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04.06 09:55 수정 : 2019.04.12 10:00

[토요판] 르포
1회용 비닐봉투 단속 현장

4월1일부터 비닐봉투 판매금지
“장바구니족은 30~40% 정도”
속비닐 사용 기준 들쑥날쑥
다이소·편의점 제외 형평성 논란

자치구당 단속인력 1명 뿐
플라스틱컵 단속도 유야무야
“단속으론 한계…시민의식 중요”

이번달 1일부터 이마트,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는 물론 매장면적 165㎡ 이상인 슈퍼마켓에서 플라스틱으로 만든 1회용 비닐 봉투를 판매하면 최대 300만원까지 과태료를 내게 됐다. 단속 첫날인 지난 1일 서울 은평구 ㄱ마트(150평 규모. 495㎡). 마트에서 물건을 산 시민들은 ‘사라진 비닐봉투’에 4인4색으로 대응했다.

맨손족: “돼지고기를 이렇게 들고 가라니 말이 됩니까?” 마트에 장을 보러 온 60대 한 남성은 투명 속비닐에 담긴 돼지고기 900g과 초코맛 비스켓 한 상자를 산 뒤 맨손으로 물건을 들고 나가며 거칠게 화를 냈다. 주부 유아무개(44)씨도 돼지고기 한 근, 진미채 한 봉지, 메추리알 두 판을 산 뒤 이것들을 그냥 품에 안고 갔다. 유씨는 “작은 돈도 아끼고 싶은 게 주부의 마음”이라고 했다.

종량제 봉투족: 서대문구 북가좌동에 사는 조아무개(58)씨는 마트에서 490원에 파는 재사용 가능한 쓰레기 종량제 봉투를 두 장 구매해 장 본 물건들을 담았다. 평소엔 장바구니를 챙기는데 이날은 갑자기 마트에 오느라 그냥 왔다는 조씨는 “집에서 어차피 쓰레기를 버려야 해서 종량제 봉투를 사는 게 큰 비용은 아니다. 490원 내고 그냥 맘 편히 물건들을 담아 가겠다”고 말했다.

대체용품족: ㄱ마트는 손님이 배달을 요청하는 경우 물건을 포장할 살구빛 마대자루를 비치해놨다. 보증금 300원을 받은 뒤 반환할 때 돌려준다. 비닐봉투를 쓰지 않기 위한 자구책이다. 마트 한 켠엔 손님들이 직접 물건을 담아갈 수 있는 종이상자들도 비치돼 있다. 장바구니도 800원에 살 수 있다. 하지만 홍춘호 한국마트협회 이사는 혀를 찼다. “마대자루도 플라스틱만 아니지 결국 또 하나의 쓰레기 양산 아니냐.”

장바구니족: 천으로 만든 장바구니를 손수 챙겨오는 이들도 어렵지 않게 만난다. 이아무개(66)씨는 “환경도 환경이지만, 집에 안 쓰는 비닐 봉투가 자꾸 쌓이는 게 싫다”며 딸기가 담긴 장바구니를 기자에게 열어 보여줬다. 주부 강아무개(62)씨는 언제 마트에 들를지 몰라 자가용 트렁크에 파란색 봉투를 놓고 다닌다. 강씨는 이날도 이 봉투를 챙겨와 딸기, 포도, 토마토 등 3만원 가량 장을 본 뒤 담아갔다.

ㄱ마트의 계산대 직원 함아무개(57)씨는 “1년 전과 비교하면 장바구니 챙겨오는 분이 늘긴 했지만, 아직도 손님들 중 30~40% 정도만 장바구니를 가져온다”고 말했다.

속비닐 쌀 것이냐 말 것이냐

덤덤하게 반응하는 고객들도 있었지만, 화를 내는 고객들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고객의 짜증과 불만은 주로 ‘속비닐’에서 폭발한다. 환경부의 안내로는 스티로폼 용기에 담아 랩을 씌운 팩포장 물품은 다시 속비닐에 담으면 안 된다. 그런데 이 중 상온에서 녹아서 액체가 흐를 수 있는 경우 속비닐에 한 번 더 담을 수 있다. 두부, 조개류도 마찬가지다. 1차로 한 포장이 허술해서 한 번 더 포장을 해야하는 경우는 속비닐 사용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물건을 직접 사보면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ㄱ마트 정육코너 직원 양아무개씨는 냉장고에 진열된 고기들을 내려다 보며 한숨을 쉬었다. “다 같은 냉동제품이지만 속비닐에 쌀 수 있는 것과 아닌 것이 있어요. 그걸 일일이 설명하기가 너무 어렵죠. ‘고기 핏물이 새어 나오는데 왜 속비닐에 못 담게 하느냐’며 화를 내는 손님도 있고요.”

