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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4.03 20:08 수정 : 2015.04.04 10:04

[토요판] 뉴스분석, 왜?
김형식 시의원 살인교사 항소심

▶ 정면으로 혐의가 부딪칩니다. 둘 중에 한명은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강서구 재력가를 살인하도록 시켰다는 혐의(살인교사)로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김형식 의원의 항소심 재판이 열렸습니다. 한때 친구였다는 두 사람은 정말 친구였을까요? 이 사건은 살인을 넘어, 돈과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형사재판은 심리학이다. 이 사건은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형법 13조 ‘범의’(범죄의 의도). ‘죄의 성립요소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단,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 범의의 실체는 형사재판의 중요한 쟁점이다. 486 출신의 젊은 야당 시의원, 전과 누범인 지역 유지에게서 물적 지원을 받은 부도덕한 정치인이자, 두 남매의 아버지, 부장검사 출신 형의 동생, 한 여동생의 오빠인 45살의 남자가 왜 살인교사를 했는가. ‘스폰서 재력가’를 살인교사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형식(45) 서울시 의원의 항소심에서 검찰이 다시 입증해야 할 혐의다.

재판부도 추궁한 김씨의 이상한 쪽지

살인교사 혐의로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김 의원과 살인 혐의를 받는 팽아무개(45)씨의 세번째 공판이 서울고법 형사2부(재판장 김용빈) 심리로 지난달 26일 서울고법 302호 법정에서 열렸다. 혐의를 두고 검찰과 변호인이 다툰 사실상 첫 공판이었다. 팽씨는 이날 증인 자격으로 출석했다. 김 의원의 살인교사 혐의의 거의 유일한 증거는 팽씨의 진술이다. 김 의원의 변론을 맡은 법무법인 바른 소속의 변호인 4명이 팽씨를 세 시간 가까이 심문했다. 변호인들은 살인교사를 받았다는 팽씨의 진술이 비논리적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지난해 3월 서울 강서구에 빌딩 등 수천억원대 부동산을 소유한 재력가 송아무개(당시 67살)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강서경찰서는 수사 끝에 지난해 5월 중국에서 살인범 팽씨를 체포했다. 이어 경찰은 팽씨에게 살인을 교사한 혐의로 6월 김형식 의원을 구속했고 서울남부지검은 보강수사를 거쳐 7월 팽씨와 김 의원을 각각 살인과 살인교사 혐의로 기소했다. 김 의원이 빌딩의 용도변경과 관련해 송씨에게 청탁과 함께 5억2000만원을 받았는데 이를 실행시키지 못했고, 이후 송씨에게서 압박을 받자 살인교사했다는 것이 기소의 주내용이었다. 김 의원은 혐의를 다 부인했다. 5억2000만원을 차용한 적이 없고 다만 백지차용증만 써줬다고 했다. 교사한 적도 없다고 했다. 실제 계좌이체 등 돈거래 흔적은 없었다. 검찰은 송씨의 매일기록부와 팽씨의 진술을 증거로 들었다. 재판은 김 의원 쪽 요구로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고 서울남부지법 형사11부(재판장 박정수)는 지난해 10월 검찰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판단하고 팽씨와 김 의원에게 각각 징역 25년과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김 의원은 사업 실패로 생계가 곤란해진 팽씨의 단독 범행이라고 주장했으나 배심원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재판부도 배심원 평결처럼 유죄 판결했다.

이날 항소심에서도 범의와 범의가 충돌했다. 팽씨는 이날도 1심 때와 같은 진술을 했다. 반면 김 의원 쪽 변론의 요지는 두 개였다. 첫째, 김 의원은 송씨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 살인을 교사할 범의가 없었다. 둘째, 팽씨는 단독으로 강도의 범행을 할 범의가 있었다.

