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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1.26 09:33 수정 : 2019.01.26 09:49

[토요판] 르포
‘발생 0건’ AI 방역현장

2014년부터 5년간 AI 연속 발생
닭, 오리 7185만 마리 살처분 악몽
이번 겨울엔 '발생 0건' 지속
예찰 강화, 밀집 사육장 휴업 등
강화된 방역, AI 없는 겨울 만들까

저병원성 바이러스는 계속 검출돼
“낙관 예단은 방역활동에 금기”
AI 방역, 사육농가에 지나친 책임
사육위탁기업 시스템도 개선 필요

충북 음성군 맹동면의 오리 사육 농민이 23일 맹동면사무소에 설치된 거점소독시설에서 오리 사육 농가 밀집지역 안에 들어갈 축사방문차량을 소독하고 있다. 음성/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조류인플루엔자는 어느새 우리가 겨울철마다 겪는 풍경이 되었다. 이번 겨울 조류인플루엔자 발생은 다행히 0건을 기록 중이지만 방역 현장에선 봄의 기대감을 미루고 겨울의 긴장감을 조이고 있다. 방역 일상을 이어가는 충북 음성지역 사육농가들과 방역 관계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아직 안심 못해요. 사람과 차량 이동 많은 설 연휴가 고비이고, 그 뒤에도 날이 따뜻해져야 어느 정도 안심할 수 있을 겁니다.”

봄은 아직 멀게 느껴지고, 그래서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조류인플루엔자(AI·에이아이) 방역을 위한 거점소독시설이 마련된 충북 음성군 맹동면사무소 마당에서, 강기해 음성군 주무관(가축방역팀)은 지난 2014~2016년 해마다 맹동면을 휩쓸고 간 에이아이의 악몽을 떠올리며 “(겨울 절반을 지났지만) 불안은 여전하고, 오리 사육농가 계도와 농장, 하천 주변 소독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나 음성 지역엔 오리 사육농가가 57곳이나 다닥다닥 모인 맹동면 봉현리의 ‘봉현뜰’ 밀집사육지가 있어 겨울철마다 에이아이는 이 지역 주민에게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하는 최대 관심사가 됐다. 이웃한 진천군과 함께 오리 사육장이 많아 두 지역을 합쳐 전국 오리 출하량의 20%가량을 차지한다고 한다. 조류인플루엔자는 해를 걸러 터지다가 2014년부터는 5년 동안 연속 발생해 전국 닭, 오리 사육농가에 끔찍한 ‘살처분의 추억’을 남겼다. 5년 동안 살처분된 닭, 오리 등 가금류는 무려 7185만 마리에 달했다.

이번 겨울은 살처분 없이 무사히 넘겨 따뜻한 봄을 맞이할 수 있을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농가들이 나선 조류인플루엔자 특별방역 활동이 지난해 10월 시작된 이래 석달 반을 넘긴 현재 사육농가에선 다행히 ‘조류인플루엔자 발생 0건’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도 언제 터질지 예측할 수 없는 게 에이아이인지라, 안심은 이르다. 전국 방역기관 중 한곳인 서울보건환경연구원의 박형숙 동물방역팀장은 “우리끼리 그런 예측이나 기대를 입에 올리는 건 금기”라고 말했다. 겨울을 무사히 지나기 위한 방역 활동이 각지에서 한창인 요즘, 농가와 방역기관을 찾아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살처분의 악몽…‘사육 휴지기’ 고육지책

“아, 참담했지. 10년 전에 7억원 들여 사육시설을 지었는데 에이아이 때문에 3년 동안(2014~2016) 모두 살처분했으니까. 살처분 보상금이 나왔지만 (사육을 위탁하는) 계열화 회사가 이것저것 떼고 나는 절반도 못받았어. 빚 이자도 못갚아 결국 다른 땅을 팔아 이자를 갚았으니.”

맹동면사무소 마당에 마련된 거점소독시설에서 오전 당번을 서고 있던 조성환(70)씨는 “그땐 이웃 농가에서 에이아이가 발병했다 하면 바람 타고 오는지 금방 우리 사육장으로도 들이닥치던” 악몽 같은 경험을 되풀이해 얘기했다. 그는 하우스 수박의 산지로 유명하던 맹동면의 봉현뜰에서 10년 전쯤에 처음 오리 사육농장을 열어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엔 아예 겨울철에 오리 사육을 포기하고 대신에 지자체와 정부의 휴업 보상금을 받고 있다.

봉현뜰 마을은 충북 음성군에서도 오리 사육장 밀집 지역으로 유명하다. 밀집사육 탓에 2014~2016년 에이아이가 들이닥쳤을 때엔 해마다 거의 모든 사육농가가 큰 피해를 입었다. 가장 심했던 2016년엔 오리 농가 57곳에서 모든 오리가 매몰되기도 했다. 그해 음성군 전체에서 가금류 277만 3000 마리가 살처분됐다.

