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5.04.03 19:22 수정 : 2015.04.04 10:06

지난 1일 서울 신사동 사무실에서 만난 레진코믹스의 이성업(왼쪽) 사업총괄이사와 권정혁 기술총괄이사. 지난해 6월 회사 창립 1주년 기념파티 때 초대된 100여명의 만화작가들이 사무실 한쪽 벽을 차지한 거울에 그림을 그려넣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뉴스분석, 왜?
유료 웹툰 ‘레진코믹스’ 돌풍

▶ 지난달 25일 포털 네이버와 다음의 실시간 검색어에 ‘레진코믹스’란 유료 웹툰 사이트의 이름이 올랐습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이 사이트가 서비스하는 만화가 음란하다며 접속을 차단했기 때문입니다. 포털의 공짜 ‘웹툰’을 뛰어넘는 새로운 종류의 만화 유통 플랫폼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지만, ‘음란물’이란 덫에 걸린 레진코믹스를 들여다봤습니다.

“이 사건은 10년 뒤 코미디가 될 것이다.”

1992년 10월29일. 마광수 연세대학교 교수(국문학)는 “문학의 참된 목적인 창조적 일탈을 위해” 야한 소설을 썼다는 이유로 검찰에 긴급체포된 뒤 구속됐다. 강의 도중 제자들 앞에서였다. 그해 개정판으로 출간된 <즐거운 사라>의 여주인공 ‘사라’가 소설 속에서 대학생 신분으로 자신의 대학교수와 성관계를 하는 등 자유분방한 성생활을 했다는 이유였다. 이런 내용의 소설을 하필 대학교수가 썼다는 것도 문제가 됐다. 소설은 판매가 금지됐고 마 교수는 1995년 6월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 1998년 3월 사면되기까지 감옥에서 지내야 했다. 잡혀가면서 그가 예고한 10년보다 더 긴 시간이 흘렀지만 <즐거운 사라>는 여전히 판매 금지 상태다. 인터넷을 통해 온갖 성인물을 손쉽게 접하는 시대가 됐지만 우리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는 아직 명확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이상한 영역에 머물러 있다.

지난달 25일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일이 아직 코미디가 되지 못했음을 증거하는 작은 사건 하나가 또다시 발생했다. 방송의 공정성, 정보통신 문화의 건전성 등을 심의해 규제하는 행정기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청소년에 대한 접근제한 조치 없이 음란물을 게재했다는 이유로 만화 유료 서비스 사이트인 ‘레진코믹스’에 대한 접속을 차단한 것이다. 예고가 없어 절차적 정당성이 결여됐고, 돈을 내며 서비스를 이용하는 성인 이용자의 권익을 침해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방심위는 다시 반나절 만에 차단을 해제해야 했다. 레진코믹스가 성인인증 절차를 거치도록 해놨지만 이를 사전에 확인하지 못했고, 사이트 전체가 차단 대상이 아닌데도 사무처가 실수를 한 것이란 방심위의 해명이 뒤따랐다. 김광진 의원(새정치민주연합) 등 국회의원 11명은 다음날 방심위의 자의적 판단을 제한하고 표현의 자유를 두텁게 보장하는 내용의 방송통신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레진코믹스는 방심위의 ‘헛발질’을 비웃기라도 하듯 “각종 포털에서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른 일을 기념하겠다”며 유료 만화를 할인해주는 이벤트를 열고 있다. 방심위의 차단 조처가 레진코믹스를 오히려 널리 알린 셈이 됐다.

