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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2.23 12:00 수정 : 2017.12.23 20:01

[토요판] 르포
창신동 문구거리의 크리스마스

▶ 크리스마스 무렵이면 엄마와 함께 들렀던 그 거리를 다시 찾았습니다. 인파에 휩쓸려 길을 잃지 않을까 땀이 나도록 꼭 쥐었던 엄마 손과 어떤 선물을 받을까 두근거리던 기억이 여전합니다. 그러나 20여년 만에 찾은 그 거리의 풍경은 그때와 너무 달라졌습니다. 크리스마스트리와 반짝이는 장식, 신나는 캐럴 소리는 그대로였지만, 한적한 거리를 바라보는 상인들의 눈빛에는 상실감이 가득합니다. 2017년 세밑의 찬 바람이 쓸쓸함을 더하는 서울 종로구 창신동 ‘문구거리’의 풍경을 전합니다.

“차라리 빨리 문 닫고 집에 가서 잠을 자는 게 오히려 남는 장사예요.” 한때 하루에 두번 장이 설 만큼 손님으로 붐볐던 서울 창신동 문구거리는 크리스마스를 앞둔 지난 20일 인적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한적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300m 골목 늘어선 문구·완구 도매시장
버스터미널·기차역 옮긴 뒤 들어서
1990년대 전성기…“손님들에게 번호표
줘야 장사할 정도로 북적거렸는데…”

2000년대 들어 문구업 쇠퇴로 활기 잃어
대형매장에 치이고 온라인 장벽도 부담
‘천소매’ 팔며 근근이 하루하루 버텨
“이젠 완전히 죽은 거리 됐다”

서울 종로구 창신동 문구·완구거리(문구거리)에서 ‘우리팬시’를 운영하는 한영섭(55)씨는 ‘대목 중의 대목’이라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어두운 표정이 역력했다. 지난 17일 오후 <한겨레>와 만난 한씨는 아침 9시부터 여섯 시간 동안 1만~2만원짜리 팽이 네댓개를 판 게 전부라고 했다. 한씨는 “처음 창신동에서 문구 일을 시작했던 1993년에는 손님들에게 번호표를 줘야만 장사가 될 정도로 가게가 북적거렸다. 다시 그런 날이 오겠냐”며 한숨 쉬었다. 이날 한씨 가게의 하루 매출액은 10만원 남짓에 그쳤다. 한씨는 “예전엔 크레파스나 색연필 세트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인기였는데, 열흘 전 볼펜 하나 팔린 뒤로 문구를 찾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가게 문밖의 문구거리 골목은 인적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한적했다.

크리스마스를 맞은 문구거리는 대목에 대비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다. 300m 남짓 거리 양쪽으로 늘어선 상점마다 빨간 산타클로스 인형과 초록색 크리스마스트리가 진열돼 있었고 상점 벽면을 따라서는 금·은색의 트리 장식이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화려한 장식이 무색하게 문구를 사러 온 손님을 찾아보긴 어려웠다. 동네 문구점이 쇠퇴하면서 도매시장인 문구거리를 찾는 이들도 자연스레 줄었기 때문이다. 문구거리의 도매 문구 상인들은 ‘천소매’를 팔며 근근이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천소매란 ‘슬라임’, ‘액체괴물’처럼 최근 들어 유행하는 천원짜리 장난감들을 뜻한다. 문구 유통시장의 강자인 온라인 판매업자들이나 대형 판매점들은 가격이 저렴하고 그만큼 이윤도 적은 천소매를 취급하지 않는다. 문구거리에서 잡화점포를 운영하는 장필식(42)씨는 “점포를 유지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힘들어진 상황인데, 천소매라도 팔면서 간신히 버티고 있는 중”이라며 “예전 같으면 동네 문방구에서나 팔았을 상품이 지금은 창신동 문구거리의 효자상품이 됐다”고 말했다.

‘아이템플’ 문구사를 운영하는 한준호씨는 “요즘은 가게 문을 열어놓을수록 손해다. 난로를 켜느라 가스비만 쓴다”며 “차라리 빨리 문 닫고 집에 가서 잠을 자는 게 오히려 남는 장사”라고 자조 섞인 말을 던졌다. 문구점 ‘예지사’를 33년째 운영하고 있는 오세인(64)씨도 “옛날 같았으면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온 손님들에게 치일 정도로 북적였는데 이젠 완전히 죽은 거리가 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목 중의 대목’이라는 연말, 창신동 문구거리는 쓸쓸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있었다.

