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4.01.10 20:01 수정 : 2014.01.12 11:55

3일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산업노조 피죤지회 조합원들이 서울 성북동 이윤재 회장 집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대기발령, 지점폐쇄, 해고 등 부당한 탄압에 시달리던 이들은 이 회장에게 고용안정 보장을 요구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뉴스분석 왜? / ‘피죤 독재자’ 이윤재의 귀환

▶ 이윤재(80) 피죤 회장은 지난 2011년 부정비리 폭로를 막겠다고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전직 사장을 청부폭행하는 엽기적 사건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주인공이다. 그는 당시 법원에 선처를 호소하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 회장은 지난해 가을부터 다시 경영의 전면에 나섰고, 이후 피죤에서는 사장 퇴진, 노조 탄압, 부당 해고와 전직 등 악몽 같은 일들이 재연되고 있다.

피죤 강릉지점에서 주부영업사원으로 일하는 홍성단(49)씨는 지난달 16일 이후 매일 강원도 강릉의 집과 서울 역삼동 회사 사이를 출퇴근한다. 새벽 6시 이전에 집을 나서면 저녁 11시가 다 돼야 귀가한다. 매일 6~7시간을 길거리에서 낭비한다. 교통비도 매일 7만원 가까이 들어간다. 자칫 고속버스 막차라도 놓치면 하루 6만~7만원 하는 모텔비까지 부담해야 한다. 홍씨는 “저녁 늦게 귀가해서 밀린 청소와 빨래를 하다 보면 밤 12시가 넘는다. 다시 새벽에 일어나 출근하다 보니 가족들을 제대로 챙길 틈이 없다. 이러다간 이혼당하겠다는 생각까지 든다”고 한숨을 내쉰다.

대전지점에서 근무하던 류학재(38)씨의 처지도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류씨는 대전 집에서 출퇴근은 생각도 못하고, 매일 밤 회사 근처 모텔이나 찜질방을 전전한다. “(서울에서) 방값을 아끼려고 비슷한 처지의 직원들과 함께 자는 일이 많다.” 류씨와 대전지점에서 함께 일했던 임효경(30)씨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아 외박이 어렵기 때문에 매일 서울~대전 간을 출퇴근한다. 임신 3개월째로 홀몸도 아니다. 회사는 임씨의 호소를 들은 척도 않는다.

“빨래엔 피죤~” 한때 섬유유연제의 대명사로 불렸던 피죤에는 이들과 같이 생고생을 하며 가정파탄에 직면한 직원들이 20명을 넘는다. 이유는 회사의 일방적인 인사 때문이다. 피죤은 지난해 12월16일 지방지점을 폐쇄하면서 직원 22명에게 서울 본사 대기발령을 냈다. 며칠 뒤에는 수도권 근무 직원 4명에 대해 추가로 본사 대기발령을 내고, 1차 대기발령자 중에서 10명을 다시 부산지점으로 대기발령을 냈다. 항의하는 직원들에게 돌아온 회사의 답은 단순히 “경영상 이유”였다.

이윤재 피죤 회장은 2011년 10월5일 서울 강남경찰서에 출석해 이은욱 전 피죤 사장 청부폭행 혐의 관련 조사를 받았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미수채권 이유로 한 전례없는 해고

피죤이 왜 갑자기 이런 비상식적인 인사를 했을까? 직원들은 “노조 파괴 목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방지점 근무 직원들은 대부분 지난해 11월 초 신설된 노조(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산업노조 피죤지회)에 가입했다. 김현승 노조지회장은 “회사 간부들이 노조원들을 따로 불러 탈퇴를 압박하고 심지어 급여인상과 승진까지 미끼로 내밀며 회유해도 넘어가지 않으니까 지점폐쇄와 대기발령을 낸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는 부당해고까지 자행했다. 중국 수출 업무를 맡았던 최진해 대리는 2012~2013년 4천만원의 미수채권이 발생했다는 이유로 지난해 12월 해고라는 중징계를 당했다. 회사는 업무상 배임혐의로 형사고소까지 했다. 최 대리는 “미수채권을 이유로 해고한 전례가 없다. 미수채권은 기존 거래처에서 발생했는데도 회사는 내가 독단적으로 거래를 했다고 거짓말까지 한다”고 말한다.

직원들이 노조를 만든 이유도 부당노동행위로 인한 극심한 고용불안 때문이었다. 회사는 지난해 10월 중순 지방지점의 영업사원 63명에 대한 인사를 갑자기 단행했다. 본인 의사는 전혀 물어보지 않고 일방적으로 근무지를 모두 바꾸었다. 여사원들도 예외가 없었다. 한 예로 류학재 피죤지회 사무국장의 경우 대구지점에서 대전지점으로 바뀌었다. 류씨는 이후 가족들과 떨어져 대전에서 혼자 생활을 해왔다. 류씨는 불과 두달 사이에 근무지가 대구→대전→서울로 바뀐 셈이다. 일부 팀장 중에는 팀원으로 강등되는 날벼락이 떨어졌다. 이 과정에서 6명의 직원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회사를 떠났다. 노조가 설립되자 전체 직원의 3분의 1 정도인 40명이 넘는 직원이 바로 가입했다.

