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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4.12 20:37 수정 : 2013.04.12 20:39

<에스비에스> ‘케이팝 스타 2’에서 우승을 차지한 ‘악동뮤지션’의 아버지 이성근(왼쪽부터), 이찬혁, 이수현 남매, 어머니 주세희씨가 12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일산 양일중학교 옆 공원에서 놀이기구 위에 앉아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뉴스분석, 왜? 악동뮤지션 탄생의 비밀

▷ 재기발랄한 가사와 노래, 절묘한 화음으로 ‘케이팝 스타 2’에서 화제를 모은 10대 남매 듀오 ‘악동뮤지션’이 정규 음악교육을 받지 않은 것은 물론 학교조차도 다니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들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자작곡으로 승부해 우승을 차지한 유일한 사례이기도 하죠. 이 ‘악동’들은 도대체 어느 별에서 온 걸까요? 악동의 가족들을 만나 ‘악동뮤지션’ 탄생의 비밀을 들어봤습니다.

17살 소년과 14살 소녀가 무대 위에 올랐다. 소년은 기타를 치기 시작했고, 소녀는 마이크를 잡았다.

“오늘 아침에도 내가 뭘 했는지를 몰라. 아니 내게 아침이란 게 있나. 커튼 사이로 해가 빛나면 신나서 놀다가 후회를 하지. 사실 내 맘은 이렇지 않은데 하고 싶은 거 많고, 그곳에 몸을 담고 의미있는 일분을 살고 싶은데. 티브이에 비치는 내 모습은 점점 비만이 돼 가. 나의 미래가 띵띵 불어버린 라면인 건가~”

이 노래는 남매 어쿠스틱 듀오 ‘악동(樂童)뮤지션’이 부른 ‘라면인건가’의 한 부분이다. 아직 10대인 이 남매는 20~30대 청년 백수들의 마음을 노랫말에 담았다. 이들이 노래에 담는 대상은 청년 백수만이 아니다. 악동뮤지션은 한국인에게 사랑 고백을 하는 외국인이 되기도 한다. 악동뮤지션이 부른 ‘외국인의 고백’에선 외국인이 서투른 한국어에 영어 단어를 섞어가며 사랑을 고백한다.

최근 <에스비에스>(SBS) 프로그램 ‘케이팝 스타 2’에서 우승을 차지한 악동뮤지션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찬혁(17)군과 이수현(14)양 남매로 구성된 악동뮤지션은 오디션 프로그램 사상 처음으로 자작곡으로 승부해 우승을 차지했다. 이들은 재기발랄한 데뷔곡인 ‘다리꼬지마’부터 ‘매력있어’, ‘라면인건가’, ‘크레센도’(Crescendo)로 4연속 자작곡을 멜론, 네이버 등 음원차트 1위에 올렸다. 노래를 만든 이찬혁군이 기타를 치며 중저음으로 노래를 부르면, 이수현양의 매력적인 가성과 발랄한 고음이 어우러진다. 가수 박진영씨는 “둘이 찢어놓을 수 없는 완벽한 하모니와 호흡”이라며 “이런 게 바로 듀엣”이라고 극찬했다.

이런 재능과 실력을 지상파 방송에서 마음껏 뽐냈지만, 이 남매는 정규 음악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음악교육뿐 아니라 부모와 함께 몽골로 이민 간 5년 전부터 학교에 다닌 적도 별로 없다. 집에서 교육을 받는 홈스쿨링을 하고 있을 뿐이다. 집에서 공부하는 이들이 어떻게 이런 재능과 실력을 갖게 됐을까. <한겨레>는 12일 오전 악동뮤지션의 남매와 부모를 만나 이들 가족의 얘기를 들어보았다.

몽골에서 환율 뛰는 바람에 학교 못 보내

악동뮤지션 남매의 부친 이성근(43)씨는 2008년 5월 몽골 울란바토르에 선교사로 이민을 갔다. 국내 기독교 출판사에서 일하던 이씨가 선교단체인 ‘한국 다리 놓는 사람들’에서 2003년부터 봉사를 시작했고, 이 단체와의 인연으로 이씨는 부인 주세희(41)씨, 자녀들과 함께 직접 선교사로 떠났다. 이때 찬혁군이 초등학교 6학년, 수현양이 3학년이었다. 현지에 도착한 이씨는 아이들 학교부터 찾았다.

“몽골에 처음 가서 자녀들이 현지에 있는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전염병이 돌아 휴교령이 떨어졌습니다. 자연스레 한 학기를 쉬고 나서 다시 학교로 돌아갔지만,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낯선 환경에서 수업을 따라가기도 벅찼죠. 그러던 중 원-달러 환율이 급격하게 올라 달러당 1000원에서 1500원까지 뛰었습니다. 몽골의 물가도 덩달아 올랐죠. 학비 부담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이참에 홈스쿨링을 해보자고 한 거죠.”

이씨는 홈스쿨링을 하면서 시행착오가 많았다고 전했다.

“처음엔 학교 수업시간표를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가정예배로 하루를 시작해 숙제 확인까지 밤 8시까지 공부를 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교재조차 없었고, 2년째가 되자 아이들이나 우리 부부 모두 지쳤죠. 아이들은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집안의 재정 사정이 더 어려워져 학교로 돌려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땐 이러다가 내가 애들을 망치겠구나 싶었죠.”

어쩔 수 없이 홈스쿨링을 이어가게 된 이씨는 교육의 방식을 어떻게 바꿀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씨는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방식을 포기하고, 아이들에게 스스로 수업시간표를 짜도록 했다.

