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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7.12 19:41 수정 : 2013.07.14 16:54

지난달 27일 오후 국회 본회의 도중 김무성 의원이 김재원 의원의 등을 토닥이고 있다. 김재원 의원은 김무성 의원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입수와 관련된 최고중진회의 발언 유출자로 지목된 바 있다. 그는 이날 김무성 의원을 찾아와 사과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박근혜 사람’이 아니라서 더 막강하다
[토요판] 뉴스분석 왜?
<1> 김무성의 힘

▶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은 최근의 ‘2007년 정상회담 대화록 입수’ 발언 등 말실수가 잦은 정치인입니다. 지난 대선 때 야권 대통령 후보를 “종북세력”이라며 무차별 색깔 공세를 한 것을 비롯해 거친 말도 자주 하지요. 말로 살아가는 정치인으로서는 치명적인 약점입니다. 그러나 그는 도태되기는커녕 여권에서 현재 가장 잘나가는 실력자로 꼽힙니다. 그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지, 중진 정치인으로서 무엇을 꿈꾸는지 진단해 보았습니다.

김무성(61·부산 영도) 의원은 최근 대형 ‘사고’를 쳤다. 그는 지난달 말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국가 기밀인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지난 대선 때 이미 입수했다는 사실을 ‘실토’했다. 김 의원은 “대화록 원문이 아니라 정문헌 의원이 구두로 설명해준 것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이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행사 등에서 발언한 내용을 종합해서 만든 문건”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선 막바지 부산 유세에서 읽은 내용은 국정원이 공개한 대화록 원문과 토씨까지 거의 일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거짓말 논란과 더불어 그의 발언으로 박근혜 후보 쪽과 국가정보원의 대선 커넥션 의혹이 제기됐다.

‘상도동계 막내’로 시작해 승승장구

중대한 실언에도 불구하고 김무성 의원은 새누리당에서 ‘갑’이다. 여권에서 그의 발언이나 그 내용을 비판하거나 문제 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대신 발언 내용이 외부에 알려진 과정을 두고 소동이 벌어졌다. 회의에 참석했던 최고위원을 비롯한 당의 고위 당직자들이 ‘을’이다. 발설자로 지목된 김재원 전략기획본부장은 심지어 “앞으로도 형님께서 무엇이든 시키시는 대로 할 생각”이라며 머리를 숙였다.

이에 따라 새누리당에서는 ‘당은 이미 김무성 의원이 장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새누리당의 한 주요 당직자는 12일 “이번 소동을 통해 당의 정보 흐름을 김 의원이 잡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김재원 의원이 납작 엎드리는 것을 보면서 여권의 많은 사람들이 무대(‘김무성 대장’이라는 뜻의 별명)가 여당의 차기 권력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실질적인 힘이 있고 없고에 관계없이 여러 사람이 누가 힘이 있다고 생각하면 정치에서는 그게 힘이 된다”고 말했다.

반면에 ‘대화록 입수 및 거짓말’ 파동으로 ‘김무성의 미래는 끝났다’는 견해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새누리당의 주요 관계자는 “지난 대선 때도 노무현 자살 발언 등 세번이나 말실수를 했다. 똑같은 실수가 거듭되는데 누가 신뢰하겠느냐. 더구나 대화록 입수 발언이 가져올 파장을 생각하지 못한 것 같은데 그랬다면 그것이 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의 미래에 대한 평가는 다르지만, 그가 현재 여권의 실력자라는 데는 의견이 대부분 일치한다. 그것도 여권의 1인자인 대통령에게 정치적 채권을 지니고 있는 실력자다. 그는 박근혜 대선캠프에서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아 일등공신이 되긴 했지만, ‘박근혜 사람’으로 분류하기는 어렵다. 2007년 대선 때까지는 친박계의 좌장으로 불렸지만, 2010년 세종시 수정 논란 때 친박계를 완전히 이탈했다. 지난해 총선 때 백의종군했음에도 박 대통령과의 관계는 회복되지 않았다는 게 여권 인사들의 대체적인 진단이다. 지난 대선 때 박 대통령이 애초 선대위를 꾸리면서 김 의원을 유명무실한 자리인 선대위 의장단 5명 중 한명에 임명한 것이 한 예다. 과거사 문제와 내부 혼선으로 선대위가 크게 흔들렸을 때 김 의원에게 부랴부랴 총괄선대본부장을 맡겼지만, 이는 마음이 끌려서라기보다 대선 승리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업무용’ 중용이었다. 대선 이후에도 중국특사단장을 한차례 맡긴 것을 빼고는 그다지 살뜰하게 챙기지 않고 있다. 박 대통령 처지에서는 총선이나 대선 때 김 의원한테 그다지 내키지 않는 빚을 진 셈이다.