1년간 최고 인기 작가 2억8천여만원 벌어

지난 1일 서울 신사동 레진코믹스 사무실에서 만난 권정혁(42) 기술총괄이사와 이성업(39) 사업총괄이사의 표정에선 성공한 벤처기업가 특유의 흥분이 느껴졌다. 신사동 가로수길 인근에 자리잡은 사무실은 복층으로 된 ‘저택’ 규모의 고급 빌라였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마주하게 되는 넓은 홀 한쪽 벽면 책장엔 만화가 이현세씨가 쓴 책 <인생이란 나를 믿고 가는 것이다>가 10여권 놓여 있었다. 권 이사는 “(창업자인) 한희성(33) 대표가 인상적으로 봤던 책인데, 우리와 새로 계약하는 신인 작가들에게 선물로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무실 한쪽 구석엔 다트 게임기가 놓였고 길거리 오락기처럼 꾸민 ‘게임 전용 컴퓨터’와 만화방이 있었다. 잠을 자며 쉬는 방 한곳을 제외하곤 건물 곳곳 커다란 방마다 사무실이 자리했다. 중앙홀과 회의실, 식당이 있는 1층 한쪽에 기술연구소가 있었고, 2층엔 웹개발자들이 근무하는 공간과 국외 진출을 위해 만든 프로젝트팀 공간이 있었다. 개발자들이 일하는 방엔 책상마다 작은 레고 모델과 만화책들이 쌓였다. 방 한쪽 벽면 전체를 덮은 거울에 하얀 선으로 각종 만화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다. 이 이사는 “지난 1주년 파티 때 초대된 만화작가들이 와서 그려넣은 것”이라며 “당시 100여명의 작가를 이곳에 초대했다”고 했다.

레진코믹스는 만화와 영화, 성인물을 주로 다룬 블로그 ‘레진’으로 알려진 한 대표와 삼성, 케이티에이치(KTH) 등에서 일하던 웹개발자 권 이사 등이 함께 설립한 ‘유료 온라인 만화방’이다. 한 대표는 만화가 지망생이었고 권 이사는 어렸을 때 어머니가 만홧가게를 운영했다. 이 이사는 미술학도인데 동생이 만화가다. 이래저래 만화와 긴밀히 관계된 이들이다.

레진코믹스는 2013년 4월 법인을 설립해 6월 서비스를 시작했다. 구글 플레이스토어에 안드로이드 앱이 출시되고 48시간 만에 만화 부문 1위에 올랐다. 첫날 매출은 1000만원을 넘었다고 한다. 그해 말까지 15억원가량의 매출을 올린 레진코믹스는 지난해엔 무려 103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매달 15~20%씩 성장한 결과다. 창업한 첫해 미래창조과학부는 이들에게 ‘글로벌 K스타트업 최우수상’을 줬다. 결재 건당 30%의 수수료를 받아 가는 구글도 이들에게 특별상을 수여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영국 런던 순방길에 권 이사와 이 이사를 데려갔고, 게임 기업 엔씨소프트는 지난해 4월 5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혀 화제가 됐다. 출판물과 연재작을 합한 작품이 690개에 이르고, 데뷔시킨 신인 작가만 180명이 넘는다.

무섭게 성장한 성인만화 서비스업체 정도로 알려진 레진코믹스는 업계에선 국내 만화 유통시장의 흐름을 바꾼 기린아로 평가받는다. 특히 한해 억대 수입을 올리는 만화작가들을 대거 배출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설립 초기 1년 동안 최고 인기를 누린 연재물의 작가는 2억8000여만원을 벌었다고 한다. 권 이사는 “이젠 한달에 1000만원 이상을 버는 작가가 30명이 넘는다”고 했다. 다른 수익활동 없이 온전히 자신의 만화를 팔아 번 수입이 그렇다는 얘기다. 콘텐츠 제공자인 작가에게 더 많은 수익이 돌아가도록 매출 구조를 설계했기 때문이다. 실제 레진코믹스의 지난해 매출 103억원 중 63억원이 작가들에게 돌아갔다. 신인 작가를 비롯해 희망하는 이에겐 “업계 최고 수준의” 월급(고정 고료)을 지급한다. 유명 작가와는 매출에 비례해 고료를 지급하는 ‘수익배분(RS) 계약’을 맺는다. 이 이사는 “자신이 있기 때문에 이런 숫자를 공개하는 것”이라며 “우리나라의 그 어떤 만화 관련 사업자보다 많은 수익을 작가들에게 주려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사정은 만화가 지망생들에게도 매력이다.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교수(만화창작)는 “졸업 뒤 레진코믹스에 연재하는 게 목표라는 학생들이 많아졌다”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야 하는 미국식 그래픽노블이나 고어(잔혹)물 같은 소수 장르를 하려는 학생들이 특히 그렇다”고 했다.

