보상을 캣맘들에게 부과하는 안건을 주민 동의로 통과시켰다. 이후 주민들의 길고양이 먹이 공급 방해는 더욱 심해졌다. 이날 나무 밑에 놓아둔 고양이 밥그릇에 누군가 흙을 뿌려놓아 조씨는 속이 상했고 경비원은 조씨를 막지 않으면 자신이 곤란해질 수 있어 둘은 밤에 설전을 벌였다.
“왜 여기서 고양이 밥을 계속 줘요? 집에 데리고 가서 키워요.”
“길고양이는 길에 있어야죠. 왜 집으로 데려가요?”
“내가 고양이 때문에 얼마나 힘든지 알아요? 고양이 똥 치우느라 힘들어요. 저 놀이터에 흙 파보면 고양이 똥이 얼마나 많은데.”
“제가 밥을 안 주면 고양이가 똥을 안 쌀 것 같아요?”
“그렇겠지.”
“아니에요. 오히려 음식물 쓰레기 파헤쳐서 먹고 더 냄새나는 똥을 싸요. 사료 먹은 고양이는 똥냄새도 덜해요.”
“고양이가 밤에 우는 소리도 엄청 시끄러워요.”
“고양이를 다 포획하면 고양이가 없어질 거 같아요? 다른 지역에 있는 고양이가 또 건너와 터를 잡을 거예요.”
“아무튼 밥 주지 마요.”
“그럴 순 없어요. 이건 불법이 아니에요.”
“신문도 안 봤어요? 그러다 당신도 벽돌 맞을 수 있어요.”
“지금 여자한테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나도 어쩔 수가 없어요. 관리사무소에서 밥 못 주게 시켰으니 관리사무소장에게 따져요.”
“그럴게요. 하지만 소장에게 전화하면 전화를 끊어버려요!”
말다툼은 20여분간 진행되다 경비원이 순찰을 돌아야 한다며 자리를 뜨면서 끝났다. 말다툼이 끝나자 갑자기 어딘가에서 어슬렁거리며 나타난 고양이가 조씨 곁을 맴돌았다. “아이고. ‘판박이’구나. 너 일주일 동안 왜 안 보였던 거니?” 조씨는 동네 고양이 한마리 한마리를 구분할 수 있다고 했다. 판박이는 조씨가 지은 이름이다. 판박이는 작은 플라스틱 그릇에 부어주는 사료를 얌전히 먹고 이내 사라졌다.
갈수록 커지는 캣맘과 주민 갈등고양이 밥 주지 말라는 사람들과
밥 줘도 고양이 수 안 는다는 주장
맞서다가 폭력사건 벌어지기도
“지자체의 중재 노력 필요” 지적 강동구는 ‘길고양이 급식소’ 마련
중성화 정책 병행하니 음식 줘도
개체수 안 늘고 민원도 많이 줄어
어차피 길고양이 줄일 수 없다면
‘동네 주민’ 인정하는 건 어떨까 먹이 준다고 고양이가 늘까? 지난 8일 경기도 용인시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길고양이에게 집을 지어주던 사람이 어딘가에서 날아온 벽돌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캣맘과 지역 주민 사이 갈등이 부각되고 있다. 이 사건은 결국 한 초등학생이 ‘낙하실험 놀이’를 하다 벌어진 우발적 사건으로 경찰 수사로 드러나고 있지만, 사회적으로 길고양이 문제를 환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캣맘과 지역 주민과의 다툼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기에 지방자치단체가 더 적극적인 중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길고양이 수가 정확히 얼마인지 알 수는 없지만 대략 서울시에만 25만마리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동네마다 600마리 정도가 사는 셈이다. 전국에서 수많은 캣맘·캣대디(자발적으로 밥을 주는 등 길고양이를 돌보는 사람들)들이 활동하며 길고양이의 생존을 돕고 있다. 지역별로 캣맘협의회를 조직해 지자체의 동물보호 사업을 돕거나 고양이 학대범을 고발하기도 한다. 길고양이를 불편해하는 주민들은 캣맘 때문에 고양이가 늘고 있다고 주장한다. 캣맘이 없다면 고양이들이 먹이를 못 먹을 것이고 자연스레 번식도 줄어들어 고양이가 줄어들 것이란 논리다. 일부 아파트 단지 관리사무소는 길고양이에게 먹이 주는 것을 금지하는 공고문을 붙이기도 한다. 또 고양이를 좋아하면 집에 데려가서 키우지 왜 동네에서 돌보면서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까지 불편을 끼치냐며 불만을 제기한다. 그러나 ‘캣맘·캣대디 활동’을 하는 이들의 의견은 다르다. 