“하루에 두 번 장 서던 골목”

창신동 문구거리는 동대문역부터 동묘앞역 방향으로 300m 늘어선 골목에 형성된 국내의 대표적인 문구·완구 도매시장이다. 현재 동대문종합시장 자리에 있던 고속버스터미널과 동대문 기차역이 1968년 강남과 청량리로 떠나면서 역 앞 술집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 문구 도매상이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했다. 송동호 동대문문구완구도매시장 번영회장은 “그때는 잡상인들이 주로 버스에서 물건을 팔았다. 볼펜이나 수첩 같은 문구류를 주로 취급했는데 동대문 지역의 교통이 좋다 보니 잡상인들에게 물건을 공급할 도매상들이 술집이 떠난 자리에 둥지를 틀었다”고 설명했다. 1980년대 들어서는 문구·완구 상점의 수가 100여곳으로 늘었다. 현재는 문구점과 완구점 110여개 가게가 장사를 이어가고 있다.

상인들은 1990년대가 문구거리의 ‘전성기’였다고 입을 모았다. 등하교 시간에 물건이 떨어진 동네 문구점 주인들이 일제히 문구거리로 몰려들었다. 그때는 등교 시간이 지난 뒤인 오전에 한번, 하굣길 장사를 마친 저녁에 한번, 하루에 두번씩 장이 섰다고 한다. 대를 이어 ‘경인문구’를 운영하고 있는 조치열(44)씨는 매일 아침 ‘중상’ 트럭으로 가득 찼던 그때의 골목을 회상했다. 중상이란 ‘중간상인’의 줄임말로 동네 문구점의 주문을 받아 도매 물건을 떼서 배달해주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그는 “처음 가게를 열었던 2002년만 해도 나뭇가지만 꺾어다 내놔도 팔려갈 정도로 장사가 잘됐다”고 말했다. 그 시절엔 11월부터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려는 사람들로 문구거리가 북적댔다고 한다. ‘신지유통’ 대표 이영준(55)씨는 “10년 전만 해도 크리스마스 대목엔 상인회가 나서서 ‘아기 잃어버리지 않게 조심하라’고 경고 방송을 했을 정도로 사람이 북적였다”고 말했다.

창신동 문구거리는 동대문역부터 동묘앞역 방향으로 300m 늘어선 골목에 형성된 국내의 대표적인 문구·완구 도매시장이다. 박종식 기자

문구업 쇠퇴와 함께 찾아온 위기

문구거리에서 과거와 같은 활력을 찾아볼 수 없었다. 2000년대 이후 문구업이 쇠퇴하기 시작했고 창신동도 그 여파를 비켜가지 못했다. 상인들은 문구류 비중을 줄이고 완구 쪽으로 업종을 보강하며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노력했지만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이아무개(59)씨가 운영하는 ㅈ잡화점의 매출은 20년 전과 비교해 20분의 1로 줄었다. 하루에 2천만원까지도 팔아봤다는 이씨는 몇년 전부터 하루 100만원 남짓 매출을 올리고 있다. 문구류는 대개 10% 안팎의 이윤을 남기기 때문에 이씨 손에 쥐어지는 돈은 한달에 200여만원이 전부다. 이씨는 “2008년부터 연금보험과 적금 등을 하나씩 깨면서 가게를 유지하고 있다”며 “올해만 보험과 적금을 1억3천만원어치 헐었다”고 털어놨다. 얼마 전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4400만원짜리 아내의 연금보험까지 중도 해지한 이씨는 “이 돈 들이고도 사정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올겨울이 지나고 가게를 접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20여년 동안 문구 도매업으로 집도 넓히고 자녀들 대학 교육까지 시켰지만 더는 버텨볼 재간이 없다고 한다.

다른 가게도 사정은 비슷했다. 우리팬시 한영섭 대표도 “직원도 줄이고 아내와 둘이 가게를 운영하며 허리띠를 졸라매지만 한달 월세 190만원을 내기도 벅차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ㅇ문구점을 운영하는 이아무개(38)씨는 “가게를 접고 뭘 할 수 있을지 계획은 없는데 마냥 버틸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한마디로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젊은 시절 문구회사 영업사원으로 일했다는 ‘예지사’ 오세인씨는 스마트폰과 태블릿피시가 보급되면서 더 이상 손글씨를 쓰지 않는 사회가 된 점도 영향을 미쳤다고 거들었다. 오씨는 “30년 전엔 예쁜 편지지 하나만 잘 뽑아내면 문구회사가 몇 달은 너끈히 버틸 수 있었다”며 “당시엔 전국의 학생들이 60만 장병들에게 위문편지를 쓰던 시절이었다”고 회상했다. 전자우편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시대에 이런 편지지 특수를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세월이 야속하기만 한 것이다.