중대한 말실수에도 그는
새누리당에서 ‘갑’이다
고위 당직자들은 오히려
“형님” 운운하며 엎드렸다
무대(김무성 대장)가 당을
장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2007년 친박계 좌장이었다가
2010년 친박계 이탈한 인물
2012년 대선후보와 소원했지만
과거사 문제로 당이 헤맬 때
대선총괄본부장 맡은 대선 공신
대통령이 그에게 빚을 꽤 졌다

김 의원도 박 대통령에 대해 과거처럼 맹목적이지 않다. 그는 12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미움이 왜 없었겠느냐. 그러나 이제 나는 박 대통령에 대한 감정을 다 지웠다. 오직 박근혜 정권의 성공을 위해 노력할 뿐이다”고 말했다. 보수정권의 성공을 위한 협력이지 박근혜 대통령 개인에 대한 충성은 아닌 셈이다. 나름의 자생력을 지닌 여권 실력자의 등장을 대통령 권력이 용인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견제하기 시작하면 여권이 삐걱거릴 수 있는 구도다.

김 의원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끌던 민주계의 재야활동에서부터 정치를 시작했다. 전두환 독재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1985년 2월 그는 김 전 대통령이 운영하던 ‘민족문제연구소’를 제 발로 찾아갔다. 당시 민족문제연구소의 총무였던 박종웅 전 의원은 “상당한 재력가였던 김무성이 정치적 탄압이 불 보듯 뻔한 데를 찾아와서 함께 하겠다길래 처음에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한눈팔지 않고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활동 등 온몸으로 민주화 투쟁을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아버지(고 김용주 전방그룹 회장)가 이승만 정권에서 야당에 정치자금을 지원했을 뿐 아니라 4·19 이후에는 민주당 의원을 지내, 우리 집안이 야당과 인연이 있었다. 5·16 이후 아버지가 자식들한테 정치하지 말라고 했지만,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을 보면서 정치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상도동계(김영삼 전 대통령의 자택 동네에서 딴 명칭) 막내’였던 그는 1992년 김영삼 정권 출범 이후 청와대 민정2비서관과 사정1비서관을 거쳐 1994년 12월 최연소(당시 43살) 내무차관에 발탁되는 등 승승장구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민자당 공천을 받아 국회에 들어왔다.

김무성 의원이 국회 본회의 도중 자신의 어제 최고중진회의 발언 유출자로 지목된 김재원 의원이 자신의 자리로 찾아와 고개 숙여 인사하는 동안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든든한 재력 또는 실무적인 업무 능력

그가 정치적으로 성장한 것은 1997년 김대중 정부의 출범으로 야당 의원이 된 이후였다. 재선 의원이던 2001년 5월 역대로 가장 막강한 야당 당수였던 이회창 총재의 비서실장에 기용돼, 2002년 대선 때는 이회창 후보를 도왔다. 2004년 탄핵 역풍으로 한나라당이 박근혜 체제로 바뀐 뒤에는 다시 박근혜 사람이 됐다. 2005년 1월 당직 개편에서 당시 박근혜 대표는 별 인연이 없었던 김 의원을 당 사무총장에 발탁했으며,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친박계의 좌장으로 자리잡았다. 김 의원은 이명박 정권에서도 집권 여당의 원내대표를 맡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부터 이명박 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누가 현 여권의 1인자가 되든 그들의 총애를 받았다.

일부에서는 그의 이런 성장 배경으로 든든한 재력을 들기도 한다. 그는 전방그룹 오너의 아들인데다 19대 국회 재산 순위 8위(지난 4월 신고 136억원)에 이를 정도로 부자이다. 그가 과거 민추협 사무실과 통일민주당 당사를 구하고, 한나라당 염창동 당사도 그의 형(김창성 전 경총 회장) 소유 건물이었다는 점에서 그의 재력이 정치적 출세와 연결돼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그러나 그가 이른바 정치를 하면서 돈질을 했다는 증언은 거의 없다. 박종웅 전 의원은 “민추협 사무실이나 통일민주당 당사를 마련할 때 김 의원이 일정 부분 기여한 것은 사실이나 다 부담했다는 말은 사실과 다르다. 어려운 야당 시절에 당비 납부 등 도네이션(기부)을 꾸준히 한 정도다”고 말했다.

