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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1.27 21:26 수정 : 2012.04.18 09:55

모사드 관여 의혹 주요 공작

[토요판] 뉴스분석 왜?
은근히 드러내는 암살공작
모사드의 심리전, 암살을 넘어 공포를 노린다
이란 핵과학자 암살이 핵개발 저지하리라 믿는 사람은 별로 없어
“이스라엘의 진짜 의도

이스라엘의 비밀공작에 대한 탐사로 명성을 얻은 이스라엘 신문 <예디오트 아하로노트>의 로넨 베르그만은 지난주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이스라엘은 이란을 공격할 것인가?’라는 장문의 기고를 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이 2012년에 이란을 폭격할 것으로 믿게 됐다”며 “옳든 그르든, 오직 이스라엘 사람만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는 강력한 신념”이 그 배경이라고 했다네요.

“이스라엘한테 비우호적으로 평가되는 대통령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미국 주재 모사드 요원에게 내려, 부통령이 그 자리를 대행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 미국의 정책에는 이스라엘이 그 적들을 없애는 데 도움 주는 것이 포함된다고 밝히도록 강제해야 한다.”

지난 13일(현지시각) 발행된 미국 애틀랜타의 유대계 신문 <애틀랜타 주이시 타임스>는 사주인 앤드루 애들러의 칼럼을 통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생존에 방해되면 모사드가 그를 암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애들러는 나중에 오바마 암살을 의미한 것은 아니라고 사과하다가 결국 사퇴했다. 칼럼은 모사드에 대한 유대인의 인식과 평가의 단면이다. 미국 대통령 암살도 모사드한테는 별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이란 핵위기가 격화하면서 이스라엘 대외정보기관 모사드의 암살 그림자가 다시 어른거린다. 최근 폭탄테러 등에 의한 이란 핵과학자 4명의 잇따른 죽음에 모사드의 관여는 정설이다. 모사드의 활동, 특히 암살공작은 특이하다. 자신의 소행으로 드러나는 것을 은근히 즐기기 때문이다.

“그 작전은 보복이 아니라 테러리스트의 마음에 공포를 불어넣는 것이다. 우리는 단순히 길거리에서 사람을 저격하면서 암살을 수행하려 하지 않는다. 그런 거는 쉽다. 전화에 폭탄을 심어서, 언제 어디서라도 추적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래서 그들은 하루 24시간 신경을 곤두세우며 살아야 한다.” 데이비드 킴체 전 모사드 부국장의 팔레스타인 ‘검은 9월단’ 요원 암살사건에 대한 언급은 모사드의 암살공작이 이스라엘이 벌이는 심리전임을 명백히 보여준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뮌헨>의 소재로 잘 알려진 이 ‘신의 분노 공작’은 1972년 뮌헨올림픽 때 이스라엘 선수단을 인질로 잡고 살해한 팔레스타인 검은 9월단 요원들을 추적해 암살한 사건이다. 이스라엘 선수단 11명 전원, 납치범 5명, 구출작전에 나선 독일 경찰 1명이 죽은 이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모사드는 검은 9월단 요원들을 1979년까지 추적해 희생된 선수와 같은 수의 관여자 11명을 암살했다.

영화에서는 암살에 나선 모사드 공작원들이 회의로 인한 신경쇠약 등으로 공작이 차질을 빚은 듯이 시사된다. 영화에서 언급되지 않은 실상은 다르다. 모사드는 1973년 7월 노르웨이의 스키 휴양도시 릴레함메르에서 검은 9월단의 수장 알리 하산 살라마를 암살하려다, 엉뚱하게 모로코 출신 웨이터인 아메드 부시키를 권총으로 살해했다. 현장에 있던 노르웨이 경찰에 의해 여성 요원 2명 등 모사드 요원 6명이 체포됐다. 체포된 요원들은 모든 것을 자백할 수밖에 없어, 도용 여권 등을 이용한 모사드의 비밀 연락 네트워크 등이 드러났다.

릴레함메르의 실패는 역설적으로 모사드 암살공작의 본질을 보여준다. 목표가 세워지면 그 어떤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거다. 모사드는 6년 뒤인 1979년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살라마를 자동차 폭탄테러로 결국 암살하고 이 공작을 종료한다. 사실 모사드만큼 암살공작이 실패해 그 실상이 드러난 정보기관도 없다. 모사드가 그만큼 수많은 암살공작을 개의치 않고 저질렀다는 반증이다.

1997년 9월 요르단 암만에서 벌인,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지도자 칼리드 마슈알 암살 실패가 대표적이다. 당시 모사드 요원 2명은 마슈알을 거리에서 납치해, 귀에 독극물을 주입했다가 체포됐다. 요르단 국왕 후세인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격노했고, 네타냐후는 해독제를 급송해야만 했다. 마슈알은 회복됐고, 이스라엘은 오히려 수감돼 있던 하마스 지도자 아메드 야신을 석방하는 대가를 치렀다. 모사드 요원들에 의해 자국 여권을 도용당한 캐나다는 이스라엘과 단교 직전까지 갔고, 모사드 국장 다니 야톰은 사임했다.

