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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5.02 19:24 수정 : 2014.05.03 18:20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수사팀 검사들은 단순히 국정원에 속은 것이 아니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기자실에서 감찰 발표 브리핑을 하는 이준호 대검 감찰본부장. 뉴스1

[토요판] 뉴스분석 왜?
어느 국정원 정보원의 고백

▶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피의자 유우성씨는 국가보안법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이것으로 간첩 증거조작 논란은 끝일까요? 증거조작의 책임자들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면 이 사건은 끝난 게 아닙니다. 조작사건의 의혹을 풀 열쇠를 쥔 중요한 참고인을 검찰 진상조사팀은 조사도 안 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검경이 수사 제대로 안 하면 특검 요구가 안 나올 수 없습니다. 진실을 알고 있는 국정원 정보원이 오랜 고민 끝에 <한겨레>와 만났습니다.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을 수사한 검찰 진상조사팀은 지난달 14일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핵심 내용은 ‘국정원 대공수사단장(2급) 이상은 증거조작을 몰랐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수사팀 검사들도 (출입경기록 등 문서는 중국 당국이 발급한 것이라는) 국정원의 말을 믿었다’는 것이다. 국정원 대공수사국 이아무개 대공수사처장(3급)까지만 형법상 모해증거위조 등의 혐의로 기소(4명 기소·권아무개 대공수사국 과장 시한부 기소중지)되고 윗선은 기소를 면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수사와 재판을 담당한 이문성(42·사법연수원 28기)·이시원(47·29기) 검사는 기소 대신 검찰 내부 감찰만 받는 것으로 결정됐다.

대검찰청은 1일 두 검사에 대해 각각 정직 1개월에 처해달라고 법무부에 청구했다. 정직은 중징계 중 가장 낮은 처분이다. 간첩사건 수사 당시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장이었던 최성남(49·24기) 울산지검 형사1부장은 감봉 3개월을 청구했다.

간첩사건 수사팀의 이문성·이시원 검사는 정말 증거조작 사실을 모른 채 재판에 임했을까. 진상조사팀은 이들 검사가 조작을 알고 있었는지 여부를 밝혀내려고 최선을 다했을까. 간첩사건 수사팀(서울지검 공안1부)은 지난해부터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을 수사한 곳이고, 진상조사팀(윤갑근 진상조사팀장)은 증거조작 의혹이 불거진 뒤 검찰이 올해 2월 진상조사를 위해 꾸린 팀이다.


출입경기록 조작 사실 확인해
국정원·민변에 알린 정보원 ㄱ씨
검찰 진상조사팀에 증언하겠다며
십여차례나 전화로 연락했음에도
소환조사 안한 이유는 무엇일까

‘출입입입’과 ‘출입출입’ 기록
함께 있었지만 존재사실 숨기고
중국서 찍은 사진 북한으로 둔갑
증거날조 미필적 고의 의심되나
대검은 수사검사 휴대폰도 안 살펴

“윗선 결재 있어야 소환” 설명만 들어

<한겨레> 취재 결과, 진상조사팀은 수사팀이 증거조작을 알고 있었는지에 대해 핵심적인 증언을 할 수 있는 국정원 민간인 정보원과 비공식적으로 접촉을 한 뒤에도 소환조사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간첩사건 수사팀 검사들이 단순히 국정원에 속은 것이 아니라 증거조작이 추정되는 상황에서 스스로 추가확인을 하지 않아 ‘증거조작의 미필적 고의’가 있었던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도 확인됐다.

그는 바로 증거조작 사실을 유우성(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피의자. 4월25일 항소심 무죄 판결)씨 변호인단과 국정원에 알린 민간인 국정원 정보원 ㄱ씨다. ‘조작사건 파동’이 그에게서부터 시작된 셈이다. ㄱ씨는 중국 내 정보원을 통해 유우성씨 사건을 전담하는 국정원 관계자가 출입경기록을 조작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직후 이 사실을 변호인단과 국정원에 같이 알렸다. 그는 민간인 신분이지만 오랫동안 중국 정보 당국과 접촉하며 ‘대중 휴민트’ 요원(중국 쪽 인적 정보망)으로 활약해 온 인물이다.

