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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7.19 19:36 수정 : 2013.07.21 21:50

[토요판] 뉴스분석 왜?
<1> 사관학교, 섹스, 퇴학

▶ 최근 육군사관학교의 생도 퇴학 처분에 대해 법원이 취소 판결을 내려 화제가 됐습니다. 문제의 생도는 결혼을 전제로 교제하던 여자친구와 동침을 했고 이를 ‘양심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퇴학 처분을 받고 현역 입영을 통보받은 상태였습니다. 상당수 여론은 법원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내밀한 사생활과 양심의 자유까지 구속하는 교육으로 과연 육사가 21세기 민주사회의 리더를 키워낼 수 있을까요.

2012년 11월19일 오후 3시께, 한 민간인이 육군사관학교 생도대로 제보 전화를 걸어왔다. 생도대는 육사 생도의 체육 및 훈육, 군사훈련 등을 담당하는 기구다. 제보의 내용은 육사생도 ㄱ씨(23)가 여자친구와 주말마다 육사 바깥에 있는 원룸을 드나든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26일, ㄱ씨는 육사로부터 퇴학 처분을 받았다. 당시 ㄱ씨는 4학년 2학기에 재학중이었고 3개월 뒤에는 육군 소위로 임관할 예정이었다. 훈육관이 생도의 진술을 받아 생도대 훈육위원회에 소견서를 제출하고, 훈육위원회가 다시 육사 자문기관인 교육운영위원회에 처분을 건의한 다음, 교육운영위가 심의의결한 내용을 바탕으로 육사교장이 퇴학 처분을 내리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딱 일주일이었다.

박남수 전 육사 교장의 ‘시범케이스’

지난 5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는 ㄱ씨가 육사를 상대로 낸 퇴학 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육사는 퇴학 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육사는 ㄱ씨에 대한 퇴학 처분 사유로 그가 여자친구와 성관계를 갖고 이를 보고하지 않아 육사의 ‘3금 제도’를 어겼다는 사실을 내세웠는데, 재판부는 “내밀한 성생활의 영역을 국가가 간섭하는 것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ㄱ씨가 약 4년간의 사관학교 생활을 대체로 성실히 해왔고, 졸업 및 임관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퇴학시킬 경우 현역으로 입영해야 한다는 점 등도 고려했다.

육사는 이에 대해 항소할 뜻을 이미 밝힌 상태이다. 육사가 항소를 계속할 경우, ㄱ씨는 최종적으로 승소하더라도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난 뒤가 된다. 임관을 하더라도 제대로 된 군 생활을 계속하기란 어려울 수 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육군사관학교의 3금 제도가 다시 주목을 받았다. 사관학교 생도는 3금 제도에 따라 흡연을 할 수 없고(금연), 음주를 멀리해야 하며(금주), 혼인 및 성관계를 시도해서도 안 된다(금혼). ㄱ씨가 퇴학이라는 가장 높은 수위의 처벌을 받은 주된 이유는 바로 이 금혼 규정을 위반하고 여자친구와 성관계를 가졌기 때문이다. 육사 교육운영위의 논의 내용이나 육사교장의 의견에 3금 제도(특히 금혼 규정)에 관한 언급이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당시 사건이 발생한 시점은 제50대 육사교장 박남수 중장이 취임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때였다는 점도 ㄱ씨에 대한 강도 높은 처벌이 내려진 원인 가운데 하나로 여겨진다. 군 복무를 해본 사람이라면 모두가 들어보았을 ‘시범 케이스’인 것이다. 법원의 판결문을 보면, 당시 박 중장은 교육운영위가 “(해당 생도를) 퇴학시키지 않고 중징계하기로 한다”고 의결하고 이런 내용을 건의했는데도, “정직, 용기 면에서 남은 기간 장교임관에 제한될 것으로 판단”한다며 퇴학 조치를 지시했다. 해당 생도가 규정 위반 사실에 대해 ‘양심보고’를 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성 윤리 관련 사건을 단호하게 처리하면서 임기를 시작한 박 중장은 지난 5월 발생한 ‘육사생도간 성폭행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한달 뒤인 6월 전역했다.

ㄱ씨에 대한 법원의 퇴학 처분 취소 판결 직후 대다수 언론은 육사의 퇴학 처분을 비판했다. ㄱ씨와 여자친구가 결혼을 전제로 교제하고 있었으며 합의 아래 육사 외부에서 성관계를 가졌다는 사실 등을 고려할 때, 이는 사생활의 자유 영역에 속하지 성 군기 문란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었다. 누리꾼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또한 법원은 “양심보고 불이행을 징계사유로 삼으면 헌법에 위반된다. 어쩔 수 없이 양심보고를 하게 되면 내면적으로 구축된 인간 양심이 왜곡·굴절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웨스트포인트 캠퍼스의 ‘연애로’ 오솔길은?

