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7.10.15 10:12 수정 : 2017.10.15 13:54

[토요판] 르포
송이 최대생산지 영덕의 가을

영덕·울진·청송 등이 주요 생산지
키 5~10m 소나무숲에서 잘 자라
이른 새벽 ‘원시적인’ 방식으로 채취
침엽수 멸종 등 위협요인 대책 세워야

송이 장터의 일등품 송이들. 맛과 향이 절묘한 송이는 예부터 자연이 주는 최고의 선물로 꼽혀왔다.

해마다 이맘때면 소나무숲이 우거진 산촌 마을을 들썩이게 만드는 주인공이 있다. 바로 송이버섯. 국내 자연산 먹거리 가운데 으뜸으로 꼽히기도 하는 송이를 채취하기 위해서다. 국내 송이 최대 산지인 경북 영덕 주민들의 송이 채취 행렬을 따라가봤다. 안타깝게도 기상이변과 기후변화로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선물은 위협받고 있었다.

경북 영덕군 영덕읍 화천리와 축산면 기암리의 경계인 국사봉 능선 자락. 소나무숲이 곱게 펼쳐진 야산인 이 일대는 해마다 가을철이면 주민들의 발길이 유난히 분주해진다. 맛과 향이 절묘해 자연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자 국내 자연산 먹거리 중 으뜸으로 꼽히는 송이버섯을 채취하기 위해서다. 영덕은 우리나라 최대 송이 생산지다.

주민들을 따라 소나무숲을 걸어가다 아래 사면 쪽으로 10~20m 내려가봤다. 얼핏 보기엔 전혀 길이 아닌 듯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폭이 20㎝쯤 되는 아주 좁다란 길이 나 있다. 송이를 채취하는 주민들이 1년에 서너 차례만 다니는 길이란다. 초행자의 눈엔 어디쯤 송이가 있을지 짐작도 할 수 없었는데, 정신을 집중하다 보니 어디선가 송이 특유의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주민들이 일러준 곳으로 눈길을 돌리니 솔잎이 쌓인 토양층 아래 자두만한 크기의 송이 머리가 땅을 비집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송이는 대체로 한개만 홀로 피어나지 않는다. 지름이 1~3m가량 되는 원에 서너개 이상이 함께 자란다. 하지만 송이를 찾아내는 일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바로 자신의 발아래에 두고도 모르고 지나치지 십상인 게 바로 송이란다. 한 주민은 “송이 채취는 10년 정도는 되어야 고수 반열에 오른다”며 “한 10년쯤 하다 보면 이쯤에 있겠다 싶은 촉이 온다”고 웃으며 말했다. 특히 능선 쪽 7부 이상에서 주로 발견된다고 했다.

소나무숲에서 갓 채취한 송이들. 송이는 30~40년 된 소나무숲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다.
새벽에서 아침 사이에 채취

이곳 주민들은 무엇보다 발품을 강조했다. 숲속을 땀 흘려 걷고 움직여야 귀한 송이를 손에 쥘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송이 채취는 농업과 임업, 어업을 통틀어 가장 ‘원시적인’ 방식으로 이뤄진다. 현대 농업이나 어업은 과학이나 정보통신 기술 덕을 톡톡히 누리고 있지만, 송이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오직 소나무 숲속을 부지런히 오가며 두 손으로 따는 방법뿐이다. 사정이 이런지라 주민들은 송이 채취철이 되면 새벽 5시부터 일을 시작한다. 동트기 직전 어스름한 무렵부터 햇살이 숲속을 파고들 때까지가 송이 채취의 적기에 속한다. 그러다 보니 채취한 송이를 싱싱한 상태로 조합이나 도매상에 출하하는 일도 오전 중에 모두 마무리된다.

송이가 유독 귀한 대접을 받는 건 나는 곳이 소나무숲으로 한정돼 있기 때문. 송이는 소나무가 서식하는 산에서만 자란다. 한마디로 소나무가 없으면 송이도 없다. 그중에서도 송이가 가장 많이 나는 건 30~40년 된 소나무숲에서다. 이 정도의 소나무숲이라면 가슴 높이 지름이 20~25㎝가량, 나무 키는 5~10m 되는 편이다. 이보다 키가 더 큰 소나무 밑에선 오히려 송이가 잘 열리지 않는다. 송이가 주로 나는 숲은 소나무 단순림이다. 소나무와 활엽수가 섞여 자라는 숲보다는 소나무만 자라는 숲에서 훨씬 수확이 많다. 영덕을 비롯해 울진과 포항, 청송 등 경북 북부와 경남 거창, 강원도 삼척 등이 국내의 대표적인 송이 산지다. 주로 낙동정맥과 백두대간에 걸친 지역이다.

온도와 습도도 중요하다. 너무 습한 것도 너무 더운 것도 송이는 싫어한다. 송이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영덕군청의 권오웅 박사는 “송이가 대풍이 들기 위해선 8월 말에서 9월 초에 태풍이 한번 지나가야 한다”며 “강한 바람이 온 산의 소나무를 죄다 흔들어주고, 이 과정에서 소나무 뿌리에 기생하는 송이의 포자가 퍼져 나간다”고 설명했다.

