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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3.20 20:15 수정 : 2015.03.20 20:44

서울시 교육연구정보원에서 보관 중인 1960·70년대 제작된 중학 수학 교과서들. 사진 박기용 기자

[토요판] 뉴스분석, 왜?
수학교육 바뀔 수 있을까

▶ 교육부가 수학을 포기한 학생을 뜻하는 ‘수포자’를 줄이겠다며 대책을 내놨습니다. 세는나이로 예순이 된 한 종합편성채널의 앵커는 교육부의 대책을 보도하며 “저도 수포자였다”고 수줍게 고백했습니다. 이 앵커의 학창 시절이나 수십년이 흐른 지금이나 우리 주변엔 수포자가 넘쳐납니다. 아이들이 수학을 흥미롭게 즐기는 시대는 언제쯤 가능할까요.

수학을 포기한 학생을 이르는 말 ‘수포자’. 철없는 아이들이 만든 신조어는 언젠가부터 우리 수학 교육의 비루한 현실을 생생하게 대변하는 말이 됐다. 많게는 국내 중고생의 절반이 수포자라는 얘기도 들려온다. ‘공부하는 방법에 대한 학문’이라는 수학을, 무려 절반에 이르는 학생이 포기하는 현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교육부는 지난 15일 ‘제2차 수학교육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수포자를 양산하는 수학 교육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학생들이 수학을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교육부는 5년 뒤인 2019년까지 초중고 교육과정에서 수학의 학습량과 난이도를 적정화하고, 교과서 내용 중 실생활과 연관된 내용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아이들을 평가하는 방식도 체험과 탐구, 과정 중심으로 바꾸겠단다. 학생들이 불필요한 계산에서 벗어나도록, 시험을 치를 때 계산기를 쓸 수 있게 한 방안도 포함됐다.

교육부의 이런 계획은 2012년 1월에 발표한 ‘제1차 수학교육 선진화 방안’에 연이은 것이다. 정부 부처가 나서 이처럼 특정 과목에 대해 3개년, 5개년 계획을 거듭 발표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정부가 수포자로 상징되는 한국 수학 교육의 현실을 ‘심각한 상황’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렇게 공들이며 왜 즐기지 못하나

한국 학생들의 수학 성취 수준은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세계 각국이 3년마다 공동으로 실시하는 ‘학업성취도 국제비교 평가’(PISA)에서 한국 학생들의 수학 성취도는 줄곧 1~3위였다. 반면 수학 학습 흥미도는 가장 최근인 2012년 평가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28위를 기록했다. 대학입시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다 보니 성적은 좋게 나오지만, 고등학교 졸업 뒤엔 수학책을 들여다보지 않는 이들이 대부분인 우리의 현실이 이 순위에 반영된 것이다. 점수가 높은 성취도 부문도 역시 구체적인 내용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지적이 인다. 특히 단순계산 성적은 높게 나오지만, 주어진 자료를 읽고 해석하는 수학적 사고력과 응용력을 측정하는 문항에선 순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각국 아이들이 수학 교육을 위해 들이는 시간에 견줬을 때도 한국의 순위는 더 낮아진다고 한다. 우리에게 수학은 공은 들이지만 즐기지 못하는, 잘하긴 하지만 다시는 하려 들지 않는 불편한 대상이다.

<세계일보>가 지난해 4월7일치 기사에서 수학을 포기했다고 한 학생 131명에게 “언제 수학을 포기했느냐”고 물었더니 가장 많은 33명이 “중학교 2학년 때”, 31명이 “중학교 1학년 때”라고 답했다. 조사 대상 중 중학교 2학년 이전에 수학을 포기한 학생들의 비율은 70%를 넘었다. 중학 수학 과정이 이 아이들에겐 수포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나누는 분수령이었던 셈이다. 이 갈림길에서 아이들이 ‘포기’를 택하는 배경엔 반백년 이상 변함없는 수학 교과서와 입시를 중심으로 짜인 우리 교육의 고질적 문제들이 놓여 있다.