클릭 경쟁하는 포털 웹툰시장서
작품에 돈 주는 유료모델로 도전
“한달 1천만원 버는 작가가 30명”
스포츠 등 소재 다양성 넓히고
업체-작가-작품 ‘윈윈윈’

성인연재물은 강점이자 약점
‘음란물’ 칼 빼들다 망신당했지만
방심위 다시 “일본만화 문제 있다”
성인만화 골방에 들어갈 것인가
다양성의 화수분 될 것인가

비즈니스가 콘텐츠를 바꾸다

레진코믹스에 연재되는 대부분의 작품은 첫회만 무료 공개된다. 2회 이후는 돈을 받고 판다. 140~180원을 내면 레진코믹스의 ‘코인’ 1개를 살 수 있는데, 유료 만화의 편당 가격은 2~4코인이다. 대략 300~700원꼴이다. 대여 서비스는 없고 한번 돈을 낸 작품은 무제한으로 본다. 소유 개념에 가깝다. 그 때문에 2회 이후 줄거리에 대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댓글 기능은 아예 만들지 않았다. 무료로 공개돼 클릭수 유발이 목적인 포털의 웹툰과는 유통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포털 웹툰은 연재를 마무리하면 고료가 끊긴다. 레진코믹스에선 완결 작품을 ‘묶음상품’ 등으로 할인해 팔기 때문에 연재가 끝나도 사이트에 걸어둔 자기 작품이 팔리기만 하면 수익을 얻는다. 작가들은 자연히 연재 주기를 늦추더라도 더 팔리는 작품을 만들려 한다. 스토리나 그림체 등 작품의 질이 높아지고 비인기 스포츠 만화나 고어 만화 등 소수 독자를 상대로 한 다양한 장르를 시도해볼 수 있다. 레진코믹스는 매출 대부분이 성인물을 통해 나오지만 전체 작품 중 성인물은 20% 남짓에 불과하다. 서비스 11년차에 접어든 네이버 웹툰은 스포츠물이 10개가 채 되지 않는 반면, 설립 2년이 안 된 레진코믹스엔 펜싱 만화를 비롯한 10여개 스포츠물이 연재되고 있다. 클릭수를 높이기 위해 자주, 빨리 연재해야 하고 모든 연령층을 상대로 하다 보니 일상물, 개그물 위주가 되게 마련인 무료 포털 웹툰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만화 제작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이사는 “우린 포털 웹툰과 비즈니스 모델이 다르다. 공짜 웹툰은 트래픽을 올리기 위해 빨리 연재해야 하고, 그러다 보니 매일 연재하는 웹툰도 만들어지지만 2주에 한번, 한달에 한번 연재해도 되는 우리 사이트에선 막장드라마 같은 치정극이나 창조적인 판타지물들도 연재된다. 비즈니스가 콘텐츠에 영향을 주는 사례”라고 했다. 만화 전문 웹진 에이코믹스의 김봉석 편집장은 “출판에서 웹툰으로 만화 시장이 바뀌는 과정을 네이버나 다음과 같은 포털이 주도했다면, 레진코믹스는 기존 출판만화 시장을 뛰어넘는 새로운 종류의 플랫폼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만들어낸 사례”라고 했다.

실패할 것이라던 유료 만화 플랫폼이 연착륙에 성공하자 온라인만화 시장엔 여러 경쟁자들이 나타났다. 레진코믹스보다 후발 주자임에도 올해 200억원의 매출을 목표로 무섭게 성장 중인 ‘탑툰’이나 ‘코믹스토리’ ‘미스터블루’ 같은 유료 온라인만화 서비스 회사들이 그렇다. 서울문화사 같은 전통적 형태의 출판만화 회사도 레진코믹스를 따라 온라인에서 유료 만화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레진코믹스에 연재중인 웹툰 ‘몸에 좋은 남자’.