살인교사가 정말 있었는가, 아니면 팽씨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 2심 재판부가 내려야 할 사실인정은 저 둘 중 하나다. 어떤 결론을 내리더라도, 둘 다 보통 시민들에게는 충격적이다. 전자라면 김 의원은 거짓 눈물까지 보이며 살인교사 혐의를 부정하고 과거의 친구를 위증자로 내몬 악한 인간이다. 후자라면, 팽씨는 과거의 친구에게 죄를 덮어씌운 배신자가 된다.

‘친구 관계에서의 태도와 행동’이 실제로 이날 항소심에서도 중요한 쟁점이 됐다. 김용빈 부장판사는 김 의원의 이상한 행동을 추궁했다. 체포된 뒤 김 의원이 팽씨와 구치소에서 주고받은 쪽지에 대해 물었다. “피고인(김 의원) 입장에서 증인(팽씨)이 허위진술을 해서 자기 스스로 강도범행을 저지르고 피고인에게 뒤집어씌운 것이라면 매우 억울한 일로 (구치소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쪽지 내용에 원망하는 투가 하나도 없다. 그리고 오히려 부족한 법률 지식을 (팽씨에게) 알려주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쪽지를 보낸 이유가 뭐고 왜 그런 내용을 썼나?”

지난해 6월 김 의원은 체포된 뒤 교도관을 통해 팽씨에게 ‘묵비하라’는 등의 내용을 담은 쪽지를 건넸고 이 쪽지가 언론에 보도됐다. 당시 쪽지에는 화를 내는 내용이 없었다. ‘얼굴 보니 좋다’는 대목도 있었다. 김 의원은 수사 초기 경찰이 입회한 변호인을 끌어내는 것을 언급하며 “굉장히 묵비권을 행사해야 되는구나, 국정원이 움직이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이에 재판장이 “친구가 말도 안 되는 모함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친구한테 ‘너 왜 그래’라고 질책하게 되면 더 큰 해를 당할까봐, 증인에게 믿고 사실대로 이야기하라고 한 취지입니까”라고 되묻자 김 의원은 “네”라고 답했다. 김 의원은 국가정보원이 수사의 배후에 있다고 생각했고, 팽씨가 국정원에 동조하고 있으므로 일부러 화를 내지 않았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김 의원의 ‘이상한 태도’는 1심에서 검찰도 중요하게 문제 삼았다. 검찰은 지난해 1심 공판 때 김 의원에게 “팽의 허위진술에 의해서 살인죄로 처벌받게 된 상황인데요, 아마 미칠 것 같은 심정인데 그럼에도 ‘미안하다, 친구 얼굴 보니 좋다’ 이렇게 이야기한 이유가 뭐냐고요”라고 추궁했다. 검찰은 이어 “팽씨하고 싸우거나, 그런 상황(위증이 벌어지는 상황)이 되면 큰 소리로 싸우거나 그런 일이 있어야 되는데 그런 적은 있었습니까”라고 물었다. 당시 김 의원은 “굉장한 눈싸움은 했습니다”라고 비상식적인 답을 했다.