각자 중학교 시절로 돌아가 보자. 그것도 1학년. 시기별로 조금씩 달랐지만, 지금 한국의 중학교 1학년은 ‘소인수분해’로 수학 공부를 시작한다. 오랜만에 들으니 생소할지도 모르겠다. 소인수분해는 4를 2와 2의 곱(4=2×2)으로, 6을 3과 2의 곱(6=3×2)으로 나타낸 것이다. 정리하자면, 소인수분해는 1·2·3·4·5… 같은 자연수를 소수들만의 곱으로 나타낸 것이다.

정수가 소수라는 기본단위로 짜인 수라는 개념을 익히기 위해 중학생들은 이 소인수분해로 수학 공부를 시작한다. 당신이 선생님이라면 이 소인수분해를 어떻게 가르치겠는가. 아이들이 아는 것은 초등학교에서 배운 ‘약수’ 개념 정도다. 약수는 ‘어떤 수를 나누어 떨어지게 하는 수’로, 8의 약수는 ‘1·2·4’, 10의 약수는 ‘1·2·5’ 같은 식이다.

교과서는 차근차근 단계를 밟는다. 먼저 수를 여러 번 곱하는 식을 ‘거듭제곱’으로 부른다는 것을 알려준 뒤, 1과 자신만의 곱으로 쓸 수밖에 없는 ‘소수’에 대해 설명한다. 2·3·5·7·11·13… 같은 수들이다. 이어 여러 자연수를 이 소수만의 거듭제곱으로 표현해보게 한다. 4를 소수인 2와 2의 곱으로, 6을 역시 소수인 3과 2의 곱으로 적는다. 소인수분해다.

소인수분해를 이해하기 위한 각 단계에서 아이들은 숫자만 바뀐 비슷한 문제를 여러 번 푼다. 단계마다 개념을 확실히 이해해야 다음 단계로 이어지는 진도를 따라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학 교과서의 이런 구성은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반복된다.

하지만 모든 수학 교과서가 이렇게 짜인 것은 아니다. 미국 뉴욕주에서 사용하는 ‘커넥티드 매서매틱스 프로젝트’란 중학 수학 교과서는 소인수분해 단원을 ‘약수 찾기’ 게임으로 시작한다.

상자 안에 1부터 30까지 숫자가 적힌 카드 30장이 있다. 두 사람은 번갈아가며 카드 한 장씩을 가져온다. 한 사람이 카드를 선택할 때마다 상대는 해당 수의 약수에 해당하는 카드를 갖는다. 내가 9를 가져왔다면, 상대는 1과 3을 갖는다. 다시 상대가 8을 택하면 나는 이미 상대가 가져간 1을 제외한 2와 4를 갖는다. ‘약수 찾기’다. 상자 안에 카드가 다 떨어지면 각자가 챙긴 카드에 쓰인 숫자를 합해서 더 큰 쪽이 이긴다.

게임을 반복하면서 아이들은 게임의 전략에 따라 자연스레 정수의 기본 단위인 소수를 알게 된다. 약수가 1과 자신뿐인 소수를 선택하면 상대는 아무 카드도 가져갈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은 가능한 한 큰 수를 가지고, 상대에겐 아무 카드도 주지 않는 것이 승리의 비결이다. 선생님은 게임이 끝난 뒤 아이들에게 소수의 정의를 알려주고, 모든 정수는 이 소수들의 곱으로 쓸 수 있다고 설명한다. 교실 이곳저곳에서 “아~” 하는 감탄사가 들려온다.

수학 성취도 세계 1~3위라지만
수학학습 흥미도는 34개국 중 28위
교실엔 ‘수학포기자’가 졸고 있다
교육부, 수학교육 종합계획 발표
“수학을 즐길 수 있게 하겠다”는데…

수학교과서는 쉬지 않는 급행열차
선형적 교육, 주입-암기 반복
한번 놓치면 못 따라잡아
필요 이상의 수학지식 요구하는
대학입시도 바뀌어야 한다

‘놓치면 끝’인 수학교과서

수포자를 양산하는 수학 교육의 1차적 문제는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는 우리의 교과서에 있다. 한국의 교과서 체계는 아이들을 자극하고 사고하게 하기보다 제시된 수학적 개념을 암기하고 다시 이를 발판으로 한 단계 더 복잡한 개념을 익히는 식으로 구성돼 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선 그날 배운 것을 그날 다 소화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더 이상 진도를 나갈 수 없다. 한국 아이들이 수학을 포기하는 이유로 드는 가장 큰 이유가 이런 ‘연결성’이다. 중간에 낙오된 아이들은 따라잡기보단 포기를 택한다. 문제는 이런 낡은 교과서 구성 방식이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고착화돼 있다는 데에 있다.