야채 담당 코너도 헷갈리긴 마찬가지다. 망에 담긴 양파, 비닐에 포장된 시금치 다발은 다시 속비닐에 담으면 안 된다. 하지만 흙 묻은 당근·감자·고구마는 속비닐에 넣어도 된다. 또 흙이 안 묻었어도 랩으로 싸지 않은 무, 오이 등은 속비닐 사용이 가능하다. 바나나 송이를 있는 그대로 파는 매장에선 바나나를 속비닐에 넣을 수 있다. 하지만 바나나에 랩을 싸서 가격표를 붙여 파는 매장에선 랩에 싸인 바나나를 속비닐에 한번 더 담으면 안 된다. ㄱ마트 야채담당 직원 안아무개씨는 “솔직히 나이 많은 어르신은 속비닐에 뭘 담을 수 있고 뭘 담을 수 없는지 구분하기 어렵다”고 했다.

형평성 논란도 제기됐다. 165㎡ 이상 슈퍼마켓에서 비닐 봉투 판매가 금지됐는데, 사실상 슈퍼마켓과 다를 것 없는 생활용품 판매점 다이소나 일반 편의점은 규제 대상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이들은 한국표준산업분류상 ‘슈퍼마켓’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전히 비닐 봉투를 50원 또는 100원에 팔고 있다. 김현경 서울환경연합 생활환경 담당 활동가는 “일반 시민의 눈으로 보기엔 마트와 다이소가 무슨 차이냐 생각될 수 있다. 시민들이 보기에 의아한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비닐 봉투 판매 제한 대상업체가 지금보다 확대되면 형평성 논란은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이채은 환경부 자원순환정책과장은 “현재 만들어진 규제 대상 범위가 안착되면 사회적 합의를 거쳐 점점 그 범위를 늘려갈 예정”이라며 “당장 규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업체들도 추후엔 비닐 봉투 판매 제한 대상에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

카페 안 1회용 컵 금지…현실은

과도한 플라스틱 사용이 환경을 망치고 있다는 비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최근에도 이탈리아 사르디니아 섬에서 숨진 채 발견된 8미터 길이의 어미 향유고래에서 무려 22㎏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발견됐다. 그 쓰레기 더미에 깔린 새끼는 어미의 뱃속에서 영양분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해 유산된 것으로 추정됐다. 전 세계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 중 60% 가량이 중국 등 아시아 국가에서 나온다고 분석되고 있다. 아시아 여러 국가들에선 연달아 플라스틱 감축 대책이 나오고 한국도 예외가 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지난해 4월 중국이 한국에서 배출된 폐비닐, 플라스틱, 스티로폼 등의 수입을 거부하면서 한국에선 ‘쓰레기 대란’이 발생했다. 서울, 경기 등 아파트 단지마다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를 처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 이 사태를 계기로 환경부는 같은 해 5월 플라스틱 발생을 근본적으로 줄이기 위한 ‘재활용 폐기물 관리 종합대책’을 내놨다. 2022년까지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 30%를 줄이고 2030년까지 50%까지 감축하는 게 목표다.

가장 먼저 시도된 건 음료수 매장 안에서 1회용 컵 사용을 제한한 것이다. 지난해 8월부터 테이크아웃으로 가지고 나가지 않고 가게 안에서 음료수를 마실 때는 머그컵, 다회용컵만 쓸 수 있게 했다. 위반 업체는 최대 200만원을 물어야 한다. 두번째 나온 대책이 바로 1일부터 시작된 마트 비닐봉투 판매 규제다. 시민이 일상에서 실천하기 비교적 쉽고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의 사용량이 높은 품목인 1회용 컵과 비닐봉투가 ‘플라스틱과의 전쟁’에서 우선적 대상이 됐다.