방심위 “사이트 일부 차단 기술적 검토”

만화계의 기린아 레진코믹스는 뜻하지 않게, <즐거운 사라>에서부터 본격화된 우리 사회 표현의 자유 논쟁의 한가운데로 들어오게 됐다. ‘헛발질’을 한 방심위가 온라인 연재물과 함께 레진코믹스가 서비스 중인 일본 출판만화를 문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방심위 통신심의소위원회 위원장인 장낙인 상임위원은 2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레진코믹스의 일본 출판만화들이 문제가 있다고 본다. 하얗게 칠해 직접 노출되진 않았지만 남녀 성기의 윤곽이 그대로 드러난데다 대사들이 매우 자극적이다. ‘19금 표시’도 제대로 돼 있지 않다”며 재심의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국내 작가들의 성인 연재물 역시 성기를 같은 방식으로 표현했지만 일본 출판만화와는 음란성의 정도가 다르다는 게 장 상임위원의 설명이다. 심의에서 음란물로 판단하면 방심위는 레진코믹스 사이트의 해당 부분을 차단할 수 있다. 장 상임위원은 “사이트 일부 차단에 대한 기술적 검토도 마쳤다”고 했다.

레진코믹스의 이성업 이사는 “외국에선 앞뒤 개연성 없이 단순한, 성적 흥분만을 위한 콘텐츠를 음란물로 본다고 알고 있다. 우리 작품들은 성인물이라 해도 대부분 탄탄한 스토리를 갖추고 있어 음란물이 아니라고 확신한다”고 했지만, 방심위의 판단은 다를 수 있다. 레진코믹스가 ‘웹툰’으로 대표되는 무료 온라인 만화 시대를 넘어 만화 장르의 다양성을 한층 심화할 계기를 만들었음에도, ‘음란물’ 딱지를 단 채 다시 골방으로 들어가야 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즐거운 사라> 이후 우리 사회에선 비슷한 논쟁이 끊임없이 반복됐다. 1996년 여주인공이 알몸으로 연기한 연극 <미란다>와 오럴섹스와 마조히즘, 사디즘 등의 다양한 성행위가 세밀하게 묘사된 장정일의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는 <즐거운 사라> 못지않은 논란을 일으켰다. 2003년엔 만화가 이현세씨가 본인의 작품 <천국의 신화>의 음란물 혐의로 법정에 서는 일도 있었다. 미술교사 김인규씨는 자신과 부인의 성기를 노출한 사진을 인터넷에 올렸다는 이유로 2005년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용은 매우 더디게 발달해온 것이다.

김인규 교사는 “(만화가 순수예술 장르와 달리) 노출을 노골적으로 즐기려는 목적이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 해도 청소년 접근이 제한된 채 배포됐다면 그걸 어떻게 막겠는가. 성인들끼리 합의해 보겠다는데, 보기 싫은 걸 누가 강제로 보여주는 것도 아닌데 왜 불법인지 모르겠다. 사회가 문화적으로 아직 덜 성숙했다는 방증”이라고 했다.

청소년을 보호하겠다며 음란물을 규제하지만 정작 청소년을 위한 문화 진흥에는 소홀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는 “구글에서 키워드 몇개만 넣으면 노골적인 음란 콘텐츠가 쏟아지는 시대다. 이걸 막겠다는 것 자체가 사회적 낭비”라며 “청소년을 보호하고 격리해야 할 객체로 보는 청소년보호법을 없애고, 청소년문화를 진흥하는 법을 만드는 게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청소년들도 보는 공영방송에서 엄연히 불법 콘텐츠인 ‘야동’을 토크나 개그의 소재로 삼으면서, 다른 한쪽에선 이 야동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겠다고 한다. 이 얼마나 웃기고 왜곡된 사회인가”라고 반문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토요판] 뉴스분석, 왜?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