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후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5층 회의실에서 티브이 칼럼니스트 이승한씨(왼쪽)와 유우성씨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거울에 비쳤다. 유우성씨는 선고를 앞둔 24일 밤 “솔직히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몰라 떨려 잠을 못 잘 것 같다”고 말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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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뉴스분석 왜?
이승한이 만난 유우성
▶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의 피의자 유우성씨가 25일 국가보안법 위반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한겨레는 무죄판결을 받을 거라 믿고 미리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조작 증거로 기소당한 사람에게 무죄를 판결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가 상식이 붕괴돼 있는 북한 사회와 무엇이 다를까요. 이번 인터뷰는 보통 사람의 시선으로 유우성씨를 보자는 취지로 티브이(TV) 칼럼니스트 이승한씨에게 부탁했습니다.
유우성씨를 인터뷰해달라는 제안을 <한겨레>로부터 받은 건 지난주 목요일(4월17일), 25일 예정된 항소심 선고 공판을 일주일여 남겨둔 시점이었다. 검찰 쪽이 제시한 증거들이 조작된 것으로 밝혀져 증거 능력을 상실하고, 이에 대해 대통령과 국가정보원장이 사과를 한 이후에도, 재판은 ‘부끄러움’이란 단어들은 들어 본 적 없다는 듯 공소가 유지된 채 계속 진행됐다.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다. 사회면이 다루는 사람을 왜 연예면의 티브이 칼럼니스트가 인터뷰한단 말인가. “기자가 아니라 그냥 승한씨 또래의 평범한 사람들이 궁금해할 만한 걸 선입견 없이 물어볼 사람이 필요했어요.” 설명을 들은 뒤에도 의문은 가시지 않았다. 천지사방에 널린 게 내 또래 글쟁이인데 왜 나지? 그 난리통 한가운데 있는 사람을 붙잡고 “좋아하는 여자 연예인은 누군가요?” 같은 질문이라도 던져야 하나?
인터뷰 날 아침, 검찰은 혐의를 입증할 새로운 증거를 발견했다며 변론 재개 신청을 했다. 2009년 6월, 유우성씨가 자기 자신을 수신자로 삼아 보낸 이메일이 북한 보위부에 보낼 노트북의 재원을 설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이었다. 유우성씨 쪽은 어머니 장례식 때 북한에 다녀온 일로 검찰의 조사를 받던 2009년, 자신이 재북화교란 사실을 숨기려 ‘국경을 넘는 대가로 북한 보위부에 노트북을 뇌물로 줬다’는 거짓 증언을 하기 위해 작성한 메모라고 말했다. 과연 이메일 내용을 보니 “대전시 대덕구 법동 우체국으로 보낸 것 같습니다. 정확히 기억이 안 납니다”와 같은 경어가 적혀 있었다. 수사관에게 증언을 하기 위해 준비한 자료가 아닌 이상, 자기 자신에게 메모를 전송할 때 이리도 공손하게 경어를 쓰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 보는 내가 이렇게 황당한데, 당사자인 그의 심경이 어떨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걱정을 안고 만난 유우성씨는 다행히 예상보다 밝은 표정이었지만, 어색한 공기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어색함도 깰 겸 용기를 내어 실없는 질문을 던졌다. “제가 티브이 칼럼니스트거든요. <한겨레>가 제게 인터뷰를 맡길 땐 그래도 이유가 있을 텐데, 혹시 티브이는 좀 보시나요?” “제가 요즘 뉴스밖에 못 봐서.” 이런, 좋아하는 여자 연예인을 묻는 건 요원해졌다. <살인의 추억> 속 송강호처럼
그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혹시 그가 정말 간첩은 아닐까…
내가 본 건 소동에 휘말리다 지친