우리나라의 사관학교 제도는 미국 사관학교의 판박이이다. 한국전쟁 당시 미 제8군사령관이었던 밴 플리트 대장은 경남 진해에서 육사가 다시 문을 여는 데 큰 기여를 했는데, 미국 육사(웨스트포인트)에 근무중이던 밴 플리트 대장의 사위를 통해 많은 지원을 받았다. 오늘날까지 우리 육사에서 이어지고 있는 내무생활 규칙과 3금 제도, 명예제도 등은 모두 웨스트포인트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웨스트포인트는 3금 제도를 어떻게 운영하고 있을까?

웨스트포인트에서 흡연이나 음주에 대한 규제는 많이 완화되었지만 여전히 생도에게 결혼은 허용되지 않는다. 캠퍼스 안에서의 성관계 또한 허용되지 않는다. 또한 규율 문제로 신입생과 상급생 사이에서는 캠퍼스 바깥에서도 관계를 갖지 못하게 되어 있다. 이 정도만 해도 우리의 육사보다 많이 자유로운 편이지만 실제로는 이보다도 한결 너그러운 편이다. 웨스트포인트의 캠퍼스에는 ‘연애로’(flirtation walk)라는 별명의 오솔길이 있다. 주변의 시선 때문에 교정에서 연인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생도들을 위한 나름의 배려다.

생도들끼리 이성교제 할 경우
훈육관에게 보고할 정도로
일거수일투족 옭아매는데
진정한 리더 나올 수 있을까
복잡다단한 사관학교 규율은
생도들의 자율성 해치고 있다

영국의 육사 샌드허스트는
대학원 개념으로 운영된다
프랑스 육사 생시르에선
석사학위 수료하고 임관한다
독일 생도는 군복도 안 입는다
군사훈련만 2년반 받는다

그렇지만 사랑을 향한 젊은이의 열망이 이 정도로 충족될 리 만무하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영웅이자 당시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이었던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의 불륜 스캔들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던 지난해 11월, 웨스트포인트 졸업생으로 이라크전에도 참전했던 로라 캐넌은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글에 자신의 경험을 술회했다. 웨스트포인트의 주차장이나 운동기구실 등에서 밀회를 즐기다가 결국 기숙사의 침실에서도 역사가 이루어지는 일이 잦다는 것. 그녀는 고발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생도들도 군인들도 모두 똑같은 인간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사관학교에서는 물론이고 심지어 전선에서도 합의하의 성관계라면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캐넌의 다소 급진적인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렇지만 사회는 이미 우리 육사의 퇴학 조치에 분명한 거부 반응을 보였다. 심지어 문제의 생도의 처벌을 논의한 교육운영위원회에서도 3금 제도에 대한 본질적인 논의가 필요하며, 그중에서도 금혼 관련 규정의 도덕적 한계가 모호하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비록 퇴교 처분을 내리기는 했지만 박남수 육사교장 또한 3금 제도를 전향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연구를 지시한 바 있다. 육사 쪽은 이에 대한 기자의 질의에 “지난 5월 육사생도간 성폭행 사건이 벌어진 뒤 재발 방지 방안 연구를 위한 태스크포스(TF)팀에서 제도 개선 방안을 연구하는 중”이라고 답변했다.

문제는 과연 육사가 어디까지 바뀔 준비가 돼 있느냐이다. 우리가 시선을 돌리고 있는 사이, 유럽의 사관학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관학교의 개념을 탈피한 지 오래다. 단지 생도들의 인권 문제뿐만이 아니다. 유럽의 사관학교는 생도들의 자유를 좀더 폭넓게 보장하는 것은 물론, 교육방식도 변화하는 현대 사회와 전장의 필요에 맞게 바꾸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관학교라는 교육기관이 애초에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우선 살펴보아야 한다.

사실 사관학교는 19세기의 유물이다. 당시의 유럽 각 대학은 주로 그리스어, 라틴어, 신학 등을 가르쳤다. 이러한 교육으로는 최신 무기를 다루는 군 지휘 장교를 키울 수가 없었다. 자연스레 군사기술에 관한 교육을 제공하는 기관이 필요하게 되었다. 유럽에서 사관학교는 바로 이러한 시대적 필요에 따라 생겨났다. 그러나 오늘날의 환경은 19세기와는 지극히 다르다. 대다수의 민간 대학들이 기술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 수준은 사관학교에서 제공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우수하다.