1966년 12월 장원사에서 발행한 중학교 1학년 수학 교과서(사진)의 구성은 지금의 교과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난 19일 서울교육연구정보원 문헌정보실에서 살펴본 이 교과서의 시작은 소인수분해에 앞서 배우는 ‘수와 계산’ 단원이었다. 아이들은 이 단원에서 자연수와 약수, 배수, 소수, 분수 따위의 개념을 익힌다.

교과서는 먼저 ‘물건의 갯수나 차례를 나타내는 데 쓰이는 수’라고 자연수를 정의했다. 이어 기수, 순서수, 정수 등을 구분하고 이를 익힐 수 있도록 관련된 문제를 풀게 했다. 십진법, 약수, 배수도 같은 방식으로 학습한다. 일본 교과서를 번역해 들여온 수학 교과서의 기본 구성은 반백년도 더 지난 지금도 비슷한 방식으로 짜여 있다.

각국 중학 수학 교과서를 비교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전국수학교사’ 모임의 김보현(36·동성중) 교사는 ‘변함없는 교과서’의 원인으로 교과서 제작 과정상의 구조적 문제를 들었다. 김 교사는 “교육과정 고시 뒤 1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각 학년 교과서 3권과 지도서 3권을 교정까지 봐서 내놓아야 한다. 매주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작업을 하지만 사실상 고민할 시간이 없어 기존 교과서를 적당히 편집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교과서가 갖는 지나친 권위도 문제로 지적된다. 국정교과서 제도를 통해 오랜 세월 쌓여온 권위와 이에 개입된 이권, 출판 카르텔 등이 상호작용하면서 새롭고 실험적인 내용보다는 안전하고 검증된 방식의 구성이 선호되는 것이다. 김 교사는 “교과서 집필 때 논쟁이 될 만한 부분은 출판사에도 부담이 된다. 이 때문에 각 출판사 편집자들은 사전에 이를 어떻게 처리할지 일종의 담합을 한 뒤 집필자들에게 지침처럼 내려보낸다”고 했다. 한국의 교과서가 판에 박힌 듯한 모습을 띠는 이유다.

흔히 ‘공교육의 전범’이라 불리는 핀란드의 수학 교과서를 보면 우리 교과서의 문제가 더 선명히 드러난다. 한국 초등학교 교과서의 문제점을 분석한 책 <교과서를 믿지 마라!>를 쓴 ‘초등교육과정연구모임’은 핀란드 수학 교과서에 대해 “(아이들의) 자발적 주의능력을 발달시키기 위해 교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드러내고 있다”며 “(수학교육 과정을 통해 아이들이 익혀야 할) 집중하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함으로써 만족과 기쁨 얻기, 자신의 해결 방식과 결론을 타당성 있게 표현하기, 의사소통 능력 기르기 등의 목표가 구체적으로 제시돼 있다”고 했다.

또 우리의 교육과정은 영역별로 엄격히 구분돼 있고 한 영역 내에서도 작은 개념이 세분화돼 있지만, 핀란드 교과서는 “영역의 구분과 통합이 자유롭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도형의 경우, 핀란드 교과서에선 해당 단원에서만 도형이 나오는 게 아니라 다른 단원에서도 도형이 문제로 다뤄진다. ‘자료 처리와 통계’ 영역도, 우리는 ‘확률과 통계’란 단원을 만들어 별도로 다루지만 핀란드 교과서는 별도 단원을 설정하지 않고 대부분의 단원에서 표와 그래프 등을 다양한 형식으로 문제에 반영한다.

수학 교육을 위해 일상적 소재를 활용하는 정도도 핀란드 교과서가 월등하다. 우리 교과서는 암기한 공식을 활용하는, 숫자만 바뀌어 있는 정형화된 문제들을 주로 다룬다. 간혹 일상에서 익숙하게 접하는 소재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실생활과 관련이 적거나 가상의 상황인 경우가 많다. 반면 핀란드 교과서는 실생활에 연관된 다양하고 흥미로운 상황이 제시돼 있다. 수영장과 놀이동산, 동물원 등의 실제 입장권 가격을 제시한 뒤 “수영장 입장권 6장과 극장 입장권 1장을 사려면 돈이 얼마가 필요하고 얼마를 내면 거스름돈을 받을까”를 묻는 식이다. 아이들은 실제 동네 시장을 돌며 직접 돈을 쓰면서 경험을 통해 이 과정을 익힌다.

