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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2.21 19:48 수정 : 2014.02.23 13:42

집회 현장에서 경찰은 변호사가 변호사증을 보여주어도 연행된 피의자에 대한 접견권을 보장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권영국 변호사가 2009년 7월22일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정문 앞에서 연행된 시민단체 회원 접견권을 요구하며 변호사증을 보이고 있다. 정용일 <한겨레21> 기자 yongil@hani.co.kr

[토요판] 뉴스분석 왜?
권영국 변호사의 어떤 승리

2009년 6월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 공장 앞은 혼란스러웠다. 정리해고 위기에 빠진 노동자들은 공장을 점거한 채 싸우고 있었다. 쌍용차 사쪽 경비인력들은 호시탐탐 공장으로 진입하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경찰은 공장 밖으로 나오는 노동자들을 체포하려고 분주했다.

6월26일 오전 10시30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 변호사들이 쌍용차 공장 정문 앞으로 모였다. 이곳에서 ‘정리해고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한 법률가 공동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었다. 권영국(52) 변호사도 이곳에 도착했다. 권 변호사는 민변 노동위원장이다.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민변 노동위원회에 ‘법률자문이나 연행사태가 발생할 경우 접견 등의 조처를 취해줄 것’을 공문으로 보낸 상태였다. 쌍용차노조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이었다.

체포 순간부터인가, 경찰서 도착부터인가

오전 10시40분께 출동해 있던 경찰들이 기자회견에 참석하러 오는 노동자 6명을 쌍용차 정문 근처에서 둘러싸기 시작했다. 공장을 점거하고 있다가 건물 밖으로 나온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은 “왜 우리를 둘러싸는 것이냐”고 항의했다. 권 변호사가 이를 목격하고 경찰 쪽으로 다가갔다.

“이 사람들의 통행을 방해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체포하는 것인가요? 체포 이유가 무엇인가요?” 권 변호사가 노동자들을 에워싼 경찰들에게 물었다. 아무도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인도 건너편에 경찰 간부들이 서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현장을 지휘하던 류아무개(48·당시 경기지방경찰청 소속 807중대장) 경정에게 다가갔다. 변호사 자격증을 보여주었다.

“이 사람들을 왜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인가요?” 권 변호사가 묻자 류 경정이 “고착관리(경찰력으로 에워싼 채 관리하는 것) 되어 있는 노조원들이 수배자인지 여부를 확인하는 중이다”라고 답했다. 류 경정은 짧은 한마디를 내뱉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근처에 있던 또다른 경찰(808전경대장 추정)에게 다시 묻자 “퇴거 불응 현행범인으로 체포한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권 변호사가 “사람들이 (건물 안이 아닌) 인도에 있는데 어떻게 퇴거 불응이냐”고 따지자 그는 “아, 그러네요”라고 답한 뒤 침묵했다. 옆에 있던 평택경찰서 홍아무개 수사과장은 “법원에 가서 따지라”고 말했다. 노동자들은 30분 넘게 경찰력이 에워싸고 있었다.

권 변호사 등 나머지 변호사들이 아무리 물어봐도 속시원히 대답해주는 경찰이 없었다. 입을 꼭 다물고 있던 경찰들은 방패를 앞세워 권 변호사 등을 공장 담 쪽으로 밀어붙여 에워쌌다. 그 틈을 타 고착해 두었던 노동자 6명을 경찰차에 태워 연행했다.

오전 11시께 또 다른 노동자가 경찰력에 둘러싸였다. 류 경정이 병력을 지휘하고 있었다. 권 변호사는 역시 변호사 자격증을 꺼내들고 체포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류 경정은 권 변호사에게 대답하는 대신 체포한 노동자에게 “퇴거 불응죄 현행범인으로 체포합니다.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습니다”라고 고지했다.

2009년 평택 쌍용차 공장 앞서
노동자 연행 따지다 체포된 뒤
현장 책임자인 경찰 간부 고소
5년 만에 변호인 접견권에 대한
의미있는 판결을 이끌어내다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다”고
고지한다고 다 끝난 게 아니다
경찰의 진정한 미란다 원칙은
체포현장에서 변호인 접견권을
보장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권 변호사는 체포한 노동자에 대한 변호인 접견권을 류 경정에게 요청했다. 그러나 류 경정은 대답 대신 경찰들에게 “막아”라고 지시했다. 경찰은 방패를 이용해 권 변호사가 노동자에게 접근하는 것을 막았다. 권 변호사는 경찰 방패를 손으로 치며 항의했다. 이어 체포한 노동자를 호송차에 태웠다. 권 변호사는 차량 앞을 가로막았다.