내 또래 한국남자의 얼굴이었다
‘씨스타의 다솜 좋아하지만…’
연예인 좋아하는 것조차 남의
눈치를 보는 듯한 그의 말에
나는 순간 서글퍼지고 말았다
우린 우스꽝스런 시대를 산다
‘넌 간첩이야, 아니라면 네가 증명해봐’ -25일이 선고 공판일인데, 오늘(22일) 검찰이 변론 재개를 신청했다. “전에 밀입북 혐의로 수사받을 때 수사관들에게 제공한 자료인데, 그걸 새로운 증거인 양 내미니 씁쓸하다. 언론에서 그런 내막은 빼고 검찰의 입장만 보도하면 보는 분들 입장에선 ‘이게 뭔가 굉장한 증거가 나온다’고 생각하지 않겠나.” (재판부는 검찰의 요청을 거절하고 25일 선고를 결정했다.) -어떤 판결을 기대하나? “전체 무죄가 나오면 좋겠지만, 그보다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잘못된 부분이 바로잡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백 프로 무죄 판결을 확신할 수는 없지만 나와 나를 도와준 변호사들, 기자들과 신부님, 목사님들은 진실만을 추구하며 최선을 다했으니까. 난 진실의 힘을 믿고 싶다.” -재판 결과와 무관하게 여전히 당신을 간첩이라 여기는 이들도 있을 텐데. “북한을 다녀왔으니 뭔가 있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는 분들 계실 거다. (한국의) 북한대학원에는 방학을 맞아 평양을 다녀오는 러시아나 중국 학생들도 많은데, 그러면 그 사람들도 다 간첩인가? 한반도 분단 상황 때문에 사람들이 공포를 갖고 산다. 북한에 가는 것 자체가 엄청나게 나쁜 일이라 세뇌된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허가 없이 북한에 다녀온 게 위법한 행위라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가족의 부고 앞에 이성을 찾을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나도 어머니의 부고에 이성을 잃고 재북화교 신분을 이용해 북한에 가서 장례를 치른 거다. 북한도 날 재북화교인 줄 알고 입국을 허락한 거고. 이 일에 대해 이미 2007년부터 2010년까지 3년을 조사받았다. 뭔가 있었다면 그때 밝혀졌겠지. 뭐가 없으니 2011년 탈북자로는 처음으로 서울시 계약직 공무원에 합격한 것 아닌가. 이 사건이 이만큼 밝혀지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탈북자 출신 공무원 1호도 간첩이었으니, 탈북자의 공직 채용은 다시 고려해봐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진실과 인권을 찾아온 탈북자들에 대한 인상이 그렇게 굳어진다.” -그러잖아도 기존에 한국에서 탈북자들을 보는 시선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그들도 북한의 독재가 싫어서 탈북한 건데, 연평도 포격 같은 일이 터지면 안 좋은 시선이 탈북자들에게 쏠린다. ‘너네는 대체 왜 저러냐’ 같은 질문들도 받게 되고. 그래서 자신이 탈북자라는 사실을 숨기는 이들도 적지 않은데, 말투나 어휘 같은 평생 습관이 쉽게 바뀌나. 한국에 온 지 10년 된 나도 이제야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는데, 나이가 있는 분들이나 한국식 교육을 받지 못한 분들은 더 티가 난다. 그 와중에 자꾸 이런 (조작)사건이 터지면 시선은 더 안 좋아진다.” -그런 환경에서도 서울시 공무원이 되어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간첩으로 몰렸다. “난데없이 간첩이라니 처음엔 수사관들의 말을 못 알아들었다. 티브이를 보니 내가 간첩이라는 뉴스가 나오더라. 탈북자 만여명의 정보를 넘겼다던가. 내 업무는 기초생활수급자 관련 보조 업무였다. 수급자 중에는 장애인, 독거노인, 어린이, 탈북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데, 뉴스에선 마치 내가 탈북자 관련 업무만 본 것처럼 말하더라.” -언론도 혐의 입증 전까지는 단정적인 보도를 피해야 하는데…. “(말을 끊고) 책에나 그렇게 적혀 있는 거다. 검찰이 ‘너는 간첩이야. 아니라면 네가 증명해 봐’라고 말하는 상황이었다. 