ㄱ씨는 최근 <한겨레>와 만나 “진상조사팀이 꾸려진 (2월18일) 직후 조사팀에 전화를 걸어 ‘자진출석해 증거 조작 확인 과정과 수사 검사들의 증거 조작 인지 여부를 밝히겠다’고 수차례 말했지만 나를 조사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진상조사팀 박영준 서울중앙지검 외사부 부부장 등 진상조사팀 관계자들과 십여차례 통화했지만 ‘윗선의 결재가 있어야 소환할 수 있다’는 설명만 들었을 뿐 조사팀은 끝내 연락을 해오지 않았다고 그는 주장했다.

ㄱ씨가 국정원 수사팀의 증거조작 사실을 국정원(수사팀이 아닌 다른 국정원 부서)에 사전에 알렸다는 것은 지난 2월 언론 인터뷰를 통해서도 일부 나왔다. 그렇기 때문에 진상조사팀으로서는 ㄱ씨가 중요한 참고인임을 쉽게 인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제 발로 걸어들어온 중요 참고인을 조사하지 않았다.

진상조사팀은 부실한 수사를 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남재준 국정원장과 서천호 제2차장은 서면조사도 하지 않았다. 진상조사팀은 “국정원 최고 윗선을 조사할 만큼 관련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언론에 해명했지만, ㄱ씨를 조사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숨겼다. ㄱ씨는 국정원에 직접 보고를 했기 때문에 어느 선까지 증거조작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를 증언해 줄 수 있는 인물이었지만 이를 외면한 것이다.

진상조사팀은 ㄱ씨를 부르지 않았지만 간첩사건 수사팀은 그를 불러 출입경기록 등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지난 1월 초였다. 수사팀은 그를 불러 조사한 뒤에도 참고인 조서도 작성하지 않았다. 재판부와 언론 어디에도 지금까지 소환조사 사실을 밝힌 적이 없다. 왜 수사팀이 민간인 정보원을 이렇게 비밀스럽게 불러 조사했을까.

지난해 12월 유우성씨 변호인단은 재판정에서 ‘조작된 증거가 재판부에 제출된다는 정보가 들어왔다’고 경고했다. 정보 출처가 어디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검찰 수사팀은 그러나 수완을 발휘해 변호인단에 정보를 건넨 국정원 민간 정보원을 찾아내어 연락했다.

ㄱ씨는 “1월3일 이문성 검사가 내게 전화를 해왔다. ‘국정원과 연락하고 지내는 분이냐’고 묻더니 저보고 무조건 와서 조사를 받으라고 했다. 내가 피의자인지 참고인인지도 안 밝히고 ‘와서 조사받으면 다 안다’고만 했다”고 말했다. 그는 1월6일 조사를 받으러 서울중앙지검을 찾아갔다. 이문성 검사가 ‘유우성의 북-중 출입경기록을 중국에서 본 적 있느냐, 민간 정보원이 출입경기록을 어떻게 볼 수 있느냐. 민변에 찾아간 적 있느냐’ 등을 물었다. 그는 이문성 검사가 증거 위조를 최초로 외부에 알린 정보원을 소환해놓고 증거 위조의 가능성을 묻는 게 아니라 (수사팀이 아닌) 민간 정보원이 출입경기록을 살펴보는 게 가능한지만 확인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유우성씨 변호인인 양승봉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는 “국정원이 가져다준 출입경기록이 위조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은 것을 보면 검사가 위조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 추정할 수도 있다. 유우성씨 출입경기록 원본(출-입-입-입 오류 상태의 기록)을 제3자가 확인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게 더 중요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수사팀이 증거 조작 사실을 알았다면, 그들 입장에서는 출입경기록 원본의 내용을 아는 제3자가 없어야 위조된 기록(출-입-출-입 오류가 수정된 상태의 기록)을 재판부에 제출해도 뒤탈이 없어진다. ㄱ씨는 “출입경기록은 얼마든지 내가 중국 당국으로부터 확인 가능하다고 말하자 이(문성) 검사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고 전했다.

