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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원주민 카야포족의 라오니 추장이 지난 9월25일 의원, 활동가 등과 브라질 의회에 참석했다. 그는 보우소나루 대통령에게 아마존 밀림의 환경 재앙에 대한 경시를 멈추라고 요구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하루 전에 열린 유엔 총회에서 라오니 추장을 조롱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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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르포
아마존 리포트 (하)
아마존 원주민 카리푸나족
원래 살던 숲의 절반 이상
벌목업자, 목장주 점거 상태
인구 59명 남은 절멸 위기
스물여섯 추장과 함께
사투를 벌이며 다녀온 길
대통령 앞장서 원주민 혐오
개발 반대하면 누구든 희생양
아마존 개발 밀어붙이는
‘원주민 사회통합’의 맨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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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원주민 카야포족의 라오니 추장이 지난 9월25일 의원, 활동가 등과 브라질 의회에 참석했다. 그는 보우소나루 대통령에게 아마존 밀림의 환경 재앙에 대한 경시를 멈추라고 요구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하루 전에 열린 유엔 총회에서 라오니 추장을 조롱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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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해양환경단체 시셰퍼드에서 활동하는 김한민 작가가 올해 엄청난 산불에 휩싸인 아마존 열대우림 현장을 취재했다. 포르투갈에서 문학과 인류학을 공부하고 환경과 관련한 글과 그림 작업을 해온 그는 삼림 보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9월22일부터 10월1일까지 화재와 벌목으로 큰 피해를 본 브라질 북서부의 혼도니아주를 둘러봤다. 그의 아마존 방문기를 두 차례에 걸쳐 싣는다.
8월 말, 서울의 한 목욕탕 탈의실에서 아마존 산불 소식이 뉴스에 방영되는 걸 보았다. 중장년층 남자 서너명이 혀를 끌끌 차며 시청하고 있었다. 어떤 부분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걸까? 쑥스러워서 묻지는 못하고 추측만 했다. 아마존이 지구 전체 기후에 끼치는 영향 때문에? 생물 다양성의 보고라서? 희귀 식물들로 신약 개발이 가능해서?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단신 기사들에서는 좀처럼 다루지 않는 것이 있으니, 바로 사람의 문제다.
산불 소식을 접하면 우리는 주로 삼림이나 등산객의 안전을 걱정하지만, 깊은 숲속에 사람이 산다는 생각은 잘 하지 못한다. 아마존 밀림은 다르다. 약 100만명 정도로 추산되는 원주민들이 이곳을 삶의 터전 삼아 300개 이상의 부족을 이루고 산다. 수천년간 온갖 위기를 극복하며 생존해온 그들에게 가장 큰 역경은 산불이 아니라 외부 침입자, 즉 백인들이었다. 집단 살상, 인신매매, 강제노역, 전염병…. 1500년대 포르투갈 ‘정복자’들과의 접촉 이후 아마존 원주민들이 치른 희생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피의 역사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1988년에 비로소 원주민의 토지 사용 권리가 브라질 헌법에 보장되는 순간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뒤 오늘날까지 그들이 뼈저리게 깨달은 것은, 법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였다.
그 숲에 사람이 산다
현재 아마존 부족 중에 삶의 근간을 흔드는 위협을 느끼지 않는 공동체는 한 곳도 없다. 누가 그들을 위협하는가? 벌목업, 목축업, 광산업 등으로 돈을 버는 개발 세력이다. 그들이 노리는 건 원주민의 땅이다. 거기서 나오는 자원도 있지만, 무엇보다 삼림을 벌채하면 그 땅에 소를 키워 팔 수 있다. 여기에 토지 횡령꾼들도 가세한다. 원주민 보호구역으로 지정이 돼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불법으로 땅을 매매한다. 불법 토지 강탈로 신고나 고소를 하면 되지 않느냐고? 그래 봤자 별 소용이 없는,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오지다. 대부분의 원주민들은 뾰족한 대책 없이 두려움과 불안 속에 산다. 그중 절멸 위기의 부족도 있는데, 카리푸나족이 그러하다. 수렵, 낚시, 카사바·아사이베리·브라질너트 채취 등에 의존해 브라질 혼도니아주의 밀림에서 자급자족해온 그들은, 70년대 들어 외부와 처음 공식 접촉을 했다.
내가 카리푸나족 추장 안드레와 연락이 닿은 행운은 역설적으로 부족의 불행 때문에 찾아왔다. 원래 원주민 공동체 직접 방문은 복잡한 걸차를 거쳐야 하지만, 카리푸나족은 예외였다. 현재 인구가 단 59명뿐인 상황이다 보니, 그들의 숲을 노리는 이들이 나쁜 마음을 먹으면 청부살인업자를 고용해 부족을 집단학살하는 일도 가능한 상황이다. 이 위험을 누구보다 잘 아는 추장 안드레는 고립된 채로 저항하기보다 외부 사람이나 매체에도 적극적으로 사태의 시급성과 부당함을 알리고자 했고, 그래서 나도 접촉할 수 있었다.