당시 사건은 극우 강경파 네타냐후 총리가 팔레스타인의 민중봉기인 인티파다 등 정치위기를 맞아 무리하게 공작을 추진하다가 불거졌다. 그가 두번째로 총리로 취임한 직후인 2010년 2월 두바이의 호텔에서 벌어진 하마스 지도자 마흐무드 마브후흐에 대한 전기감전 암살이 벌어졌다. 당시 모사드는 그를 암살하기는 했으나, 암살 공작원들의 모습이 호텔 폐쇄회로티브이에 녹화되어 사건이 들통났다. 모두 11명의 공작원이 관여했고, 이들 모두는 영국·아일랜드·프랑스·독일 여권을 도용한 것으로 드러나, 관련국들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모사드의 전설은 1960년 아르헨티나에서 은신중이던 나치 친위대 지도자 아돌프 아이히만의 체포로 시작된다. 이 전설은 1976년 7월4일 팔레스타인과 독일 게릴라들에게 납치된, 승객 248명이 탄 에어프랑스 여객기를 우간다 엔테베공항에서 전격 기습작전으로 구출한 엔테베 작전으로 절정에 오른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과 함께 창설된 모사드는 나치 전범 추적과 1966년 이라크로부터 미그21기 귀순 등 탁월한 국방정보 획득 공작으로 신화를 쌓았다. 그러나 1970년을 전후해 테러에 호소하는 팔레스타인 저항운동이 본격화되면서, 모사드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보복 원칙으로 암살과 전복에 치중하게 된다.

암살과 전복에 집중하는 모사드의 활동은 1973년 이집트와 시리아의 전격적인 이스라엘 침공인 4차 중동전 ‘욤키푸르’ 전쟁에 대한 정보 획득에 실패해, 이스라엘 국방이 위기에 처하게 하며 그 난맥상을 드러냈다. 하지만 모사드의 암살공작은 그 이후 더욱 가속화한다. 1970년대 중반 제럴드 포드 대통령 이후 미국 정부가 대통령령으로 중앙정보국에 대해 암살 등 불법공작을 금지하자, 모사드는 미국 등 서방 정보기관의 청부업자 노릇을 한 것이다.

모사드의 공작 실태는 모사드의 현장 책임요원인 이른바 ‘카차’ 출신인 빅토르 오스트로프스키가 1990년 발간한 <기만의 방법으로-모사드 요원의 양성과 파멸>이란 책에서 드러났다. 현재의 모사드를 일군 3대 국장 메이르 아미트(재직기간 1963~68년)는 카차를 포함한 모사드 정식 직원 규모를 1200명 정도로 고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작은 규모에도 모사드가 왕성한 활동력을 보이는 것은 전세계에 퍼진 유대인 커넥션 때문이다.

오스트로프스키에 따르면 모사드의 협조자, 이른바 ‘사야님’은 전세계에 3만5000명 정도이며, 이 중 2만명은 현재 활용중인 협조자이고, 나머지 1만5000명은 잠재적 협조자인 ‘슬리퍼’이다. 아랍인 협조자는 ‘블랙’, 비아랍인 협조자는 ‘화이트’로 불린다. 영국의 정보기관 전문추적기자 고든 토머스가 모사드 공작을 파헤친 <기드온의 스파이>에 따르면, 1998년 영국에만 약 4000명의 사야님이 존재하고, 미국에는 그 4배가 존재한다.

가장 유명한 사야님은 영국 언론재벌 미러그룹의 사주 로버트 맥스웰이었다. 언론 사주로 막강한 국제적 영향력을 지닌 그는 모사드와 정보와 커넥션을 주고받으며 사업체를 키우다가 직원의 연금 횡령 스캔들과 부도 위기에 몰리자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1991년 모로코 연안 카나리아제도에서 항해하던 자신의 요트에서 실족해 익사했다. 오스트로프스키는 그가 모사드와 영국 정보기관 MI-6와 함께 벌인 고르바초프 실각 등 소련 시절의 더러운 공작이 폭로될 것으로 우려한 모사드에 의해 암살당했다고 전한다.

모사드의 현재 초점은 이란 핵개발이다. 지난해 12월31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새로운 국방수권법에 서명해 법이 발효함으로써 미국은 이란 석유 금수에 착수했다. 유럽연합도 지난 23일 금수 일정을 확정해, 7월1일이면 유럽연합의 이란 석유 거래는 중단된다. 이 와중에 지난 11일 이란 핵과학자들에 대한 5번째 테러가 일어나, 4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1970년대 이후 모사드의 암살공작은 팔레스타인 등 이슬람세력의 테러를 더욱 키웠다. 테러와 보복의 악순환이다. 이는 중동지역에서 이스라엘의 무력대응을 정당화했다. 이스라엘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부터 줄기차게 이란 핵시설 폭격을 주장해왔다. 모사드의 이란 공작은 진행형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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