기껏 증명을 하면 다시 조작된 증거를 들고 ‘사실 진짜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이거야’라고 몰아세우고. 많은 언론이 그걸 그대로 받아 쓴다. 사회에 공포가 조장되고 탈북자들은 더 고립된다. 한국 사람이야 탈북자 친구 하나쯤 없어도 괜찮지만, 탈북자는 한국 친구들이 없으면 살 수 없는데 말이다.” -원심 때만 해도 직접 언론에 모습을 보이진 않았는데, 어느 시점부터 직접 언론을 상대하더라. “이게 뭐 자랑이라고 인터뷰를 했겠나. 나도 한국에서 계속 살려면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는데. 그런데 항소심 때 중국-북한 간 출입경기록이 조작되어 증거랍시고 나오고 기사가 나니까 미치겠더라. 조작된 증거와 그걸 옮기는 언론의 왜곡 보도가 아니었다면 이 인터뷰도 안 했을 거다. 언론이 왜곡 보도로 사람 하나 매장하는 거, 글 몇 문장이면 충분하다. 예전에 있었던 간첩 사건들에선 이런 일이 또 얼마나 많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공개적으로 싸워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민변이 증거 조작했다면 벌써 감옥 갔을 것 -증거조작사건 진상조사팀 윤갑근 검사가 국정원에 날조죄를 적용하지 않은 이유로 “북한으로 입국했다고 판단하고 위조한 것은 날조가 아니다”라고 했는데? “간첩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증거를 조작해도 죄가 아니란 소리인데, 그게 어느 나라 말인가. 만약 민변이 조금이라도 조작된 증거를 제출했다면 변호사들은 벌써 감옥에 가 있을 거다. 법을 집행하는 이들이 법을 안 지키는데 어떻게 국민들에게 법을 지킬 것을 요구하는지 모르겠다. 보는 사람들이 진실보다 권력이 더 세다고 생각하지 않겠나.” -자유로운 삶이 목표였다면, 꼭 선택지가 대한민국일 필요가 있었나? 재북화교 신분으로는 중국으로 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외증조부께서 일제와 맞서 싸우다 한반도에서 돌아가신 뒤 우리 후손들은 쭉 한반도에서 살았다. 한반도 사람으로 나고 자란 것이다. 나는 중국말보다 한글을 더 자연스럽게 읽고 쓰는 사람이다. 남북한이 속지주의를 택하고 있었다면 나는 그냥 한민족 같은 사람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왜 중국으로 가겠는가. 또 (북한의) 고등학교 동기 중 탈북 후 한국으로 넘어온 이들이 많다. 그들로부터 연락을 받으며 한국에 대해 듣게 되었고 한국에 대한 동경을 품었다. 내 친구들이 있고 내가 쓰는 말을 쓰며 자유와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나라. 여기가 아니라 다른 곳이 있었을까.” -최근 탈북자들이 집 앞까지 찾아와 시위를 한다고 들었다. “보니까 다 아는 사람들이더라. 화가 나지만 그들도 진심으로 하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만약 온전하게 교육받고 제대로 정착했다면 명확한 판단을 하지 않았겠나. 한국 사회에서 직업을 구하지 못하고, 그래서 권력기관에 붙어 돈을 받고 살아가야 하는 상황이 안타깝다.” -중국에 있는 가족들은 괜찮은가? “아버지 콩팥에 종양이 있는데, 현재 국적이 없어 수술을 못 받고 있다. 재북화교라는 게 중국 국적자라는 뜻이 아니다. 중국 여권은 있지만, 북한에서 아예 나와 중국에서 살려면 국적을 취득해야 한다. 의료 혜택을 받으려면 시민권이 필요하고 시민권을 따려면 3~4년이 필요한데, 3년이 지나도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아들이 재판을 받고 있는데 아버지라고 편한 마음으로 몸을 돌볼 수 있겠나. 동생(유가려)도 강압수사의 후유증으로 인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 극복하려면 시간이 필요하겠지. 재판부와 언론에 호소하고 싶은 건, 하루빨리 이 사건이 마무리되어 아버지 수술도 받고 우리 가족이 입은 상처도 치유할 수 있게 해달라는 거다.” -그 많은 일을 겪으면서도 한국에 대한 애정이 깊은 것 같다. 11일 결심공판 때 ‘대한민국을 사랑한다’고 말했던데…. 