온·오프라인에서 좁아진 판로

판로 개척에 실패한 것도 문구거리가 힘겨워진 이유 가운데 하나다. 오프라인 유통망은 다이소 같은 대형 생활용품점에 잠식당했고, 급팽창하고 있는 온라인 판로에는 접근하지 못한 탓이다. 실제 국민의당 이찬열 의원이 펴낸 ‘다이소 영업점 확장과 문구업 운영실태 현황’ 자료를 살펴보면, 지난 9월 설문조사에 참여한 459개 문구점 중 “다이소가 등장하면서 매출이 하락했다”고 답한 문구점은 92.8%에 이르렀다. 2010년께 500개 매장을 운영하던 다이소는 2015년 1천번째 매장을 여는 등 매장 수가 두배 이상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문구점 수는 2009년 1만7천여개에서 2015년 1만1천여개로 6천여개가 사라졌다.

‘클릭 한 번’이면 해결되는 ‘온라인 판매’를 당해낼 재간이 없는 점도 문제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7년 10월 기준 온라인 문구 거래액은 416억여원으로 10년 전인 2007년 10월 160억여원보다 2.6배 이상 많아졌다. 온라인 유통망이 커지면서 일부 문구거리 상인들이 뒤늦게 인터넷 판매를 시작했지만 온라인 전문업자들을 당해내긴 역부족이었다. 일년 전부터 온라인 쇼핑몰도 함께 운영한 ㅈ잡화점 이씨는 “소비자가격 1만원짜리 물건을 5800원에 입고해 1천원 이윤을 붙여 6800원에 내놨는데, 그 상품만 전문으로 유통하는 온라인 업자가 6천원에 대량으로 풀어버리니 당해낼 수가 없다”고 말했다.

안승호 숭실대 경영학과 교수는 “온라인에서 사람들은 최저가 상품을 고르는데, 최저가란 판매자가 자기 마진을 거의 안 남기면서 아주 대량으로 물량을 확보하는 경우에 가능한 판매 방식”이라며 “다양한 상품을 조금씩 갖추고 판매하는 오프라인 방식에 익숙한 고령의 문구점 상인들이 이런 최저가 판매 방식을 감당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답이 없다”…문구거리의 미래는?

문구거리에 미래는 있을까. 대다수 상인들은 고개를 젓는다. 그렇다고 업종을 쉽게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다. 도매시장으로 시작한 문구거리는 집집마다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어치의 재고를 쌓아놓고 있다. 창고에 쌓여 있는 물건들은 업종을 바꾸는 순간 고물상에도 팔기 어려운 골칫덩이가 될 것이다. 재고의 ‘인질’이 된 상인들은 죽으나 사나 가게 문을 열게 되는 셈이다. ‘신지유통’의 이영준씨는 “장사를 접고 집에 앉아 있으나 문을 여나 돈이 안 되는 것은 마찬가지”라면서도 “재고를 버리기보단 천원이라도 받고 파는 게 낫다 싶어 가게 문을 열고 있다”고 지금의 처지를 설명했다.

자녀에게 가업으로 장사를 물려줬던 일부 상점들은 그 명맥이 끊길 태세다. 부모님이 30여년 운영해온 문구점을 물려받아 10년째 ‘상신문구’를 운영 중인 박상희(39)씨는 “막상 물려받으니 생각보다 장사가 안돼 고민이 크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를 이어 문구점을 운영하는 조치열씨도 “나 같아도 따뜻하고 편리한 마트에 가거나 값싼 다이소에 갈 것 같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27년째 ‘우리체육사’를 운영하는 추미란(61)씨는 “돈은 안 되고 힘만 드는 이 일을 절대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 내 선에서 끝내고 싶다”고 잘라 말했다.

천소매를 팔며 하루하루를 버틴다는 잡화상 장씨는 “답이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인적이 드문 문구거리에 캐럴 음악은 쓸쓸하게 울려퍼졌다. 휴일도 없이 가게 문을 연다는 장씨의 어깨가 유독 왜소해 보였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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