검찰과 변호인이 다툰 첫 공판
살인범 팽씨도 증인 자격 출석
변호인은 김씨 범행동기 없고
팽씨의 진술에 허점이 있다며
집중적으로 증인을 심문했다

팽씨의 둘째 형은 대구에서
새정치민주연합 간부로 활동
팽씨는 김씨 선거 때 운전 도와
큰형 위해 김씨에게 큰 돈
빌렸는데 형이 갚지 않고 잠적

존경하는 친구 위해 살인도 할 수 있나

이날 변호인은 팽씨의 태도를 추궁했다. 변호인이 이날 항소심에서 팽씨에게 “2012년경 피고인(김 의원)으로부터 (송씨를) 죽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차용증 관련 말 이외에 땅에 관한 말은 듣지 못했다는 거죠?”라고 물었다. 팽씨는 “그렇죠”라고 답했다. 변호인이 “증인(팽씨)은 2013년 말경에는 피고인(김 의원)의 교사 강도가 심해지고 증인이 이런저런 핑계로 범행(살인)을 미루면 심하게 화를 내고 짜증낸다고 진술했죠?”라고 다시 물었고 팽씨는 “네”라고 답했다. 이어 변호인은 “살인교사에 대해서, 자세한 게 궁금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왜 사람을 죽여야 하는지 궁금하지 않으셨습니까?”라고 심문했다. 팽씨는 이에 “친구의 이야기였고요, 처음엔 정말 농담인 줄 알았고요, (중략) 친구니까 오랜 시간 알고 지내면서, 시간이 지나면 잘 해결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도 했었고요, 변호사님 말씀하신 대로 궁금해서 물어본 거는 계속 물어봤죠. 그런데 알 것 없다고 (말을) 잘라버리니까”라고 답했다.

아무리 가까운 친구 사이지만, 살인이라는 중대 범죄를 교사받고 이를 수락하면서, 갈등의 구체적 내용을 묻지 않았다는 팽씨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취지다. 변호인이 “(살인을 교사한 김 의원에게) 실망했을 것도 같은데 증인의 삶을 희생하면서 살인교사에 응했다는 겁니까?”라고 묻자 팽씨는 “네”라고 답했다. 변호인이 이어 “검찰에서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팽씨는 “저보다 우월하고, 시의원도 하고, 제 주위에서… 존경심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라고 답했다.

우월하고 존경하는 친구를 위해 살인을 했다는 것이 팽씨가 내세우는 살인 동기다. 1심 공판 당시 팽씨와 김 의원의 다툼 없는 진술에 두 사람의 관계를 구성하는 팩트들이 조각처럼 흩어져 있다. 일단 팽씨는 김 의원의 ‘정치적 도우미’였다. 팽씨는 2002년 신기남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의 비서관이던 김 의원을 처음 만났다. 팽씨의 둘째 형은 지난해까지도 대구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전 새정치민주연합 간부다. 팽씨의 둘째 형과 김 의원 및 몇몇 보좌관들이 술자리를 가졌고, 이 술자리에 동생 팽씨가 왔다. 이때부터 가까워졌다. 1970년생 개띠 동갑이었다. 서로 반말하는 사이였다. 팽씨의 본업은 중국 물건 거래 사업가다. 짝퉁 밀수도 했고 관세법 위반 전과도 이때 생겼다. 정치인이 아니다. 그런데 선거 실무를 도왔다. 2006년 김 의원이 처음으로 시의원 선거에 나왔을 때 선거유세차를 팽씨가 운전했다. 2010년에도 도왔다. 선거관리위원회에 운동원으로 등록까지 했다. “선거 때만 도와주는 애가 아니었습니다. 선관위에 등록된 차가 팽○○이 차였고요, 평상시에도 지역구에서 인사 다니는 친구고요, 그런 친굽니다.” 1심 때 김 의원은 팽씨를 이렇게 묘사했다. 팽씨는 이를 부정하지 않았다. 팽씨가 단독으로 지역 유지인 송씨의 존재, 송씨 사무실의 위치를 파악할 만한 경험과 능력이 있다는 주장의 근거로 당시 1심 변호인은 이 사실을 언급했다.

팽씨와 김 의원이 마음을 나눈 친구였는지 알 수 없다. 평범한 친구 관계로 보기에 ‘문제적 돈거래’가 많다. 2007년 무렵 팽씨는 속칭 위안화 ‘환치기’를 했다. 불법이다. 제1야당 소속 시의원 후보로 출마했던 김 의원은 불법 환치기에 5000만원을 투자했다. 매달 받기로 한 수입도 못 받았다. 변호인이 항소심에서 “매달 100만원(수익금)을 줬느냐”고 묻자 팽씨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결국 못 돌려받았다. 공증까지 했다.