먼저, 먹이를 준다고 해서 길고양이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길고양이 개체수는 더는 새끼를 낳지 못하게 하는 중성화수술(TNR·Trap-Neuter-Return)을 통해 조절하는 것이지 캣맘의 먹이 공급 유무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길에서 살아가는 길고양이를 포획해 없애야 한다는 주장은 지구에 인간만이 살아가야 하고 다른 동물의 존재로 발생하는 어떤 불편함도 감수할 수 없다는 ‘인간 중심주의’라고 반박한다. 길고양이를 포획해 눈앞에서 없애버리더라도 곧 다른 지역에 머물던 고양이들이 건너와 번식해 결국 비슷한 개체수를 회복한다고 한다. 포획과 살처분은 비윤리적일 뿐 아니라 과학적인 개체 조절 방법으로 보기 어렵다는 평가다. 지방자치단체의 설명을 들어보면, 캣맘들의 주장에 근거가 있어 보인다. 서울시 동물보호과 배진선 주무관은 15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길고양이 개체수 조절과 관련한 가장 중요한 정책은 중성화수술이지 캣맘의 먹이 공급이 아니다. 먹이를 주면 물론 새끼들이 많이 태어날 수 있지만 6개월 내에 상당수가 죽는다. 개체 밀도가 높아지면서 질병 등 자연 감소 원인이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주민들의 길고양이에 대한 여러 민원 중 하나가 교미할 때 내는 시끄러운 소리다. 이 역시 중성화수술을 통해 번식을 제한하면 자연스럽게 사라지는데 수술을 실시한 고양이는 1년에 4~5회 찾아오는 발정기가 없어진다고 한다. 중성화수술 정책은 2006년 이른바 ‘한강맨션 고양이 사건’을 계기로 서울시가 도입한 길고양이 개체수 관리 정책이다. 선진국에서는 1990년대부터 도입했다. 서울 용산구 이촌동 한강맨션 지하실에 고양이들이 들끓자 아파트 관리위원회에서 지하실을 폐쇄했고 고양이들이 집단 폐사할 위기에 놓였다. 그러자 고양이를 걱정한 주민들이 철문을 뜯어내고 고양이 중성화수술을 진행한 뒤 방사했다. 이후 고양이 수가 크게 줄었고 다툼은 잦아들었다. 서울시는 2008년 1월부터 25개 자치구에 길고양이 중성화수술을 시행하게 했다. 수술비용은 서울시와 구청이 각각 50%씩 부담한다. 특정 지역에서 길고양이 개체수가 늘고 있다면 캣맘을 비난할 게 아니라 지자체의 중성화수술 노력과 성과를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길고양이 중성화수술을 위해 꼭 필요한 존재가 캣맘·캣대디이기도 하다. 캣맘 등은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기 때문에 고양이가 가장 편하게 느끼는 존재다. 캣맘은 중성화수술 대상인 고양이 포획과 방사에 결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 각 지자체는 실제 캣맘·캣대디를 활용해 중성화 대상 고양이를 포획한다. 캣맘 엿먹이는 방법? 하지만 길고양이를 불편해하는 주민들과 캣맘·캣대디와의 갈등 또한 커지고 있다. 인터넷에는 ‘캣맘을 엿먹이는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다양한 글들이 게시되고 있다. “참치캔에 기름을 버리고 (차량용) 부동액을 넣으면 된다”는 글부터 “어미 고양이는 미각이 새끼보다 둔하니 소금을 부동액과 알코올에 섞어놓으면 효과가 확실하다”는 ‘캣맘 혐오 게시 글’이 올라오고 있다. 캣맘과 길고양이에 대한 공격도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2012년 7월 인천에서 한 캣맘이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다 이에 불만을 품은 주민에게 폭행당하고 음식물 쓰레기통에 처박힌 사건은 유명하다. 지난달 30일 경기도 남양주에서는 길고양이를 아파트 위층에서 집어던져 죽인 사람이 있었고, 8월 말 충북 청주에서는 누군가가 고양이 몸에 30㎝ 나뭇가지를 박아 학대한 일도 있었다. 학대당한 길고양이에 대한 제보는 하루가 멀다 하고 동물보호단체에 접수된다. 길고양이는 동물보호법에 따라 보호받는 동물이다. 쥐약 등 독극물이나 도구를 이용해 죽이면 징역 1년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이에 아랑곳 않고 벌어지는 캣맘과 고양이에 대한 폭력사건이 많아지고 있기에 지자체 등 관계기관이 좀더 심각하게 문제를 인식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체로 시·군·구 기초지자체의 길고양이 문제 전담 인력은 한두명에 그친다. 