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수사팀 검사들은 단순히 국정원에 속은 것이 아니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기자실에서 감찰 발표 브리핑을 하는 이준호 대검 감찰본부장.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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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뉴스분석 왜?
어느 국정원 정보원의 고백
▶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피의자 유우성씨는 국가보안법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이것으로 간첩 증거조작 논란은 끝일까요? 증거조작의 책임자들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면 이 사건은 끝난 게 아닙니다. 조작사건의 의혹을 풀 열쇠를 쥔 중요한 참고인을 검찰 진상조사팀은 조사도 안 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검경이 수사 제대로 안 하면 특검 요구가 안 나올 수 없습니다. 진실을 알고 있는 국정원 정보원이 오랜 고민 끝에 <한겨레>와 만났습니다.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을 수사한 검찰 진상조사팀은 지난달 14일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핵심 내용은 ‘국정원 대공수사단장(2급) 이상은 증거조작을 몰랐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수사팀 검사들도 (출입경기록 등 문서는 중국 당국이 발급한 것이라는) 국정원의 말을 믿었다’는 것이다. 국정원 대공수사국 이아무개 대공수사처장(3급)까지만 형법상 모해증거위조 등의 혐의로 기소(4명 기소·권아무개 대공수사국 과장 시한부 기소중지)되고 윗선은 기소를 면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수사와 재판을 담당한 이문성(42·사법연수원 28기)·이시원(47·29기) 검사는 기소 대신 검찰 내부 감찰만 받는 것으로 결정됐다.
대검찰청은 1일 두 검사에 대해 각각 정직 1개월에 처해달라고 법무부에 청구했다. 정직은 중징계 중 가장 낮은 처분이다. 간첩사건 수사 당시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장이었던 최성남(49·24기) 울산지검 형사1부장은 감봉 3개월을 청구했다.
간첩사건 수사팀의 이문성·이시원 검사는 정말 증거조작 사실을 모른 채 재판에 임했을까. 진상조사팀은 이들 검사가 조작을 알고 있었는지 여부를 밝혀내려고 최선을 다했을까. 간첩사건 수사팀(서울지검 공안1부)은 지난해부터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을 수사한 곳이고, 진상조사팀(윤갑근 진상조사팀장)은 증거조작 의혹이 불거진 뒤 검찰이 올해 2월 진상조사를 위해 꾸린 팀이다.
출입경기록 조작 사실 확인해
국정원·민변에 알린 정보원 ㄱ씨
검찰 진상조사팀에 증언하겠다며
십여차례나 전화로 연락했음에도
소환조사 안한 이유는 무엇일까
‘출입입입’과 ‘출입출입’ 기록
함께 있었지만 존재사실 숨기고
중국서 찍은 사진 북한으로 둔갑
증거날조 미필적 고의 의심되나
대검은 수사검사 휴대폰도 안 살펴
“윗선 결재 있어야 소환” 설명만 들어 <한겨레> 취재 결과, 진상조사팀은 수사팀이 증거조작을 알고 있었는지에 대해 핵심적인 증언을 할 수 있는 국정원 민간인 정보원과 비공식적으로 접촉을 한 뒤에도 소환조사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간첩사건 수사팀 검사들이 단순히 국정원에 속은 것이 아니라 증거조작이 추정되는 상황에서 스스로 추가확인을 하지 않아 ‘증거조작의 미필적 고의’가 있었던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도 확인됐다. 그는 바로 증거조작 사실을 유우성(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피의자. 4월25일 항소심 무죄 판결)씨 변호인단과 국정원에 알린 민간인 국정원 정보원 ㄱ씨다. ‘조작사건 파동’이 그에게서부터 시작된 셈이다. ㄱ씨는 중국 내 정보원을 통해 유우성씨 사건을 전담하는 국정원 관계자가 출입경기록을 조작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직후 이 사실을 변호인단과 국정원에 같이 알렸다. 그는 민간인 신분이지만 오랫동안 중국 정보 당국과 접촉하며 ‘대중 휴민트’ 요원(중국 쪽 인적 정보망)으로 활약해 온 인물이다. ㄱ씨는 최근 <한겨레>와 만나 “진상조사팀이 꾸려진 (2월18일) 직후 조사팀에 전화를 걸어 ‘자진출석해 증거 조작 확인 과정과 수사 검사들의 증거 조작 인지 여부를 밝히겠다’고 수차례 말했지만 나를 조사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진상조사팀 박영준 서울중앙지검 외사부 부부장 등 진상조사팀 관계자들과 십여차례 통화했지만 ‘윗선의 결재가 있어야 소환할 수 있다’는 설명만 들었을 뿐 조사팀은 끝내 연락을 해오지 않았다고 그는 주장했다. ㄱ씨가 국정원 수사팀의 증거조작 사실을 국정원(수사팀이 아닌 다른 국정원 부서)에 사전에 알렸다는 것은 지난 2월 언론 인터뷰를 통해서도 일부 나왔다. 