피죤의 부당노동행위는 이윤재 회장의 경영복귀와 함께 본격화했다. 이 회장은 2013년 8월 말에 회사 출근을 시작했다. 9월 초에는 정식으로 경영복귀를 선언했다. 그는 직원들을 불러모아 놓고 “피를 토하고 죽더라도 피죤을 살리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1년 10월 이은욱 전 사장을 청부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뒤 경영에서 물러나겠다고 약속한 것은 형량을 줄이기 위한 거짓말이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노조는 사실 이 회장이 경영에서 물러난 적이 없다고 증언한다. 류학재 사무국장은 “이 회장이 감옥에 있을 때도 회사 임원이 매주 한번씩 면회를 가서 지시를 받는 등 사실상 옥중경영을 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복귀 직후 조원익 사장을 해임했다. 엘지생활건강 출신인 조 사장은 2012년 12월에 피죤에 영입된 뒤 나름 회사를 살리는 구원투수 역할을 한다는 평을 들었다. 회사 시장점유율이 조금씩 올라가고 매출은 늘어났다. 하지만 결국 9개월 만에 쫓겨나는 신세가 됐다. 2007년 이후 취임한 사장 4명의 평균 재임기간이 불과 4개월에 불과한 ‘시이오(CEO)의 무덤’ 현상이 되풀이된 것이다. 이 회장은 이어 지방지점 직원들에 대한 대규모 부당인사를 자행했다. 노조는 “이 회장이 지방지점의 영업담당 여성 직원들에게 ‘여자가 무슨 마케팅을 하냐’는 막말도 했다”고 전했다.

이처럼 부당해고, 전직 등이 일상화되다 보니 피죤 임직원의 평균 재직기간은 다른 회사에 비해 극히 짧다. 재직기간이 2년 미만인 임직원이 전체의 절반을 넘을 정도다. 노조원인 김성곤 과장은 “마케팅팀의 경우 조원익 사장 시절에는 7~8명이 일했는데 지금은 단 1명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이 회장은 기존 직원을 내쫓은 뒤에 외부 경력사원을 다른 회사보다 월급을 더 주는 조건으로 채용하고, 임금은 올려주지 않고 1~2년 일을 시키다가 다시 내보내고 새로 직원을 채용하는 악순환을 되풀이한다. 직원들의 잦은 이직이 경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이다. 직원들은 “회사가 겉으로는 돌아가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곪아 터졌다. 성장은커녕 현상 유지에 급급하다”고 말한다.

이윤재 회장이 이처럼 병적으로 임직원들을 자주 교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조는 ‘불신’ 때문이라고 말한다. 김성곤 과장은 “기본적으로 직원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일종의 소모품으로 여기는데다, 본인이 부정부패를 저지르다 보니 밑의 임직원들도 못 믿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갑자기 영업직 63명 인사
지방지점 폐쇄 뒤 본사 대기발령
류학재씨는 두달새 근무지가
대구→대전→서울로 바뀌었다

극심한 고용불안에 노조 만들자
조합원 대상 비상식적 인사 남발
청부폭행으로 감옥 간 이 회장이
지난해 9월 경영복귀하고 나서
부당노동행위가 본격화됐다

임원에게 고액 연봉 주고 돌려받는다?

회사의 끈질긴 노조 탈퇴 압박과 부당노동행위에 지쳐 2명의 조합원이 지난해 말 회사를 떠났다. 하지만 나머지 조합원들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기자가 “이렇게 고생하느니 노조를 탈퇴하거나 회사를 그만둘 의사는 없느냐”고 물어봤다. 모두들 고개를 젓는다. 노조원 홍성단씨는 “내 청춘을 피죤에 다 쏟아부었다. 더이상 불명예스럽게 나가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홍씨는 1999년 주부사원으로 처음 피죤에 들어와 8년을 일했다. 2007년 회사가 대형 유통업체 매장에서 일하던 여성 직원들을 별도 회사 소속으로 떼어낸 뒤에도 팀장으로 5년을 더 일하다 2011년에 그만뒀다. 2012년 회사가 어려울 때 본사 영업담당 상무가 찾아와 “회사를 다시 살려보자”고 간곡히 부탁해 재입사를 했다. 하지만 1년여 만에 이런 최악의 사태에 직면했다. 홍씨는 “내가 노조를 탈퇴해 이번 일을 모면한다고 해도, 다음번 직원도 똑같은 부당대우를 받을 것 아니냐”고 말한다. 노조는 지난해 말 대표이사인 이주연 부회장(이윤재 회장의 딸)을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고용노동부에 고소했다. 또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는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했다.