“저는 권영국 변호사입니다.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다는 고지 내용에 따라 변호인 접견권을 요청합니다.” 권 변호사가 외쳤다. 이 말이 끝남과 동시 류 경정은 권 변호사를 공무집행 방해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권 변호사는 수원 서부경찰서로 이송됐다. 변호사 체포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권 변호사는 이틀 뒤 석방됐다. 권 변호사의 공무집행 방해 혐의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은 원심과 항소심 모두 무죄였다. 항소심 재판부 수원지법 형사5부(부장판사 윤강열)는 지난해 1월 “경찰이 적법한 체포 절차를 밟지 않았고, 위법한 공무에 항의하는 것은 공무집행 방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억울하게 체포된 변호사가 무죄 판결을 받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권 변호사는 이날 현장 책임자 류 경정을 변호인 접견권을 방해한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법원의 판결은 어떻게 나왔을까.

변호인 접견권은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권리다. 우리 헌법 12조 4항은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돼 있다. 이어 형사소송법 200조의5는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은 피의자를 체포하는 경우에는 피의사실의 요지, 체포의 이유와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음을 말하고 변명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경찰도 이를 잘 알고 있어 경찰은 늘 피의자 체포 때 ‘미란다 원칙’(피의자로부터 자백을 받기 전에 변호인 선임권과 진술 거부권 등 피의자의 권리를 알려야 하는 원칙)을 지킨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경찰은 피의자 체포 순간 변호인 접견권 보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피의자 체포 순간부터 할 것인지, 경찰서에 도착해서 할 것인지는 그때그때의 현장 상황에 맡겼다.

이런 탓에 류 경정은 스스로 변호인 접견권 보장이 자신의 할 일이 아니라고 인식한 흔적이 보인다. 그는 법정(2013년 10월17일 항소심)에서 검사의 신문에 이렇게 대답한 바 있다.

“체포 현장에서 변호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변호인 접견권을 행사하겠다고 얘기하면 체포된 사람에게 확인하는 것이 먼저일 것 같은데, 물어보지 않았나요.”(최두헌 검사)

“통상적으로 경비경찰은 (피의자) 고착하면서 체포까지만 해주고, 나머지 절차(변호인 접견권 등 사법적인 절차)들은 보통 수사경찰들이 하기 때문에 경비경찰은 거기까지 관여하지는 않습니다.”(류 경정)

류 경정, 권 변호사에게 1000만원 배상

류 경정은 또 법정에서 “6명의 노동자를 체포할 때 ‘공장 정문 쪽으로 가서 접견을 해주겠다’고 권 변호사에게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또다른 노동자 한명을 체포할 때는 “권 변호사와 같이 온 어떤 여자가 큰 소리로 접견을 요청한다고 소리치는 것은 들었지만 권 변호사가 직접 요청한 것은 듣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권 변호사는 강력하게 부인했다. 그는 “류 경정은 어떠한 접견 안내를 한 적 없고, 오직 ‘밀어, 막아내’라는 두 단어로 대응한 게 전부이다”라고 반박했다.

류 경정은 또 권 변호사의 체포 이유를 “상사들이 ‘권영국 변호사가 계속 체포 방해를 하는데 법대로 조처하라고 했으면 해야지 왜 저 사람은 방치하느냐’는 취지로 얘기했다”며 상사의 지시 탓으로 돌렸다.

사건 초기부터 검찰은 류 경정을 옹호하는 태도를 보였다. 수원지방검찰청(담당검사 이용민)은 2011년 2월11일 류 경정 등에 대한 고소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권 변호사는 법원에 재정신청(고소나 고발 사건에 대해 검사가 불기소 결정을 내렸을 때, 고소인이나 고발인이 그 결정에 불복하여 피의자를 재판에 회부해줄 것을 관할 고등법원에 청구하는 일)을 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재판이 시작될 수 있었다.

간신히 류 경정이 재판에 회부됐지만 흔히 보기 힘든 일들이 재판정에서 벌어졌다. 검찰이 피고인의 죄를 입증시키는 게 아니라 법정에서 적극 두둔하는 신문을 계속 했다. 권 변호사에게는 불리한 신문이 이어졌다. 피고인 쪽 변호인과 검찰이 마치 한 편처럼 보일 정도였다.

2012년 6월4일 수원지방법원 308호 법정(원심)에서 최나영 검사는 권 변호사에게 이렇게 신문했다.