길고양이에게 입은 피해에 대한 민원이 고양이 보호 민원보다 숫자상 많기 때문에 지자체가 양쪽의 중재보다는 캣맘에게 비우호적일 때가 많다는 게 캣맘들의 주장이다. 서울시 동물보호과에 따르면, 서울시에 들어오는 고양이 ‘혐오 민원’과 고양이를 잘 돌보라는 ‘애호 민원’의 비율은 8 대 2 수준이다. 기자가 벽돌 사망 사건이 벌어졌던 용인시 수지구의 한 아파트 단지를 14일 오후 찾았을 때 이곳 주민들은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 경찰의 현장검증을 지켜보고 있었다. 주민 오세희(58)씨는 “여름에는 창문을 열기가 어려울 정도로 고양이 소리가 잦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캣맘과 주민들 사이 갈등이 있지는 않았다. 이번 벽돌 사건도 설마 사람을 죽이려고 벌어진 일일까 싶기는 하다”면서도 “생명을 사랑하는 분들과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 사이 갈등이 커지지 않도록 어떤 대책이 있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동물보호단체는 서울시 강동구를 지자체의 모범 행정 사례로 꼽는다. 강동구는 2013년부터 구청 앞이나 공원 등 구내 공공장소에 60개의 ‘길고양이 급식소’를 설치했다. 구가 유지 및 보수를 담당하고 캣맘들이 직접 먹이를 공급한다. 사료는 업체 후원을 받아 공급해 구비는 들지 않는다. 강동구청 생활경제팀 관계자는 “급식소 설치 이전에는 길고양이가 쓰레기봉투를 찢는 것에 대한 민원이 많았는데 고양이들이 급식소에서 먹이를 공급받으면서 관련 민원이 많이 줄었다. 길고양이 중성화수술을 병행하고 있어 개체수 변화에도 큰 차이가 없다”고 밝혔다. 구청이 지정한 곳에서 캣맘들이 먹이를 주기에 지역 주민과의 갈등도 크게 벌어질 일이 없다. 이번에 사고가 벌어진 용인시 관계자는 “현재는 고양이 중성화수술 외에 특별한 길고양이 정책이 없지만 강동구처럼 길고양이 급식소 설치를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길고양이도 지역사회 일원”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지자체가 ‘캣맘 주의사항’ 안내판을 설치하거나 관련 조례 등을 만들어 길고양이를 관리하고 불필요한 다툼을 줄이려 노력하고 있다. 교토시는 ‘길고양이 등에게 먹이를 줄 때 먹이를 공급하려는 장소의 자치회, 반상회 등 지역단체 혹은 주변 주민에게 먹이를 주는 쪽 책임자의 연락처를 알려야 하고 먹이를 먹은 고양이의 배설물을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등의 규정을 두고 있다. 캣맘의 먹이 공급을 허용하되 다른 주민과 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캣맘에게 사전 주의를 유도하는 것이다. 또 지역 주민들도 캣맘의 활동을 존중한다. 캣맘이 길고양이 중성화수술을 위한 포획에 필수적인 존재라는 것을 알고 되레 지역 주민들이 캣맘 활동 비용을 지원한다는 게 고양이 보호 단체의 설명이다. 일본과 미국에서는 길고양이를 ‘지역 고양이’(community cat)라는 말로 대체해 부르려는 움직임이 있다. 길고양이가 ‘동네의 이방인’이 아니라 사람과 마찬가지로 ‘동네 구성원’이라는 개념이 내포된 단어다. 길고양이를 좋아하고 싫어하고는 각자의 자유이지만 사람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엄연한 생명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게 동물보호론자들의 생각이다. 이른바 ‘용인 캣맘 사망 사건’이 길고양이와 관련이 없다는 게 드러나면서, 길고양이 문제를 캣맘과 지역 주민 사이의 갈등으로 바라보는 것도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고양시 명랑고양이 협동조합 서주연 이사장은 “캣맘과 주민 사이를 중재하러 가면, 길고양이에 대한 혐오보다는 사회에서 쌓인 분노를 어딘가에 풀 곳이 없어 고양이에게 화풀이하다 벌어진 경우가 많다. 캣맘과 주민 간의 갈등으로만 볼 게 아니라 길고양이를 도시 생태계의 일원으로 인정하고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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