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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5.24 20:09 수정 : 2013.05.24 22:16

[토요판] 뉴스분석 왜? 기생충연구자가 본 ‘살인진드기’

▶ 일명 ‘살인 진드기’ 바이러스에 감염된 국내 환자의 사망 소식이 들리고 진드기에 대한 공포가 커지고 있습니다. 덕분에 진드기 살충제 시장은 호재를 맞았다는데. 기생충 연구자는 이번 질환이 새로운 것도 아니고 진드기의 죄도 아니라고 합니다. 몇몇 언론도 공포심을 조장할 수 있는 ‘살인’이라는 수식어를 ‘야생’으로 고쳐 부르기 시작했네요.

감염되는 건 진드기가 아니라
진드기가 옮기는 바이러스 탓
본명은 작은소참진드기
바이러스의 정확한 이름은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
바이러스 보균 진드기는 0.5%뿐
물린다고 다 병나는 건 아냐

실제 인간에게 위협 안되고
과학적 근거가 부족해도
기생충은 공포의 대상으로
선정적으로 소비된다
함께 사는 동반자로 여기면
생태계 폭넓게 이해하게 돼

기생충 전공이다 보니 감염성 질환 관련 기사나 이슈가 나올 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질문을 받게 된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가장 신기해하는 것은 아직도 한국에 기생충이 있느냐는 것이다. 기생충 하면 우리 생활과 멀리 떨어진, 열대의 빈곤국가들에서나 찾을 수 있는 희귀한 질환처럼 생각하기 쉽다.

의외로 기생충은 우리 가까이 있다. 올해 질병관리본부에서 시행한 ‘제8차 전국 기생충 감염 실태조사’만 봐도 아직 한국에 130만명이 기생충에 감염돼 있다는 통계가 있다. 뉴스만 봐도 그렇다. 매년 기생충 이슈들이 등장한다. 특히 지난해에는 여름에 영화 <연가시>가 개봉돼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겨줬고, 연말에는 ‘고양이 기생충’이라는 이름으로 잘못 소개된 톡소포자충이 검색어 순위에 올랐다. 그리고 최근 포털 뉴스와 검색창을 달구는 주제는 바로 체외기생충, ‘살인 진드기’다.

‘살인 진드기’ 있다면 ‘살인 벼룩’도 있어야

살인 진드기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진드기는 피를 빨며 살아가는 대표적인 체외기생충 중 하나로 야외활동이 잦은 사람들이나 가축한테서 비교적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기생충이다. 수천마리의 진드기에 시달리는 대형 동물들은 한 계절에만 90리터의 피를 빨리기도 하고, 피부질환이 생기기도 하며, 드물지만 침에 들어 있는 독소 때문에 마비 증상을 겪기도 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감염 건은 엄밀히 따지면 진드기에 의해 일어나는 질병이 아니라 진드기가 옮기는 바이러스에 의해 일어난 질병이다. ‘살인 진드기’가 아니라 ‘살인 바이러스’인 셈이다. 언론에서 살인 진드기로 소개되는 맥락이라면 치명적인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는 ‘살인 모기’이고, 흑사병을 옮기는 벼룩은 ‘살인 벼룩’이다.

살인 진드기의 정확한 명칭은 작은소참진드기이고, 바이러스는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이라는 다소 긴 이름을 가졌다. 이 바이러스는 2009년 중국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 일본에 이어 이번에 한국에서도 감염자가 확인됐다. 20일 질병관리본부에서 국내 최초로 감염 및 사망을 확인하자, 관련 기사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은 고열, 구토, 설사 등 감기와 비슷한 증상을 일으키지만 정도는 훨씬 심하다. 열이 38~40도까지 올라가며 구토, 설사도 심하기 때문에 환자들이 병원을 찾게 되는 경우도 많다. 이때 중요한 것은 노출력이다. 즉 진드기에 물린 적이 있는지, 물렸다면 시기가 언제쯤인지 정확히 알려줘야 빠르고 정확한 진단이 가능하다. 진드기는 보통 몇 밀리미터(㎜) 크기이며, 피를 빨면 몸집이 크게 불어나기 때문에, 진드기에 물리면 눈으로 손쉽게 관찰할 수 있다. 바이러스성 질환의 특성상 초기 증상이 매우 모호하기 때문에 진드기에게 노출됐는지 미리 확인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대체로 잠복기는 2주 안팎이기 때문에 진드기에게 물린 지 며칠 뒤 갑작스러운 고열이 시작된다면 병원에 찾아가 이야기해보는 것도 좋다.