반복과 복습의 측면에서도 차이가 있다. 한국의 수학 교과서 체계에선 각각의 단원이 별개로 구분돼 제시된다. 하지만 핀란드 수학 교과서에선 배운 내용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2학년 1학기 첫 단원은 아예 ‘복습과 응용’으로 시작하고, ‘0부터 1000까지 수들의 덧셈과 뺄셈’ 단원에선 앞서 배운 한 자릿수 곱셈을 복습한다. 아이들이 저마다 배움의 속도가 다른 것을 헤아리지 못해 천천히 배우도록 돕는 일을 온전히 교사의 몫으로 남겨놓은 한국의 교육과정과, 핀란드의 교육과정이 차이가 있다는 게 ‘초등교육과정연구모임’의 분석이다.

1966년 12월 장원사에서 발행한 중학교 1학년 수학 교과서 중 첫 단원인 ‘약수와 배수’ 부분. “물건의 갯수나 차례를 나타내는 데 쓰이는 수, 곧 1, 2, 3, 4, ……를 자연수(自然數)라 한다”고 쓰여 있다. 사진 박기용 기자

“대입 수학 시험범위 너무 많다”

교과서 문제를 들여다보면 결국 우리 교육의 고질병인 대학입시 문제를 거론할 수밖에 없다. 다양한 교과서가 나오지 못하고, 새롭고 실험적인 학습 방법이 제시되지 못하는 근원적인 이유가 바로 대학입시에 짓눌린 교육 현실에 있기 때문이다.

교육 분야 시민운동단체인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은 오는 25일 ‘수포자 없는 입시’란 국민 캠페인을 시작한다. 지난 15일 교육부가 내놓은 계획이 “문제의 본질을 비켜간 대책”이라는 이들은 무엇보다 교과서가 다루는 범위와 대학수학능력시험의 범위를 줄이고 각 대학에서 불필요하게 수학 점수를 요구하는 일이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의 나현주(33) 정책대안연구소 연구원은 “단순히 양을 줄이자고 말하는 게 아니다. 아이들이 차근차근 기본적인 것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하려면 지금의 양은 너무 많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교과서에서 다루는 각각의 기초 개념을 아이들이 하나하나 이해하고 습득하기 위해 천천히 고민하고 생각할 시간을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려면 교과서의 범위와 수능의 범위를 지금보다 20~30% 줄여야 한다. 진학할 계열에서 필요로 하는 만큼, 그러니까 인문계는 인문계에서 필요한 만큼, 경상계열과 이공계열도 각자가 향후 전공할 학문에서 필요로 하는 만큼만 수학을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대와 성균관대, 서강대 등 일부 대학에서 이뤄지는 수학 점수 가중치도 문제로 꼽았다. 서울대는 전 모집단위에서 수학의 상대 반영비율을 ‘120’으로 잡아놨다. 국어와 영어는 100, 사회·과학과 직업탐구는 80이다. 그만큼 수학 한 문항의 중요도가 높아진다. 수학이 ‘공부하는 방법에 대한 학문’이며, 수학 점수는 해당 학생이 대학에서 학문을 연마할 기본 소양을 어느 정도 갖췄는지를 나타낸다는 게 대학 쪽 생각이다. 하지만 국어국문학을 전공하려 해도 수학을 잘해야 하는 이상한 상황에 빠져버린 학생들에겐 설득력이 떨어진다.

송화원(36)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 간사는 “교육과정 개편이 거듭되면서 수학 과목에선 최근 배워야 할 것들이 계속 추가되기만 했다. 교육부의 말대로 아이들이 수학을 즐길 수 있게 하려면 내용을 덜어내야 한다. 대입에서 벗어나 천천히 읽고 생각하며 공부를 즐길 수 있게 해야 수포자가 양산되는 지금의 상황을 바꿀 수 있다”고 했다.

글·사진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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