이윤재 회장의 횡포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노조는 “이 회장이 과거처럼 직원들을 슬리퍼로 때리거나 칼로 찌르는 폭행은 하지 않지만, 욕설은 똑같다. 가족들까지 거론하며 모욕을 주고,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한다”고 말했다. 배임과 횡령 등 부정비리 의혹도 여전하다. 피죤은 지난해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과 법률 자문계약을 맺고, 6월과 12월 두차례에 걸쳐 7억원을 지급했다. 계약서에는 김앤장이 피죤의 구매 및 원자재 조달, 자금운용, 중국 자회사에 대한 투자 및 운영 등과 관련해 법률자문을 해주는 대가로 쓰여 있다. 하지만 노조는 “김앤장이 회사를 위해 법률자문을 해준 것이 없다. 이윤재 회장의 변호를 해주고, 비용은 회사가 부담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말했다. 김앤장은 이 회장의 청부폭력 사건과 배임·횡령 사건에서 모두 변호를 맡았다. 이윤재 회장 일가의 연봉은 30억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진다. 회장 일가의 개인 소유인 서울 역삼동 사옥의 임대료도 매년 10억원이 나간다. 노조는 “피죤 같은 작은 회사에서 회장 일가 연봉이나 사옥 임대료가 왜 그리 많은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임원들에게 고액의 연봉을 주고 일부를 되돌려받아 챙긴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노조는 “2011년에 근무했던 한 임원은 연봉이 4억원에 달했는데, 절반 정도는 (회장 일가에) 반납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겨레21>은 2011년 7~9월 이윤재 회장과 피죤의 부정비리와 불법행위에 관한 기사를 수차례 연재했다. ‘피죤 시이오와 노동자의 무덤’, ‘직원을 칼로 찌르는 피죤 회장’, ‘소비자도 우롱하는 피죤’, ‘자녀 명의로 수천억대 재산 관리한 피죤 회장’ 등이 당시 기사 제목이다. 이 회장과 피죤의 부정비리, 불법 혐의는 임직원에 대한 폭행과 폭언, 부당해고, 배임·횡령, 비자금 조성, 회계부정, 탈세, 뇌물공여, 차명재산 운용, 해외로의 재산 유출 등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 정도였다. 이 회장은 2011년 말 청부폭력 혐의로 실형 선고를 받은 데 이어 2012년 12월에는 100억원대 배임·횡령 혐의로 기소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8개월의 옥살이, 두차례의 형사재판, 2년여 경영공백에도 불구하고, 이윤재 회장은 근본적으로 달라진 게 없는 셈이다.

약속을 뒤집고 경영에 복귀한 이 회장은 무리하거나 일방적인 인사로 조합원 탄압에 나섰다. 강재훈 선임기자

“위장폐업하려 한다” 흉흉한 소문

직원들 사이에는 이 회장이 아예 회사를 위장폐업시키려 한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돈다. 노조는 “이 회장 일가가 보유한 선일로지스틱을 동원해 피죤을 흡수합병하면서, 구조조정을 내세워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은 모두 정리하려 한다는 얘기가 돌아 직원들이 불안해한다”고 말했다.

피죤 노조원 30여명은 지난 3일 서울 성북동의 이윤재 회장 부녀 집 앞에서 부당노동행위 중단을 요구하는 항의시위를 했다. 노조원들은 이 회장에게 경영퇴진 약속을 지키라고 촉구한다. 피죤 직원들은 그동안 국민에게 이 회장의 횡포와 비리를 알리면 회사에 피해가 돌아올까 두려워했다. 이윤재 회장이 반성하고 각성해서 회사를 새롭게 일으켜 세워주길 바랐다. <한겨레21>이 이 회장의 불법행위를 파헤칠 때에도 이 회장의 지시로 한겨레신문사 사옥 앞에서 관제시위까지 벌였다. 류학재 사무국장은 “하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털어놓는다. 이에 대해 피죤의 홍보담당자는 “이 회장이 경영에 복귀한 것은 아니고, 창업자로서 가끔씩 들르는 정도”라고 경영복귀를 부인했다. 부당노동행위 혐의와 관련해서도 유통구조 변화에 따른 불가피한 구조조정 차원이라고 해명한다. <한겨레>는 이윤재 회장과 이주연 부회장과의 직접 인터뷰를 여러 통로를 통해 요청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피죤은 한때 대한민국 주부들에게 가장 친숙한 브랜드였다. 1979년 창사 이래 30여년간 줄곧 업계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독보적이었다. 하지만 최고경영자의 전횡과 불법으로 여론의 질타와 소비자들의 불매운동에 직면해 시장점유율이 20%대로 곤두박질치고 업계 2위마저 위협받는 처지로 몰렸다. 직원들은 아직도 피죤 브랜드와 제품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노조원 홍성단씨는 “이윤재 회장이 물러나 정상적인 경영진만 들어서면 회사를 일으켜 세워 다시 1등 자리에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토요판] 뉴스분석, 왜?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