이외에도 많다. 1심 공판 때 김 의원의 진술을 보면, 팽씨는 2008년 김 의원에게서 5000만원을 빌렸다. 실은 중국을 오가며 사업을 하는 자신의 큰형을 위해 대신 빌린 돈이었다. 팽씨의 큰형은 이 돈을 갚지 않고 잠적해버렸다. 김 의원은 “그때 처음 팽○○이가, 그때 얘기했습니다. ‘이대로, 도와줄게.’ 그때부터 지금까지 저는 그런 관계로 지내왔습니다”라고 말했다. 김 의원의 지인은 “당시 김 의원이 팽씨와의 돈거래를 두고 ‘3000만원 받을 일이 있는데 방법이 없다’면서 고민했다”고 <한겨레>에 지난해 말했다. 김 의원의 부인은 김 의원이 팽씨를 만나는 것을 싫어했다고 전해진다. 서로 존경하고 좋아한다면서 돈거래를 하고, 뒤에서는 못 돌려받을 돈을 걱정하고, 부인은 그 친구를 싫어하는, ‘그런 관계’는 계속 유지됐다.

다음 공판 땐 범죄 프로파일러 출석

김 의원도 팽씨와의 관계의 실체를 다 밝히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치인으로서 부적절한 처신이 드러날 것을 우려하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부도덕이 항소심에서도 다시 드러났다. 김 의원은 1심에서 숨진 송씨에게서 여러 차례 룸살롱 술값 등을 받았으며, 청탁을 받고 송씨를 위해 행정기관에 전화를 해주는 등 송씨가 ‘스폰서’였음을 인정했다. 숨진 송씨는 탈세 목적으로 부동산 매매 이행각서를 위조한 혐의로 2013년 10월 유죄 판결을 받는 등 여러 건의 전과가 있었다. 검사가 항소심에서 송씨에 대해 “피해자가 워낙 평이 안 좋아”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항소심 과정에서 재판장이 김 의원에게 매일기록부의 존재를 어떻게 알았는지 추궁했고, 김 의원은 어느 날 송씨와 만났을 때 송씨가 매일기록부를 작성하고 있었고, 자신 앞에서 그 장부를 펼쳐두었다고 답했다. 매일기록부에는 송씨가 10여차례 걸쳐 뇌물을 건넨 ㅈ 전 검사에 대한 기록 등 금전 출납이 적혀 있었다. 그런 내밀한 기록을 김 의원 앞에 펼쳐 보였던 것이다.

우정인지 이해관계인지 모를 김 의원과 팽씨의 관계처럼, 이 사건 관계자 모두 태도가 흐릿하다. 살인 피해자의 유족은 언론을 일부러 피한다. 피해자 송씨의 가족이 ㅈ 전 검사에 대한 기록 등 매일기록부 23곳을 삭제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증거인멸에 해당하는 불법행위다. 아버지의 살인 사건을 입증할 증거에 손을 대는 행위는 평범한 유족의 행동으로 보이지 않는다. 지난달 26일 항소심 법정에 나온 송씨의 아들은 <한겨레> 기자가 말을 건네자 “말 걸지 말라”고 말했다. 지난해 서울남부지검은 매일기록부를 훼손한 송씨 가족에 대해 ‘입건유예’ 처분했다. 범죄의 혐의는 있으나 검찰이 입건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내리는 처분이다. 숨진 송씨에게 금품을 받은 ㅈ 전 검사는 돈을 받은 사실이 인정됐지만 형사처벌 받지 않고 지난해 면직 처리됐다. 당시 이상호 차장검사(현 서울중앙지검 2차장)는 유족들이 법정 증언을 한 점 등을 입건유예 처분의 근거로 들었다. ㅈ 전 검사의 금품수수는 수사도 하지 않았던 검찰은, 1심 공판 때 팽씨의 유서를 읽으며 배심원들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재판부는 “두 부분이 걸린다. 범행 도구가 (살인의) 경험칙에 맞지 않는 것이고 교사의 시점이 불분명하다”며 검찰이 다음 공판 때 혐의 입증을 보강하라고 말했다. 오는 16일 열릴 다음 공판에는 범죄 프로파일러가 김 의원 쪽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다. 범의를 둘러싼 공방은 계속된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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