채취한 송이는 정성스럽게 포장돼 국내외로 팔려 간다.
학명에 ‘마쓰타케’라는 종명 포함

이른 새벽부터 주민들을 따라다니다 보니 어느새 허기가 몰려왔다. 속마음을 읽었는지 한 주민이 송이를 듬뿍 넣은 ‘송이라면’을 끓여줬다. 맛이 가히 일품이다. 이곳 주민들은 밥이나 국, 찌개, 무침, 조림 등 송이를 이용해 다양한 요리법을 발전시켰단다. 송이가 많이 나는 지역에서는 고기를 구워 먹을 때도 송이를 함께 굽는 게 일반적이다. 아마도 송이가 많이 나는 경북과 강원도 일대가 한우 산지와 겹친 이유도 있을 것 같다.

영덕은 전국을 통틀어 송이 생산량 1위 자리를 5년째 굳건히 지키고 있다. 지난해 산림조합 송이 유통량을 보면, 전국 유통량 26만5727㎏ 가운데 영덕산(9만6705㎏)이 36%로 가장 많았다. 마을 뒷산 소나무숲이면 어디서든 송이를 쉽게 만날 수 있을 정도다. 지난해 영덕군 전체 쌀 수매금액은 170억원. 송이의 수매금액은 250억원으로, 쌀 수매금액을 웃돌았다. 영덕군 농림축산 관계자는 “250억원은 보수적인 추정치”라며 “실제 규모는 더 될 것”이라 말했다.

송이가 안겨다 주는 혜택은 만만찮다. 특히 이웃나라 일본에선 송이 가격이 우리나라보다 2~3배 높을 만큼 큰 인기를 끈다. 원래 송이의 학명 ‘Tricholoma matsutake’엔 ‘matsutake’(마쓰타케)란 종명이 기재돼 있다. 학명을 등재한 나라가 일본인 탓이다. 일본에선 송이가 마쓰타케란 이름으로 불린다. 그럼에도 일본에선 송이 산출량이 너무 적어 최고의 대접을 받는 편이다.

송이의 인기를 짐작해볼 만한 에피소드도 많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철 부지런히 송이를 채취하면 기왓집 한 채를 짓는다는 얘기가 있었고, 요즘도 주민들 사이에선 송이밭은 자식한테도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다. 송이 밭 10㏊ 정도만 잘 관리하며 웬만한 도시 정규직 노동자 연봉을 능가한다고 한다. 송이를 채취하는 철이면 으레 산자락 곳곳에 ‘출입금지’란 팻말이 붙어 있는 데서도 송이의 경제적 가치를 엿볼 수 있다. 사유지의 경우엔 소유자 개인이 관리하고 채취하지만, 국공유림은 산림청과 관할 지방자치단체한테서 임대받아 이용하므로 채취구역이 철저하게 나뉜다. 임대 조건은 해당 지역 주민인지 여부가 우선 적용된다. 오랜 세월 소나무숲을 가꾸고 지켜온 공동체에 대한 일종의 배려인 셈이다.

송이가 많이 나는 지역 주민들은 각종 요리에 송이를 즐겨 사용한다. 주민들이 끓여준 송이라면.
소나무숲 환경보호가 우선

주민들은 송이가 생산되는 산림 보호에 너나없이 앞장서고 있다. 산불과 소나무재선충병 등 소나무를 위협하는 각종 재해나 질병을 막는 데 적극적이다. 영덕과 이웃한 울진 주민들 역시 마찬가지다. 울진군 북면 두천리에서 송이 채취를 하던 주민 장수봉씨는 “송이가 많이 나는 산촌 주민들에게 소나무숲 보호는 거의 종교와도 같다”며 “도시 사람들은 이런 정서를 짐작하기 힘들 것”이라 말했다.

그럼에도 주민들은 한결같이 우려 섞인 고민을 털어놨다. 기상이변과 기후변화로 소나무를 비롯한 침엽수가 서서히 말라죽고 있어서다. 여기에 더해 송이에 대한 정부 차원의 배려나 관심도 부족한 편이다. 한국산림보호센터의 송홍선 박사는 “산림생태계와의 상관관계, 산지 고도, 소나무 식생 밀도 등 규명되어야 할 게 많다”며 “송이는 자연산물이지만 좀 더 효율적으로 채취하고 관리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 말했다. 주민들의 힘만으론 넘어야 할 산이 만만찮다는 얘기다.

송이 인공재배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일본만 해도 수십년 전부터 송이의 인공재배 기술 연구에 힘을 쏟았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우선은 자연의 귀한 선물인 송이가 살고 있는 생태환경을 잘 가꾸고 보호하는 일부터 힘을 쏟아야 한다는 교훈을 일깨워준 현장이었다.

영덕/글·사진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토요판] 르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