4일 서울 마포구의 ㄴ커피숍. 매장 안에서는 1회용 컵을 사용할 수 없지만, 여전히 사용하는 매장들이 있다.

“솔직히 단속 다 못해요”

“○○구에서 단속 인력이 저 혼자에요. 마트 비닐봉투 단속 외에도 신경써야 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지난 1일 마트에 비닐봉투 판매 단속을 나간 ㄱ주무관이 말했다. ㄱ주무관은 서울 25곳 자치구 중 한 곳에 소속돼있다. ㄱ주무관이 단속해야 할 업체는 수백여곳에 이른다. 비닐 봉투 판매 제한 대상 업체인 165㎡ 이상 규모 마트가 70여곳, 비닐봉투 무상제공 금지 대상인 제과점이 160여곳, 1회용 플라스틱컵 매장내 사용이 제한된 커피전문점이 400여곳이다. 하지만 1회용 플라스틱컵 단속은 제도가 첫 선을 보인 지난해 8~9월, 잠깐 하다 말았다고 털어놨다. ㄱ주무관은 “사실상 위반사항 전체를 세밀하게 보는 건 불가능해요. 돌아다니며 제도를 알리고 눈에 띄면 적발하는 수준이지 일일이 정확하게 단속하기 어렵죠”라고 말했다.

이런 고민을 하는 곳은 구청만이 아니다. 광역지자체인 서울시도 마찬가지다. 서울 25곳 자치구의 1회용품 단속 업무 상황을 총괄하는 서울시 자원순환과 재활용사업팀엔 1회용품 단속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1명이다. 단속권한도 기초지자체(자치구)에만 있어 시청은 제도를 알리고 단속을 감독·집계할 뿐이다.

이 때문에 서울시는 지난해 8월부터 시작된 1회용 플라스틱컵 사용 제한 제도에 대한 과태료 부과를 5개월 정도만 진행했다. <한겨레>가 입수한 ‘서울 자치구 25곳 1회용 플라스틱컵 단속 현황’(2018)을 보면, 첫 단속을 시작한 지난해 8월과 9월만 해도 점검·단속 건수가 5281건, 5085건에 이르렀다. 그러나 10월 3334건, 11월 1439건, 12월 829건으로 점점 줄었다. 수차례 단속에 걸려 과태료가 부과된 매장은 8월 4곳, 9월 3곳, 10월 8곳, 11월 1곳, 12월 0곳이었다. 단속 실적이 점점 줄어든 것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최근에 환경부가 마트 비닐봉투 사용금지 제도를 내놔 이걸 단속을 하느라 1회용 플라스틱컵 사용은 단속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1~2월엔 집계도, 부과도 전혀 하지 않았다. 지난 3월이 되어서야 서울시는 미뤄둔 단속을 3개월 만에 재개해 11곳 매장에 과태료를 물렸을 뿐이다.

단속망이 허술하자 1회용 컵은 다시 매장 안에 상륙했다. 지난 4일 기자가 방문한 서울 마포구 ㄴ커피숍에서도 얼음이 든 차가운 카페라테를 주문하자 테이크아웃 여부를 묻지 않고 바로 1회용 플라스틱컵을 건넸다. 1회용 플라스틱컵은 종이컵에 이중으로 담겨졌다. 1회용 플라스틱컵에 담긴 음료를 매장 내에서 마셨지만 아무도 제재하지 않았다.

첫 발을 뗀 마트 비닐봉투 제한 제도는 어떻게 될까. 1회용 플라스틱컵 제한 제도처럼 처음에만 ‘반짝’ 단속하고 이내 잊혀지는 제도가 될까. 답은 시민들에게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김태희 자원순환사회연대 정책국장은 “솔직히 단속 인력이나 과태료 부과에 언제까지 의존할 순 없다. 단속을 강화하는 것은 부차적 문제다. 결국 플라스틱 줄이기는 시민의식이 해결할 문제”라고 말했다. 한국소비자협회가 집계한 국가별 플라스틱 사용량(2016년)을 보면, 우리나라의 1인당 연간 플라스틱 소비량은 116㎏에 달한다. 미국(97.7㎏), 프랑스(73㎏), 일본(66.9㎏), 뉴질랜드(63㎏)보다 훨씬 많은 수준이다.

글·사진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토요판] 르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