마을 방문을 허락받았으나 비 소식이 있어 길이 젖기 전에 신속히 다녀와야 했다. 지난 9월28일 새벽 5시께, 긴장을 했는지 출발 예정(아침 6시)보다 일찍 눈을 떴다. 숙소의 티브이를 켰더니, 구십 평생 삼림 파괴에 맞서 싸워 노벨 평화상 후보로도 추천된 카야포족의 라오니 추장이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 개최를 맞아 기자회견을 하는 장면이 나왔다. 곧이어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이 추장을 폄하하는 내용이 이어졌다. 저토록 노골적인 보우소나루의 반환경, 반원주민 노선은 어디서 연유할까?
브라질은 농축산업이 국내총생산(GDP)의 약 20%를 차지하는 나라다. 관련 업계 그리고 보우소나루의 핵심 지지층인 농업자본 세력(bancada ruralista)의 입김은 정부와 국회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아마존 개발은 그들의 최우선 어젠다다. 이들과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정치인들은 브라질 사회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주의를 악용한다. ‘원주민은 브라질인도 아니며, 열등하고 미개하다. 소수인 주제에 부당하게 넓은 땅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을 문명사회에 통합시키고 이들을 뒤에서 조종하는 엔지오(NGO)가 사라져야, 아마존을 개발해 부를 이룬다’는 담론을 유포해 아마존 주변에 거주하는 비원주민들을 자극한다.
그 선봉에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있다. 그는 원주민을 동물에 비유하는 등 혐오 발언을 서슴지 않고, 기회만 있으면 엔지오를 모함한다. 그런데 원주민들이 아마존 개발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점은, 바꿔 말해 그들 덕분에 그나마 지금만큼이라도 아마존 보호가 가능했다는 의미도 된다. 그러나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감사 인사는커녕, 호시탐탐 그들의 땅을 노리는 자들의 간담 서늘한 위협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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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살인 카리푸나족 추장 안드레가 마을 인근 숲에 불법으로 설치된 벌목꾼들의 임시 거처를 발견해 사진을 찍었다. 카리푸나족이 살던 숲의 절반 이상이 이미 벌목업자와 목장주, 광산업자들에게 점거된 상태다. 그는 이 같은 증거 등을 제시하며 담당 관청에 여러차례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 안드레 카리푸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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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가의 무덤, 아마존
물론 위협은 말로 끝나지 않는다. 국제단체 ‘글로벌 위트니스’(Global Witness)는 매년 전세계에서 희생되는 환경운동가의 수를 발표하는데, 브라질에서의 사망자 수는 늘 수위를 다투고, 그 대부분은 아마존 숲을 지키려다 ‘숙청’당한 국내외 운동가들이다. 여기에는 원주민들도 포함된다. 아마존에 살면서 얼굴을 드러내놓고 환경운동을 하는 일은 자살행위에 가깝다. 신변이 노출될 경우 언제 어디서 청부살인의 희생양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내 체류 기간에도 원주민 권리 보호 활동을 하던 요원이 피살당했다. 그러나 살인 사건이 일어나도 재판이나 범죄자 처벌은 물론 변변한 수사가 이뤄지는 경우도 드물다. 대통령이 나서서 원주민을 폄하하고 침입하는 쪽을 두둔하니, 범죄가 기승을 부릴 수밖에 없다.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보다 조금 늦게 안드레가 나타났다. 그는 내가 상상하던 추장의 모습이 아닌, 스물여섯의 청년이다. 지난해부터 추장을 맡았는데 감당하기 힘든 압박과 스트레스에 노출돼 하룻밤도 편히 잠을 이뤄본 적이 없다고 했다. 토지횡령꾼으로 의심되는 자들로부터 지속적인 살해 위협에 시달렸단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노모와 가족들을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한국이라면 대학을 졸업해 사회에 진출할 나이에 부족 전체의 운명을 짊어지고 위태로운 매일을 살아야 하다니….
포장도로 2시간, 비포장도로 3시간을 달려 비로소 카리푸나족의 마을에 도착했다. 벌목업자들이 대형 트럭을 끌고 다녀 도로 상태는 예상보다 더 나빴다. 카리푸나족이 살던 숲의 절반 이상이 이미 벌목업자와 목장주, 광산업자들에게 점거된 상태였다. 어떤 부족은 이들과 무력으로 맞대응하다가 유혈 사태에 이르기도 한다. 카리푸나족처럼 평화적 해결을 원하면, 우월한 자본과 조직력을 못 당해내고 결국 소 방목장들로 에워싸이는 신세가 된다.
한때 성역이었던 숲이 눈앞에서 쓰러져 불타고 생활 반경이 축소되면, 대대로 내려오던 방식대로 수렵, 채집 및 의식을 유지하기가 불가능해진다. 점점 외지 생산물과 식품에 의지하고 생활양식이 도시화, 서구화되면서 공동체의 가치체계와 정체성이 흐려지면서 부족은 서서히 저항 의지를 상실한다. 그때부터 나머지 땅을 점령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바로 이것이 아마존 개발을 밀어붙이는 정치인들이 주창하는 “원주민 사회통합”의 맨얼굴이다.
