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오후 국회 본회의 도중 김무성 의원이 김재원 의원의 등을 토닥이고 있다. 김재원 의원은 김무성 의원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입수와 관련된 최고중진회의 발언 유출자로 지목된 바 있다. 그는 이날 김무성 의원을 찾아와 사과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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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사람’이 아니라서 더 막강하다
[토요판] 뉴스분석 왜?
<1> 김무성의 힘
▶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은 최근의 ‘2007년 정상회담 대화록 입수’ 발언 등 말실수가 잦은 정치인입니다. 지난 대선 때 야권 대통령 후보를 “종북세력”이라며 무차별 색깔 공세를 한 것을 비롯해 거친 말도 자주 하지요. 말로 살아가는 정치인으로서는 치명적인 약점입니다. 그러나 그는 도태되기는커녕 여권에서 현재 가장 잘나가는 실력자로 꼽힙니다. 그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지, 중진 정치인으로서 무엇을 꿈꾸는지 진단해 보았습니다.
김무성(61·부산 영도) 의원은 최근 대형 ‘사고’를 쳤다. 그는 지난달 말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국가 기밀인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지난 대선 때 이미 입수했다는 사실을 ‘실토’했다. 김 의원은 “대화록 원문이 아니라 정문헌 의원이 구두로 설명해준 것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이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행사 등에서 발언한 내용을 종합해서 만든 문건”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선 막바지 부산 유세에서 읽은 내용은 국정원이 공개한 대화록 원문과 토씨까지 거의 일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거짓말 논란과 더불어 그의 발언으로 박근혜 후보 쪽과 국가정보원의 대선 커넥션 의혹이 제기됐다.
‘상도동계 막내’로 시작해 승승장구
중대한 실언에도 불구하고 김무성 의원은 새누리당에서 ‘갑’이다. 여권에서 그의 발언이나 그 내용을 비판하거나 문제 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대신 발언 내용이 외부에 알려진 과정을 두고 소동이 벌어졌다. 회의에 참석했던 최고위원을 비롯한 당의 고위 당직자들이 ‘을’이다. 발설자로 지목된 김재원 전략기획본부장은 심지어 “앞으로도 형님께서 무엇이든 시키시는 대로 할 생각”이라며 머리를 숙였다.
이에 따라 새누리당에서는 ‘당은 이미 김무성 의원이 장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새누리당의 한 주요 당직자는 12일 “이번 소동을 통해 당의 정보 흐름을 김 의원이 잡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김재원 의원이 납작 엎드리는 것을 보면서 여권의 많은 사람들이 무대(‘김무성 대장’이라는 뜻의 별명)가 여당의 차기 권력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실질적인 힘이 있고 없고에 관계없이 여러 사람이 누가 힘이 있다고 생각하면 정치에서는 그게 힘이 된다”고 말했다.
반면에 ‘대화록 입수 및 거짓말’ 파동으로 ‘김무성의 미래는 끝났다’는 견해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새누리당의 주요 관계자는 “지난 대선 때도 노무현 자살 발언 등 세번이나 말실수를 했다. 똑같은 실수가 거듭되는데 누가 신뢰하겠느냐. 더구나 대화록 입수 발언이 가져올 파장을 생각하지 못한 것 같은데 그랬다면 그것이 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의 미래에 대한 평가는 다르지만, 그가 현재 여권의 실력자라는 데는 의견이 대부분 일치한다. 그것도 여권의 1인자인 대통령에게 정치적 채권을 지니고 있는 실력자다. 그는 박근혜 대선캠프에서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아 일등공신이 되긴 했지만, ‘박근혜 사람’으로 분류하기는 어렵다. 2007년 대선 때까지는 친박계의 좌장으로 불렸지만, 2010년 세종시 수정 논란 때 친박계를 완전히 이탈했다. 지난해 총선 때 백의종군했음에도 박 대통령과의 관계는 회복되지 않았다는 게 여권 인사들의 대체적인 진단이다. 지난 대선 때 박 대통령이 애초 선대위를 꾸리면서 김 의원을 유명무실한 자리인 선대위 의장단 5명 중 한명에 임명한 것이 한 예다. 과거사 문제와 내부 혼선으로 선대위가 크게 흔들렸을 때 김 의원에게 부랴부랴 총괄선대본부장을 맡겼지만, 이는 마음이 끌려서라기보다 대선 승리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업무용’ 중용이었다. 대선 이후에도 중국특사단장을 한차례 맡긴 것을 빼고는 그다지 살뜰하게 챙기지 않고 있다. 박 대통령 처지에서는 총선이나 대선 때 김 의원한테 그다지 내키지 않는 빚을 진 셈이다.
중대한 말실수에도 그는새누리당에서 ‘갑’이다
고위 당직자들은 오히려
“형님” 운운하며 엎드렸다
무대(김무성 대장)가 당을
장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2007년 친박계 좌장이었다가
2010년 친박계 이탈한 인물
2012년 대선후보와 소원했지만
과거사 문제로 당이 헤맬 때
대선총괄본부장 맡은 대선 공신
대통령이 그에게 빚을 꽤 졌다 김 의원도 박 대통령에 대해 과거처럼 맹목적이지 않다. 그는 12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미움이 왜 없었겠느냐. 그러나 이제 나는 박 대통령에 대한 감정을 다 지웠다. 오직 박근혜 정권의 성공을 위해 노력할 뿐이다”고 말했다. 보수정권의 성공을 위한 협력이지 박근혜 대통령 개인에 대한 충성은 아닌 셈이다. 나름의 자생력을 지닌 여권 실력자의 등장을 대통령 권력이 용인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견제하기 시작하면 여권이 삐걱거릴 수 있는 구도다. 김 의원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끌던 민주계의 재야활동에서부터 정치를 시작했다. 전두환 독재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1985년 2월 그는 김 전 대통령이 운영하던 ‘민족문제연구소’를 제 발로 찾아갔다. 당시 민족문제연구소의 총무였던 박종웅 전 의원은 “상당한 재력가였던 김무성이 정치적 탄압이 불 보듯 뻔한 데를 찾아와서 함께 하겠다길래 처음에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한눈팔지 않고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활동 등 온몸으로 민주화 투쟁을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아버지(고 김용주 전방그룹 회장)가 이승만 정권에서 야당에 정치자금을 지원했을 뿐 아니라 4·19 이후에는 민주당 의원을 지내, 우리 집안이 야당과 인연이 있었다. 5·16 이후 아버지가 자식들한테 정치하지 말라고 했지만,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을 보면서 정치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상도동계(김영삼 전 대통령의 자택 동네에서 딴 명칭) 막내’였던 그는 1992년 김영삼 정권 출범 이후 청와대 민정2비서관과 사정1비서관을 거쳐 1994년 12월 최연소(당시 43살) 내무차관에 발탁되는 등 승승장구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민자당 공천을 받아 국회에 들어왔다.
김무성 의원이 국회 본회의 도중 자신의 어제 최고중진회의 발언 유출자로 지목된 김재원 의원이 자신의 자리로 찾아와 고개 숙여 인사하는 동안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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