유우성씨는 2006년 5월23일 어머니 장례를 치르러 중국에서 북한으로 들어가고(출), 2006년 5월27일 오전 10시24분 중국으로 나왔다.(입) 하지만 중국 출입경기록 시스템의 오류로 인해 출입경기록 원본에는 2006년 5월27일 오전 11시16분 다시 북에서 중국으로 나오고(입), 2006년 6월10일 다시 북에서 중국으로 나온(입) 기록이 붙어 있다.(출-입-입-입) 존재하지 않는 기록 두개가 더 붙은 것이다.

국정원이 조작한 출입경기록은 내용이 좀 다르다. 2006년 5월23일 북으로 들어갔다가(출), 27일 중국으로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고(출-입), 유우성씨가 보위부 남파 요원이 된 뒤 6월10일 중국으로 나왔다고(입) 되어 있다.(출-입-출-입)

검찰 수사팀은 ㄱ씨의 진술 내용은 조서로 남기지 않았고, 재판에서 ‘유우성 출입경기록은 화룡시 공안국이 발급한 것이 맞다는 공안국 확인서까지 존재한다’는 기존 입장을 번복하지 않았다. 뒤에 이 공안국 확인서 또한 조작된 것으로 밝혀진다.

지난 4월25일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기뻐하는 유우성씨(가운데).
증거조작 의심되는데 일부러 확인 안 했나

간첩사건 수사팀 검사들의 수상한 행적은 또 있다. 수사팀은 2013년 9월26일 화룡시 공안국이 발급했다고 하는 ‘출입출입’(조작) 내용의 출입경기록을 2013년 11월1일 재판부에 냈다. 그런데 진상조사팀이 확보한 이인철 선양 영사의 9월27일자 출입경기록 입수 확인서에는 ‘출입입입’(오류가 난 원본) 내용의 출입경기록이 첨부돼 있었던 것으로 뒤늦게 확인된다.

또 <한겨레>가 확보한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의 2월15일 작성 내부 문건’을 보아도, 수사팀은 ‘출입입입’ 상태의 출입경기록 원본을 수사 초기부터 갖고 있었다. 검찰 수사팀이 어떤 특정 시점부터 ‘출입입입’과 ‘출입출입’ 내용의 출입경기록을 확보해놓고 국정원과 논의해 더 그럴듯해 보이는 증거를 재판부에 제출한 것 아닌지 의심된다.

이러한 검찰 수사팀의 행적들을 어떻게 봐야 할까. 현재 상황에서 이들이 증거 조작을 국정원과 논의했다는 증거는 없다. 하지만 재판정에서 변호인단이 위조 가능성을 제기한 뒤 ㄱ씨를 비밀리에 소환조사 한 점, 두가지 버전의 출입경기록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었지만 재판부에 이를 숨긴 점 등에 비추어 증거 날조에 대한 미필적 고의는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게 민변의 시각이다.

미필적 고의는 ‘행위자가 범죄 사실의 발생을 적극적으로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행위가 어떤 범죄 결과의 발생 가능성이 있음을 알면서도 그 행위를 지속하는 것’을 지칭하는 법률 용어다. 유우성씨를 간첩으로 몰기 위해 자신들이 확보한 증거가 조작됐을 가능성을 인지하고서도 적극적으로 확인하지 않았다면 증거 날조의 미필적 고의에 해당할 수 있다.

문서 같은 적극적인 증거 조작 외에도 수사팀이 간첩사건 수사 과정이 조작돼 있음을 알고 있었을 법한 정황은 더 있다.

수사팀은 재판부에 ‘출입출입’ 내용의 출입경기록을 제출했지만 이미 유우성씨 동생 유가려씨가 국정원에서 ‘오빠가 2006년 5월27일 어머니 장례를 치르고 중국으로 나온 뒤 압록강을 도강해 다시 북한으로 들어갔다’(출입입입)는 진술을 확보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것은 검찰이 2013년 11월1일 재판부에 낸 유우성씨 출입경기록의 내용과 상반되는 진술이다.

유가려씨의 진술과 출입경기록 내용이 배치된다는 것을 베테랑 공안 검사들이 몰랐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미 유가려씨는 ‘국정원의 회유와 강압수사로 오빠가 간첩이라고 허위자백했다’고 원심 재판 때 주장한 바 있다. 검찰이 최소한 2013년 10월 중순 ‘출입출입’ 내용의 출입경기록을 입수한 뒤에는 출입경기록 내용이 틀렸거나 유가려씨의 국정원 진술 내용이 틀렸거나 둘 중 하나는 의심을 했어야 정상이다.