“증인은 그날 조금 흥분한 상태였는가요?”(최 검사)

“처음부터 흥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권 변호사)

“그날 평화롭게 진행될 수 있는 상태였는데 증인만 계속 차에 적극적으로 달려들면서 접견권을 요청하던데…(중략)”(최 검사)

이후 검찰은 류 경정에게 무죄를 구형했다.

2013년 11월14일 수원지방법원 410호 법정(항소심)에서 최두헌 검사는 류 경정에게 이렇게 신문했다.

“혹시 정문 앞 버스에 가서 접견을 해주겠다고 한 사실은 있는가요?”(최 검사)

“정문 쪽에 조용한 곳에 가서 하자는 얘기는 했습니다.”(류 경정)

“권영국 변호사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법적으로 잘못하고 있다는 인식을 전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요?”(최 검사)

“정당한 체포행위에 대해 권 변호사가 공무집행 방해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 변호권을 방해할 생각 없었습니다.”(류 경정)

역시 검찰은 류 경정에게 무죄를 구형했다. 장순욱 판사가 “이 사건은 좀 이상하다. 공소를 유지하려는 쪽이 없고 검사와 (경찰 쪽) 변호인 모두 무죄를 주장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계속 류 경정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원심 재판부(재판장 이상훈)는 류 경정에게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고, 항소심 재판부(장순욱 재판장)도 지난해 11월 같은 형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노동자들을 ‘고착관리’라는 명목으로 사실상 체포하면서도 그 이유 등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고 있다가 상당한 시간이 경과한 뒤 권 변호사의 항의를 받고 나서야 비로소 체포 이유 등을 고지한 것은 형사소송법에 정해진 현행범 체포 절차를 준수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공무집행을 빌미로 변호사를 체포함으로써 헌법과 법률이 정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 것은 그 죄를 엄중히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방법원(민사 34단독 원종찬 판사)은 13일 류 경정이 권 변호사에게 1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하기도 했다.

권 변호사는 “검찰이 공소유지(피고인의 죄를 입증하려 하는 것) 역할을 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재판 과정 내내 경찰의 정당성을 옹호하고 고소인에게 불리한 답변을 끌어내려 노력했다”고 비판했다. 최두헌 검사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객관적인 재판부의 판단을 도출하려 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검찰은 여전히 권 변호사를 체포한 경찰에 죄를 물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대법원에 상고했다.

경찰청에선 경비경찰 모아 관련교육 진행도

집회 현장에서 경찰은 수시로 경찰직무집행법의 즉시 강제 행정이 가능한 조항을 활용해 시민들의 이동을 제한한다. 이 조항은 매우 제한된 범위에서만 경찰이 활용하도록 법이 명시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시민들이 항의하면 경찰은 ‘법정에 가서 따지라’는 설명을 하곤 한다. 권 변호사는 ‘어차피 시민들이 경찰을 고소해도 검찰이 불기소하니까 경찰이 공권력 남용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어찌 됐든 이번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결로 변호인 접견권에 관한 의미있는 해설서가 나왔다는 분석이다. 지금까지 변호인 접견권이 체포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주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법원 판단은 없었다.

경찰은 체포당하는 자에게 변호인의 조력을 체포당하는 순간부터 제공해야 하고, 변호인 접견권 보장 의무에 있어 경비경찰과 수사경찰의 구분은 없고, 체포 현장이 번잡한 곳이든 한적한 곳이든 관계없이 변호인의 접견권을 보장하려 노력해야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을 하지 않은 채 변호인이 되려는 자가 접견권 보장을 하지 않는 경찰에 항의했다고 해서 변호인을 체포하는 것은 공권력 남용이라는 게 사법부 판단이다.

권영국 변호사는 “체포 현장에서 경찰은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다’고 고지하면 미란다 원칙을 준수한 것처럼 인식하곤 한다. 그러나 고지 그 자체만으로 미란다 원칙을 준수했다고 봐서는 안 된다는 게 법원 판결의 의미”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이번 판결을 무척 신경쓰는 모습이다. 최근 경찰청에서는 전국의 경비경찰을 모아 관련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한 일선 경찰서 경비과장은 “2009년에는 딱히 체포 당시 변호인 접견권 보장에 대한 방침이 정해져 있지 않았고 또 쌍용차 파업 현장이라는 특수성이 작용해 벌어진 일 같다. 지금은 경찰이 방침을 정해 경비경찰을 상대로 교육을 많이 하고 있다. 경찰도 법원 판결에 따라 바뀌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경찰 내부에서는 변호인 접견권을 악용해 경찰 체포 작전을 의도적으로 방해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분위기도 있다. 권 변호사는 “변호인 접견이 체포 작전을 방해할 수 있다는 우려는 근거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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