그래서 생겨난 ‘오리 사육 휴지기’는 고육지책이었다. 에이아이를 피하기 힘든 겨울엔 오리 사육을 중지하고 보상금으로 1마리당 712원(농장별 최근 1년 최대 사육 개체수 기준 산정)을 받는다. 2017~2018년 겨울에 처음 시행돼, 이제 두 번째를 맞는데 참여농가는 꽤 많은 편이다. 봉현뜰의 57개 오리 농가 중에서 35곳이나 이번 겨울철 사육을 포기했다. 왜 이곳엔 겨울 사육을 포기한 농가들이 많을까?

“몇 해 겪어보니 철새 도래지가 없는 지역인데도 에이아이 발생을 피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빽빽하게 들어선 사육밀집 지역인데다 근처에 도축회사도 있고 차량 왕래가 많은 도로들도 있고. 그러니 먼 곳에서 에이아이가 터지면 이어서 어김없이 음성에서도 터지더라고요. 철새보다 사람, 차량 왕래가 문제예요.”(박천조 음성군 가축방역팀장)

실제로 봉현뜰 마을에 57개의 오리 사육농가는 좁은 길 건너편과, 몇 걸음 걸으면 갈 만한 이웃으로도 이어져 있었다. 그렇다 보니 한 농가에서 에이아이가 발생하면 가까운 거리에 있는 다른 사육농가들에서도 꼼짝없이 살처분을 당해야 했다.

겨울 휴업에 들어가면서 비어 있는 농장들이 많아 봉현뜰에는 차량 왕래도 크게 줄고 농민 모습도 잘 띄지 않았다. 빈 농장이라도 방역 대상에선 빠지지 않는다. 1주일에 한번씩인 수요일에는 군과 면의 방역차량들이 겨울 바람 속에 먼지를 날리며 봉현뜰 농가와 하천 주변에서 소독 작업을 계속했다.

사육 휴지기 보상금에 대해선 불만도 있다. 오리 1만7000 마리를 사육했던 조성환씨는 “올해엔 1마리당 512원에서 712원으로 올랐지만 보상 대상인 오리 수를 계산하는 기준이 달라져 조삼모사 식으로 별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오리 1만2000 마리를 사육했던 김병조(62)씨는 “휴지기가 끝나도 곧바로 사육에 들어가기 힘들어 농가 손해가 크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그래도 봉현뜰의 겨울엔 변화가 생겼다. 전량 살처분이 이뤄졌던 2016년과 달리, 2017년엔 살처분 가금류가 ‘0’ 마리를 기록했다. 당연히 살처분과 방역 비용도 줄었다. 강기해 음성군 주무관은 “인화물질을 줄여 화재를 막은 셈”이라며 “덕분에 방역 예산이 10분의 1 이하로 크게 줄어드는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오리 사육 휴지기 제도는 충북도를 중심으로 전국에서 2017~2018년 겨울에 처음 시행됐다. 이번 겨울엔 전국 전체 농가의 20% 가까운 203곳이 참여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황성철 사무관(조류인플루엔자방역과)은 “평시에도 일시 휴업하는 농가가 있어 20%가 모두 새로 휴업한 곳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음성군과 맹동면의 방역 차량들은 일주일에 한번씩 오리 사육 휴지기에 들어간 맹동면 봉현리 봉현뜰 마을의 빈 오리 사육장들을 소독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음성/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지금은 ‘주의 단계’…저병원성 검출 50건 긴장

농가 지역에서 이뤄지는 방역 대응과 별개로, 실험실에서는 고병원성 바이러스의 출현을 될수록 일찍 발견해 조기 대응에 나서려는 ‘예찰’ 활동도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철새 등 야생조류의 분변을 채집해 양성 반응을 일으키는 에이아이 항원이 들어 있는지를 감시하는 활동이다. 예찰과 감시 활동엔 농림축산검역본부를 중심으로 시·도별 보건환경연구원이나 동물·축산 위생사업소들이 참여하고 있다.

언론엔 잘 보도되지 않았지만 지난해 10월부터 지금까지 야생조류의 분변에선 50건의 에이아이 바이러스 항원이 검출됐다. 다행히 현재로선 ‘저병원성’ 바이러스만이 발견돼 방역 대응은 ‘주의’ 단계를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저병원성 바이러스는 경기, 영호남, 충청 등 전국에서 고르게 발견됐는데, 서울 중랑천에서도 철새 분변에서 지난해 10월 발견됐다. 경기동물위생시험소에서 예찰 활동을 하는 이주영 수의주무관(조류질병대응팀)은 “관할 지역에선 지금까지 저병원성 바이러스 12건이 발견됐는데, 철새가 더 많아지는 1월엔 예찰 활동이 더 바빠진다”고 말했다.

저병원성 바이러스 항원의 발견 건수가 늘어난 것은 예찰 활동이 그만큼 강화됐기 때문이다. 황성철 농식품부 사무관은 “검사 지점을 88곳에서 96곳으로 늘리고 검사 건수도 늘려 바이러스를 더 빨리 발견하는 예찰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병원성 바이러스가 발견된 곳에선 소독과 예찰이 더욱 강화된다.