또 검찰이 유우성씨의 사진 증거자료를 의도적으로 불리한 것만 골라서 재판부에 제출한 정황도 있다. 검찰은 원심 재판부에 유씨가 2012년 1월 설 명절 때 북한으로 건너가 찍어온 사진들이라며 증거 사진들을 제출한다. 유씨가 2004년 3월 이전까지 북한에서 지낼 때의 모습들이 담긴 앨범 사진을 아이폰 휴대전화로 유씨가 찍은 것들을 검찰이 압수수색 과정에서 찾아낸 것이다.

그런데 이 사진들은 북한이 아니라 중국 길림성 연변시에서 2012년 1월 설 명절 때 유씨가 찍은 사진임이 변호인단에 의해 확인된다. 아이폰은 사진을 찍은 위치 정보를 사진 파일에 남기게 돼 있는데 디지털 포렌식 감식 결과 연변시에서 찍은 것들로 확인된 것이다.

아주 간단한 디지털 포렌식 확인만으로도 연변시에서 찍은 사진임을 변호인단이 확인하는데, 각종 공안 수사 경험이 많은 국정원과 검찰이 이것을 확인하지 못하고 북한에서 찍은 사진으로 오해했다는 것은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또 유씨의 휴대폰 사진 폴더에는 2012년 1월 설에 유씨의 앨범 사진뿐 아니라 유씨가 연변시의 한 노래방에서 친지들과 놀던 사진, 연변시 불꽃놀이 사진 등이 함께 담겨 있었다. 유씨가 그해 설에 연변에 있었음을 강력하게 암시하는 사진들이 같은 폴더 안에 있는데도 검찰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런 사진들은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하지 않았다.

양승봉 변호사는 “뻔히 북한에서 찍은 사진들이 아닌 것을 알면서 북한에서 찍은 사진이라고 주장한 것이기 때문에 검사들이 국가보안법 12조의 날조죄를 저지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검의 필요성을 보여준 검경 수사

민변과 유우성씨는 지난 1월 이러한 전반적인 날조 행위에 대해 검찰과 국정원 수사팀을 국가보안법 위반(날조) 혐의로 고소했다. 최근 경찰은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다. 검찰과 국정원 수사팀 어느 누구도 소환조사 하지 않았다. 검찰 진상조사팀이 같은 사건을 수사해 이미 공소를 제기하거나 불기소 처분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검찰 진상조사팀은 증거 위조 부분만 수사하고 유가려씨 허위자백 강요와 2012년 1월 설 사진 의혹 등에 대해서는 수사하지 않았다. 경찰은 이를 고려하지 않고 검찰 진상조사팀이 내어놓은 수사 결과만 보고 불기소 의견을 정했다. 민변은 검찰의 수사지휘를 받는 경찰이 제대로 수사를 해보지도 못하고 접은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민변은 특검을 주장하고 있다. 검경 어느 누구에 맞겨도 국가기관의 증거 날조와 위조를 제대로 수사할 수사기관이 없다는 것이 확인되어 특검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검찰 감찰본부는 1일 브리핑에서 수사 검사들의 컴퓨터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검사들의 개인 휴대폰 등은 확인하지 않았다. ‘수사 검사들이 국정원 직원(또는 정보원)에게 몇차례 (위조 여부) 확인 작업을 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확인할 수 있는 데까진 확인했다”고 답하며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다.

한편, 검찰 진상조사팀은 ‘증거 위조 사실을 밝히겠다’고 연락해온 ㄱ씨를 참고인 조사하는 대신 그의 2013년 3월14일부터 2014년 3월13일까지의 통화 내역만 조회해 본 것으로 <한겨레> 취재 결과 드러났다. ㄱ씨가 검찰에 알려주고 싶은 내용에 귀 기울이기보다 그가 지난 1년간 누구와 접촉하고 다녔는지 확인하는 것에만 더 관심을 두었다는 인상을 준다.

대검찰청은 ㄱ씨를 소환조사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위조 의혹 문건과 직접 관련성이 떨어지고 신뢰성이 떨어지는 인물이어서 조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문성 검사는 <한겨레>의 답변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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