그렇기 때문에 진상조사팀으로서는 ㄱ씨가 중요한 참고인임을 쉽게 인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제 발로 걸어들어온 중요 참고인을 조사하지 않았다. 진상조사팀은 부실한 수사를 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남재준 국정원장과 서천호 제2차장은 서면조사도 하지 않았다. 진상조사팀은 “국정원 최고 윗선을 조사할 만큼 관련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언론에 해명했지만, ㄱ씨를 조사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숨겼다. ㄱ씨는 국정원에 직접 보고를 했기 때문에 어느 선까지 증거조작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를 증언해 줄 수 있는 인물이었지만 이를 외면한 것이다. 진상조사팀은 ㄱ씨를 부르지 않았지만 간첩사건 수사팀은 그를 불러 출입경기록 등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지난 1월 초였다. 수사팀은 그를 불러 조사한 뒤에도 참고인 조서도 작성하지 않았다. 재판부와 언론 어디에도 지금까지 소환조사 사실을 밝힌 적이 없다. 왜 수사팀이 민간인 정보원을 이렇게 비밀스럽게 불러 조사했을까. 지난해 12월 유우성씨 변호인단은 재판정에서 ‘조작된 증거가 재판부에 제출된다는 정보가 들어왔다’고 경고했다. 정보 출처가 어디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검찰 수사팀은 그러나 수완을 발휘해 변호인단에 정보를 건넨 국정원 민간 정보원을 찾아내어 연락했다. ㄱ씨는 “1월3일 이문성 검사가 내게 전화를 해왔다. ‘국정원과 연락하고 지내는 분이냐’고 묻더니 저보고 무조건 와서 조사를 받으라고 했다. 내가 피의자인지 참고인인지도 안 밝히고 ‘와서 조사받으면 다 안다’고만 했다”고 말했다. 그는 1월6일 조사를 받으러 서울중앙지검을 찾아갔다. 이문성 검사가 ‘유우성의 북-중 출입경기록을 중국에서 본 적 있느냐, 민간 정보원이 출입경기록을 어떻게 볼 수 있느냐. 민변에 찾아간 적 있느냐’ 등을 물었다. 그는 이문성 검사가 증거 위조를 최초로 외부에 알린 정보원을 소환해놓고 증거 위조의 가능성을 묻는 게 아니라 (수사팀이 아닌) 민간 정보원이 출입경기록을 살펴보는 게 가능한지만 확인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유우성씨 변호인인 양승봉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는 “국정원이 가져다준 출입경기록이 위조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은 것을 보면 검사가 위조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 추정할 수도 있다. 유우성씨 출입경기록 원본(출-입-입-입 오류 상태의 기록)을 제3자가 확인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게 더 중요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수사팀이 증거 조작 사실을 알았다면, 그들 입장에서는 출입경기록 원본의 내용을 아는 제3자가 없어야 위조된 기록(출-입-출-입 오류가 수정된 상태의 기록)을 재판부에 제출해도 뒤탈이 없어진다. ㄱ씨는 “출입경기록은 얼마든지 내가 중국 당국으로부터 확인 가능하다고 말하자 이(문성) 검사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고 전했다. 유우성씨는 2006년 5월23일 어머니 장례를 치르러 중국에서 북한으로 들어가고(출), 2006년 5월27일 오전 10시24분 중국으로 나왔다.(입) 하지만 중국 출입경기록 시스템의 오류로 인해 출입경기록 원본에는 2006년 5월27일 오전 11시16분 다시 북에서 중국으로 나오고(입), 2006년 6월10일 다시 북에서 중국으로 나온(입) 기록이 붙어 있다.(출-입-입-입) 존재하지 않는 기록 두개가 더 붙은 것이다. 국정원이 조작한 출입경기록은 내용이 좀 다르다. 2006년 5월23일 북으로 들어갔다가(출), 27일 중국으로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고(출-입), 유우성씨가 보위부 남파 요원이 된 뒤 6월10일 중국으로 나왔다고(입) 되어 있다.(출-입-출-입) 검찰 수사팀은 ㄱ씨의 진술 내용은 조서로 남기지 않았고, 재판에서 ‘유우성 출입경기록은 화룡시 공안국이 발급한 것이 맞다는 공안국 확인서까지 존재한다’는 기존 입장을 번복하지 않았다. 뒤에 이 공안국 확인서 또한 조작된 것으로 밝혀진다.
지난 4월25일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기뻐하는 유우성씨(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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