처음으로 확인된 환자는 63살 강원도 거주민으로 2012년 8월에 발병했다. 당시 고열과 설사가 나타나 병원에 입원했고, 벌레 물린 자국이 발견됐지만, 원인을 찾지 못하고 최초 입원 후 열흘 만에 숨졌다. 당시에는 원인불명의 고열로 인한 사망으로 처리됐으나, 올해 초부터 중국과 일본에 감염자가 발생하여 역추적조사를 벌인 끝에 사망 원인을 알게 됐다. 즉 사망 환자는 최근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 지난해 발생했고, 그동안 원인을 알지 못한 질병을 이번에 확인했다고 볼 수 있다.

올해 초 시작된 역추적조사에서 비슷한 증상을 보였던 사람들은 총 다섯명이었으나, 확진 환자 한명을 제외하고는 진드기로 인한 바이러스 감염과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어 23일 질병관리본부는 지난 16일 제주도에서 농장과 목장에서 일하던 강아무개(73)씨의 사망 원인이 진드기 때문인 것으로 확인하고 조사 범위를 넓히고 있다. 현재까지 두명의 사망이 확인된 셈이다.

가정용 살충제 뿌려봤자 아무 소용 없어

지난해 발생한 사건을 올해 초에야 추적하기 시작했다는 사실 때문에 일부에서는 늑장 대응이 아니냐고 비판한다. 하지만 당시 감염됐던 사람들을 역추적해 재조사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인데다 상대적으로 이 바이러스의 분포나 위험성이 다른 질환에 비해 낮았기 때문에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지 않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수천에서 수만의 감염자를 발생시키는 결핵이나 에이즈 등에 비하면 진드기는 조심하는 것만으로 손쉽게 예방이 가능하고, 치사율이나 발병률도 낮기 때문에 많은 예산과 노력을 투자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갑자기 폭발적으로 감염자가 증가해 사망자가 발생한 것도 아니다.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 방식은 현재 감염자나 사망자를 조사한 것이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 사망자가 발생하고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가 분리되자, 과거 국내에서 비슷한 증상을 보였던 환자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인 것이다. 혈소판 감소나 고열 증상이 있었지만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던 과거 환자 다섯 중 한 명이 바이러스에 감염됐던 것으로 최종 판명됐고, 이를 이번에 발표한 것이다. 이런 맥락 없이 ‘사망자가 나왔다’는 내용으로 보도되면, 사람들은 지금 이 바이러스가 주변에 창궐하고 있다는 식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다면 실제로 이 병이 흔하면서도 위험한 질병인 것일까? 일각에서는 진드기가 새로 등장한 것처럼 보도되고 있지만, 본래 한국에 서식하던 종으로 전국에서 발견된다. 하지만 실제 전체 진드기 중 바이러스를 안고 다니는 비율은 0.5% 안팎이라고 한다. 그리고 진드기에 물린다고 무조건 병이 나는 것이 아니라 바이러스를 뱃속에 품고 있는 진드기에 물려야만 가능하다. 즉 바이러스가 사람에게까지 올 가능성은 무척 낮다.

실제로 도시에 살면서 진드기한테 물려보는 사람의 비율이 얼마나 될까? 야외활동이 아주 잦은 사람이나 농부, 낙농업자가 아니라면 드물 것이다. 치사율도 10% 안팎으로 국내에서 감염될 수 있는 다양한 바이러스성 질환에 비해서는 비교적 낮은 편이다. 진드기에 노출된 사람들의 수나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는 진드기의 수, 바이러스의 치사율 등을 고려해 보면 그 위험성은 매우 낮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최근 몇 해 사이 캠핑이나 등산 등 야외활동 인구가 크게 늘어나면서 감염성 질환이 점차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가을철 야외활동 중 마주치는 작은 응애를 통해 옮는 쓰쓰가무시병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야외활동이 잦은 사람들은 긴소매 옷을 입고 기피제나 살충제를 이용해 진드기, 응애, 모기 등의 체외기생충과 접촉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분명 도움이 된다. 진드기는 일조량이나 온도, 습도에 민감한 편이라 풀의 키가 크고 우거진 곳을 선호한다. 산행 중에 이런 환경을 피하는 것도 진드기 피해를 많이 줄일 수 있다.