사실 유우성씨 또래의 한국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은 정치, 사회, 복지 등 여러 측면에서 국가에 대한 환멸을 느끼며 이민을 준비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나는 엄청난 일을 겪고 있지만, 대한민국은 긍지를 가져도 좋은 나라다. 한국은 북한에 비해 인권이 보장된 나라다. 이건 내가 북한에서 왔기 때문에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은 선진국으로 가는 단계이고, 조금씩 문제를 바로잡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내가 환멸을 느끼고 한국을 떠난다고 병폐가 고쳐지는가? 병폐는 그대로 남아 곪는다. 젊은 사람들이 너무 바쁘게 사느라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뉴스를 볼 시간도 없이 지내는데, 그러다 보니 뉴스를 보는 건 부모 세대뿐이다. 어쩌면 그런 무관심이 우리 사회를 이렇게 만든 건 아닐까? 우리는 우리 부모가 만들어 준 사회에 살고 있다. 사회에 대한 애정 없이 이대로 두면, 자식들에겐 어떤 사회를 물려줄 수 있을까? 젊은이들이 사회에 대해 잘 생각해 보고, 함께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며 정의를 세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대통령 사과해놓고 어떻게 공소유지 계속되나 -외신기자들도 만나서 인터뷰하는 것 같던데, 그들은 한국에 대해 뭐라고 하던가? “대통령이 증거조작에 대해 사과까지 했는데 증거조작 가담자들 일부가 불기소 처분 되는 것과 나에 대한 공소 유지가 계속되는 것이 이상하다고들 하더라. 또 한국의 수사기관들은 별로 언론을 무서워하는 것 같지 않다고 공통적으로 말한다.” -만약 판결이 당신에게 유리하게 나와 한국에서 아무 제재 없이 살 수 있게 된다면 앞으론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사회복지대학원 졸업까지 1년 정도 남았다. 잘 마무리해 복지 관련 전문인력이 되고 싶다. 기회가 주어질지 모르겠지만 남들보다 더 열심히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에서 수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받아서 자립할 수 있었으니, 그만큼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기쁨을 이 땅에서 누리고 싶다. 물론 이 일을 겪으며 만난 나쁜 사람도 많지만, 그걸 바로잡으려는 선한 사람들도 많았다. 내가 벼랑 끝에서 만난 이 귀한 사람들을, 한국 아닌 그 어느 곳에서 다시 만날 수 있겠나.” 인터뷰 내내 나는 나와 네살 차이가 나는 유우성씨의 얼굴을 다시 한번 유심히 들여다봤다. 영화 <살인의 추억> 속 송강호처럼, 귀신 눈깔이라도 있어서 척 보면 이 사람이 정말 간첩인지 아닌지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물론 보기만 해서 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 제대로 된 절차와 증거들로 진실 공방을 펼쳐 사법부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거겠지. 당연하게도. 적어도 내가 보고 온 것은, 요란스러운 소동에 휘말려 싸우느라 지친 내 또래의 한국 남자였다. 이 당연한 결론을 얻기 위해 <한겨레>는 나를 불렀던 걸까. 인터뷰가 끝날 무렵, 나는 슬그머니 “좋아하는 여자 연예인이 있느냐”고 물었다. 처음엔 “김연아?”라는 모범 답안으로 피해가려던 유우성씨는, 배석한 기자의 추궁에 “씨스타의 다솜을 좋아하는데, 이거 기사에 나가면 혹시 또 ‘왜 너 같은 게 우리 다솜을 좋아하느냐’는 항의를 받는 건 아닌가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순간 서글퍼졌다. 연예인을 좋아하는 것조차 남의 눈치를 봐야 한다니, 지금 우린 무슨 우스꽝스러운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인가.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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