특히나 고병원성 인플루엔자를 자주 일으키는 유형인 바이러스들(H5형, H7형)이 요주의 대상이다. 서울 지역의 동물원과 야생조류를 예찰하고 있는 서울보건환경연구원의 채희선 수의연구사(동물방역팀)는 “채집한 분변을 바이러스 크기 정도만 통과하도록 여과한 다음에 실시간 분석기로 H5형이나 H7형인지를 먼저 확인하고, 다시 유정란에 접종해 실제 바이러스 항원이 검출되는지를 확인하고 있다”면서 “고병원성 변이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H5, H7형 바이러스에 대해선 저병원성이라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분석은 일정한 안전등급 이상의 시설을 갖춘 실험실에서만 이뤄진다.

저병원성 바이러스가 야생철새가 아니라 사육농가의 닭, 오리에서 발견되면 대응은 달라진다. 고병원성 변이가 출현할 수 있는 H5형이나 H7형 에이아이 바이러스가 검출되면 발생 농가의 가금류 전체를 살처분한다. 만일 고병원성 바이러스가 발견되면 긴장은 극도로 높아진다. 특히 사육농가의 닭, 오리에서 발견되면, 발생 농가뿐 아니라 주변 3㎞ 이내의 가금류를 예방 차원에서 모두 살처분한다는 방역대응 매뉴얼이 정해져 있다.

황성철 사무관은 “1, 2월은 여전히 위험한 시기라 (에이아이 없는 겨울이 되기를 기대하는 것조차) 말할 상황은 아직 아니다”라며 “사람과 차량 이동이 많은 설 연휴는 특히 중요한 시기”라고 경계했다.

“방역 책임엔 사육위탁기업도 포함돼야”

겨울철마다 되풀이되는 에이아이 파동을 겪으며, 대규모 닭, 오리의 살처분은 많은 후유증을 낳았다. 최악의 살처분이 시행된 2016년 당시 살처분에 참여한 한 방역요원은 브릭(BRIC)의 자유게시판에 “몇 년 동안 에이아이를 겪어온 사람으로서 이제는 지칠대로 지쳤고 살처분도 끔찍하고 이 일을 그만하고 싶은 심정”이라며 “일방적인 검사, 살처분 정책 외엔 대안이 없는 듯해 답답하다”고 정신적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조류인플루엔자는 생산자인 사육농가들에 더 큰 고충을 안겨주었다. 농업사회학 연구자이자 <대한민국 치킨전> 등의 저자인 정은정 한신대 강사는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하면 언론은 살처분의 광경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며 소비자에겐 위험 커뮤니케이션을 작동시키지만 사실 살처분은 농가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대부분 가금류 사육농가들이 자립농이 아니라 계약관계로 맺어진 기업에서 오리병아리와 사료 등을 받아 45일가량 오리를 사육해 출하하고서 마리당 사육수수료를 받는 위탁사육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병아리와 사료 공급부터, 도축, 가공, 유통까지 모든 단계를 쥐고 있는 이른바 ‘수직계열화’ 기업들은 조류인플루엔자 파동을 겪는 사육농가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정은정 강사는 조류인플루엔자 파동이 이런 가금류 산업 시스템과 방역 문제가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수직계열화 기업이 사육농가에 주는 사육수수료가 낮다보니까, (이미 많은 시설비를 투자한) 농가에선 더 많이 키우려 하고, 그러다보니 밀집사육 문제가 생깁니다. 방역에는 취약한 사육환경이 되는 거죠. 그리고 조류인플루엔자가 터지면 그 고통은 고스란히 생산자인 농가의 몫이 됩니다.” 그는 “조류인플루엔자 방역대책도 이런 가금류 산업의 문제를 들여다봐야 하고, 중요한 주체인 수직계열화 기업들도 방역의 책임 있는 주체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독 관리와 예찰의 강화는 이번 겨울에 조류인플루엔자 방역 대책에서 큰 몫을 해내고 있다. 하지만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한 이후에 그 확산과 피해를 되도록 줄이기 위해선 소독과 예찰뿐 아니라, 피해를 키우는 사육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예방은 언제나 중요하지만 점점 더 많은 소독, 더 많은 예찰을 한다고 해서 에이아이를 다 막을 순 없을 겁니다. 철새들은 이곳저곳 날아다니고 사람과 차량은 여기저기 쉽게 이동합니다. 왜 쉽게 확산하고 피해가 커지는지를 살펴, 피해를 줄이려는 노력도 더욱 필요할 듯해요. 밀집한 사육장의 일부를 쉬게 했더니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우리 경험이 그걸 말해주는 것 같아요.”(강기해 음성군 주무관)

근래에 해마다 전국적으로 겪어온 조류인플루엔자 파동은 우리의 가금류 산업 시스템의 문제나 가축 사육환경의 문제가 방역대책과도 관련되어 있음을 또한 보여주고 있다.

음성/오철우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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