스무명 남짓한 카리푸나 부족 식구들과 인사를 하고 짧은 대화를 나누고 있으려니 어느새 먹구름이 몰려왔다. 비로 도로가 진흙이 되면 발이 묶이기에 떠날 채비를 서둘렀는데도 우려하던 사태가 발생했다. 도로 상태가 가장 나쁜 구간에 이르러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 것. 지금껏 어렵사리 험로를 통과해주던 사륜구동 지프차가 결국 진흙 구덩이에 박혀 나아가지 못했다. 우리 일행과 동승하던 카리푸나족 청년 셋 모두 힘을 합쳐 진흙에서 차를 건져내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달려드는 모기떼와 폭우를 피할 새도 없이 타이어에 마찰력을 가할 나뭇조각을 찾아 어두워지는 숲을 헤매야 했다.
오후 4시부터 시작된 자체 구조작업이 밤 11시를 넘기고 있었다. 그렇게 사투 끝에 카리푸나 청년들의 투지 덕분에 ‘마의 구간’을 빠져나왔다. 안드레가 얼굴의 진흙을 닦으며 말했다. 매일매일이 전쟁이라고. 그 순간만큼 그 말이 일말의 과장 없이 들린 적은 없었다.
지구촌이 조금씩 일조하는 비극
내겐 기억에 남을 고생일지 모르지만, 외지인이 아마존에서 겪는 고초들에는 사실 아무것도 특별할 게 없다. 현대인의 생활방식과 호환이 안 되는 자연이기 때문에 겪는 당연한 불편함일 뿐. 현대사회와 아마존이 조화롭게 공존할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 보인다. 오랜 시간 동안 아마존에 적응해온 소수 사회의 특수한 삶의 방식과 권리를 인정해주는 것이다. 그게 아니면 아마존을 폭력적으로 제거하고 그 자리에 현대적 생산 체계를 강제 이식시키는 것인데, 불행히도 인류는 후자의 방법으로 손쉬운 돈맛을 보고 말았다.
가장 큰 비극은 익숙한 비극의 재발을 막지 못하는 일이리라. 만약 2019년에 미국 현대사의 악몽인 아메리카 인디언 학살이 되풀이되고 있다면 누가 믿겠는가? 북미에서 1846~1873년 사이의 ‘골드러시’ 시기에 살해당한 원주민들이 약 4500~1만6천명이라면, 브라질에서는 1957~1968년 사이에 약 10만명의 원주민이 광물채취 광풍에 희생당했다. 지금은 살아남은 인원수가 적고 그들이 험지에 살기에 피해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아 보일 뿐, 정복과 착취는 여전하다. 이곳, 동시대의 아마존에서 눈에 익은 서부극, 침탈과 학살이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지구인도 두 손에 쥔 햄버거를 통해, 앉아 있는 자동차 좌석과 신은 신발의 소가죽을 통해, 끼고 있는 결혼반지와 쓰고 있는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금을 통해, 또 온갖 광물의 무의식적 소비 혹은 수요 창출을 통해 이 불편한 역사 쓰기에 일조하고 있다. 어쩌면 누군가는 이 모든 제품을 한꺼번에 사용·착용한 채로 ‘아마존 화재 뉴스’ 피드에 눈물 흘리는 이모티콘을 달고 있는지도 모른다.
환경운동은 언제나 상징을 필요로 해왔다. 천성산과 설악산은 도롱뇽과 산양을, 지구 온난화는 북극곰을, 팜유는 오랑우탄을 통해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아마존은 이렇다 할 상징 없이도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운동은 이제부터다. 앞으로 그 긴 투쟁의 여정에 상징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재규어보다 원주민이 돼야 할 것이다. 가령, 아프리카의 세렝게티 초원 보호 정책처럼 동물을 우선시하고 원주민을 소외시키는 방향으로 가면, 부패한 정치가와 이익에 눈먼 사업가들에 의해 동물과 원주민 모두 소외될 수 있다. 숲의 사람, 원주민의 생존권을 보장해주는 방향이 아마존이 나아갈 길이라 생각한다. 그들이 완벽해서가 아니다. 적어도 그들은, 현대인들이 단 몇백년 만에 망쳐버린 숲을, 수천년간 숲답게 유지할 수 있음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지속가능성’이란 말이 등장하기 한참 전부터 말이다.
김한민 작가·시셰퍼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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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림 한 가운데에서는 경찰 단속이 뜸하다는 걸 잘 아는 불법 벌목꾼은 '보호구역, 진입금지'라는 팻말에 총격을 가하며 원주민을 위협한다. 지난 9월27일 아마존 한 원주민 부족 영토에서 발견한 총알 자국이 선명한 팻말. 김한민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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