‘철의 장막’에서 변화를 거부할 것인가

영국의 육사 샌드허스트는 과거와는 달리 이제 학사 과정 교육을 제공하지 않는다. 이미 다른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을 받아, 대학원과 비슷한 개념으로 운영되고 있다. 전통을 자랑하는 프랑스의 육사 생시르에서는 보통 21살쯤에 입학하여 3년을 공부한 다음, 석사 학위를 수료하고 임관한다. 다만 프랑스의 중등 및 고등 교육과정은 우리나라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독일의 생도는 군인이라기보다 일반 시민으로 대접받고 행동한다. 군복도 입지 않는다. 다시 말해 민간 대학생과 거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다만 독일 생도들은 군사훈련을 2년 반 정도 받는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생도들은 군복은 입지만 교육은 오스트레일리아 최고 명문 대학 중 하나인 뉴사우스웨일스대학에서 따로 받는다.

우리와 비슷하게 4년제 학사 교육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 곳으로는 캐나다의 사관학교가 있다. 그러나 캐나다의 사관학교는 생도들의 생활에 대한 규제가 매우 완화되어 있다. 생도들은 학교 밖에서 살 수도 있고, 결혼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또한 입학에도 나이 제한이 없다. 다만 나이가 많은 생도들은 훈련을 따로 받는다.

유럽의 사관학교들은 군사훈련과 학과교육이 동시에 성과를 내기가 어렵다는 점을 직시했다. 그래서 민간 분야에서 더 잘할 수 있는 기술 및 일반학 교육은 과감하게 민간에서 받도록 하고, 사관학교에서는 군사훈련과 군사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사관학교를 군사 전문대학원과 유사한 개념으로 운영하기도 하지만, 벨기에의 사관학교처럼 학사 학위를 주면서도 아예 학과교육 기간과 군사훈련 기간을 완전히 구분하여 수개월씩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의 사관학교처럼 매년 여름방학 전 4~5주가량 훈련을 받는 것과는 다르다. 요컨대 지금 세계 각 나라의 사관학교는 시대적 변화에 맞게 교육 과정과 방식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다.

생도에게 좀더 많은 자율권을 허용하는 것은 단지 인권 차원에서의 문제가 아니다. 진정한 리더를 키워내는 데에도 필수적이다. 심지어 생도들끼리 이성교제를 시작할 경우 훈육관에게 보고하도록 할 정도로 일거수일투족을 옭아매는 환경에서 과연 훌륭한 지휘관이 나올 수 있을까? 물론 앞으로 군의 기풍을 다스릴 장교들을 양성하는 데 규율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사관학교의 규율은 너무나 복잡다단하여 생도들의 자율성마저 해치고 있다.

훌륭한 지휘관이라면 어떠한 규칙도 통하지 않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극기하고 절제하여 휘하를 통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생도의 모든 일과가 제한된 생활반경 내에서 빽빽이 정해져 있고, 이를 레일 위를 움직이는 기차처럼 만날 반복해야 한다면 어떨까? 이번 ㄱ씨 퇴학 사건처럼 사생활과 내면의 양심까지 규제하는 규정이 강제된다면, 과연 스스로 판단하여 결정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리더가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육사는 한때 대한민국의 사회 발전을 선도하는 엘리트 양성 기관이었다. 사회가 변화하면 교육도 바뀌어야 한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사회는 저만치 앞서가고 있는데 사관학교는 그다지 움직인 기색이 없다. 여전히 군이 사회와 멀찍이 격리되어 있는 탓이 크다. 사회는 군의 ‘철의 장막’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하고, 군은 변화하는 사회가 군에 무엇을 요구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이번 육사생도 퇴학 사건과 같은 ‘사고사례’는 하나의 경보와 같다. 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의 입장과 시민들의 반응을 살펴보라. 21세기 민주 사회와 대한민국 호국간성의 요람이 얼마나 격리되어 있는지를 느낄 수 있다. 이제 육사는 변화된 사회의 요구를 얼마나 반영할 수 있는지를 국민들 앞에 증명해야 한다. 육사가 다시 우리 사회를 선도할 수 있는 리더를 양성해낼 수 있을지, 아니면 국민의 외면 속에 시들어갈 것인지는 여기에 달렸다.

김수빈 <디펜스21플러스> 기자 subin.kim@outl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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