또 하나 잘못 알려진 내용 중 하나는 바로 집먼지진드기다. 살인 진드기에 대한 공포가 늘어나면서 집먼지진드기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바이러스를 옮기는 작은소참진드기와 집먼지진드기는 전혀 다른 종류의 생물이다. 작은소참진드기는 참진드기(tick)에 속하고 집먼지진드기는 응애(mite)에 속한다. 두 종류 모두 진드기로 번역되어 혼란을 낳고 있는데, 두 생물은 생활 환경과 과정에도 많은 차이가 있고 크기나 특성조차 다르다. 올바른 용어를 정립하고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은 과학자들의 몫이기도 한데 이 부분에서 많이 부족하다.

참진드기는 앞서 소개한 바이러스성 질환이나 다른 박테리아성 질환을 옮길 수 있지만, 도심이나 사람들이 주로 생활하는 곳에서는 찾기 힘들다. 그에 반해 집먼지진드기는 집 안에서도 손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직접 질병을 옮기지는 않는다. 다만 배설물의 특성상 알레르기나 천식을 일으킬 수 있다. 특히 집먼지진드기가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진 터라, 이 진드기를 통해서도 바이러스성 질환이 감염될 수 있다고 잘못 알려지고 있다. 이런 혼란을 이용해 진드기 방제용품이라고 가정용 살충제나 위생용품을 파는 곳도 있는데, 실제로 이런 용품들은 야외에서 참진드기 접촉을 예방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기생충 관련 이슈가 소비되는 데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실제 인간에게 별 위협이 되지 않는 기생충들이고, 소개된 내용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함에도 일부분만 부풀려져 공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연가시’는 실제로 인간에게 감염되지도 않고 감염된 예도 없다. 그럼에도 영화적 상상력을 동원해 마치 이것이 진실인 양 돌연변이가 일어나면 사람에게 감염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미디어를 통해 퍼져나갔다. 고양이 기생충이라는 톡소포자충도 마찬가지다. 실제 고양이를 통해 감염될 가능성도 낮고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해가 되는 경우도 드물지만 매우 위험한 기생충으로 포장됐다. 결국 애꿎은 고양이들이 수난을 당했다. 기생충을 옮긴다는 부정확한 정보를 토대로 죽기도 하고 학대당하기도 했다. 정체불명의 살인 진드기라는 작명이 등장한 것도 마찬가지의 맥락이다.

‘연가시’는 인간에 감염된 적 없는데…

이런 방식으로 기생충에 대한 공포가 재생산되고 소비되는 데는 기생충이 사람들에게 낯설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기생충이라는 이름이 주는 기이한 이미지도 한몫할 것이다. 더군다나 다른 생물에 붙어 삶을 영위하는 기생충의 독특하고 기이한 생활방식은 사람들에게 언제나 풍부한 상상력의 원천을 제공해준다. 이런 상상력이 잘 발휘되면 재미있는 영화가 탄생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살인 진드기처럼 선정적으로 소비될 수도 있다.

기생충학을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계속해서 기생충에 대한 나쁜 이미지만 반복적으로 각인되어, 실제로 기생충이 학문적으로나 실용적으로 가지는 수많은 가능성들이 매장당하고 무시당한다는 점도 매우 안타깝다. 기생충이나 미생물 등을 나쁘고 낯설고 무서운 것으로 인식하는 대신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라는 시각에서 접근한다면 우리는 생태계와 세상을 더 폭넓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살인 진드기를 잠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다 사라질 이슈로 볼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런 과장된 공포가 매번 재생산된다는 데 있다. 당장 빠른 해결책을 원하는 사람들은 지방자치단체에 진드기 방제를 요청한다. 이미 빈약한 예산과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지역 보건국은 보건이나 위생의 향상에 써야 할 돈과 노력을 실제로는 중요도가 떨어지는 진드기 방제로 전용해야만 한다. 사소한 문제처럼 보이지만,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과학, 의학, 보건 등에 대한 미디어의 보도가 대체로 이렇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점진적으로 큰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선정적 보도가 누군가한테는 피해가 될 수 있고 사회안전망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책임감을 좀더 분명히 가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정준호 기생충연구자·<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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