돈보다는 그의 실무적인 업무 능력을 꼽는 사람들이 많다. 통일민주당 시절부터 김 의원과 함께 일을 한 여권의 한 관계자는 “통일민주당 시절에는 당의 회계가 주먹구구식이었는데 김 의원이 기업에서 익힌 일솜씨로 바로잡았다. 3당 합당으로 민자당이 출범한 뒤 민정계와 민주계, 공화계가 계파싸움을 심하게 했다. 그런데 당시 의원국장 등 당직을 맡은 김 의원은 실력 위주로 사람을 썼다”고 말했다. 그를 오랫동안 가까이서 지켜봤던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도 “그는 일머리가 있어서 막힌 곳을 뚫어준다. 총괄선대본부장이 된 첫날 선대위 본부장회의를 주재하면서 문제의 핵심을 정확하게 짚어낸 뒤 내가 책임질 테니 사무총장은 이것 하고, 각 본부장들은 이 일을 추진하라고 결정해줬다. 그동안 지지부진하던 선대위가 그때부터 활기를 찾았다. 이런 사람을 어느 누군들 좋아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무대’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시원시원한 성격과 야당과의 대화 능력도 비결로 꼽힌다. 친이명박계인 조해진 의원은 “김 의원은 정치의 맥락이나 생리를 아는 사람 중 한명이다. 정치를 풀어가는 능력이 있으면서도 사심이 없고 잔재주를 부리지 않는 등 선이 굵다. 그래서 호감을 가지는 의원들이 많다”고 말했다. 원내대표 시절 김 의원을 상대했던 박지원 민주당 의원도 “그는 말이 통하고, 정치를 아는 사람이다. 원내대표 시절에 보면 여당이 양보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당대표 넘어 대선 후보에 도전할까

김 의원의 정치 역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5선을 하는 동안 첫 정치권 진입 때인 15대(1996년) 총선을 빼고는 매번 공천에서부터 애를 먹었다. 16대와 17대 때는 각각 김영삼 직계, 이회창 계보라는 이유로 공천에서 배제될 위기에 처했다가 간신히 구제됐다. 18대 공천 때는 이명박 정권 주류인 친이계가 휘두른 친박계 학살의 희생양이 됐으며, 19대 총선을 앞두고도 당 공천에서 탈락했다. 18대 총선에서는 무소속으로 출마해서 살아 돌아왔으며, 19대 국회 역시 1년여 동안의 와신상담 끝에 지난 4월 보궐선거를 통해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박근혜 대통령과의 결별도 정치적 고비였다.

김 의원은 여권에서 차기 새누리당 대표나 후반기 국회의장에 거론된다. 그의 오랜 지인은 “국회의장을 마치면 정계에서 은퇴할 가능성이 큰데 그러기에는 그는 아직 나이가 젊다. 일단 당대표에 도전하려 할 것이다”고 말했다. 차기 당대표는 임기를 채울 경우 20대 총선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에게는 매력적이다. 김 의원은 실제로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정치판이 개혁해야 한다. 개혁은 정당 민주주의에서 출발해야 한다. 정당 민주주의의 요체는 공천이다. 공천을 지역 주민에게 넘겨야 한다. 그래야 의원 개개인이 소신을 가지고 정치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당대표는 박 대통령의 ‘승인’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가 앞으로 차기 대선에 직접 나설지 아니면 킹메이커에 머물지도 관심이다. “대선주자로 거론된다”는 질문에 그는 “많은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하는데 나는 그런 자격이 없고 그런 것을 목적으로 살지 않았다. 나 스스로의 개혁을 위해 항시 생각하고 공부를 하고 있는데 지금은 그런 생각을 안 하고 있다. 나보다 나은 사람이 나오면 그 사람을 미는 것이지”라고 말했다. 무자격이라고 손사래를 치지만, 문맥으로 보면 오히려 차기 도전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답변이다.

실제로 그는 요즘 바쁘다. 경제 전문가 등을 매주 한두차례 만나 공부를 하고, 당 소속 의원들도 열심히 만나고 있다. 특히 초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연구 모임(가칭 ‘퓨처 라이프’)을 10월에 발족시킬 계획이다. 이 모임에 20여명이 가입 의사를 이미 밝혔다. 대선 잠룡의 행보다. 그의 지인은 “과거의 지도자 기준에는 못 미치지만, 소통과 타협이라는 시대적 요구가 있다면 그도 한번 나서 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대선주자 김무성’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하는 의견도 많다. 새누리당의 한 전략가는 “지도자는 철학과 가치, 비전이 있어야 한다. 김 의원은 조직을 장악하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보수 꼴통 등 낡은 정치인의 이미지가 강해서 ‘박근혜 대안’으로서의 그림이 안 그려진다. 말을 너무 함부로 하는 것도 중대한 결함이다”고 말했다. 박지원 의원은 “18대 국회의원들에 대한 한 언론의 이념조사에서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보다 더 강경보수로 조사될 정도로 그는 이념적으로 너무 편향되고 경직돼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1인자의 위치를 겨냥하기 위해서는 박근혜 대통령과 적극적으로 각을 세워야 하는데 별로 그럴 것 같지 않다. 뼈를 깎는 자기 쇄신 노력도 아직 안 보인다”고 말했다.

김종철 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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