“어차피 학교처럼 가르칠 수 없으니 아이들의 관심사와 재능을 발견하고 계발하도록 도와주자는 마음을 먹었죠. 그래서 아이들에게 스스로 시간표를 만들어 오라고 했어요. 자유롭게 만들어 오되 그 시간표대로 공부하자는 규칙을 세웠죠.”

악동 남매들은 어리둥절해하며 시간표를 짜 왔다. 처음엔 기존대로 국영수 위주의 시간표를 짰으나, 점점 자신들이 하고 싶은 활동을 시간표에 넣었다. 남매는 함께 노래 부르는 시간을 배정했고, 별도로 악기를 다루는 시간을 따로 잡았다. 찬혁군은 기타를 연주했고,수현양은 피아노를 쳤다. 그림그리기, 운동하기 등 예체능 쪽의 시간 배정도 점점 늘어갔다. 남매는 학업에도 열중해 지난해 각자 나이대에 맞는 검정고시에 통과했다.

“학력이 필요하다면 또래보다 좀 늦어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남들과 비교하는 마음보단 건강한 자존감을 키우고, 인생에서 추구해야 하는 중요한 가치를 찾는 게 우선이라고 봤죠. 사실 지금도 홈스쿨링을 고집할 생각은 없어요. 아이들이 원하면 다시 학교로 보낼 겁니다. 그렇지만 학원이나 학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기보단, 좀더 즐거운 성장 과정이 필요하다고 봤어요.”

인터뷰 와중에도 ‘크레센도’로 화음 맞춰

홈스쿨링이 4년째를 맞았을 때 찬혁군이 작곡에 소질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정식으로 음악을 배운 적은 없었지만, 동생과 노래를 부르며 자연스레 음악을 만든 것이다.

“제가 교회에서 찬양 인도를 했기 때문에 아이들도 음악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찬혁이는 교회에서 만난 형에게 기타를 두 달 정도 배웠죠. 그게 전부예요. 우리도 찬혁이가 만들어 온 노래에 깜짝깜짝 놀랐어요.”

찬혁군은 이렇게 48개의 곡을 만들어 ‘케이팝 스타 2’에 출연했다. 방송 출연 중에도 틈틈이 노래를 만들어 지금은 54개의 곡을 보유하고 있다. 찬혁군의 작곡 활동엔 동생 수현양의 도움도 컸다. 악보를 볼 줄 모르는 찬혁군은 노래를 만들면 수현양에게 불러서 들려줬다. 수현양은 노래를 한번 들으면 대부분 기억한다고 했다.

“처음엔 다 기억했는데 요즘은 오빠가 만든 노래가 많다 보니 잘 기억이 안 날 때도 있어요.”

작곡한 노래를 녹음이나 기록하지 않느냐고 묻자, 수현양은 “까먹으면 다시 새로 부르는 대로 노래를 만든다”고 답했다. 남매는 인터뷰를 하는 와중에도 틈이 나면 ‘크레센도’ 노래를 부르며 화음을 맞췄다. 이들에게 음악은 일상이고 놀이였다.

악동뮤지션은 특유의 재치 있는 가사로도 유명하다. 찬혁군은 ‘다이어트 중 마주친 치킨보다 매력있어’, ‘다리 꼬았지 배배 꼬였지’ 등 특유의 비유와 운율을 구사했다. 찬혁군은 “상상하는 것을 좋아한다. 어떨 땐 상상하는 상황에 공감해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동생 수현양은 “오빠는 상상을 실감나게 한다”고 덧붙였다. 이씨가 부연설명을 했다.

“수현이는 어릴 때부터 활달했고, 사람들 앞에 나서길 좋아했어요. 찬혁이는 좀 수줍음을 타는 성격이라서 혼자 책을 보며 상상하기를 좋아했죠. 찬혁이가 쓴 노래 가사를 보면 마디마다 운율이 척척 맞는데 그건 가족들이 끝말잇기를 자주 했던 영향이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둘 다 부모 앞에서는 호흡을 맞추며 노래하는 걸 좋아했어요. 어릴 때 교회, 어린이집에서 배워 온 노래와 율동을 둘이서 함께 하면 엄마 아빠가 박장대소를 하며 즐거워했죠. 그것에 신난 애들이 자꾸만 깜짝쇼를 준비해 보여주길 좋아했어요.”

순수한 남매의 매력이 몽골의 자연환경에서 받은 영향이 아닐까 물었다. 이씨는 자연환경의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답했다.

“많은 분들이 몽골의 초원과 광활한 대지에서 아이들이 꿈과 재능을 키웠다고 상상하는데 사실 몽골은 6~7개월이 추운 겨울이고, 봄은 황사먼지로 가득해요. 대부분의 시간을 답답한 도시와 집 안에서 보내야 합니다. 물론 6~8월엔 도시를 벗어나 초원에서 말도 타고 양과 낙타 떼를 볼 수 있긴 합니다.”

남매는 유명해져서 즐겁지만, 불편한 점도 있다고 말했다. 찬혁군은 “혹시 변했다는 얘기를 들을까봐 예전 친구를 대할 때도 조심스러워진다”고 말했고, 수현양은 “홈스쿨링을 해서 자유롭지만, 외롭기도 하다. 학교 운동장을 보면 친구들과 같이 뛰어놀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고 털어놨다.

이씨 가족에게 남매의 ‘케이팝 스타 2’의 우승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이씨는 “본선 1~2라운드 진출 정도를 기대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22일 몽골로 돌아가 지인들과 함께 가족들의 미래를 구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이대에 맞는 경험을 하고 부모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중요합니다. 소속사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도 마찬가지예요. 쉴 새 없이 연예활동만 하는 곳과는 계약하기 힘들어요.”

윤형중 김민경 기자 hj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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