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르포
창신동 문구거리의 크리스마스
▶ 크리스마스 무렵이면 엄마와 함께 들렀던 그 거리를 다시 찾았습니다. 인파에 휩쓸려 길을 잃지 않을까 땀이 나도록 꼭 쥐었던 엄마 손과 어떤 선물을 받을까 두근거리던 기억이 여전합니다. 그러나 20여년 만에 찾은 그 거리의 풍경은 그때와 너무 달라졌습니다. 크리스마스트리와 반짝이는 장식, 신나는 캐럴 소리는 그대로였지만, 한적한 거리를 바라보는 상인들의 눈빛에는 상실감이 가득합니다. 2017년 세밑의 찬 바람이 쓸쓸함을 더하는 서울 종로구 창신동 ‘문구거리’의 풍경을 전합니다.
“차라리 빨리 문 닫고 집에 가서 잠을 자는 게 오히려 남는 장사예요.” 한때 하루에 두번 장이 설 만큼 손님으로 붐볐던 서울 창신동 문구거리는 크리스마스를 앞둔 지난 20일 인적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한적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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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터미널·기차역 옮긴 뒤 들어서
1990년대 전성기…“손님들에게 번호표
줘야 장사할 정도로 북적거렸는데…” 2000년대 들어 문구업 쇠퇴로 활기 잃어
대형매장에 치이고 온라인 장벽도 부담
‘천소매’ 팔며 근근이 하루하루 버텨
“이젠 완전히 죽은 거리 됐다” 서울 종로구 창신동 문구·완구거리(문구거리)에서 ‘우리팬시’를 운영하는 한영섭(55)씨는 ‘대목 중의 대목’이라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어두운 표정이 역력했다. 지난 17일 오후 <한겨레>와 만난 한씨는 아침 9시부터 여섯 시간 동안 1만~2만원짜리 팽이 네댓개를 판 게 전부라고 했다. 한씨는 “처음 창신동에서 문구 일을 시작했던 1993년에는 손님들에게 번호표를 줘야만 장사가 될 정도로 가게가 북적거렸다. 다시 그런 날이 오겠냐”며 한숨 쉬었다. 이날 한씨 가게의 하루 매출액은 10만원 남짓에 그쳤다. 한씨는 “예전엔 크레파스나 색연필 세트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인기였는데, 열흘 전 볼펜 하나 팔린 뒤로 문구를 찾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가게 문밖의 문구거리 골목은 인적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한적했다. 크리스마스를 맞은 문구거리는 대목에 대비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다. 300m 남짓 거리 양쪽으로 늘어선 상점마다 빨간 산타클로스 인형과 초록색 크리스마스트리가 진열돼 있었고 상점 벽면을 따라서는 금·은색의 트리 장식이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화려한 장식이 무색하게 문구를 사러 온 손님을 찾아보긴 어려웠다. 동네 문구점이 쇠퇴하면서 도매시장인 문구거리를 찾는 이들도 자연스레 줄었기 때문이다. 문구거리의 도매 문구 상인들은 ‘천소매’를 팔며 근근이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천소매란 ‘슬라임’, ‘액체괴물’처럼 최근 들어 유행하는 천원짜리 장난감들을 뜻한다. 문구 유통시장의 강자인 온라인 판매업자들이나 대형 판매점들은 가격이 저렴하고 그만큼 이윤도 적은 천소매를 취급하지 않는다. 문구거리에서 잡화점포를 운영하는 장필식(42)씨는 “점포를 유지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힘들어진 상황인데, 천소매라도 팔면서 간신히 버티고 있는 중”이라며 “예전 같으면 동네 문방구에서나 팔았을 상품이 지금은 창신동 문구거리의 효자상품이 됐다”고 말했다. ‘아이템플’ 문구사를 운영하는 한준호씨는 “요즘은 가게 문을 열어놓을수록 손해다. 난로를 켜느라 가스비만 쓴다”며 “차라리 빨리 문 닫고 집에 가서 잠을 자는 게 오히려 남는 장사”라고 자조 섞인 말을 던졌다. 문구점 ‘예지사’를 33년째 운영하고 있는 오세인(64)씨도 “옛날 같았으면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온 손님들에게 치일 정도로 북적였는데 이젠 완전히 죽은 거리가 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목 중의 대목’이라는 연말, 창신동 문구거리는 쓸쓸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있었다. “하루에 두 번 장 서던 골목” 창신동 문구거리는 동대문역부터 동묘앞역 방향으로 300m 늘어선 골목에 형성된 국내의 대표적인 문구·완구 도매시장이다. 현재 동대문종합시장 자리에 있던 고속버스터미널과 동대문 기차역이 1968년 강남과 청량리로 떠나면서 역 앞 술집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 문구 도매상이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했다. 송동호 동대문문구완구도매시장 번영회장은 “그때는 잡상인들이 주로 버스에서 물건을 팔았다. 볼펜이나 수첩 같은 문구류를 주로 취급했는데 동대문 지역의 교통이 좋다 보니 잡상인들에게 물건을 공급할 도매상들이 술집이 떠난 자리에 둥지를 틀었다”고 설명했다. 1980년대 들어서는 문구·완구 상점의 수가 100여곳으로 늘었다. 현재는 문구점과 완구점 110여개 가게가 장사를 이어가고 있다. 상인들은 1990년대가 문구거리의 ‘전성기’였다고 입을 모았다. 등하교 시간에 물건이 떨어진 동네 문구점 주인들이 일제히 문구거리로 몰려들었다. 그때는 등교 시간이 지난 뒤인 오전에 한번, 하굣길 장사를 마친 저녁에 한번, 하루에 두번씩 장이 섰다고 한다. 대를 이어 ‘경인문구’를 운영하고 있는 조치열(44)씨는 매일 아침 ‘중상’ 트럭으로 가득 찼던 그때의 골목을 회상했다. 중상이란 ‘중간상인’의 줄임말로 동네 문구점의 주문을 받아 도매 물건을 떼서 배달해주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그는 “처음 가게를 열었던 2002년만 해도 나뭇가지만 꺾어다 내놔도 팔려갈 정도로 장사가 잘됐다”고 말했다. 그 시절엔 11월부터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려는 사람들로 문구거리가 북적댔다고 한다. ‘신지유통’ 대표 이영준(55)씨는 “10년 전만 해도 크리스마스 대목엔 상인회가 나서서 ‘아기 잃어버리지 않게 조심하라’고 경고 방송을 했을 정도로 사람이 북적였다”고 말했다.
창신동 문구거리는 동대문역부터 동묘앞역 방향으로 300m 늘어선 골목에 형성된 국내의 대표적인 문구·완구 도매시장이다. 박종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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